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58화 (358/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41)

* * *

판교 오피스텔에 진입한 작전팀 요원은 트레이시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트레이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였다.

사람의 신체에는 아주 작은 충격만으로도 단숨에 사람을 무력화할 수 있는 부위가 몇 군데 있었다. 대표적인 부위로는 낭심이 있었고, 뇌에 충격을 가할 수 있는 관자놀이와 턱이 있었다. 낭심, 관자놀이, 턱 만큼 치명적인 부위가 바로 명치였다.

가슴뼈와 흉근, 그리고 복근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명치 안쪽으로는 복강신경총이 흐르고 있었다. 명치에 가해진 충격은 복강신경총을 자극했고, 복강신경총에서 시작된 전기신호는 신경망을 따라 빠르게 온몸으로 퍼져 나가며, 신체의 모든 기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켰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호흡곤란이었다.

복강신경총에 가해진 충격은 일시적으로 호흡 체계를 마비시켰고, 이는 호흡곤란으로 이어졌다. 흔히 말하는 숨이 턱 하고 막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작전팀 요원이 명치를 노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숨이 막히면 소리를 지르지 못하니까.

작전팀 요원의 생각대로, 명치를 맞은 트레이시는 고통스러워했지만, 그 고통을 소리로 표현해 내지는 못했다.

그저, 온몸을 격통 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견뎌 내기 위해 몸을 굽혔다. 아니, 굽히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이스라엘 작전팀 요원이 트레이시의 머리채를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작전팀 요원은 머리카락을 잡아챈 손을 들어 올렸다.

자연스럽게 트레이시의 몸이 펴졌고, 다시 고통 가득한 트레이시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나 작전팀 요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트레이시의 머리를 높이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트레이시의 등 뒤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두꺼운 상완으로 트레이시의 목을 감쌌다.

마따 레옹(Mata Leão), 흔히 리어네이키즈 초크라고 부르는 기술이 선 상태로 전개되었다.

경동맥의 압박을 느낀 트레이시는 남자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알아챘다. 그리고 자신의 목을 감싼 남자의 팔을 떼어 내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마비되어 있었고, 설사 마비가 풀렸다고 해도, 트레이시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트레이시의 몸이 축 늘어져 버렸다.

트레이시의 팔이 추욱 하고 늘어졌지만, 남자는 팔에 준 힘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트레이시의 기절이 아니었다. 목숨을 거두는 것이었다.

“잠깐.”

트레이시의 목을 조르고 있던 요원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자신과 함께 이곳 오피스텔로 돌입한 다른 요원이었다.

“일단 대기, 남자가 없다.”

대기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트레이시의 목을 조르던 요원의 팔에서 힘을 풀었다. 그러자 트레이시는 마치 교수대의 걸린 사형수처럼 몸이 축 늘어졌다.

다른 요원 하나가 자세를 낮추고 빠른 속도로 축 늘어진 트레이시의 옆을 지나 트레이시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트레이시의 방에도 남자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남자는 어디로 간 것이지?

그런 요원의 의문을 풀어 준 사람은 거실에 모습을 나타낸 카멜리아였다.

“나갔어. 두 시간 전에.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

카멜리아의 말에 요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수립해 놓은 계획과는 달리, 현장에서 변수가 발생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신 베트의 작전행동 수칙에 따르면, 변수가 발생했을 때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현장 요원의 판단이었다.

세 명의 현장 요원 모두의 판단은 동일했다. 남자는 포기, 이대로 트레이시를 처리하고, 카멜리아를 구출하고, 바로 이 장소를 이탈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작전 지휘권자가 근처에 있었다. 그냥 지휘권자도 아니고, 바이츠만 국장이었다.

현장 요원들이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기를 지시한 요원은 무전기 마이크가 달려 있는 손목을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 * *

바이츠만 국장은 오피스텔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위치에 시동이 걸린 상태로 정차되어 있는 탈출용 밴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바이츠만 국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얼핏 보면 평상시의 무표정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평소보다 더욱 굳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작전팀 요원을 태운 차량은 계획대로 22시 40분에 판교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18분을 기다린 다음 22시 58분에 오피스텔로 돌입했다.

