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46화 (346/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29)

한규호는 베드로 신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려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강한 시선이었다.

바티칸에서 왔다는 이 정체불명의 남자가 서용석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서용석을 한국으로 데리고 왔을 것으로 의심되는 여자도 찾아냈다.

이제 남은 것은 여자의 신분을 찾아내고, 여자가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내고, 그곳에 서용석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한규호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바티칸이, 이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단순하게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쾌했다.

그런 한규호의 속마음도 모르는지, 베드로 신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되었건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기껏 여기까지 오셨는데, 고작 이 정도 소식뿐이라니. 그래도 알려 드리지 않는 것보다는 이렇게 상황이 진척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에 만남을 요청한 것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한 발 앞으로 걸어 나갔다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베드로 신부는 그렇게 말하고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규호는 베드로 신부의 미소에서 위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법정금리를 뛰어넘는 불법 사채 사무실의 친절한 직원의 미소처럼 말이다.

“태국에서 고위층을 상대로 정보를 파셨다고 하더군요.”

한규호가 입을 열었다.

베드로 신부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의뢰비를 얼마나 받았는지 궁금하네요.”

한규호가 물었다.

베드로 신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

“장소에 어울리는 주제는 아니군요.”

한규호는 눈을 들어 연구실을 돌아보았다. 오래된 건물, 있는 거라고는 책상과 의자, 모카포트와 버너뿐인 살풍경한 연구실.

“식양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어서 그 대신 의뢰비를 안 받겠다고 말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죠.”

베드로 신부가 말했다.

“아직도 유효한 겁니까?”

한규호가 물었다.

베드로 신부가 다시 빙긋 웃었다.

한규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우려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한규호는 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용석에 대한 대가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빚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었다.

“성직에 종사하는 몸이라는 것을 밝힌 이상, 이제 와서 재물을 탐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겠지요.”

베드로 신부가 말했다. 돈은 대가가 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유효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됩니다.”

베드로 신부가 말했다.

한규호는 눈을 통해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베드로 신부의 눈에서 거짓의 징후를, 거짓을 말할 때, 본능적으로 드러나는 스트레스 징후를 읽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베드로 신부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모든 진실을 밝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같은 생각입니까?”

한규호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베드로 신부가 되물었다.

“바티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나에게 받을 것이 없다고?”

한규호가 다시 물었다.

베드로 신부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 바티칸의 의중을 자신이 어찌 알겠느냐는 듯한 제스처였다.

한규호는 베드로 신부의 눈빛에서 처음 거짓을 보았다.

바티칸의 의지는 상관없다. 이 남자가 결정한 것이다. 그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나를 도와주는 겁니까?”

한규호가 다시 물었다.

“도와달라고 하셨으니까요.”

베드로 신부가 말했다.

한규호는 말없이 베드로 신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와 장난치려 하지 마.

그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 신부도 한규호의 눈을 바라보았다.

“단단한 분이시군요. 그런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베드로 신부가 말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지금 듣도록 하지요.”

한규호가 베드로 신부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베드로 신부도 그런 한규호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한규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베드로 신부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때, 파타야로 동료분들을 구하러 가신 것은 명령이었습니까? 아니면 귀하의 의지였습니까?”

한규호는 침묵했다. 마치, 자신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알려 주지 않겠다는 듯, 굳게 입술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 한규호의 태도가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는 듯, 베드로 신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할까요. 이쪽에 잠깐 발을 담그는 동안 어쩌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을 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베드로 신부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조금 전 커피를 내리는 데 사용한 모카포트를 씻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사람을 보는 눈을 조금은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하는 것이 성직자로서 올바른 마음가짐이겠지만, 저는 아직 믿음이 부족한지, 사람들을 분류하게 되더군요.”

베드로 신부는 씻어 낸 모카포트에 다시 원두와 물을 넣고, 불이 붙은 버너에 올려놓았다.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베드로 신부가 물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저어 거절을 표시했다.

“아쉽군요. 제가 내린 에스프레소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데.”

베드로 신부는 정말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버너에 올려놓은 모카포트에 시선을 준 채로 계속 말했다.

“귀하가 파타야에 가야 한다고 말하기 전까지, 저는 귀하에게 특별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식양이라는 존재에 다가가기 위한 단서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식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한규호의 얼굴이 미세하게 변했다.

모카포트를 바라보는 베드로 신부는 그런 한규호의 표정 변화를 보지 못한 듯, 계속 말을 이었다.

“식양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가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아무튼, 사람을 찾아 달라는 부탁은 그다지 드문 부탁은 아니었으니까요. 북한에서 탈출한 남자를 방콕에서 찾아 달라는 내용이 유니크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흥미를 끌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파타야에 가겠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그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한규호가 물었다.

“지금 드리는 말씀은 굉장히 주관적인 이야기라. 믿어 주실지 의문이군요. 귀하께서…… 귀하라는 단어는 확실히 어색하군요. 거리감도 느껴지고. 형제님이라고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베드로 신부가 한규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칭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보통 제 의뢰인이었던 분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죠. 그 외적인 부분에 대한 것은 그분들에게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죠. 예를 들어 돈이라든가, 아니면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피해를 보는 제삼자라든가 말이죠.”

베드로 신부는 그렇게 말하고, 모카포트에서 우려낸 에스프레소 두 잔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잔을 한규호 앞에 놓았다.

“드셔 보시죠. 이탈리아 출신인 저의 스승께서도 나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규호는 에스프레소가 담긴 잔을 들어 올려 가볍게 입에 머금었다. 진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에스프레소의 향기가 그의 입안에 머금었다.

