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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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미국으로 불리우는 메릴랜드주(State of Maryland)는 1572년, 스페인 탐험대에 발견될 때까지만 해도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다습지일 뿐이었다. 그런 척박한 땅에 박해받는 가톨릭교도의 새로운 터전을 만들고 싶었던 볼티모어 남작이 영주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메릴랜드 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메릴랜드주는 언제나 미국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식민지 군이 사용한 군함과 대포를 제조했던 도시가 볼티모어였고, 식민지를 제압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 해군이 상륙한 장소도 메릴랜드였다.
남북전쟁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던 앤티텀 전투가 벌어진 곳도 메릴랜드였으며, 남북전쟁이 끝난 1800년대 후반,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의 산업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던 장소도 메릴랜드였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현재 미국에서 메릴랜드는 그렇게 주목받는 주라고는 할 수 없었다.
남쪽으로는 정부 기관, 그리고 정부 기관 하청 기업 직원의 높은 임금을 바탕으로 매년 포브스지가 선정하는 미국 10대 부촌(The 10 Richest Counties) 순위에 1, 2, 3위를 랭크시키는 버지니아주가 있었고, 북쪽으로는 미국을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끌어올린 공업 중심지 펜실베이니아와 지금도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뉴저지주가 있었다.
기껏해야 아나폴리스의 해군사관학교, 야구단 볼티모어 오리올스, 미식축구단 볼티모어 레이븐스 정도, 처참한 치안 수준으로 유명한 볼티모어와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HBO 드라마 ‘더 와이어’ 정도가 대부분의 미국인이 메릴랜드라는 이름에서 연상하는 키워드였다.
특히 살인자의 수도(The Murder Capital of the United States)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볼티모어 때문에 메릴랜드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인식에 대해 메릴랜드 주민들은 억울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치안이 나쁠 것 같다는 인상과는 달리 메릴랜드는 미국 50개 중에서 가장 높은 1인당 개인 소득, 면적 대비 가장 많은 예산을 집행하는 곳이었다.
대서양으로 연결되는 미들리버 인근에 위치한 윌슨 포인트, 살인자의 수도 볼티모어에서 동쪽으로 고작 16마일 떨어진 이 마을도 메릴랜드를 대표하는 부촌(富村) 중의 하나였다.
비즈니스 전용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규모의 공항이 바로 인접해 있었고, 수백만 달러가 넘는 요트가 정박 가능한 마리나를 배후에 두고 있었다.
그 부촌에 검은색 픽업트럭 한 대가 천천히 진입하고 있었다.
픽업트럭이라는 차종은 부촌인 윌슨 포인트에 그다지 어울리는 차량은 아니었다.
픽업트럭이라는 단어는 더블배럴 샷건, 돼지껍데기 튀김, 체크무늬 셔츠와 더불어 백인 저소득층, 소위 레드넥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윌슨 포인트로 접어드는 픽업트럭 차량 전면에 제조사 로고에서 레드넥을 떠올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트럭 전면에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 안에 들어 있는 사각별, 고급 자동차 제조사 링컨의 로고가 붙어 있었다.
링컨에서 만든 마지막 픽업트럭 모델 링컨 마크 LT 2세대. 성공한 동부 비즈니스맨의 여가 활동을 위한 세컨드 카의 대명사. 2015년에 단종되었지만, 여전히 그 인기가 식지 않는 ‘화이트 컬러의 픽업트럭’이었다.
링컨이 제조한 마지막 픽업트럭이라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듯, 은은한 광택이 고급스럽게 뿜어 나오는 검은색의 링컨 마크 LT 2세대 차량은 천천히 윌슨 포인트의 깨끗한 골목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전장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유하는 칠흑의 군마(軍馬)처럼 품격 있었다.
전장을 주유하던 칠흑의 흑마는 마리나에 인접한 어느 저택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상한 움직임으로 저택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대지 면적 1만 6천 평방피트, 건평 9천 평방피트에 5개의 침실, 8개의 욕실, 그리고 정원 수영장으로 구성된 초호화 저택. 이곳이 픽업트럭의 마사(馬舍)였다.
픽업트럭이 주차장에 멈추고 한 남자가 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머리, 건장한 체격, 동북아시아 몽골인종 특유의 각진 얼굴을 한 30대 남자. 며칠 전 밀러 국장과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 동양인이었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저택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거실을 지나,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비앙코 카라라(Bianco Carrara)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 남자는 2층 구석에 있는 문 앞에 섰다.
동양인 남자가 서재라고 부르는 이 공간은 이 집에서 가장 강력한 보안이 걸려 있는 방이었다.