작전 1단계는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2단계에서, 카멜리아의 구출, 트레이시의 제거, 그리고 남자를 확보하는 2단계 작전에서 변수가 생긴 것이다.

현장 요원으로부터 남자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어디로 갔지?”

바이츠만 국장이 무전기에 대고 물었다.

현장 요원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모른답니다. 두 시간 전쯤에 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고, 그때 나간 것으로 판단된다고 합니다.

카멜리아에게 말을 전달받은 작전팀 요원이 말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나?”

-근처를 산책하는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한 시간을 넘긴 것은 이번이 두 번째랍니다.

이번이 두 번째.

정기적인 스케줄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돌아올지, 돌아온다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의미였다.

기약 없는 귀가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상황에 맞게 2단계를 진행해야 했다. 계획에 따라 트레이시 테일러를 처리하고, 카멜리아를 구출하는 것으로 2단계를 마무리해야 했다.

하지만 바이츠만은 그렇게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브랜든 허드슨, 그 가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 남자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근거는 없었다. 이유도 없었다. 다만 후환이 남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찾아왔을 뿐이었다.

지금 확보하든가, 확보할 수 없다면 제거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느낌이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신 베트나 모사드, 그리고 아만, 이스라엘 3대 첩보 기관의 강점은 집요함이었다.

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 치하에서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설치하고,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16년 동안 추적했고, 결국 찾아내 교수대에 걸었다. 하마스 지도자인 마무드 마부를 암살하기 위해 20년을 추적했고, 결국 두바이의 호텔에서 그의 목숨을 거두었다.

이스라엘은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그 인식이 적들 사이에 공포를 심었다.

그런 집요함이 브랜든 허드슨이라는 남자에게서도 느껴졌다.

이유는 없었다. 꼭 이유를 찾자면 평생을 첩보 세계에 몸 바친 바이츠만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포획 또는 제거의 방식으로 그를 처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바이츠만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23시 04분.

다음 기착지인 경기도의 컨테이너 장치장까지 도착해야 하는 시간 23시 45분까지, 41분이 남아 있었다.

기착지까지의 거리는 15km,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바이츠만은 다시 시계를 바라보았다.

23시 05분, 약속된 시간까지 40분이 남았다.

“24분까지 대기한다.”

바이츠만이 말했다.

-여자도 그때 진행합니까?

작전팀 요원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14분.”

바이츠만이 말했다.

교수형과 달리 교살(絞殺), 목을 졸라 살해하는 살해 방식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흔히 수하식(垂下式) 또는 제임스 베리 방식이라고 부르는 롱 드롭 교수형의 주요 사인은 목뼈 골절이었다. 정확히는 경추가 부러지면서 생명 활동을 담당하는 연수와 연결된 척수가 손상된다. 그 부위가 손상되면 즉사한다.

하지만 교살은 달랐다. 뇌로 가는 산소를 차단해 생명을 거두는 방식이었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뇌세포 손상에 5분, 뇌사에 8분, 그리고 실제로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1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14분까지 아무런 징후가 없으면 바로 트레이시 테일러의 목을 조른다. 그리고 10분 후, 24분에 사망이 확인되면 철수한다.

그런 의미가 담긴 지시였다.

-확인.

그 말을 끝으로 무전이 끊어졌다.

지시를 내린 바이츠만은 짙게 틴팅 처리된 창문을 통해 오피스텔을 바라보았다.

* * *

며칠 전, 간호사로 위장해 카멜리아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던 작전팀 요원은 심각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멜리아는 허공을 응시하면서 바이츠만 국장과 통신을 주고받는 작전팀 요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도 그때 진행합니까?”

요원이 물었다.

카멜리아의 눈이 커졌다.

여자도 그때 진행한다고?

“확인.”

