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23화 (323/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6)

“수상한 놈이 얼쩡거린 적은 없었습니까?”

한규호가 젓가락으로 테이블에 이런저런 글자를 쓰는 박종연에게 물었다.

“수상한 놈? 수상하지 않은 놈 세는 게 더 빠를걸?”

박종연이 말했다.

“하긴.”

한규호가 말했다.

평택항은 수도권 항만 중 인천에 이어 두 번째로 물동량이 많은 항만이었다. 특히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 항로가 개설되어 있어, 사람의 이동도 적지 않았다.

“그 자식이 언제 한국에 들어왔다고?”

“8년 전입니다.”

한규호가 답했다.

“내가 여기 있는지 알고, 인사를 하려고 했다면 진작에 찾아왔겠지. 그 자식 한쪽 귀가 날아갔지?”

박종연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용석의 왼쪽 귀를 날려 버린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한, 귀 없는 놈이 여기 알짱거린 적은 없어. 어디 숨어서 몰래 지켜봤는지, 어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봤다면 기억하고 있겠지.”

“수술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어디서? 한국에서? 의료보험 없으면 돈 많이 들 텐데.”

박종연이 말했다.

“위조 여권도 쓰는데, 그깟 의료보험쯤이야,”

한규호가 말했다.

“그것도 그러네. 작정하고 속이려 들면 뭐 그까짓 보험공단쯤이야. 뭐 어디서 귀를 달았다고 해도, 그 짐승 같은 놈이 풀풀 풍기는 야수의 기운은 숨기지 못하지 않을까? 아무튼, 내 주위에 그런 자식이 얼쩡거린 적은 없었어. 아마 봤다면 분명 알아차렸을 거야.”

박종연이 말했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종연은 진도 2였다. 근 손실은 몰라도 그 귀신같은 감각은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 자식 얼굴 기억하냐?”

박종연이 물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뿐인 만남이었지만, 한규호는 서용석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 개자식, 서용석과 같이 있던 정체불명의 외국인 얼굴도.

***

식당을 나온 두 사람은 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아산만 방조제로 갔다.

적당히 차를 세우고, 방조제 위로 올라간 두 사람은 군데군데 낚싯대를 드리운 조사(釣士)들 사이에 서서 한동안 말없이 서해 바다를 바라보았다.

“담배 피우고 싶다아아아아.”

바다를 바라보던 박종연이 소리쳤다.

한규호는 그런 박종연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농담을 포기하지 않는 진도 2의 모습.

“일단 앉자. 발목이 쑤시네.”

박종연은 그렇게 말하고 방조제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규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옆에 앉았다.

“뭐라고 하냐? 너의 그 귀신같은 직감은?”

박종연이 물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는 박종연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옆얼굴에서 안성종 상사의 얼굴이 보였다.

“한국에 있답니다. 한국에 있고, 나를 찾고 있답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그런가…….”

박종연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한규호가 그렇다고 하면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서용석이 진짜로 원하는 사람은 나일 겁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박종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서용석이었다면, 그리고 단 한 명에게 복수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한규호를 골랐을 것이다.

귀가 잘리고, 등허리에 칼을 맞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전우들, 535 부대원을 말 그대로 썰어 버린 사람이 한규호였다. 서용석이라면 자신에게 칼침을 놓았다는 사실보다는, 전우들의 목숨값을 받는 데 조금 더 무게를 실을 것이 분명했다.

“널 찾을 수 있을까?”

박종연이 물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널 찾지는 못하겠지.”

박종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규호는 현직 독립 요원이었다. 그것도 국정원과 같이 일하는 독립 요원이었다. 진도팀 대원이었던 중사 한규호의 정보도, 그리고 지금 독립 요원 한규호의 정보도 모두 봉인되어 있었다.

“나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박종연이 말했다.

한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도 2 박종연의 정보도 봉인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군복을 벗고, 민간인이 된 박종연의 정보는 봉인되어 있지 않았다. 직장에 등록되어 있었고, 급여를 받았으며, 세금을 냈다.

“내가 진도 2라는 것을 알았다고 치고, 군복을 벗었고, 민간인 신분으로 평택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쳐보자고. 왜 안 찾아왔을까?”

박종연이 말했다.

“원하는 것은 나니까.”

한규호가 말했다.

“그렇겠지. 내가 서용석이었다고 해도 당장 내 목을 따러 오지는 않았겠지. 북에서 돌아온 두 명의 생존자 중 한 명이라고 하더라도, 진짜 목표와 선이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유일한 가능성일 테니까. 함부로 나를 건드렸다가 진짜 목표인 네가 숨어 버리는 것을 원치 않겠지.”

