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10)
***
“요즘, 이상하게 잠을 잘 못 잔단 말이지.”
대통령이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밀러 국장은 그런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국장은 어떠하시오? 요즘 잠은 잘 주무시오?”
대통령이 물었다.
밀러 국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통령은 잠을 잘 자지 못할 것이다. 선거가 6개월도 남지 않았으니까.
미국 대통령은 세 번의 선거를 치른다고 했다. 우선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대통령 선거, 재선을 위한 두 번째 대통령 선거, 그리고 두 선거 사이, 대통령 임기 중에 열리는 중간선거(Midterm election)가 그것이었다.
상·하원 의원을 선출하는 중간선거는 대통령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중간선거에서 대통령의 소속 당이 패배한다고 해서 대통령직을 잃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중간선거의 패배가 재선의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도 아주 높았다.
밀러 국장 눈앞에 앉아 있는 프랑크 보머 대통령 소속 정당은 지난 중간선거에서 패배했다. 참배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패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다음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잠을 못 자는 것이 당연했다.
“얼른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가서 골프나 쳤으면 좋겠군.”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입술을 가볍게 긁고 있는 대통령의 손톱이 그 증거였다.
대통령은 어릴 적 손톱을 깨무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서른 가까이 고치지 못했던 지저분한 버릇을 고친 것은 정치를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고쳤다고 해도,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초조함을 느낄 때, 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그리고 손톱으로 입술을 긁었다. 바로 지금처럼.
대통령의 얼굴에 손톱을 깨물고 싶다는 갈망이 드러났다.
대통령은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밀러 국장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는 초조함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CIA는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선거에 개입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그런 CIA가 절대로 개입할 수 없는 선거가 미국 선거였다. CIA 요원이 다른 나라의 선거를 망가트리면 승진을 했지만, 미국 내 선거에 아주 작은 영향이라도 주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CIA 그리고 CIA 국장이 미국 선거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대통령도 직접적으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국장을 보자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에 비비가 전화를 걸어왔소. 개인적인 라인으로 말이지.”
대통령이 본론을 꺼냈다.
비비. 현 이스라엘 총리, 그리고 이스라엘 건국 이후 가장 긴 임기를 기록하고 있는 에후드 타냐후의 별명이었다.
에후드 네타냐후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당시, 지금의 대통령을 만났다. 정확히는 그때 안면을 익혔다. 정치인이 된 이후 친구가 되었으며, 각자 이스라엘의 총리와 미국 대통령 된 이후 절친이 되었다.
“국장의 안부를 묻더군. 친구의 얼굴을 본 지 오래되었다고. 예루살렘으로 놀러 올 수 있게 휴가를 주라더군.”
대통령이 말했다. 마치 친구의 안부를 전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웃기는 이야기였다.
‘친구’, 미국 대통령과 이스라엘 총리, 그리고 CIA 국장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 여자 이야기를 꺼내겠군.
밀러 국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 친구가 여러모로 걱정이 많더군. 참, 힘 좋은 친구야. 그렇게 오래 했으면, 이제 쉴 때도 되었는데 말이지. 나는 이제 그만 쉬고 싶은 마음뿐인데, 그 친구가 허튼소리 하지 말라더군.”
대통령은 여전히 표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어떻소? 국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대통령이 물었다. 이번에는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었다.
“그렇습니다.”
밀러 국장은 답을 주었다. 대통령이 원하는 대답이었다.
“개인적인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자리에 대한 욕심보다는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이 더 크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오. 특히 중동과 관련해서는. 국장은 이해하겠지.”
대통령의 말이 조금 더 표적 중심을 향해 다가왔다.
“비비의 친구들이 도와준다면 그 작은 욕심이 이루어질지도 모르지.”
대통령이 말했다.
비비의 친구, 이스라엘 총리의 친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밀러 국장은 잘 알고 있었다.
에이팩(AIPAC, The 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미국-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 그런 이름을 가진 이스라엘계 로비 단체.
지난번 열렸던 에이팩 총회에서 3억 달러의 기부금이 모였다.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쓰일 총탄이었고, 그 총탄이 어디에 보급될 것인지 예루살렘이 결정했다.
“그 아가씨가 아직 한국에 있소?”
대통령이 물었다.
그 아가씨, 본명 라다 쉬이라(שירה רָדָא). 코드명 카멜리아, 일본에서 기프티드인 스튜에게 접근했다가 역으로 제압당한 이스라엘 방첩 기관 신베트 요원.
“그렇습니다.”
밀러 국장이 답했다.
“비비가 그 아가씨를 돌려받길 원하더군.”
불스아이.
밀러 국장은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
카멜리아의 방은 단출했다.
붙박이장, 커다란 거울이 붙어 있는 화장대, 그리고 침대가 방 안의 유일한 가구였다.
방 주인인 카멜리아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더는 문 옆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거실에 있던 두 사람이 대화를 끝냈는지, 대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사실 들려왔다고 해도, 문 옆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카멜리아는 끝끝내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파악해 낼 수 없었다.