그 말을 끝으로, 허공을 향하던 작전팀 요원의 시선이 움직였다.

카멜리아는 고개를 돌리는 작전팀 요원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이 ‘진행’이 무슨 의미냐고 묻고 있었다.

하지만 요원은 그런 카멜리아와 시선을 맞추지 않고, 바로 기절한 트레이시를 안고 있는 요원에게 말했다.

“14분. 24분.”

“14분, 24분, 알겠습니다.”

트레이시를 안고 있던 요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트레이시를 안고, 트레이시의 방으로 들어갔다.

카멜리아는 남자가 말한 14분, 24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14분과 24분 사이의 10분 동안 무엇이 일어날지 알 것 같았다.

카멜리아는 거실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23시 05분.

바이츠만과 통신했던 요원이 말한 14분이 23시 14분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9분이 남아 있었다.

카멜리아는 남자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진행이 무슨 말이지?”

작전팀 요원의 시선이 카멜리아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마치, 아무것도 알 필요 없다는 듯, 바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말해. 진행이 무슨 의미지? 여자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카멜리아가 다시 물었다.

작전팀 요원의 시선이 카멜리아를 향했다. 그 시선에 분노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조용히 있어.”

작전팀 요원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조용히 닥치고 있으라고.”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요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번만 더 입을 나불대면, 기절시켜 버려.”

그 지시를 들은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멜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 작전에서 그녀 자신은 구출 대상일 뿐, 작전과 관련해 아무런 권한이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작전 계획 수립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권한이 없다고 그냥 있기에는 너무나도 강한 불길함이 그녀의 등줄기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여자를 해치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 몇 개월 동안 함께 보낸 여자에게 정이 든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CIA 요원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 남자,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그 남자, 언제나 거실 소파에 누워 멍한 눈으로 휴대전화를 바라보던 그 남자 때문이었다.

여자가 죽으면, 남자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여자를 죽이려면 남자도 죽여야 한다.

카멜리아의 본능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카멜리아는 재빨리 부엌으로 다가갔다. 부엌 쪽 창문이 도로를 향해 있었다. 바이츠만이 이 근처에 있다면 도롯가에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카멜리아의 눈에,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된 검은색 승합차의 모습이 보였다.

저거다.

카멜리아는 본능적으로, 저 안에 바이츠만 국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카멜리아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거실에 서 있던 남자 요원, 그녀에게 조용히 닥치고 있으라는 남자 요원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아챘다.

카멜리아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남자는 막지 못했다.

그가 잡힌 팔을 떨쳐 내려고 힘을 주려는 순간에, 이미 카멜리아는 손목 끝에 달린 무전용 마이크의 발신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여자를 죽이면 안 됩니다!”

남자 요원의 얼굴에 분노가 피어올랐다.

카멜리아는 그의 상사가 아니었다. 설사 상사라고 해도, 현장에서는 현장 요원의 지시가 최우선이었다.

그런데, 카멜리아가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

그가 막 카멜리아를 징계하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던 순간,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알겠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불쾌감 가득한 얼굴에서 이어폰을 빼내어 카멜리아에게 건넸다.

이어폰을 받아 든 카멜리아는 자신에 귀에 켰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바이츠만 국장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여자를 죽이려면 남자도 죽여야 합니다. 절대로 후한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카멜리아가 빠르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바이츠만 국장의 질문이었다.

카멜리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근거라고 댈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불길함 뿐이었다.

남자를 죽여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여자는 살려 둬야 한다.

그리고 그녀 자신이 느끼는 그 불길함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근거는?

바이츠만 국장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여자가 죽으면 남자는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카멜리아가 말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이유였다.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남자 하나 때문에 작전을 멈춘다고?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멜리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바이츠만 국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군.

카멜리아는 귀에 낀 이어폰을 뽑아 던지는 것과 동시에 몸을 틀었다. 그리고 부엌으로 달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바이츠만 국장이 타고 있는 검은색 승합차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동차 한 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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