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31화 (331/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14)

***

이스라엘은 두 개의 수도를 가지고 있었다. 예루살렘(Jerusalem), 그리고 텔아비브(Tel Aviv)였다.

이스라엘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수도는 히브리어로 ‘평화의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예루살렘이었다.

1980년 이스라엘 국회가 ‘예루살렘 전체는 분리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규정한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정부가 인정하는 유일한 수도가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유대교의 성지였으며, 2000만에 회복한 유대인들의 영혼의 고향이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청명한 이스라엘 정부는 국회의사당, 중앙정부청사, 대법원, 공안기관 등을 이전하면서 예루살렘 수도화 정책을 진행했고, 이스라엘 주제 각국 대사관에 공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그런 이스라엘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했을 때, 평화의 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도시는 다음 중동전쟁을 초래하는 실마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스라엘 의회가 예루살렘을 수도로 천명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478호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주장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결정한다. 동시에 모든 유엔 회원국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대사급 외교공관을 이전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유엔, 그리고 대부분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이스라엘의 유일한 수도는 텔 아비브(תֵּל־אָבִיב: Tel Aviv)였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영혼의 고향이었다면 텔아비브는 그들에게 있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 900만의 45%인 400만이 텔아비브 광역권에 거주했다.

유엔의 권고를 받은 대부분 국가의 대사관도 텔아비브에 남아 있었고, 이스라엘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도 텔아비브에 본사를 두고 있었다.

1948년부터 1977년까지 이스라엘의 임시 수도 역할을 한 텔아비브는 명실공히 이스라엘 국제법상의 수도, 그리고 이스라엘의 경제 수도 역할을 굳건히 지켜 내고 있었다.

물론 이스라엘 정부도 경제 수도로서의 텔아비브의 역할을 인정했고, 경제 부처 일부와 증권거래소, 그리고 국유기업 본사를 텔아비브에 남겨 둠으로써, 텔아비브에 경제 중심지로서의 기능은 남겨 두었다.

남겨 둔 것은 경제 부처만이 아니었다. 국방부와 국방부 산하의 육·해·공군 청도 텔아비브에 있었다.

전쟁이 발발했을 시, 지휘부를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그런 의도에서, 이스라엘 첩보 기관 신 베트의 본부도 텔아비브에 남겨 두었다.

***

신 배트 본부 건물은 텔아비브 중심에 위치한 하야르콘 공원(פארק הירקון‎, Park HaYarkon)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

신 베트 대외협력사업국을 통솔하는 다비드 바이츠만 국장은 자신의 방 창가에 서서, 창문 밖으로 펼쳐진 하야르콘 공원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야르콘 강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조성된 여러 개의 호수는 잔잔한 바람에 맞춰 잔물결을 그려 내고 있었다. 그런 호수 인근에는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텔아비브 시민들의 휴식을 담당하는 하야르콘 공원이 문을 연 것은 1973년이었다. 당시 텔아비브 시장이었던 예호수아 라비노비치(Yehoshua Rabinovich)는 중동전쟁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테러 위협에 고통 받고 있는 텔아비브 시민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휴식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야르콘 강을 중심으로 공원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공원이 지금 다비드 바이츠만 국장이 바라보고 있는 3.5평방킬로미터 규모의 하야르콘 공원이었다.

바이츠만은 이 공원을 사랑했다.

평화로운 하야르콘 공원이 바이츠만이 원하는 이스라엘의 미래였다. 텔아비브를 넘어 이스라엘 전역에 하야르콘 공원을 만들고 싶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걱정하지 않고서, 공원을 산책할 수 있는 이스라엘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공원을 바라보고 있던 다비드 바이츠만의 귀에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바이츠만은 시선을 공원에 고정한 채로 말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구두 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누군가가 들어왔음에도 바이츠만 국장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멋진 풍경입니다. 예호수아 시장께서 참으로 큰일을 해 주셨습니다.”

어느새 바이츠만 국장 옆에 선 남자, 대외협력사업국 미주지역 담당 차장이 창밖에 시선을 주면서 말했다.

바이츠만 국장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에서 그나마 안전한 도시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하지만. 예루살렘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였지, 다른 나라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절대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도시였다.

나이트클럽에서 폭탄이 터졌고, 도심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났다. 테러리스트가 도심을 운행하는 버스를 납치해 운전기사와 승객들을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 구글에서 ‘Tel Aviv bus’를 검색하면 테러 때문에 불타오른 버스 사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텔아비브 주민들도 언제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오고,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다.

하야르콘 공원이 텔아비브 시민들의 일상화된 긴장과 공포, 그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역할을 해 주었다.

“워싱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주지역 담당 차장이 말했다.

그제야 바이츠만은 창밖을 향하던 고개를 돌렸다.

“미국 대통령이 밀러 국장을 직접 백악관으로 불러 독대를 나눈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우리 쪽 요원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되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미 의회에서의 작업도 순조롭습니다. 대외관계위원회 위원장과 안보협력위원회 부위원장이 워싱턴 현지 시각으로 내일 오전 백악관에서 대통령과 면담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양국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안할 것입니다. 언론도 준비를 마친 상황입니다.”

