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30화 (330/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13)

***

카멜리아는 두 무릎을 모으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를 들은 것은 오후 7시 반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카멜리아는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들어 본 노크 소리였다.

이곳에 오고 처음 며칠 동안 한국 국정원 관계자가 필요한 물품이 있는지 묻기 위해 방문을 노크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발길을 끊으면서, 노크 소리도 같이 끊겨 버렸다.

카멜리아의 동거인은 저 방문을 노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었고, 서로의 방문을 노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가 갑자기 나타난 오늘, 오랜만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카멜리아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방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노크를 무시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방문을 노크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에 반응할 타이밍을 놓쳐 버린 것이다.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카멜리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안 자고 있었으면서 대답도 안 하고.”

카멜리아가 침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남자는 허락도 없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들어와도 된다고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카멜리아가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들어가도 될까?”

이미 방 안에 들어온 남자가 말했다.

카멜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 남자를 지그시 노려볼 뿐이었다.

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날카롭게 한마디 해 주고 싶었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저녁 먹게.”

남자가 말했다.

그가 열어 놓은 문으로 음식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맡아 본 냄새였다. 분명히 알고 있는 음식이었는데, 순간적으로 어떤 음식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혹시 알레르기가 있나? 감자라든지, 당근이라든지.”

감정을 감추는 데 능숙한 카멜리아라고 해도, 지금 그 말에는 어이없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알레르기요?”

“특별한 알레르기가 없으면 그냥 먹자고. 다른 거 만들 시간 없어. 재료도 없고.”

남자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저녁을 만들었다고? 저 남자가?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수면이 건강관리의 시작이지. 얼른 나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카멜리아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그 문을 통해 익숙한, 하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음식 냄새가 계속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

저녁 메뉴는 카레였다. 커리가 아닌 카레라고 했다.

식탁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여자 앞에는 쌀밥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고, 국자를 들고 있는 남자는 그 그릇에 카레를 퍼 주었다.

카멜리아는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 앞에 놓인 그릇을 바라보았다.

노란색의 걸쭉한 액체 사이사이로 사각형으로 썰린 감자와 당근, 그리고 고기가 보였다.

“닭.”

남자가 말했다.

카멜리아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닭이라고. 돼지고기 아니니까 먹어도 괜찮아.”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남자는 자신의 그릇에 카레를 부으며 말했다.

카멜리아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설마, 닭도 안 먹는 것은 아니겠지?”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카멜리아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짧은 순간 얽혔다.

카멜리아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리고 그런 카멜리아를 트레이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트레이시는 카멜리아가 싫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 때문에 이곳에 끌려왔다. 몇 달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반 감금당해 있었다.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명령을 받았다. 한규호를 도우라는 랭리의 명령을 받았다. 명령을 받았으니, 따를 뿐이었다. 그냥 일이다. 단순한 감시 대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그게 안 되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트레이시는 시선을 움직였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어 카레와 밥을 뒤섞는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저 남자의 목숨을 노렸다. 한규호를 살해하기 위해 유혹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린 여자였다. 그런 여자에게 저녁 식사를 만들어 주다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규호가 고개를 돌렸고 트레이시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 닭을 안 먹어?”

한규호가 물었다.

“먹어요.”

트레이시는 그렇게 말하며,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

카멜리아는 숟가락을 들어 한규호가 만든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특이한 맛이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커리와는 조금 달랐다. 향기는 비슷했지만, 인도의 본토 커리나, 코코넛밀크가 들어간 동남아시아 커리와 비교하면 식감이나 맛이 조금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맛있었다.

정말 음식이 맛이 있어서 맛있다고 느낀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조리된 음식을 먹었기에 그렇다고 느낀 것인지 카멜리아는 알 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음식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멜리아는 입안에서 고기의 식감을 느꼈다. 결 따라 쉽게 찢어지는 닭고기 특유의 식감이었다.

카멜리아는 카레 맛이 충분하게 스며든 닭고기의 식감을 느끼면서 남자를 힐긋 훔쳐보았다.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들에게 할랄 푸드가 있듯, 유대인들에게도 그들만의 식문화인 코셔 푸드(Kosher Food)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육류의 경우 드바림(d'varím, 신명기), 바이크라(vayikrá, 레위기)에 따라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초식동물만을 음식 재료로 사용했다. 아랍인들과 마찬가지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단순히 돼지고기만 터부시되는 것도 아니었다. 슈모트(sh'mót, 출애굽기)에는 육류와 유제품을 동시에 먹을 수 없다고 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소고기 패티와 치즈가 같이 들어간 치즈 버거는 유대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음식이었다. 조류도 마찬가지였다. 맹금류와 물고기를 잡아먹는 조류는 먹지 못했으며, 장어처럼 비늘이 없는 어류나, 두족류, 조개류, 갑각류도 금지되었다.