일반 벽처럼 보이는 키패드에 14자리에 보안 코드를 입력하고, 정맥과 홍채를 인식한 이후 문이 열렸다.
이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사람,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온 동양인 남자, 그리고 CIA 밀러 국장뿐이었다.
서재 안에 밀러 국장은 없었다.
당연했다. 밀러 국장은 현재 미 중부 3만 피트 상공을 날고 있었고, 동양인 남자는 밀러 국장의 현재 위치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책상에 자리를 잡은 동양인 남자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켰다.
전 세계에서 오직 한 대뿐인 노트북, 동양인 남자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그만의 노트북이었다.
키보드에 지문 인식 센서가 삽입되어 있었고, 동양인 남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비밀번호를 입력하기 위해 키보드를 터치할 경우, 남자가 직접 설계한 운영체제는 내부 저장장치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다.
부팅이 끝난 노트북 바탕화면에는 커다란 방패 모양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세계 3대 인터넷 보안 기업인 스쿠텀(Scutum) 시큐리티社의 로고였다.
동양인 남자, 스쿠텀 시큐리티 사장, 그리고 밀러 국장과 계약관계에 있는 독립 요원 라이언 대길 김(Ryan Daegil Kim)은 방패로고를 보면서, 가볍게 손목을 풀고는 손가락을 키보드에 올렸다.
의뢰인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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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의 밀러 국장을 아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궁금증이 있었다.
도대체 밀러 국장이 언제 잠을 자는지, 잠을 자기는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밀러 국장은 언제나 일하고 있었고, 항상 깨어 있었다. 밀러 국장의 일정에 휴가는커녕 ‘수면’이나 ‘휴식’에 대한 카테고리가 있기는 한지 의문이 들었다.
밀러 국장을 조금 더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의문에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밀러 국장은 이동 중에 토막잠으로 대부분의 수면과 휴식을 충족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전용기를 타고 미 대륙을 횡단하는 시간 동안 숙면을 취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 믿음을 증명이라고 하듯, 밀러 국장은 동쪽을 향해 날아가는 전용기 국장 전용 좌석에 몸을 깊게 파묻은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전용기의 현재 위치는 네브래스카 레드 클라우드 상공 3만 피트, 목적지인 워싱턴 D.C까지는 1,100마일이 남아 있었다. 그 말은 대략 두 시간 반 정도는 국장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밀러 국장은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밀러 국장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서류 파일이 정리되어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잠을 자는 모습을 하고 있는 밀러 국장은 머릿속으로 파일을 꺼내어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머릿속에 열려 있는 파일에는 ‘라이언 대길 김’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라이언 대길 김. 한국명 김대길. 한국계 미국인 3세. 세계 3대 네트워크 보안 솔루션 기업인 스쿠텀(Scutum) 시큐리티의 창립자이자 대표. 그리고 밀러 국장만을 위해 활동하는 독립 요원. 며칠 전 밀러 국장과 대화를 나누었던 동양인 남자의 프로필이었다.
행운이었다. 그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14년 전, CIA는 작전 하나를 기획한다.
전화번호부 작전(Operation Yellow page)이라고 이름 붙은 이 작전은 날로 증가하는 사이버상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고, 향후 치명적인 위험 요소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해커 리스트를 만들기 위한 의도로 계획되었다.
이 작전을 주도한 부서가 2015년까지 존재 자체가 기밀로 분류되어 있던 CIA 디지털혁신국(The Directorate of Digital Innovation)이었다.
CIA가 찾으려는 존재들은 해커들의 올림픽이라는 DEF CON이나 PWN2OWN 같은 해킹 대회에 명찰을 달고 참여하는 화이트햇 해커(윤리적인 기준을 갖고, 보안 기술 발전 등의 목적으로 정보시스템 해킹을 시도하는 해커)가 아니었다. CIA가 원하는 것은 블랙햇 해커, 언제 사회에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끼칠지 모르는 크래커의 리스트를 만들 계획이었다.
디지털혁신국은 몇 개의 위장 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나스닥 상장 기업의 내부 정보, 검은돈 세탁, 마약밀수 루트, 군사기지 이전 계획, 그리고 아동 포르노 등을 미끼로 덫을 놓았다.
미끼는 먹음직스러웠고, 어둠 속에 숨어 있던 크래커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CIA 디지털국에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CIA가 쳐놓은 그물에 하나씩 걸려들기 시작했다.