미주지역 담당 차장이 보고했다.

바이츠만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돈과 인원을 들여 작업을 진행했다. 인원 중에는 이스라엘 총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노력의 결과가 이제 보이려 하고 있었다.

“랭리는?”

바이츠만 국장이 물었다.

“랭리에서는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차장이 말했다.

바이츠만 국장은 대답 없이 차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랭리에서도 조만간 반응을 보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백악관이 움직였으니까요.”

차장이 옅은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확신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미소였다.

차장이 그렇게 확신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스라엘 총리가 직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순히 부탁을 위한 전화가 아니었다. 애이팩을 동원해 선거를 돕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전화였다. 재선을 앞둔 미국 대통령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의회에서도 움직이고 있다. 대외관계위원화와 안보협력위원회가 움직인다는 것은 상하원에서 동시에 압박을 가한다는 의미였다.

미국 대통령은 카멜리아를 놓아 줄 것이다.

카멜리아를 계속 잡고 있는 것 보다 놓아주는 것이 이득이었다. 대통령에게 있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이득이었다.

바이츠만 국장은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의 공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공원을 산책하는 노부부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왜일까? 랭리는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바이츠만 국장은 CIA 밀러 국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바이츠만 국장은 밀러 국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 15년 전, 바이츠만이 아직 신 베트의 일반 요원 중 한 명이었던 그때, 이란 수도 테헤란 외곽의 빈민가에서 그를 만났었다.

당시 바이츠만은 신 베트의 지시에 따라 이란 핵 개발 기술자를 암살하기 위한 작전을 모사드와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단순히 이스라엘만의 작전은 아니었다. 미국 CIA, 영국 SIS가 공조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대(對)중동 작전에서 미국, 영국과 공조 작전을 펼치는 일은 그리 드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CIA 국가비밀공작국이 공조 작전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국가비밀공작국은 비밀이 많은 CIA 내에서도 가장 감추어져 있던 부서였다. 소속 요원이나 업무도 의회에 공개되지 않았다.

두 명의 국가비밀공작국 부국장 중 한 명인 밀러가 그때 테헤란에 있었다.

일개 요원에 불과했던 바이츠만이 밀러와 작전을 논의하지는 않았다. 그럴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이츠만은 밀러를 기억해 두고 있었다.

요원으로서의 바이츠만의 본능이 밀러를 기억해 두라고 말하고 있었다.

저런 놈과는 적이 되어서는 안 돼. 만약 적이 될 것 같으면 재빨리 죽여 버리는 게 좋아.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모든 말과 행동에 이유가 있는 남자였다. 그런 밀러가 지금 바이츠만의 부하를 구금하고 있었다.

왜일까? 왜 밀러 국장이 카멜리아를 구금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일까요?”

마치, 바이츠만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차장이 질문을 던졌다.

“뭐가 말이지?”

“CIA는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우리 요원을 구금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장이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CIA는 카멜리아가 브랜든 허드슨의 목숨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 베트가 CIA에 알려 주었으니까.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었던 중국은 일본에 있는 미국인 무기 거래상을 처리함으로써 미일 관계에 소금을 치고 싶어 했다. 다양한 경제협력방안과 외교 관계 개선을 미끼로 이스라엘에 의뢰를 해 왔다.

일본에 가 있는 무기 브로커 짐빔을 죽여 달라고.

예루살렘은 중국의 의뢰를 수락했다.

중국 놈들의 싸구려 경제협력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중국과 외교 관계를 애써 개선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중국에 채무를 안겨 줄 기회였고, 무엇보다 아랍세계에 무기를 공급한 짐빔은 죽기 전까지 절대로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이스라엘의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짐빔을 처리했다. 물론 미국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브랜든 허드슨은 달랐다.

그는 미국 시민이었고,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리스트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중국이 브랜든 허드슨을 지목했을 때,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바로 미국에 통보해 주었다.

그러나 랭리에게서는 어떠한 답도 받지 못했다. 신 베트와 CIA 사이에서 침묵은 암묵적인 승인을 의미했다.

짐빔을 처리하고 일본을 떠나는 날만 기다리고 있던 카멜리아가 다시 소환되었다. 그리고 브랜든 허드슨에게 접근시켰다.

하지만 실패했고, 미국에 카멜리아의 신병을 구금했다.

미국은 다 알고 있었다.

차장이 불만 섞인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설마, 랭리가 카멜리아와 관련해 무언가를 알아낸…….”

“인천 가는 화물은?”

바이츠만 국장이 차장의 말을 끊어 버렸다. 알고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은 달랐다.

차장은 바이츠만 국장의 의도를 단번에 이해했다.

차장이 자세를 바로 하고 말했다.

“타이베이에서 1시간 전에 이륙했습니다. 도착까지 2시간 남았습니다.”

“화물 도착 즉시 상황실을 가동한다.”

바이츠만 국장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차장이 짧고 빠르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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