카멜리아는 하레디(Haredi:유대교 근본주의자)처럼 모든 식사를 율법에 맞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유대인인 이상 돼지고기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 했다.

알고 있었을까? 저 남자가 코셔 푸드에 대해 알고서 닭을 쓴 것일까?

남자를 훔쳐보던 카멜리아는 그와 다시 눈이 마주치기 전에 시선을 거두었다.

기분이 나빴다. 그가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다.

반면에, 자신은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도 기분이 나빴다.

브랜든 허드슨, 1988년 히메지(姫路)역 짐 보관소에서 발견된 아기, 일명 코인로커 베이비.

가톨릭 수녀회 산하 복지재단을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중소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허드슨 가문에 입양, UC데이비스에서 주조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부설 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일하다 MD시스템즈의 에이전트인 에블린 길먼과 결혼한 남자.

카멜리아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전부였다.

모두 다 거짓이었다. 그리고 카멜리아는 거짓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남자가 자신의 의식을 끊어 버리던 그 순간까지.

***

도쿄, 롯폰기에 위치한 그랜드 하얏트 호텔 로비, 그곳에서 남자를 처음 보았다.

코시자와 중공업의 츠네타카와 마치 오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카멜리아는 한 발자국 뒤에 서서,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학자.

그게 남자의 첫인상이었다.

카멜리아는 남자의 배경에 대해 알고 있었다. 마리아 개트너의 신분을 빼앗기 전부터, UC 데이비스 주조학 박사 브랜든 허드슨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녀가 알고 있던 정보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양조장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있었던가?

카멜리아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첫 번째 양조장인 히노마루주조(日の丸酒造)에서 시음용 잔을 건네받은 남자는 잔을 작게 흔들어 색과 투명도를 확인하고, 코로 가져가 향을 맡고, 천천히 입에 머금었다.

술을 연구하는 주조학 전문가의 모습이었다. 그 어디에도 어색함이 없었다.

이상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음의 마지막 단계는 입안에서 음미한 술을 뱉어 내고, 물로 입을 헹구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뱉어 내지 않고, 그대로 삼켜 버렸다.

양조장의 술 장인은 왜 술을 뱉어 내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가 답했다.

-이 정도의 술이 만들어지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죠향이라는 향을 만들어 낸 장인분들과 쌀을 개량하고 재배해 오신 분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뱉어 낼 수 없었습니다.

카멜리아는 그 말을 통역하면서, 술 장인의 눈에 피어오른 감정을 보았다. 술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 장인이, 미국에서 온 젊은 주조학자의 말에 위안을 받고 있었다.

그 이후에는?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했던가?

없었다. 의심할 요소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다음 양조장에서 인공감미료가 첨가된 사실을 찾아냈고, 시간을 끌기 위해 로컬 와이너리를 방문하자는 제안에, 허드슨 와이너리의 유일한 아들로서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말했다.

기차를 놓쳤을 때는 놀라는 모습을 보였고, 돌아가지 못한다고 아내에게 전화할 때는 미안한 감정을 표출했다.

료칸에서는?

단서가 있었다. 노천탕에 담긴 그의 알몸을 보았다.

탄탄한 근육이었다. 학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근육이었다.

그 탄탄한 몸이 의심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다.

하지만 카멜리아는 그 단서를 놓쳐 버렸다.

하루 종일 주조학 박사 브랜든 허드슨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한 그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그녀는 남자에게 정체를 들켰고, 의식을 잃었다.

아직도 어딘지 알 수 없는 지하실, 아마도 도쿄 내 미국 관련 시설 중 하나라고 의심되는 건물, 창문 없는 방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더 이상 브랜든 허드슨이 아니었다.

같은 얼굴, 같은 체형의 같은 남자였지만, 더 이상 세상 물정 모르는 학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사선(死線) 넘나드는 사람만이 내뿜을 수 있는 그런 기운이었다.

카멜리아는 다시 몰래 남자를 힐끗 살펴보았다.

지금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또 달랐다.

세상 물정 모르는 학자의 분위기도,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사선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분위기도 아니었다.

뭐라고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본 모습일까? 지금 저 남자가 풍기는 분위기가 저 남자의 본연의 모습일까?

알 수 없었다. 완벽히 브랜든 허드슨을 연기한 것처럼 지금의 모습도 그의 연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것이 없었다. 남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정확히 어떠한 일을 하는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알지 못했다.

모르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왜 자신을 살려 두었는지, 왜 한국으로 데려왔는지, 왜 방치해 두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게 가장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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