“박물관연대의 대니얼 양이 형제님을 찾는다고 말씀드렸을 때, 형제님은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더군요. 무서운 사람이 뒤를 쫓고 있다는데,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남의 이야기라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식양에 관한 이야기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호하려 한다는 느낌? 처음 말씀드렸던 것처럼 주관적인 느낌입니다.”

“파타야.”

한규호가 말했다.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이야기였다.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형제님은 서용석이라는 사람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무언가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안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죠. 예를 들어 위기에 처한 동료들을 구하는 일 같은 것에는 말입니다.”

베드로 신부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커피를 홀짝였다.

“하지만 형제님은 파타야로 날아가셨죠. 그리고 무서운 사람들이 가득한 요트 수리 공장에 혼자 들어가셨고. 명령 때문인지, 아니면 형제님의 의지였는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 모습이 제 인상에 남았습니다. 마음에 들었다고 말씀드리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베드로 신부는 그렇게 말하고는 여유 있는 몸짓으로 커피 잔을 들어 올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이상한 의미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성직자이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규호는 그의 눈과 말에서 거짓의 징후를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 적당히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전투에서 눈앞에 있는 적만큼 중요한 것이 후방의 보급선이었다. 등 뒤에 무언가를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 남자와 만나는 것이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군.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미얀마.”

커피 잔을 들고 있던 베드로 신부의 손이 멈추었다.

“왜 미얀마에 관심을 보인 겁니까?”

한규호가 물었다.

-이름은 알지 못해요. 여러모로 알아봤지만, 알아낸 것이 거의 없었어요. 바티칸 도서관이나 바티칸 은행 쪽 사람이라고 의심만 하고 있어요. 그 남자도 태국에서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어요. 마치 진짜 정보상이라도 된 것처럼 고위층을 상대로 가치 없는 정보를 사고파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어요. 딱 한 번 같이 일해 봤어요. 정확히는 제가 도움을 주었어요.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국제구호단체의 위장 신분을 만들어 주었어요. 그 일을 제외하고는, 접점이 없어요. 미얀마 북부에, 정확히는 북부를 지배하는 군벌들에 관해 관심을 보였어요. 남들 모르게 미얀마를 다녀오고 싶어 했어요.

완이 해 준 말이었다.

미얀마에 다녀간 이유를 꼭 알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남자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베드로 신부는 잠시 동안 말없이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베드로 신부가 물었다.

“왜 서용석이라는 남자를 찾는 건가요?”

한규호는 베드로 신부가 한 질문의 의도를 이해했다.

정보상은 의뢰인에게 사정을 묻지 않는다. 불문율이었다. 그래서 바티칸의 이 남자는 왜 서용석을 찾는지 묻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졌다는 것은 한규호에게 선을 넘을 의사가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을 가로지르고 있는 선을 말이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은은하게 발산되는 커피 향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어붙어 있던 공기에 먼저 파문을 던진 사람은 한규호였다.

“복수.”

한규호가 말했다.

“서용석이 복수의 대상인가요?”

베드로 신부가 물었다.

“왜 미얀마에 다녀간 거지?”

한규호가 다시 물었다.

베드로 신부는 멈췄던 손을 움직여 다시 커피를 한 모금 음미했다. 그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스레브레니차의 마지막 아들(Last Son of Srebrenica). 들어 보셨습니까?”

베드로 신부가 말했다.

한규호는 아무 말 없이 베드로 신부를 바라보았다.

“원 아이드 잭은 어떻습니까?”

한규호가 고개를 저었다.

“스레브레니차의 마지막 아들, 또는 원 아이드 잭, 모두 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외눈의 저격수. 외눈의 저격수는 들어 보셨습니까?”

베드로 신부가 물었다.

한규호는 스레브레니차의 마지막 아들이나 원 아이드 잭이라는 이름은 몰랐지만, 외눈의 저격수는 알고 있었다.

완과 함께, 방글라데시로 탈출하는 여정 중, 마투피의 교회 지붕에서 두 사람을 저격한 저격수가 외눈이었다.

“보스니아의 동쪽의 작은 도시, 스레브레니차에서 집단 학살이 있었습니다. 학살 과정에서 미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눈 하나를 잃었습니다. 눈을 잃은 소년은 모습을 감추었다가 몇 년 후에 스레브레니차의 마지막 아들이라는 이명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백발백중의 저격수가 되어서 말이죠.”

베드로 신부는 마치 구전 동화를 이야기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한규호에게는 그 말이 날카로운 칼처럼 느껴졌다.

“보스니아 내전은 1995년에 끝났지만,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고, 아픔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내전이 계속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총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했는지는 알고 있었죠. 원 아이드 잭이라는 별칭을 가진 외눈 저격수에게 현상금이 붙었고, 그는 몸을 숨겼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몇 년이 지나, 동남아시아에서, 정확히는 군벌들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미얀마 북부에서 다시 외눈 저격수의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베드로 신부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템포를 멈추었다.

한규호는 그 잠깐의 쉼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이제 본격적인 선을 넘으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를 만나고 싶었고, 그래서 제가 피터라는 이름의 영어 강사로 방콕을 가게 되었고, 식양의 도움을 받아 미얀마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형제님도 만나게 되었고.”

“바티칸이 왜 저격수에게 관심을 보인 거지?”

한규호가 물었다.

“테스티모니움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베드로 신부가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