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29화 (329/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12)

동부 표준시(EST) 오전 3시, 보통 사람들이라면 하루의 피로를 풀고, 다음 날을 대비하기 위해 잠들어 있어야 할 새벽 시간, CIA 밀러 국장은 잠들어 있지 않았다.

전날 오후, 백악관에서 대통령과의 면담을 마치고 랭리 본부로 복귀해 몇 가지 일을 처리한 밀러 국장이 랭리 본부를 나온 시간은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그 시점부터 밀러 국장의 행보는 기록되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퇴근’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CIA 국장 자리는 퇴근이라는 것이 없는 자리였다.

새벽 3시, 밀러 국장은 메릴랜드주 미들리버 윌슨포인트에 위치한 CIA 안전 가옥(Safe house)에 있었다.

볼티모어 도심에서 동쪽으로 16마일, 차량으로 약 30분 정도 떨어진 윌슨포인트에 자리 잡은 이 안전 가옥은 일본에서의 작전이 끝난 후 밀러 국장이 새롭게 구축한 거점이었다.

밀러 국장이 이 안전 가옥을 새 거점으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접근성이었다. 안전 가옥 바로 인근에 마틴 스테이트(Martin State) 공항이 있었다. 안전 가옥을 나와 비행기 계단을 오르기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해상 접근성도 높았다. 안전 가옥에서 해군사관학교가 위치한 아나폴리스(Annapolis)까지의 거리는 고작 26마일에 불과했다. 체서피크만(Chesapeake Bay)과 직결된 미들리버(Middle river) 수로를 평균 속도 30노트(knot)의 모터보트로 이용한다면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무엇보다 이 안전 가옥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윌슨포인트에 안전 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CIA 내에서도 다섯 명이 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안전 가옥을 국장이 사용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 명이 뿐이었고, 지금 새벽 시간에, 국장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국장을 포함해 단, 두 사람뿐이었다.

밀러 국장, 그리고 밀러 국장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 단 두 사람뿐이었다.

“방패 놈들은 어쩌고 있지?”

밀러 국장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밀러 국장의 맞은편에는 짧은 머리, 30대 후반, 건장한 체격, 그리고 동북아 몽골인종 특유의 각진 얼굴을 한 동양인 남자 앉아 있었다.

“방패가 조종하는 인형이 언덕(Hill)을 열심히 들쑤시고 있습니다. 위, 아래를 가리지 않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가 말했다.

방패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 베트를, 인형은 로비스트를, 그리고 언덕은 미 워싱턴 DC 내셔널 몰 동쪽 끝, 캐피틀힐에 위치한 미 국회의사당을 의미했다.

신 베트의 지시를 받은 로비스트들이 상원, 하원 할 것 없이 의회 의원들에 대한 접촉을 늘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애이팩?”

밀러 국장이 물었다.

애이팩(AIPAC), 미국 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민간 로비 단체.

“전면에 애이팩이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후에 바이츠만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다비드 바이츠만(David Weizmann), 이스라엘 총리 직속 첩보 기관, 신 베트 대외협력사업국 국장. 그의 이름이 나왔다.

“……다비드. 일본에도 있었지.”

“그렇습니다.”

동양인 남자가 답했다.

밀러 국장은 두 손을 모으고 생각에 집중했다.

다비드 바이츠만이 직접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직접 로비스트들을 움직이고 있다.

이상했다. 위화감이 느껴졌다.

요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당연했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하는 요원들을 절대로 소모품 취급하지 않았으니까.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 요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위험에 처한 요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하마스와도 협상을 진행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하지 않는 포로 교환도 불사했다. 이름 없는 요원 하나를 구하기 위해 거물을 석방하기도 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 대통령에게 요원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이 없었다. 정치의 영역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비드 바이츠만. 대외협력사업국 국장이 직접 움직인다는 것이 이상했다.

신 베트 대외협력사업국은 정치를 하는 곳이 아니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사람을 죽이고, 납치하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그 일을 총괄하는 대외협력사업국 국장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외협력사업국 국장이나 되는 인물이 직접 일본에 가서 작전을 지휘했다는 사실에서도 위화감을 느꼈다.

직접 작전을 지휘할 정도로 대단한 작전이 아니었다.

로비스트 짐빔, 그리고 짐빔을 대신해 일본을 찾은 에이전트의 남편을 처리하는 별것 아닌 일임에도 대외협력국 국장이 직접 일본까지 간 것이다.

카멜리아. 그 여자에게 뭔가가 있다.

밀러 국장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벌어진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밀러 국장은 동양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동양인 남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의미를 읽어 냈다.

왜 이스라엘이 카멜리아와 관련해 과민 반응을 하는 거지?

밀러 국장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동양인 남자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국장의 질문에 대답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을 들어 보지.”

밀러 국장이 말했다.

확실하지 않아도 좋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달라는 의미였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카멜리아가 알고 있는 무언가가 가치를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카멜리아 그 자체에 가치가 있거나.”

밀러 국장은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계속하라는 신호였다.