1만 명에 가까운 이름이 리스트에 올랐고, 그들 중 상당수가 주요 감시 대상의 리스트에 올랐고, 주요 감시 대상 중 몇몇은 감옥에 가거나 CIA 소속이 되거나,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CIA의 디지털혁신국이 모든 크래커를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단 한 사람, CIA에서 ‘팬텀’이라고 이름 붙인 한 명의 해커를 끝끝내 잡아내지 못했다.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었다고 자부한 CIA 디지털국의 첫 번째 실패였다.
팬텀이라는 단어처럼 환영처럼 사라진 팬텀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화번호부 작전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되고 몇 달 지나지 않은 지난 시점이었다.
밀러 국장의 개인 메일 주소, 당연히 최고 수준의 보안 기술이 여러 단계로 적용된 메일 주소에 미인증된 메일이 들어왔다. 메일에는 전화번호부 작전의 개요가 첨부되어 있었다.
팬텀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CIA 디지털혁신국의 감시망을 피해 미끼를 빼낸 것을 넘어, 그 미끼를 놓은 곳이 CIA라는 사실까지 밝혀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밀러 국장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대담하게도 메일에는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었다. 마치 찾아오라는 듯.
밀러 국장은 누구도 대동하지 않고 메일에 적혀 있던 장소로 찾아갔다.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캠퍼스 내에 플레밍 대포 앞.
그곳에서 처음으로 팬텀을, 라이언 대길 김이라는 이름을 가진 칼텍 신입생을 만났다.
밀러 국장은 그에게 제안 하나를 한다.
CIA의 리스트에 올라 평생을 감시받으며 살 것인지, 아니면 정보 세계의 최전선에 설 것인지.
밀러 국장은 라이언 대길 김을 CIA의 리스트에 올릴 생각은 없었다. 밀러 국장을 위해 정보를 수집할 그만의 독립 요원으로 만들고 싶었다.
라이언 대길 김의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CIA의 협박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정보의 최전선이라는 말이 그의 탐구심을 자극했다.
라이언 대길 김은 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실리콘밸리에 작은 사무실 하나를 얻어 회사를 설립한다. 라틴어로 방패(Shield)를 의미하는 스쿠텀(Scutum) 시큐리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라이언 대길 김은 밀러 국장에 품 안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단검 한 자루가 되었다.
스쿠텀 시큐리티의 창립 자금은 밀러 국장이 댔다. CIA의 자금이 아니었다. 밀러 국장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개인적인 돈이었다. 스쿠텀 시큐리티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라이언 대길 김은 천재라는 말로는 그의 재능을 표현할 수 없는 천재 중의 천재였고, 네트워크 보안 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밀러 국장이 따로 지원하지 않아도 스쿠텀 시큐리티는 빠르게 성장했다. 1주일 임대료 1,200달러의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한 스쿠텀 시큐리티는 전 세계 보안 시장을 삼분하는 글로벌 보안 기업으로 성장했다.
라이언 대길 김은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를 얻었지만, 그는 여전히 밀러 국장을 돕고 있었다.
13년 전 칼텍의 신입생이던 라이언 대길 김이나 스쿠텀 시큐리티의 대표인 라이언 대길 김이나 원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였다. 정보,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 오직 그뿐이었다.
라이언 대길 김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밀러 국장은 눈을 떴다. 그의 품 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밀러 국장은 품 안의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17개의 비규칙적인 문자의 나열이 포함된 텍스트 메시지가 화면에 떠 있었다.
보고서 확인용 인증 문자였다.
밀러 국장은 테이블에 놓인 노트북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메일함에서 메일 하나를 열고, 전화기에 들어온 인증 문자를 입력했다.
메일이 열렸고, 밀러 국장은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1943년 2월에 4성 장군이 되었고 북아프리카 연합 원정군 사령관의 자리에 오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유럽연합군 최고 사령부의 호출을 받은 것은 1943년 10월이었다. 아이젠하워는 그 호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유럽연합군 최고 사령관에 자신이 내정되었다는 의미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목표가 눈앞까지 다가왔다고 확신했다. 1911년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했을 때, 꿈꾸었던 군 최고 사령관의 자리. 그 꿈이 눈앞으로 다가온…….
거기까지 읽은 밀러 국장은 커서를 움직여 메일 삭제 버튼을 눌렀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아이젠하워 일대기의 일부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전부 해독했다.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는 아이젠하워 가문의 세 번째 아들이었다. 그리고 CIA 내에서 세 번째 서열에 있는 수석작전요원(Chief Operating Officer) 앤드류 로이즈를 의미했다.
아이젠하워가 유럽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된 시기가 1943년 12월이었다. 1943년 10월이라는 날짜는 앤드류 로이즈가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의미, 즉 다음 국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아이젠하워를 호출한 유럽연합군 최고 사령부는 백악관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