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25)
“바이츠만에게 일본 작전에 관해서 물어보겠네요.”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밀러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츠만에게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듣게 되면, 카멜리아와 테일러 요원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앤디도 알게 되겠네요.”
“그렇겠지.”
“앤디가 트레이시를 주목하고 있군요.”
신시아 챔버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밀러 국장은 말없이 그런 신시아 챔버를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테일러 요원에게 알려 줘야 하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앤디는 바이츠만 국장의 이야기를 통해서 테일러 요원이 일본에서 작전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에요. 하지만 어떤 작전인지, 왜 테일러 요원이 그곳에 간 것인지는 알 수 없어요. 기프티드의 존재나 스튜에 대해서 알지 못할 테니까요.”
밀러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앤드류 로이즈는 기프티드라는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설사 누군가가 이야기해 준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바이츠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끄적거릴 수는 있겠지만, 해석은 못 하겠죠. 앤디는 그 사실을 참고 있지 않을 거예요. 무언가 행동을 취하겠죠.”
“예를 든다면?”
“내가 앤디라면 테일러 요원을 만나고 싶어 할 것 같아요.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을 거예요.”
“어떤 이야기?”
“국장님이 무엇을 꾸몄는지.”
신시아 챔버가 밀러 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
바이츠만 국장은 앤드류 로이즈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녹스빌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저택의 서재, 앤드류 로이즈가 만나자고 했던 장소였다.
바이츠만 국장을 서재로 안내한 앤드류 로이즈는 바이츠만 국장 앞으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알고 계십니까?”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
바이츠만은 사진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앤드류 로이즈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지 않군.
바이츠만의 생각이었다.
다음 CIA 국장이 될 것이라는 언질을 들은 앤드류 로이즈가 미래 권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서열 정리를 하기 위해 자신을 부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앤드류 로이즈 모습에서 이 남자는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CIA 서열 세 번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권력욕과 정치적인 감각 덕분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이츠만의 시선이 사진을 향해 움직였다.
사진에는 금발 머리를 가진 백인 여자, 아주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 인화되어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바이츠만이 말했다. 사진 속 여자는 바이츠만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트레이시 테일러, 서울에서 카멜리아를 데리고 있는 CIA 요원의 얼굴이었다.
“왜 우리 요원이 그쪽 요원을 데리고 있는 겁니까?”
앤드류 로이즈가 물었다.
바이츠만의 시선이 다시 앤드류 로이즈를 향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매우 좋지 않군.
***
앤드류 로이즈는 바이츠만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의 눈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눈에 담기는 감정은 의지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아무리 표정과 행동에서 감정을 숨기려 해도, 눈에서는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감정을 숨기는 훈련을 해 온 이 첩보 세계의 괴물에게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어 낼 수 없었다.
쉽지 않겠군.
바이츠만의 눈을 바라본 앤드류 로이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대통령으로부터 카멜리아 일을 해결하라는 지시를 받은 앤드류 로이즈는 바로 상황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현 국장인 밀러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증거가 바로 트레이시 테일러였다. 고작 몇 년의 경력뿐인 현장 요원. 아무것도 모르고, 어떠한 결정권도 없이 현장에서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야 할 하급 현장 요원의 인사 파일이 봉인되어 있었다.
CIA에서 세 번째로 높은 수석 작전 요원의 권한으로도 열람할 수 없는 봉인이었다.
앤드류 로이즈는 트레이시 테일러라는 이름의 이 하급 요원이 밀러 국장이 꾸미고 있는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한 첫 번째 색인(Index)이라고 확신했고, 트레이시 테일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한 두 장의 카드를 찾아냈다.
그 첫 번째 카드가 동아시아 지부 부지부장을 맡았던 로건 스미스였다. 트레이시 테일러의 경력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오키나와에서 그녀의 상사였던 남자였다.
랭리에 있는 자신의 심복을 이용해 로건에게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로건으로부터 두 가지 정보를 얻어 냈다.
소말리아에서 에녹 노이스를 구출하는 작전에 참여하기 전까지 트레이시 테일러는 나이와 경력에 걸맞은 현장 요원에 불과했다는 것, 그리고 실체를 알 수 없는 방글라데시 작전부터 그녀가 직접 랭리의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로건은 몸을 사렸다. 말을 감추었다. 트레이시의 인사 파일에 걸려 있는 봉인처럼, 트레이시의 옛 상관의 입도 잠겨 있었다. 그에게서는 더는 얻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트레이시 테일러의 진실에 대해 알려 줄 두 번째 카드를 뒤집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에 잡혀 있는 카멜리아, 그리고 그녀의 상관 바이츠만 국장. 그것이 앤드류 로이즈가 가진 두 번째 카드였다.
“왜 트레이시 테일러 요원이 당신 요원을 데리고 있는 겁니까?”
앤드류 로이즈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
바이츠만 국장은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질문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뜸을 들였다.
이상한 질문이었다.
CIA 수석작전요원이 신 베트에게 물을 질문이 아니었다.
“내가 묻고 싶군요. 왜 우리 쪽 요원을 구금하고 있는지.”
바이츠만이 말했다.
“카멜리아가 어떻게 트레이시 테일러와 엮이게 된 것입니까?”
앤드류 로이즈가 물었다.
바이츠만은 그 질문에서 앤드류 로이즈가 일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 뒤에 감추어져 있던 진실도 알아챘다.
앤드류 로이즈는 카멜리아나, 대통령의 재선이나,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우호 관계나, 다음 국장 자리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그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또 사람을 잘못 골랐다.
