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36화 (336/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19)

***

CIA 수석작전요원 앤드류 로이즈가 가장 많이 받는 오해 중 하나는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선택했다는 오해였다.

테네시 녹스빌에 위치한 테네시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Tennessee)를 졸업한 앤드류 로이즈의 고향도 녹스빌(Knoxville)이었다.

그러나 앤드류 로이즈가 태어난 녹스빌은 미국에서 녹스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16개 녹스빌 중 가장 유명한 테네시의 녹스빌이 아니라, 테네시 주립대학교에서 600마일 떨어진 미주리주의 녹스빌이었다.

캔자스시티에서 북동쪽으로 50여 마일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 녹스빌이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었다.

녹스빌 다운타운에서 자동차로 약 20여 분 떨어진 주택가에 위치한 한 저택,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앤드류 로이즈의 고조부가 직접 잉글리시 트래디셔널 양식으로 건축한 이층집, 작은 마당이 딸린 고풍스러운 이곳이 앤드류 로이즈의 본가였다.

얼마 전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가진 CIA 수석작전요원 앤드류 로이즈는 본가 2층 서재에 앉아 있었다.

앤드류 로이즈가 현재 이 집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15년 전, 앤드류 로이즈의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이 집은 주인이 없는 상태로 줄곧 비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랭리에서 근무하는 앤드류 로이즈가 미주리에 내려와 살 수는 없었다. 유일한 혈육이라고 할 수 있는 여동생은 결혼 후 새크라멘토로 이주한 지 30년의 세월이 지나 있었다.

이 집에서 거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앤드류 로이즈는 이 집을 팔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고향집에 대한 애착이 없을 수는 없었고, 지금은 모두 돌아가신 부모님의 흔적이 묻어있는 이 집을 팔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세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기에, 계속 보유세(Property Tax)를 내면서, 이 오래된 집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렇다고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택 관리 회사에 관리 위탁을 맡겨 놓았다. 주택 관리 회사가 월 2회 마당의 잔디를 깎고, 집을 점검했다.

하지만 지어진 지 90년의 세월이 흐른 이 오래된 주택에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고, 그 일을 할 사람은 앤드류 로이즈밖에 없었다.

지붕에 비가 새는 곳은 없는지, 정원은 잘 관리되고 있는지, 지하실에 곰팡이는 피지 않았는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반년에 적어도 한 번은 휴가를 내서 녹스빌을 찾았다. 앤드류 로이즈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 그가 고향 집에 내려온 명분도 집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앤드류 로이즈를 아는 사람 중에서 이번 고향 방문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앤드류 로이즈가 휴가를 낸 시점이 대통령과의 비밀스러운 저녁 식사를 마친 직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

앤드류 로이즈는 2층 서재에 앉아 있었다.

서재에는 앤드류 로이즈의 부친이 살아생전 수집했던 오래된 책들이 고풍스러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앤드류 로이즈는 생전에 부친이 애용하던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보고 있었다.

책상에 놓인 서류는 CIA의 인사 파일이었고, 파일에는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자연스러운 금발에 고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젊은 여자. 트레이시 테일러의 사진이었다.

앤드류 로이즈는 사진 속 트레이시 테일러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확실히 이상하군.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인사 파일에 기록된 트레이시 테일러의 경력은 앤드류 로이즈가 알고 있는 상식에 들어맞지 않았다.

트레이시 테일러, 미 남중부 시골 출신, 전액 장학금을 받고 브라운 대학교에 진학, 4년 만에 CMP(석학사 통합 프로그램)를 마치고 CIA에 입사. 인턴 생활이 끝나고 동부에서 일하다 동아시아 지부로 발령. 오키나와에서 근무.

그 내용을 끝으로 인사 기록이 누락되어 있었다.

이것은 누락이 아니라 봉인이라는 사실을 앤드류 로이즈는 알고 있었다. CIA 서열 세 번째인 수석작전요원에게조차 공개되지 않는 높은 등급의 봉인이었다.

기록의 봉인은 그리 드문 사례는 아니었다. CIA는 방대한 조직이었고, 같은 시간에 수많은 비밀 작전이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트레이시 테일러는 이 금발 미녀는 기록이 봉인되기에는 너무 젊었다.

만약 트레이시 테일러라는 이 금발의 아가씨가 CIA에서 20년 넘게 근무했고, 어느 정도의 지위까지 올라가 있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작전을 기획할 능력조차 없는 젊은 여자 요원의 기록을 봉인한다?

그것도 수석작전요원조차 열람할 수 없을 정도의 레벨로?

이 사실이 가지는 의미는 하나였다.

국장 직속 요원. 밀러 국장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의미였다.

대통령이 이스라엘 요원을 돌려주라고 했음에도, 밀러는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 그 이스라엘 요원을, 밀러 국장의 직접 지시를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자가 데리고 있다. 그것도 태평양 건너, 한국, 서울에서.

그림이 이상했다. 밀러 국장, 20대 금발 미녀, 이스라엘 요원, 서울,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하는 이유. 그 어느 것 하나 연결되는 것이 없었다.

“국장님, 무엇을 꾸민 겁니까?”

앤드류 로이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트레이시 테일러의 인사 파일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 고개를 돌려 서재 책장을 바라보았다.

책장에는 1973년에 발간된 브리태니커(Encyclopædia Britannica)가 14판본의 마지막 출판본이 꽂혀 있었다. 앤드류 로이즈의 아버지가 거금을 주고 사들인 마지막 브리태니커였다.

-When in doubt Look it up in Encyclopædia Britannica(무언가가 궁금하다면 브리태니커를 찾아보아라).

