소설리스트

기프티드-359화 (359/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42)

빠른 속도로 자동차를 몰아가는 한규호의 눈에 오피스텔의 모습이 보였다.

오피스텔까지는 대략 200~300m가 남아 있었다.

한규호는 속도계를 바라보았다. 속도계 바늘이 90이라는 숫자 언저리에 위치해 있었다.

한규호는 센터패시아에 부착되어 있는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23시 06분,

여기까지 오는 데 26분이 걸렸다.

바티칸 소속의 남자가 이스라엘 요원이 이동을 시작했다는 전화를 받은 시간이 22시 35분쯤이었다.

서용석의 전화를 받으면서 5분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한규호가 가락시장 김칫소 공장을 나와 차량에 탑승한 시간이 22시 40분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한규호는 막힐 가능성이 있는 분당수서간도시화고속도로 대신에 송파대로와 외곽순환도로, 판교IC를 통과하는 경로를 선택했고,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가락시장에서 판교의 오피스텔까지 20여 킬로미터를 오는 데 26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늦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빠르다고도 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규정 속도를 훌쩍 넘어선 속도에 신호를 위반하면서까지 최대한 빠르게 달린다고 달려왔지만, 도로를 꽉 막고 있는 차들은 한규호의 초감각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한규호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오피스텔 건물과 오피스텔 입구에서 20여 미터 거리에 정차된 검은색 승합차가 보였다.

* * *

바이츠만 국장이 타고 있는 승합차를 향해 다가오는 승용차를 처음 보았을 때, 바이츠만은 그 남자가 돌아오고 있다고 확신했다.

고속화도로나 간선도로도 아닌, 왕복 편도 2차선의 집산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량이 일반 차량일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차량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무생물임에도, 마치,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맹수 같은 기세가 느껴졌다.

바이츠만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그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바이츠만은 조금씩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느끼면서 고개를 돌려 오피스텔을 바라보았다.

신 베트 요원 세 명이 오피스텔에 있었다.

최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신 베트 정예 중의 정예였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바이츠만 국장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왔군.”

그렇게 정보를 알려 준 바이츠만 국장은 다시 시선을 움직여 다가오는 차량을 바라보았다.

그 짧은 순간에 차종은 물론 차 번호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바이츠만이 타고 있는 승합차에 접근해 있었다.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은 상태였다.

맹수가 아니다. 맹수의 입으로 뛰어드는 한심한 초식동물이지.

바이츠만 국장이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차량이 빠른 속도로 바이츠만 국장이 타고 있는 승합차를 스치고 지나갔다.

* * *

한규호는 빠른 속도로 승합차를 지나가면서, 시선을 움직여 차량을 바라보았다.

시속 90m 속도, 어두운 밤, 그리고 짙은 틴팅. 승합차의 내부 모습이 보일 리가 없었다. 일반인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한규호의 증폭된 시감각은 뒷자리에 앉아서 한규호가 타고 있는 차량을 바라보는 백인 남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놈이군. 미국에서 넘어왔다는 신 베트의 국장 놈이.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승합차를 지나쳐 갔다.

차를 멈추고, 국장 놈을 인질로 잡는 것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한규호는 바로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트레이시의 안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만약 한규호가 이스라엘 현장 요원이고, 트레이시에게 위해를 가하는 계획에 따라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면, 상사가 인질로 잡혔다고 하더라도, 작전을 계속 진행할 것이다. 특히, 국장급 상사라면 더더욱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승합차를 지나친 한규호는 계속 시속 90km의 속도를 유지하다 오피스텔 입구 10여 미터 앞에서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시속 90km로 달리는 차량의 평균적인 제동거리는 45m였다.

하지만 한규호는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동시에, 차량을 180도 회전시켰고, 차량의 방향이 완전히 반전되었을 때, 다시 풀 액셀러레이터를 밟음으로써 시속 90km로 달려오던 차량을 10m 만에 완전히 멈추어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운전 기술로 제동 거리를 단숨에 4분의 1로 줄여 버린 것이다.

하지만 타이어가 노면과 강하게 마찰하면서 발생한 고주파의 음이 주변으로 강하게 퍼져 나가는 것은 한규호도 막을 수 없었다.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한규호의 존재가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작전을 지휘하는 국장이 외부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현장 요원들이 내부에 돌입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렇게 화려한 등장이라면, 분명 안에 있는 놈들도 한규호가 도착했음을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규호는 상관없었다.

오피스텔 안에 이스라엘 요원들이 알아차렸다고 해도,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도 한규호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이스라엘 요원들이 카멜리아와 자신들의 목숨까지 같이 날려 버리려는 의도로 폭탄을 터트리지 않는 이상, 한규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규호에 있어서 지금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시간이었다.

자신이 온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정속을 유지한 상태로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마어마한 소음을 내면서 오피스텔 입구에 차를 멈추는 것이 시간상으로 유리하다고 한규호는 판단을 내렸다.

차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한규호가 튀어 나왔다. 그렇게 튀어나온 한규호는 엄청난 속도로 오피스텔 입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사람이 뛰어간다기보다, 마치 어둠 속을 질주하는 흑표범 같은 모습이었다.

* * *

달려오던 차량이 승합차를 스쳐 지나갔다. 속도가 너무 빨랐다. 오피스텔 앞에서 멈추거나 지하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램프로 진입하기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였다.

단순한 폭주족인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 그 순간에, 바이츠만 국장의 귀에 날카로운 고주파의 소리가 들려왔다.

디스크 브레이크의 패드에서, 그리고 노면과 마찰하는 타이어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멈추려 하고 있었다.

불가능해.

