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51화 (351/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34)

‘화물(הוֹבָלָה)’이라고 이름 붙은 신 베트의 납치 전문 작전팀 인원 중 카멜리아를 구출하기 위해 한국에 직접 들어온 요원은 세 명이었다. 그들이 임시 거점으로 삼은 곳은 분당 수내역 인근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창문에 두껍게 3중으로 커튼을 쳐 외부의 시선을 완벽히 차단한 이 오피스텔 내부에는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 세 명의 남자 중 두 사람이 작전팀 요원이었다.

다른 한 명은 카멜리아에게 통신수단을 전달하기 위해, 간호사로 위장하고 미국인 의사와 함께 카멜리아가 구금되어 있는 판교 오피스텔에 가 있었다.

작전팀이 아닌 유일한 남자는 애틀랜타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신 베트 대외협력국의 다비드 바이츠만 국장이었다.

그 바이츠만 국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기 화면에는 이메일이 떠 있었다.

USPS(United States Postal Service : 미국 우정청) 직인이 찍힌 이메일이었다.

-Your order has shipped via US. Postal.(귀하의 주문이 미국 우정청을 통해 발송되었습니다.)

이메일을 확인한 바이츠만 국장은 삭제 버튼을 눌러 메일을 지워 버렸다.

카멜리아 구출을 위한 사전 준비는 끝이 났다.

카멜리아가 어디 있는지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오늘 그 장소를 확인했고, 내부를 확인했고, 몇 명이 지키고 있는지도 확인했다. 그리고 카멜리아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단을 전달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언제’ 그녀를 회수하느냐는 결정만이 남아 있었다.

어려울 것은 없었다.

작전 개시 시간이 확정되면 작전팀은 판교에 위치한 오피스텔로 간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 카멜리아를 확보함과 동시에 다른 이들을 제압한다. 구출이 완료되면 대사관 지원팀이 마련한 차량에 탑승하고, 부산에 마련된 은신처로 이동한 후, 일주일 이내에 김해공항을 통해 한국에서 빠져나간다.

아주 쉬운 작전이었다. 온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시리아나 레바논에서 진행했던 작전에 비하면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운 작전이었다.

작전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문제가 발생한다면 외교적인 영역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도 바이츠만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미국의 승인을 얻었다. CIA, 정확히 말하면 앤드류 로이즈가 그 부분을 책임져 줄 것이다.

앤드류 로이즈의 승인에는 외교적 마찰의 해결과 국제형사법과 관련한 면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다.

그 여자만 없었다면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진행한 바이츠만 국장은 작전팀 요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렇게 들이마신 숨을 천천히 내뱉었음에도, 바이츠만의 마음 한구석에 안개처럼 들어차 있는 답답함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카멜리아를 지키고 있는 여자는 CIA 요원이었다. 그리고 바이츠만은 그녀의 목숨을 거두어야 했다.

-신 베트가 밀러 국장과 같이 일을 꾸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시겠습니까?

앤드류 로이즈의 말이었다.

밀러의 사람으로 추정되는 트레이시를 처리함으로써, 신 베트가 밀러 국장과 손을 잡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함과 동시에 앤드류 로이즈의 도구로써 움직이겠다는 서약을 하라는 의미였다.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일은 신 베트에게도, 바이츠만에게도 그리 드문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CIA의 지시를 받아 CIA 요원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진퇴양난이군.

바이츠만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바이츠만은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동시에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쓸데없는 생각들을 지워 버렸다.

생각이 많으면 일이 복잡해진다. 이런 상황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카멜리아는?

회수해야 한다.

앤드류 로이즈는?

미국 대통령이 뒤에 있다.

문제가 생긴다면?

조국이 나를 보호할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군.

바이츠만은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

의료진이 떠나고, 홀로 남은 카멜리아는 베개 밑에 감춰진 휴대전화를 바로 확인하지 않았다.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확인하고, 그런 두 사람에게 냉장고에서 시리얼을 꺼내 우유에 말아 먹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다. 식욕이 없었음에도 일부러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건강검진을 위해 8시간 금식을 했고, 음식을 먹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카멜리아는 욕실로 들어가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 샤워하고 나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이 확실히 닫힌 것을 확인한 카멜리아는 창문의 걸쇠를 걸고, 커튼을 쳐 완벽하게 방을 차단한 다음,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이불로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베개 밑에 감추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손에 잡았다.

삼성에서 만든 갤럭시 S7. 2016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550만대가 팔린 이 스마트폰은 카멜리아에게는 익숙한 전화기였다.

신 베트가 요원들에게 지급한 장비였다. 신 베트는 산하의 위장 회사와 밀수 등의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이 전화기를 다량 확보했다. 그렇게 확보한 스마트폰에 신 베트가 새롭게 설계한 운영체제를 설치해 요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화기는 때로는 도청기로, 때로는 원격 조종장치로, 때로는 폭탄으로 사용되었다. 카멜리아도 한때 이 전화기를 사용했었다.

카멜리아가 측면에 있는 전원 버튼을 누르자 익숙한 삼성 로고와 함께 전원이 켜졌다.

부팅이 끝난 전화기 화면에는 4자리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문장이 떠 있었다.

카멜리아는 손가락을 움직여 9자리의 숫자를 입력했다.

신 베트가 새로 설치한 운영체제는 9자리의 비밀번호가 필요했고, 이는 모든 신 베트 요원에게 부여된 고유 코드를 의미했다. 4자리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표식은 일종의 함정이었다.