“카멜리아는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미인계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어떠한 정보를 확보했고, 그 정보가 흘러 나가는 것을 이스라엘이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내부 스캔들입니다.”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밀러 국장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카멜리아는 젊고 아름다웠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웠다. 신 베트가 일본에서 지시를 내렸던 것처럼 그녀의 몸을 이용하는 지시를 내렸다면, 그 과정에서 더러운 비밀을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카멜리아가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밀러 국장이 물었다.

“이스라엘은 절대 요원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게 가치가 부여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부여되어 있다면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친인척, 그것도 아주 고위층의 친인척.”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1948년 약속에 땅으로 돌아온 유대인들, 이스라엘 건국세력은 2천 년 만에 돌아온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이용 가능한 모든 것을 이용했다.

그 모든 것 안에는 그들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카멜리아가 이스라엘 총리의 숨겨진 딸이라고 해도 밀러 국장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그녀가 가진 가치는 무엇이지?

밀러 국장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책상에 올려 둔 밀러 국장의 전화기가 진동했다.

밀러 국장은 전화기 화면을 바라보았다.

신시아 챔버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밀러 국장은 바로 전화기를 집어 드는 대신,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시애틀 시각으로는 자정.

이 시간에 신시아가 전화를 걸어왔다면, 기프티드 관련 사안밖에 없었다. 받아야 하는 전화였다.

밀러 국장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

“그렇군.”

신시아 챔버의 보고를 다 들은 밀러 국장이 말했다.

한규호가 한국에 나타났다는 이야기였다. 트레이시와 카멜리아가 있는 서울에 갑자기 나타나 서용석의 한국행을 말해주었고, 서용석의 한국행과 CIA가 관련이 있는지를 의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트레이시 요원이 지시를 기다리고 있어요.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내가 컨트롤하지.”

밀러 국장이 말했다. 대화의 끝을 의미했다.

하지만 신시아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알았어요. 그럼.

아무런 말 없이 전화기를 들고 있던 신시아가 말했다.

그리고 이내 전화가 끊어졌다.

밀러 국장은 신시아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그녀는 묻고 싶었을 것이다.

CIA가 서용석의 입국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더 나아가 서용석의 뒤에 CIA가 있는지.

쓸데없는 호기심이었다. 신시아가 알아야 한다면 밀러 국장이 알려 주었을 것이다. 그녀가 몰라도 되는 내용이라면,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신시아는 질문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전화를 끊을 정도로 현명하지도 않았다.

밀러 국장은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신시아와 통화하는 동안 남자는 미동도 없이, 마치 이 방의 일부인 것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알아야 한다면 알려 준다.

국장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서용석이 한국에 들어간 것을 스튜가 알았고, 트레이시를 찾아갔군.”

마치 무생물처럼 앉아 있던 남자의 눈에 감정이 보였다.

놀라움.

CIA 내부에서 서용석이 한국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둘뿐이었다. 밀러 국장과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동양인 남자, 이 둘뿐이었다.

“어딘가에서 개입했겠군요.”

남자가 말했다.

“어디서 개입했을까?”

밀러 국장이 되물었다.

“민간정보기업은 아닐 겁니다. 그 정도 레벨에서 짧은 시간에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니까요.”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빠른 대답이었다.

“적어도 국가에서 운용하는 정보기관 레벨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한국 국정원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외 정보 수집력은 약해도, 자국 내 컨트롤은 확실하니까요.”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밀러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국의 정보기관은 내부 단속에 특화된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KCIA(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정원은 한반도 안에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국정원이 개입했다면 두 가지 의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서용석의 해외 이동 경로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도 추적하는 데 쉽지 않았던 이동 경로를. 그리고 스튜가 국정원을 이용하려 했다면 태청무역의 김형원이나 곽용신을 통해 움직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서용석과 관련된 특별한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그 두 사람을 제외하고 국정원이 움직였다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라인을 가동했다는 이야기인데,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밀러 국장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CIA가 파악하지 못한 국정원의 라인이 있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제로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밀러 국장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국정원이 아니라면?”

밀러 국장이 물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스튜를 도왔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스튜가 일본이나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설사 의뢰를 했다고 해서 중국과 일본이 스튜를 도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MSS나 나이쵸는 그 정도의 역량이 없습니다.”

밀러 국장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튜가 중국이나 일본과 손을 잡는다? 가능성은 제로였다.

“정보 수집 역량으로만 본다면 SVR(Foreign Intelligence Service : 러시아 연방 해외정보국), SIS(Secret Intelligence Service : 영국 비밀정보부), BND(Bundesnachrichtendienst : 독일 연방정보부), DGSE(Direction générale de la sécurité extérieure : 프랑스 대외안보총국) 그리고 바티칸 정도가 서용석의 경로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이 또한 밀러 국장의 생각과 비슷했다. 하지만 밀러 국장은 남자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동양인 남자는 밀러 국장의 시선에 담긴 의미를 읽어 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후보군에 오른 정보기관과 스튜와의 관계를 조사해 보겠다는 의미였다.

그제야 밀러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가 서용석을 찾아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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