카멜리아는 그렇게 침대에 앉아 몇 시간 전, 그 남자를 처음 보았을 때를 다시 떠올렸다.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카멜리아는 그라는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단 한순간도 그의 얼굴을 잊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카멜리아에게는 휴대전화도,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도 제공되지 않았다. 그녀가 이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생각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카멜리아는 그 남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브랜든 허드슨. 그 가짜 이름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이름이었다.
브랜든 허드슨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히메지(姫路)역 물품 보관소에서 발견된 코인록커베이비. 가톨릭 수녀회 산하 복지재단을 통해 태평양을 넘었고, 캘리포니아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허드슨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허드슨 부부의 사랑 속에서 성장했고, UC데이비스에서 양조학을 공부했고, 대학 부설 연구소에서 연구 교수가 되었다.
복합방위산업체 MD 시스템즈 에이전트 에블린 길먼과 결혼했고, 에블린 길먼의 남편 자격으로 일본에 왔고, 일본에서 그녀의 손에 목숨을 잃었어야 했던 남자.
하지만 그 모두가 거짓이었다. 그의 진짜 모습과 관련해, 그녀가 아는 것은 그의 탄탄한 알몸뿐이었다.
***
밀러 국장은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이스라엘 총리가 여자를 돌려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 요청을 들어주어야 에이팩이 대통령 선거를 도울 것이라는 말하는 대통령의 눈에는 일말의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었다. 사실, 모든 정치인이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솔직하게 물어보겠소. 내가 비비와의 통화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한국에 있는 그 아가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선거와 관련이 있소?”
대통령이 말했다.
밀러 국장은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A guilty conscience needs no accuser.
도둑이 제 발 저리다.
“관련 없습니다.”
밀러 국장이 말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여자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는 것과 미국 대통령 선거와의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그 아가씨와 관련해 지시를 내리면, 국장에게 선거에 개입하라고 지시하는 것이오?”
대통령이 다시 물었다.
“아닙니다.”
이 또한 사실이었다.
만약 카멜리아와 관련해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고 그 지시를 통해서 대통령이 선거에서 이득을 얻는다면 그것은 우연이었다.
완벽하게 의도된 우연이었지만.
대통령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면죄부를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요청과는 상관없이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소. 자존심이 상한다. 그런 생각.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합니까?”
대통령이 물었다.
밀러 국장은 물론 대통령의 말을 이해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요청해 올 것이라는 것도, 대통령이 그 요청을 들어주려 한다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할 것인지도.
“기프티드라는 그 친구. 이름이 뭐였지?”
“스튜입니다.”
“그래. 스튜. 스튜라는 그 친구를 국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알겠소. 중요성에 대해 국장이 여러 번 강조해서 말해 주었지. 나도 그 생각엔 동의하오. 하지만 우리가 너무 끌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지.”
그렇게 말한 대통령은 테이블에 놓은 시가 케이스를 열고, 시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시가에 대한 대통령의 취향은 확고했다. 니카라과에서 재배된 브로드리프 코네티컷(Broadleaf Connecticut) 품종, 그리고 캡이 뾰족한 피구라도(Figurado) 페르펙토(Perfecto)만을 선호했다. 대통령의 손에 들린 시가가 바로 그것이었다.
“국장도 피우겠소?”
대통령이 물었다.
“괜찮습니다.”
밀러 국장이 말했다.
좋지 않군.
밀러 국장은 시가를 귀에 가져가 눌러 보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시가는 대통령의 손톱과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다. 대통령의 손톱이 초조함을 상징한다면, 시가는 그의 자신감을 상징했다.
“자신의 신체를 의지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그런 능력을 연구해 원맨아미를 만들고 불로불사의 방법을 찾겠다. 이해는 하지. 이해는 하지만, 나는 자꾸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대통령이 상아 재질로 만들어진 시가 커터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초소형 기요틴 모양의 시가 커터에 의해 시가의 뾰족한 캡이 잘려 나갔다.
대통령은 잘린 단면을 살펴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국장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진짜 실현 가능하다고 확신하시오?”
“가능성 중 하나입니다.”
밀러 국장이 말했다.
대통령은 토치 라이터로 시가에 불을 붙이고, 가볍게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 시가 특유의 향기가 진득하게 묻어나는 연기가 대통령 집무실에 피어올랐다.
“우리가 확보한, 또는 확보했던 기프티드 중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실제로 구현한 경우가 있었소?”
대통령이 물었다.
“없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나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요. 우리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도 3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물건이었지. 뭐 결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나도 국장의 생각에 동의하고 싶소. 하지만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구려. 내 말, 이해됩니까?”
“이해합니다.”
“뭐,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사실이지. 그래 봤자 사람 한 명 뿐인데, 더군다나 우리 시민도 아니고, 그런데도 투정을 다 받아 줘야 할까. 아니, 뭐 그건 넘어갈 수 있지. 하지만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안 할 수가 없군.”
대통령은 시가를 재떨이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두 손을 깍지 껴 자신에 턱에 가져다 댄 다음, 밀러 국장의 눈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미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선거보다 그 남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그랬습니다.”
밀러 국장이 말했다.
“선거 따윈 어찌 되든 상관없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지. 전통적인 우방인 이스라엘보다 그 남자가 미국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소?”
대통령이 말했다.
그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