잠금이 풀리자 휴대전화 바탕 화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탕 화면에는 오직 하나의 아이콘만이 있었다.

시그널 프라이베이트 메신저(Signal Private Messenger).

종단간 암호화 기술을 사용해 보안성을 확보했으며, 서버에 대화 내용을 저장하지 않아 현재 사용되는 메신저 중에서 최고 수준의 보안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었다.

NSA의 감청프로그램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사용했다는 사실이 최고의 보안기술이 적용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카멜리아는 손가락을 움직여 아이콘을 눌렀다.

앱이 실행되었고 대화 목록이 떠올랐다.

대화 목록에는 오직 하나의 이름만이 떠 있었다.

카멜리아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여 대화 목록을 눌렀다.

***

“들어왔습니다.”

거실 한쪽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있던 바이츠만 국장의 귀에, 작전팀 요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마치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맞은편 벽을 바라보고 있던 바이츠만 국장은 그 목소리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모니터로 다가간 바이츠만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면에 더 있는 글자를 확인했다.

-Ecce ego, quia vocasti me.

글자를 확인한 바이츠만 국장이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요원에게 말했다.

“내가 직접 하지.”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작전팀 요원이 자리를 비켜 주자, 바이츠만 국장은 그 자리에 앉아 직접 손가락을 움직여 키보드를 두들겼다.

-Filia mea, quaeram tibi requiem et providebo, ut bene sit tibi.

바이츠만의 메시지가 화면에 뜨고 몇 초의 시간이 흐른 뒤, 모니터에서 다시 글자가 떠올랐다.

-Quidquid praeceperis, faciam.

그 글귀를 확인한 바이츠만은 모니터 너머의 상대가 카멜리아임을 확신했다.

신 베트는 암호 코드로 불가타(Vulgata) 성경을 사용했다. 5세기 초반에 라틴어로 쓰인 불카타 구약성경의 일부를 통해 서로의 신원을 확인했다.

사무엘기 상권 3장(Samuelis I, Capitulum 3) 6절의 ‘Ecce ego, quia vocasti me(저를 부르셨는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는 구절은 신 베트 요원이 상급자의 지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보통 이 단계에서 지시가 내려진다.

하지만 카멜리아처럼 특수한 임무를 맡고 있는 특수 요원들에게는 두 번째 인증 절차가 필요했다.

바이츠만이 입력한 문장은 불가타 성경 룻기(Ruth) 3장 구절이었다.

‘Filia mea, quaeram tibi requiem et providebo, ut bene sit tibi.(내 딸아, 네가 행복해지도록 내가 너에게 보금자리를 찾아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Quidquid praeceperis, faciam(저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였다.

오직 바이츠만과 카멜리아만이 알고 있는 문장이었다.

***

한규호는 언제나처럼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지금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건강검진을 끝마친 카멜리아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끼니를 챙겨 먹고, 오랜 시간 여유 있게 샤워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예를 들어, 트레이시였다면, 카멜리아의 그런 모습에서 이상함을 찾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규호는, 다른 사람보다 감각이 극도로 활성화되어 있는 한규호는 카멜리아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어떤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고, 콕 짚어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규호는 확실히 카멜리아 주위를 흐르는 기류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카멜리아에게서만 위화감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건강검진을 위해 찾아온 여자 의사, 그리고 의사를 옆에서 보조하는 남자 간호사, 그들에게서도 위화감이 느껴졌다.

여자 의사는 긴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태연함을 가장했지만, 한규호는 그녀의 호흡과 눈빛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 의사는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갈 수 있었다. 일반적인 왕진이 아니었으니, 긴장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남자 간호사, 그는 노골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현장 요원의 티를 내고 있었다.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빠르게 주변을 확인하는 모습이라든가, 옷 속에 감추어진 근육질의 체형이라든가, 본능적으로 발소리를 줄이려는 걸음걸이라든가, 눈빛 속에 담긴. 숨길 수 없는 공격성 같은 단서는 남자가 일반적인 간호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최소한 용병, 아마도 어딘가에 속한 현장 요원.

남자에 대한 한규호의 판단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한규호는 고개를 돌려 트레이시의 방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젯밤 트레이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마도…… 괜찮을 거예요. 내가 여기 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을 거예요. 아무리 뒤를 생각하지 않는 이스라엘이라고 해도 미국은 무시하지 못할 테니까요.

맞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승인 없이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반대로 뒤집으면, 미국의 승인이 있다면, 정확히 CIA의 승인이 있다면 이스라엘은 움직인다는 이야기였다.

트레이시에게 건강검진에 대해 통보해 준 것은 밀러 국장이나 신시아 챔버가 아닌 CIA 한국지부라고 했다. 바티칸 소속의 남자가 밀러 국장이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마치 직소 퍼즐처럼 조각이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간호사로 위장한 남자가 CIA 요원일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CIA는 지금 상황을 이용할 것이지, 이스라엘을 위해 직접적으로 발 벗고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아마도 카멜리아의 소속 기관. 그럴 가능성이 컸다.

한규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카멜리아의 방을 향했다.

한규호는 카멜리아의 방을 바라보면서, 간호사로 위장한 남자가 카멜리아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면, 그리고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연락할 수 있는 도구를 넘겨주었다면, 카멜리아는 이불 속에 숨어서 연락을 취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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