바이츠만의 생각이었다. 오피스텔 입구에서 멈추기에는 너무도 빠른 속도였다.

그런 바이츠만의 생각을 비웃듯, 차량은 반 회전하면서 방향을 180도 바꾸었다. 그리고 타이어에서 엄청난 연기를 내뿜으며, 마치 물리법칙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오피스텔 입구 앞에 멈추어 버렸다.

바이츠만 국장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무표정이 깨어졌다. 그의 얼굴에 경악이 피어올랐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아니,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운전 기술이 지금 눈앞에서 실현된 것이다.

심장박동이 조금 더 빨라졌지만, 바이츠만은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차량에 놀라움이 담긴 눈으로, 연기를 내뿜는 차량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차량의 운전석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자세를 낮추고, 빠르게 오피스텔을 향해 뛰어가는 누군가의 모습에서 바이츠만은 자신이 잘못 느낀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맹수의 기운이었다. 조금 전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차량에서 느꼈던 맹수의 기운은 차량 안에 있던 남자에게서 느껴지던 것이었다. 사람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속도로 뛰쳐나가는 남자의 몸에서 느껴지는 맹수의 기운이 그 생각을 뒷받침했다.

그제야 바이츠만은 자신의 심장이 요 몇 년 동안 가장 빠르게 뛰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리고 왜 그런 것인지도 알아챘다.

흥분이나 기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공포라는 감정이 그의 맥박수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바이츠만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여자를 죽이려면 남자도 죽여야 합니다. 절대로 후환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카멜리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되었다.

바이츠만은 무전기를 잡았다.

* * *

빠른 속도로 오피스텔로 달려가던 한규호는 입구로 들어가기 직전에, 시선을 돌려, 한 번 더 20여 미터 밖의 승합차를 바라보았다.

먼 거리였지만 한규호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었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 백인 남자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라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자동차를 멈추는 것도, 인간의 신체 능력을 뛰어넘는 속도로 오피스텔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도, 남자에게는 경악 그 자체였을 테니까.

귀찮아지겠군.

백인 남자의 놀란 얼굴을 본 한규호의 생각이었다.

귀찮아질 것이다. 문제가 생길 것이다. 능력이 알려져서 좋을 것이 한규호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CIA는 이용할 가치라도 있지, 이스라엘은 한규호에게 한 줌의 가치도 없었다.

아니, 서용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바티칸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금 상황에서 CIA도 필요 없었다.

정리해야겠군. 저 국장 놈도, CIA도.

마음속으로 바이츠만 국장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한규호는 엘리베이터를 그대로 지나쳐, 그대로 비상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트레이시가 있는 오피스텔은 최상층인 8층이었지만,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보다 더 빨랐다.

* * *

오피스텔 안에 있던 신 베트 요원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자가 도착했다는 바이츠만의 이야기, 오피스텔 안에까지 들려오는 자동차 급제동 소리,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는 카멜리아의 경악이 가득한 얼굴.

이러한 요소들이 긴장감의 형태로 요원들을 감싸고 있었다.

카멜리아에게 입 다물라고 말했던 작전팀 선임 요원이 부엌 창을 통해 밖을 내려다보고 있는 카멜리아를 향해 소리쳤다.

“몇 명?”

하지만 카멜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창밖을 계속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몇 명이냐고!”

선임 요원이 카멜리아에게 다시 소리쳤다.

“그 남자! 그 남자야!”

카멜리아의 대답이었다.

선임 요원의 얼굴이 분노로 구겨졌다.

카멜리아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소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 베트 요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선임 요원은 충동을 느꼈다. 카멜리아를 기절시켜 버리고 싶은 그런 충동을 느꼈다.

저 여자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방해가 안 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충동을 현실화하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카멜리아가 아니었으니까.

남자가 왔다면 혼자 왔는지, 혼자가 아니라면 몇 명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가 다른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위해 막 몸을 돌렸을 때, 이어 셋을 통해 바이츠만 국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들어간다.

밖에서 상황을 지켜본 바이츠만 국장이 상황을 알려 준 것이다.

선임 요원이 재빨리 손목 마이크에 대고 물었다.

“몇 명입니까?”

-한 명. 그 남자뿐.

바이츠만의 대답이 들려왔다.

구겨졌던 선임 요원의 얼굴이 펴졌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바이츠만의 목소리에 다시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포획하지 않는다. 바로 처리한다.

모순된 지시였다.

한 명, 단 한 명뿐이라고 했다. 멀리서 남자를 지원하기 위한 병력이 달려오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은 남자 혼자뿐이라는 것이었다.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작전 계획에 따라 포획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선임 요원의 시선이 카멜리아를 향했다.

저년 때문이군. 저년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바이츠만 국장의 판단력이 흐려졌어.

카멜리아를 노려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선임 요원의 시선이 다시 움직였다.

다른 두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시를 내려 달라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도 선임 요원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시선을 마주 바라보며 선임 요원은 마음을 정했다.

바이츠만 국장은 판단력을 잃어버렸다. 현장에서는 현장 요원의 판단이 최우선시 된다. 내가 결정해야 한다.

“원래 계획대로 간다.”

선임 요원이 말했다.

트레이시를 처리한다. 트레이시의 숨이 끊어지는 동안 남자를 실내로 끌어들여 제압하고 무력화시킨다. 트레이시의 사망이 확인되면, 남자와 카멜리아를 데리고 이곳을 뜬다.

빠르면 5분, 아무리 늦어도 8분 이내에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두 요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선임 요원의 시선이 움직였다.

트레이시의 명치에 주먹을 날린 남자였다.

“시작해.”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트레이시의 목숨을 거두라는 지시였다.

지시를 받은 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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