어렵게 되었군.
바이츠만 국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앤드류 로이즈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총리를 통해서 미국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대통령께서 선택한 앤드류 로이즈는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우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우호를 해칠 가능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신 베트의 국장을 미국까지 불러서 필요 이상의 정보를 내놓으라고 압박했습니다. 이번 일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하면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사람을 찾을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에 즉각적으로 따를 사람을.
일어나야 되겠군.
바이츠만이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앤드류 로이즈의 말이 들렸다.
“나는 국장 자리에 욕심이 없습니다.”
몸을 일으키려던 바이츠만의 몸이 멈추었다.
“꿈을 꾼 적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이런 방식으로 대통령의, 그리고 당신들의 꼭두각시인 채로 국장 자리에 올라갈 생각은 없습니다.”
앤드류 로이즈가 바이츠만 국장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바이츠만 국장이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허공에서 얽혀 들어갔다. 평생을 정보 세계에서 살아온 두 괴물이 무언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솔직함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아니지요.”
바이츠만 국장이 말했다.
“트레이시 테일러의 기록은 봉인되어 있습니다. 제 권한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봉인입니다.”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
바이츠만은 앤드류 로이즈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챘다.
먼저 카드 한 장을 뒤집은 것이다. CIA 내부의 이야기를 말해 줌으로써, 바이츠만에게도 솔직함을 강요하고 있었다.
“밀러 국장이 트레이시 테일러를 이용해 무언가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무언가와 이스라엘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마음이 급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쪽 요원을 풀어 줄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연관되어 있다는 말씀입니까?”
바이츠만이 물었다.
“그렇게 의심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의미입니다.”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
“관련이 없다고 하면 믿어 주시겠습니까?”
바이츠만이 물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시죠.”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
그가 먼저 뒤집은 카드에 대한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
바이츠만은 아무런 말 없이 앤드류 로이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 바이츠만에게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
“지금 내가 가진 권한으로 이 일을 아무런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은 못 하겠지만, 망쳐 놓을 수는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말이죠.”
감정 없던 바이츠만의 눈동자에 감정 하나가 떠올랐다.
분노, 그런 부류의 감정이었다.
***
바이츠만 국장으로부터 일본에서 진행했던 작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앤드류 로이즈는 한동안 말없이 머릿속에서 단서들을 정리했다.
신 베트가 중국으로부터 미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무기 브로커 제임스 붐을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즉각적으로 미국에 그 사실을 알렸고, 미국은 묵인함으로써 작전을 승인했다. 카멜리아가 일본으로 갔고, 짐빔이 그곳에서 고혼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앤드류 로이즈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기록이 남아 있었고, CIA 수석작전요원의 권한으로 열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내용, 애블린 길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트레이시 테일러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거기에 새로운 등장인물이 있었다. 브랜든 허드슨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동양인 남자. 앤드류 로이즈로서는 처음 드는 이름이었다.
그 말은 그 남자가 또 다른 단서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트레이시 테일러, 아니, 애블린 길먼이 우리 쪽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의미로 들립니다만.”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
바이츠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와 똑같은 차분한 눈으로 앤드류 로이즈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바이츠만이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앤드류 로이즈는 바이츠만의 눈빛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귀하는 몇 년 안에 신 베트를 이끄시겠지요.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귀하가 신 베트의 수장이 되었을 때, 내가 CIA 국장 자리에 있을지. 아니, 솔직히 말하면 CIA에 붙어있을지도 궁금하군요. 뭐, 몇 년 후의 일은 그때 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만약, 우리 두 사람이 각 기관에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오늘 이 일은 괜찮은 안줏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앤드류 로이즈가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이츠만은 아무런 말 없이 앤드류 로이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술잔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필요합니다.”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
“어떤 조건 말입니까?”
바이츠만 국장이 물었다.
“내가 귀하를 신뢰할 수 있어야겠죠.”
“어떻게 하면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밀러 국장이 꾸민 일과 관련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 사실을 입증해 주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입증이 됩니까?”
“한국에 구출팀이 가 있습니까?”
바이츠만은 앤드류 로이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앤드류 로이즈는 바이츠만의 답변이 필요 없었다.
“한국에 있는 구출팀을 움직여 직접 데려가시죠.”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
바이츠만은 앤드류 로이즈의 눈을 바라보면서 지금 이 남자가 한 말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CIA 요원이 지키고 있었다. 밀러 국장의 카드라고 할 수 있는 트레이시 테일러가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구출팀을 가동하라고?
“그쪽 요원이 지키고 있습니다.”
바이츠만이 말했다.
“얼마 전 그녀의 상사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이상한 존재가 되기 이전에 트레이시 테일러의 상사였던 사람을 만났었죠. 그 사람은 말을 아끼더군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트레이시 테일러 요원에 대해 말을 아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
바이츠만의 눈에 놀람이 스며들었다.
앤드류 로이즈가 어떠한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신 베트가 밀러 국장과 같이 일을 꾸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시겠습니까?”
앤드류 로이즈가 바이츠만의 눈을 보며 말했다.
밀러의 사람인 트레이시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말을 하지 않는 트레이시는 필요가 없다. 필요 없는 트레이시를 신 베트의 손으로 처리함으로써 신뢰를 보여 달라.
앤드류 로이즈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한국 시간으로 3일 후, 건강검진을 위해 의사가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귀측 요원과 접촉하도록 하시죠.”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바이츠만에게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