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34화 (334/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17)

***

워싱턴 DC,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는 두 사람의 남자가 있었다.

집무실의 주인인 프랭크 보머 대통령은 불쾌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그런 대통령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는 불안한 표정으로 불쾌함이 가득한 대통령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선거에서 프랭크 보머 대통령 선거캠프의 외교 특보를 맡았고, 현재는 백악관 국가안보자문위원회(Office of the National Security Advisor) 특별보좌관((Special Assistant to the President) 직함을 가지고 있는 매트 아이젠버그였다.

“알겠네.”

대통령은 짧게 말하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에 퍼져 있는 불쾌감이 더욱 짙어졌다.

아이젠버그 특별보좌관은 대통령을 불쾌하게 만든 전화를 누가 걸어왔는지는 알고 있었다. 미국의 외교를 관장하는 국무장관의 전화였다.

하지만 내용은 알지 못했다.

“이스라엘 대사가 찾아왔다는군.”

특별보좌관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듯 대통령이 조금 전 통화 내용을 알려 주었다.

아이젠버그 특별보좌관은 대통령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국무장관이 이스라엘을 만났다는 의미일까? 그렇게 대놓고?

“토마스가 곤란해했겠어.”

특별보좌관은 그제야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토마스 해리스. 서울에 가 있는 주한 미국대사의 이름이었다.

특별보좌관은 단번에 모든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미국대사를 찾아간 것이다. 비공식적인 방문이었을 테고, 비공식적인 요청을 했을 것이다. 그 여자를 돌려달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백악관에서 서쪽으로 7천 마일 떨어진 서울에서 이루어진 비공식적인 만남이 대통령을 불쾌하게 만든 것이다.

“여러모로 귀찮게 하는군요.”

아이젠버그 특별보좌관이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면서 말했다.

이스라엘 대사는 미국 대사를,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은 미 국무장관을, 이스라엘 총리는 미 대통령을 귀찮게 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특별보좌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더욱 주름진 얼굴로 테이블에 놓인 시가 케이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대통령은 시가 케이스를 열었지만, 시가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저 불쾌감이 담긴 눈으로 짙은 갈색의 시가를 바라보다가 다시 케이스를 닫았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귀찮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

대통령이 말했다. 아이젠버그도 대통령의 생각에 동의했다.

귀찮게 한다고 치부하기에는 상황이, 정확히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

“면목 없습니다.”

아이젠버그 특별보좌관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면목 없을 이유는 없지.”

대통령이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특별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대통령을 불쾌하게 만든 원흉을 뽑으라면 단연코 CIA의 밀러 국장이었다.

하지만 특별보좌관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망할 수는 없었다. 대통령의 분노가 언제 어디로 향할지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눈치 없이 모든 것이 다 밀러 잘못입니다 하고 말할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이었다면 백악관 특별보좌관은커녕, 워싱턴 DC에 붙어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밀러가 말을 안 듣는군.”

대통령이 말했다.

특별보좌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화살은 밀러 국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해 못 한 것이 아닐까요?”

특별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에 대통령의 얼굴이 구겨졌다.

“밀러가 눈치가 없기는 하지만 멍청하지는 않지. 멍청했으면 국장은커녕 살아 있지도 못했겠지.”

대통령이 짜증이 난다는 얼굴로 말했다.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군요.”

특별보좌관은 일단 밀러를 비난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 백악관 비서진의 의무였으니까.

그러나 특별보좌관의 생각과는 달리, 대통령의 얼굴에 불쾌감이 짙어졌다.

‘명령’이라는 단어가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그 단어는 사용하면 안 되는 단어였다.

특별보좌관은 대통령의 표정 변화를 알아챘다. 그리고 자신이 단어 선택에서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특별보좌관은 질문을 던졌다.

“밀러 국장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

자신에게 향할지 모르는 화살의 방향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우습게 보는 거지. 다른 대통령을 모실 생각에 흥분했고.”

대통령이 말했다.

특별보좌관은 일단 화살촉이 밀러 국장에게 고정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일단은 대통령의 말을 들어 줘야 한다고 판단을 내렸다.

대통령 입에서 선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밀러, 그 친구. 그 자리에 너무 오래 있었어.”

대통령이 말했다.

특별보좌관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선에서 대통령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루살렘은?”

대통령이 물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하고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안달을 내고 있습니다.”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대통령 비밀 특사로 이스라엘에 다녀왔었다.

“확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비가 전화를 걸어올 정도니까, 밑에서는 더 하겠지.”

특별보좌관은 비비라는 별명을 가진 이스라엘 총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젊어서는 전장에서, 군대를 떠난 이후에는 정치판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온 백전노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국무장관이 물었다.

대통령이 무엇을 묻고 싶으냐는 의미로 특별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너무 과한 반응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이스라엘이 자국 요원들을 과보호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상황이 평소와 같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애이팩이 로비스트들을 움직이고 있다. 이스라엘 외교부도 움직이고 있다. 무엇보다 여자 요원 하나 때문에 이스라엘 총리가 직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다.

“바이츠만의 딸이라더군.”

대통령이 말했고,

특별보좌관의 눈이 커졌다.

다비드 바이츠만, 이스라엘 총리 직속 첩보기관 신 베트 대외협력사업국 국장, 적어도 10년 안에 이스라엘 첩보기관을 이끌어갈 수장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남자.

