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26)
가톨릭대학교 성심 캠퍼스 국제교류관, 외국인 교수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이 건물 2층 한 객실에 있는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괜찮습니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남자가 말했다.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Sapienza-Università di Roma) 동양학 연구소 연구교수 파비오 콘티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질베르토 베드로 신부였다.
-서기관께서도 걱정하고 계십니다. 일이 너무 커지는 것이 아닌가 말씀하셨습니다.
전화 너머의 남자가 말했다.
그 말에 베드로 신부는 작게 웃었다.
서기관(Protonotaries), 정식 명칭 교회최고서기관(Supernumerary Apostolic Protonotaries), 베드로 신부의 직속상관이자, 바티칸 도서관 비밀문서고 13 문서보관실 실장 안토니오 조반니 몬시뇰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분이 걱정 안 하신 적이 있던가.
베드로 신부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조만간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감사합니다. 또 좋은 소식 있으면 연락 주시길.”
-그렇게……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항상 조심하시길.
전화기 너머에서 체념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베드로 신부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미국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유럽 3대 물류 기업 중 하나인 La Logistica MTLN의 미국 지사장이 걸어온 전화였다.
La Logistica MTLN, 알프스산맥의 봉우리 중 하나인 몬테 레오네(Monte Leone)에서 이름을 따온 이 물류 회사의 실질적인 소유주는 바티칸이었다. 물론 공개된 자회사(Subsidiaries)는 아니었다. La Logistica MTLN에 들어가 있는 바티칸 자본은 IOR, 흔히 바티칸 은행이라고 말하는 로마교황청 종교사업협회의 자금이 아니라 교황청이 직접 운용하는 비밀 자금이었고, 명의 또한 철저하게 숨겨져 있었다.
La Logistica MTLN의 핵심 경영진은 바티칸의 관리를 받았고, 방금 베드로 신부에게 전화를 걸어온 미국 지사장도 그런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의 숨겨진 신분 중 하나가 바티칸 도서관 사서 위원회 위원이었다. 정보를 수집해 13문서보관실에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오늘 그는 베드로 신부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다. 이스라엘 첩보 기관인 신 베트 대외협력사업국 다비드 바이츠만 국장이 시카고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정보였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저 그런 동향 정보에 불과했을 가치 없는 정보였지만, 베드로 신부가 한국에 있는 지금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미국에서 수집된 정보가 바로 바티칸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한국에 있는 베드로 신부에게 전달된 것이다.
베드로 신부는 머릿속으로 다비드 바이츠만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에 관한 파일을 본 적이 있었고, 완전기억능력을 갖추고 있는 베트로 신부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
그에 대한 평가 중 하나였다.
바티칸과 이스라엘은 그다지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없었다.
가톨릭의 뿌리가 유대교라고 할 수 있었지만,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에서 메시아로 취급하는 예수를 유대교에서는 유대인 메시아 주장자, 즉 가짜 메시아, 그것도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친 가짜 메시아로 보았다.
기독교도 유대교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중세 가톨릭이 세속 권력을 가지고 있던 시대에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명목으로 탄압을 받았다. 반(反)유대주의의 시작이었다.
단순히 교리적인 충돌만도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는 중동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바티칸과 중동 화약고에 불을 붙이기를 서슴지 않는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충돌했고, 특히 2015년, 바티칸이 팔레스타인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면서 양 국가 사이의 갈등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당연히 모사드도, 신 베트도, 바티칸 도서관에게 친구라기보다는 적이라는 개념에 더 근접했다.
그런 신 베트의 국장이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바티칸 도서관에서는 그 사실을 우려하고 있었다.
단순히 신 베트 대외협력국 국장이 한국에 간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문제를 삼는 것이 아니었다.
베드로 신부의 머릿속에서 바이츠만의 얼굴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한규호의 얼굴이었다. 신도림에 있는 호텔에서 보았던 마지막 얼굴이 떠올랐다.
한국에 온 것은 그 남자 때문이었다. 그가 서용석을 찾아달라고 요청했고, 그 요청에 따라 서용석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저 서용석이 한국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한국에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는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오게 되자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복잡한 상황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스라엘 요원이 CIA에 의해 한국에 구금되어 있었다. 구출팀으로 보이는 신 베트 요원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었고, 이스라엘 대사와 미국 대사의 비공식 만남이 계속 이어졌다.
그 중심에 한규호가 있었다.
바티칸이 걱정하는 부분이 그 부분이었다. 바티칸도 한규호가 문제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 베드로 신부와 선이 닿아 있다는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베드로 신부는 알 수 없는 흥분감을 느꼈다. 마치, 인간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는 절대자의 안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Iacta super Dominum curam tuam et ipse te enutriet non dabit in aeternum fluctuationem iusto.”
베드로 신부의 입에서 성경 구절이 흘러나왔다.
시편(Liber Psalmorum) 55장 23절이었다.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의인이 흔들림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시리라.’
***
“의사? 내일?”