어린 앤드류 로이즈에게 아버지가 브리태니커를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

24권짜리 백과사전 안에는 일곱 살 앤드류 로이즈가 알고 싶어 한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진실이 담겨 있는 마법의 책처럼 느껴졌다.

앤드류 로이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S’ 섹션이 포함된 권을 꺼내 든 다음, ‘Seoul’이라는 단어를 찾았다.

-서울, 한국어로는 서울, 공식적으로 ‘서울특별시’라 불리는 이 도시는 남한의 수도이다. 이 도시는 한강의 북서쪽에 있으며…….

앤드류 로이즈는 천천히 오래된 백과사전에 담겨 있는 40년 전 서울에 대해 읽어 내려갔다. 글을 쓴 작가는 서울이 도시화가 심각한 단계에 이른 상태이며,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부작용이 서울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작성해 놓았다.

앤드류 로이즈가 알고 있는 서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가 아는 서울은 도쿄, 뉴욕, LA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거대한 메트로폴리탄 경제권을 구축한 경제 대국의 수도였다.

아버지의 말은 틀렸다. 40년 전 브리태니커에서는 앤드류 로이즈가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앤드류 로이즈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책을 다시 원위치에 넣었다.

아버지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앤드류 로이즈는 다시 책상에 앉으며 생각했다.

아버지는 진짜 24권짜리 백과사전에 세상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고 믿었을까?

아니다. 아버지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책을 사랑했고, 지식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현자가 단순히 백과사전을 신봉하라는 의미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앤드류 로이즈가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말버릇이었다.

24권의 백과사전,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 의미였군.”

앤드류 로이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트레이시의 인사 파일로 고개를 돌렸다.

‘Seoul’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한 시작은 ‘S’ 섹션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연결되지 않는 단서들을 억지로 연결하려 해 봤자 되지 않는다. 연결되지 않는다면 연결할 수 있는 선을 찾아야 했다.

앤드류 로이즈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만이 알고 있는 번호를 눌렀다.

-말씀하십시오.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의 대답이 들려왔다. CIA 분석국 국장. 앤드류 로이즈에게 트레이시 테일러의 인사 파일을 가져다준 심복 중의 심복이었다.

“테일러가 오키나와에 있을 때, 직속상관이 누구였지?”

앤드류 로이즈가 물었다.

-로건입니다.

마치 질문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듯,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말했다.

“로건?”

-로건 스미스, 분석국 APLAA 그룹 동아시아 그룹장입니다. 당시에 동아시아 지부 부지부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심복이 말했다.

로건이라는 남자가 오키나와 부지부장에서 분석국 그룹장으로 영전했다는 의미였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

앤드류 로이즈가 말했다.

-준비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앤드류 로이즈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다시 인사 파일 속 트레이시 테일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머그컵에 커피를 따른 트레이시는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에 한규호의 모습이 보였다. 언제나처럼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가 이곳에 나타난 지 5일째. 한규호는 대부분 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아주 가끔 산책을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소파에 누워 있었다.

트레이시는 그런 한규호의 모습을 불만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답답했다. 그렇게 소파에 누워 있는 한규호의 모습에서 트레이시는 답답함을 느꼈다.

한규호가 없었을 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시 느꼈던 답답함과 지금 느끼는 답답함은 결이 달랐다.

예전에 느꼈던 답답함은 끝이 있는 답답함이었다. 한규호가 나타나고, 카멜리아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고, 지겨운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이 전제된 답답함이었다.

5일 전, 한규호가 이곳에 나타났을 때, 트레이시는 드디어 희망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돌아왔으니 카멜리아를 지지든 볶든 어떤 식으로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한규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결정도, 아무런 행동도 없이, 그저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트레이시의 마음속에서, 한규호를 기다릴 때 느꼈던 답답함, 그가 나타나고서 느끼는 답답함, 자신을 이곳에 방치해 두었다는 섭섭함 등이 뒤섞이면서 조금씩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트레이시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거실로 걸어가, 한규호가 누워 있는 소파 옆에 섰다.

트레이시가 다가온 것을 눈치챈 한규호의 눈동자가 트레이시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가 ‘왜?’라고 묻고 있었다.

그 눈을 보자 트레이시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확 하고 치밀어 올랐다.

저렇게 순진한 눈을 하고 있다니!

“무슨 생각이죠?”

트레이시가 물었다.

“뭐가?”

한규호가 되물었다.

트레이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카멜리아의 방에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카멜리아를 어떻게 할 거죠?

트레이시의 시선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규호의 얼굴에 작게 웃음이 번졌다.

그 웃음을 바라본 트레이시는 화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 웃음이 마치, 별것도 아닌 일로 귀찮게 한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무시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 자신을 우습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커피. 남았어?”

그런 트레이시의 마음을 눈치 못 챈 듯, 한규호가 말했다.

트레이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규호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제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한규호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트레이시의 눈앞까지 다가와 옅은 웃음이 담긴 눈으로 트레이시의 눈동자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한 모금만 먹어도 될까?”

한규호의 손가락이 트레이시의 손에 들린 머그컵을 향해 있었다.

트레이시는 잠시 동안 말없이 한규호를 노려보다 손에 들고 있던 머그컵을 한규호에게 건넸다.

“고마워.”

트레이시의 속도 모르고, 한규호는 그렇게 감사를 표한 다음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머그컵을 다시 트레이시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트레이시는 머그컵을 돌려받지 않았다. 계속 한규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 마셔? 내가 다 마셔도 괜찮아?”

한규호가 물었다.

그 말을 들은 트레이시가 막 분노를 쏟아내려는 찰나, 한규호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산책이나 할까? 날도 좋은데.”

한규호가 트레이시의 손에 머그잔을 들려 주며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카멜리아의 방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으면 잠깐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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