“그…… 카멜리아가.”

거기까지 말한 특별보좌관은 입을 다물었다.

대통령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해. 역겨운 이야기지. 자신의 딸을 요원으로 만들다니. 그것도 미인계를 전문으로 하는 요원으로.”

특별보좌관은 대통령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혈통이었다. 2000년의 세월 동안에도 뿌리를 잊지 않은 지독한 그 민족은 힘들게 얻어 낸 조국의 땅을 지키기 위해, 대를 이어 목숨을 바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것도 여성의 성을 이용하는 미인계 전담 요원으로 자신의 딸을 활용한다는 이야기는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왔다.

“확실한 것은 아니야. 모르지. 바이츠만의 딸인지. 어쩌면 비비의 딸일는지도. 비 유대계 여자를 건드렸는지도 모르지. 카멜리아라는 그 여자, 확실히 아슈케나짐의 얼굴은 아니지.”

특별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보좌관도 카멜리아의 사진을 보았다. 서양인의 얼굴을 기반으로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얼굴이었다. 유대인 혈통의 주류 세력인 유럽계 유대인 아슈케나짐(Ashkenazi Jews)의 전형적인 얼굴은 아니었다.

“모계가 미즈라힘, 어쩌면 팔레스타인 계통일 수도 있겠군요.”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적으로 팔레스타인 혼혈을 만들어 키운 후, 하마스에 잠입시킨다. 최소한 2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한 초장기 작전을 이스라엘 놈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계획했고 시행했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이스라엘이 그 여자를 원하고 있고, 그 여자를 돌려주지 못하면 이번 선거가 몹시 어려워질 것이라는 사실이지.”

대통령이 말했다.

“그리고 밀러 국장은 말을 듣지 않고 있고 말이죠.”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불러서 직접적으로 말씀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특별보좌관이 물었다.

대통령은 말없이 특별보좌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곱지 못했다.

“포도밭에 바구니를 들고 가야 하나?”

대통령이 말했다.

특별보좌관은 자신이 다시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특별보좌관이 빠르게 사과했다.

Go to vintage without basket.

포도밭에 갈 때는 바구니를 두고 가라. 오해를 살 일을 만들지 말라는 의미가 있는 속담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이스라엘에 이익이 되는 지시를 내렸다는 무익한 오해를 살 수 있다. 재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오해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아니, 지금 당장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재선에 성공하고 임기를 마치고, 우렁찬 박수 속에서 퇴임한 이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온 평생 쌓아 놓은 업적을 단 한 순간에 무너트릴 수 있었다.

평생을 정치판에서 살아온 대통령의 정치 감각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대통령은 특별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몇 년 전, 선거캠프에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던 그 당시의 눈을 하고 있었다.

“밀러를 지금 쫓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특별보좌관이 말했고,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거가 끝난 이후라면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 CIA 국장의 교체는 선거에서 악재가 될 뿐이었다.

“쫓아내지는 못해도, 손발을 잘라 내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드러날 일도 없고, 설사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국장이 대통령 눈 밖에 났다는 정도로 인식될 테니까요.”

“허수아비로 만들어라?”

대통령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국장 자리에는 그대로 앉혀 두고,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도록 하는 겁니다.”

대통령의 눈이 빛났다.

조금 전 특별보좌관이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기억은 더 이상 대통령의 의식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구?”

대통령이 물었다.

“앤디가 잘 해낼 겁니다.”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쿠?”

대통령이 되물었다.

앤디 그리고 쿠(COO). 모두 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앤드류 로이즈, CIA 수석 작전 요원(Chief Operating Officer:COO). CIA 국장, 부국장에 이어 CIA 내 서열 3위의 인물.

대통령은 앤드류 로이즈의 얼굴을 떠올렸다.

말단 요원에서 시작해 CIA의 세 번째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단순히 현장 능력만으로는 수석 작전 요원이 될 수 없다. 정치적인 감각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유대인이었지?”

대통령이 앤드류 로이즈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유대계 미국인입니다.”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유대인의 혈통을 타고 났지만, 미국인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서슴없이 미국의 이익을 선택할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대통령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은 이민자로 만들어진 나라였다. 전 세계에서 모인 이민자가 자신들의 모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면, 지금의 세계 최강국은 없었을 것이다.

앤드류 로이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유대계라고는 해도, 친 이스라엘 행보를 보였다면, CIA 수석 작전 요원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국장 자리를 약속해 줘야 하나?”

대통령이 물었다.

“약속은 필요 없습니다.”

특별보좌관이 말했다.

대통령은 계속하라는 의미로 특별보좌관을 바라보았다.

“같이 저녁을 드시죠. 그리고 밀러가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 서울에서 일이 꼬였다는 내용을 가볍게 흘리는 것만으로도 앤디는 이해할 겁니다. 똑똑한 친구니까요.”

대통령은 말없이 특별보좌관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시가 케이스를 열고, 니카라과 시가 장인이 수제로 만든 피구라도 페르펙토 시가를 하나 꺼내어 들었다.

꺼내어 든 시가 캡을 커터로 자르고, 단면을 살펴본 후 특별보좌관에게 건넸다.

아이젠버그 특별보좌관은 공손한 태도로 시가를 건네받으며 살짝 웃음 지었다.

대통령이 건네준 시가는 대통령에게서 점수를 땄다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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