언제나처럼 소파와 한 몸처럼 붙어 있던 한규호가 물었다.
“네. 건강검진을 하겠다고…”
트레이시는 그렇게 말하며 카멜리아의 방 쪽을 바라보았다.
한규호는 잠시 트레이시를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는 손에 든 책으로 다시 시선을 주었다.
트레이시는 그런 한규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마치 나는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듯한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찮나요?”
트레이시가 물었다.
한규호의 시선이 다시 트레이시를 향했다.
“응? 뭐가?”
한규호가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듯한 눈으로 트레이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한규호의 눈을 보자 트레이시는 갑자기 할 말을 잊어버렸다.
“당신네 쪽에서 하겠다는 거 아니야?”
한규호가 물었다.
트레이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못 믿겠어?”
한규호가 물었다.
트레이시는 기분 나쁜 눈으로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트레이시는 그렇게 말하고 시선을 거두었다. 괜히 혼자서 쓸데없이 촉각을 곤두세웠다는 민망함과 한규호에 대한 섭섭함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비켜 줘야 해? 그런 의미인가?”
한규호가 물었다.
“그런 이야기는 없었어요.”
트레이시의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한규호는 그런 트레이시를 바라보고는 작게 미소 지은 후, 다시 책에 시선을 주었다.
트레이시도 그런 한규호로부터 몸을 돌렸다.
그런 트레이시에게 한규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어디서 온 건데?”
트레이시는 고개를 돌려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책에 고정되어 있었다.
“뭐가요?”
“전화. 의사를 보내겠다는 전화.”
“……한국 지부에서요.”
트레이시가 답했다.
한규호의 시선이 트레이시에게 향했다.
“아는 사람?”
트레이시는 고개를 저었다.
“그쪽에서는? 여기에 대해 알고 있을까?”
“……모를 거예요. 아니. 몰라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한규호는 기프티드였고, 트레이시는 국장 직속이었다. 지부장이라고 해도 이 집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한규호는 잠시 트레이시를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주었다.
트레이시는 그런 한규호를 잠시 바라보다 같이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화가 났다.
며칠 전, 그와 공원을 산책했던 이후, 거리가 조금 가까워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트레이시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고는 카멜리아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그녀의 방 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그때 다시 한규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점심은 나가서 먹을까?”
트레이시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가끔은 나가서 사 먹자고. 배달도 지겹고.”
한규호가 여전히 책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그러던가요.”
트레이시는 뚱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뚱한 얼굴은 아니었다.
트레이시는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멜리아의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그녀에게 한규호가 다시 말했다.
“물어봐. 같이 갈 건지.”
트레이시의 발걸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
트레이시를 들었다 놓은 한규호는 여전히 책에 시선을 주고 있었지만, 그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의사. 건강검진. 그렇게만 놓고 보면 이상할 것이 없었다.
어찌 되었건 카멜리아는 미국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몇 달 동안이나 한국에 감금되어 있었으니 이스라엘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건강한지 확인받고 싶어 했을 것이고, 미국이 요청을 들어주는 그림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지부에서 연락이 왔다는 그림은 어딘가 어색했다.
트레이시가 일반 요원이었다면 당연히 한국 지부를 통하는 게 정상적인 절차였을 것이다.
하지만 트레이시가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을 생각하면, 한국 지부에서의 연락은 확실히 어색했다. 차라리 밀러 국장에게서 직접 연락을 받았다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전화해서 물어볼까?
한규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밀러 국장과 통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전화를 한다면 신시아 챔버에게 전화하는 게 편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한규호의 머릿속에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타이어 만드는 회사에서 별 세 개를 주었다던 프렌치 레스토랑,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신시아 챔버가 한규호에게 말 하는 장면.
-미스터 한은 말을 너무 잘하네요. 말 잘하는 남자는 바람둥이일 가능성이 있는데.
한규호는 눈을 감고,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전화해 볼까 싶던 생각이 싹 사라졌다.
“참 나…….”
한규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책에 시선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또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
-괜찮아요. 들키지만 않는다면.
옆자리에서 들려온 완의 목소리, 그리고 얼굴이 떠올랐다.
“참나…….”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그에게 트레이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요?”
한규호는 트레이시를 바라보았다.
“뭐가?”
“참 나……라고 했잖아요.”
트레이시가 한규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야. 아무것도.”
한규호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트레이시는 뭔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한규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안 간대요.”
한규호는 트레이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어색함이 묻어나는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억지로 만들어 낸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그래. 뭐. 둘이서만 가지.”
한규호가 말했다.
“뭐, 그래요.”
트레이시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한규호는 그런 트레이시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시 작게 미소 지었다.
그때 소파 테이블에 올려놓은 한규호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한규호는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액정에 뜬 발신 번호를 확인했다.
‘영어 선생.’
액정에는 그런 글자가 떠 있었다.
방콕 타운 외국어 학원에서 영어를 강의하던 정보상 길, 바티칸 소속의 정체불명의 남자를 의미하는 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