박종연이 말했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쪽 귀가 없는 그 자식이 알짱거리지는 않았으니까 감시를 하고 싶다면 누군가를 붙였겠지.”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규호가 물었다.

박종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딱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는데…….”

“없는데?”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얼마 없네.”

박종연이 말했다.

박종연이 일하는 화물장치장은 보세구역이었다. 세관의 관리를 받는 특별 지역이었고, 관세법에 따라 허가받지 않은 인원은 출입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신원이 확실한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항만이라는 지역 특성상, 작업 강도가 높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 교포나 외국인 노동자를 편법으로 고용하는 상황이 다반사였다.

“감시를 붙인다. 감시를 붙인다라…….”

박종연은 그렇게 말하더니, 손가락으로 바닥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2920. 대충 3천 정도 되는군.”

박종연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서용석이라면 무작정 한국에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 그 귀신같은 놈이 우리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이 무작정 들어왔다? 상상이 안 가는군.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뭐 하고 사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찾아왔을 거야. 정보를 얻기 위해서 뭐가 필요하지?”

“돈.”

한규호가 말했다.

“그래. 돈이지. 서용석이 CIA도 아니고,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감시를 붙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사람을 쓰려면 돈이 필요하지. 그뿐만이 아니지. 8년이면 대충 3,000일 정도 되는데, 그 자식도 사람이니까 밥은 먹고 살아야지. 그 돈을 어떻게 구했을까?”

박종연이 물었다.

한규호도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미 생각해두었던 의문이었다.

“조력자가 있을 겁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

서용석은 어둠 속에 홀로 서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멀었군.

서용석은 더 이상 살아 숨 쉬지 못하는 멧돼지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멧돼지의 제1급소라는 눈과 귀 사이에 칼질을 네 번이나 하고 나서야 겨우 숨을 끊어 낼 수 있었다.

서용석은 멧돼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적당한 자리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은 서용석은 허벅지에 입은 부상을 살펴보았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허벅지 살점 한 뭉텅이가 뜯겨 나갔다. 그나마 바깥쪽 허벅지 부위였기에 동맥과 신경은 다치지 않았다. 뼈에도 이상이 없었다.

산에서 멧돼지를 만난 것치고는 가벼운 부상이었다.

하지만 서용석은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었다.

멧돼지가 머리를 쓸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공격 패턴을 바꿀 것이라고도 예상했고, 대비했지만 상처를 입고야 말았다.

목숨을 건 싸움에서는 아주 사소한 방심이 승패와 직결된다.

만약 눈앞의 상대가 멧돼지가 아니라, 그 남자였다면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서용석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부족해.

서용석은 바짓단을 찢어 상처 부위를 묶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간단한 응급조치를 마친 서용석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이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밤마다 산을 올랐지만, 마지막으로 이렇게 어딘가에 앉아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최소한 이곳에 온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뭔가 다르군.

서용석은 하늘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같은 하늘이었지만, 이곳의 하늘은 조국의 하늘과 무언가 달랐다.

어쩐지 마음이 가지 않는 그런 하늘이었다.

조국의 밤하늘, 특히, 동계훈련 중에 보는 밤하늘은 지금 그가 보는 밤하늘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더 어둡고, 더 차갑고, 더 시린 느낌을 주는 밤하늘이었다. 마치 이물질 하나 섞이지 않은 맑은 물이 연상되는 그런 밤하늘이었다.

그러나 남쪽의 밤하늘은 어딘가 달랐다.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따스한 느낌을 주었다.

고향의 밤하늘과 지금 서용석이 바라보는 밤하늘은 그리 멀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백 킬로미터.

하지만 서용석은 마치 다른 대륙의 다른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은 이질감을 느꼈다.

서용석은 그렇게 이질적인 밤하늘을 바라보며 8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그 여자가 찾아온 그날 밤을.

***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남부에 위치한 볼리바리나 군사대학(Universidad Militar Bolivariana de Venezuela) 캠퍼스 내부에 있는 외국인 교수 숙소 4층에 서용석의 숙소가 있었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친북 국가인 베네수엘라에 외국인 교수 자격으로, 실제로는 군사고문으로 파견을 나와 있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저녁 근력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기 위해 막 옷을 벗은 순간에, 서용석은 노크 소리를 들었다.

서용석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누군가가 서용석의 방문을 노크한 것이다.

아래 속옷만 입은 서용석은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한 백인 여자가 서 있었다. 서용석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여자가 말했다. 조선말, 정확히는 남한에서 쓰는 조선말이었다.

서용석은 대답 없이 여자를 바라보았다.

서용석은 빠르게 여자를 분석했다. 위협이 될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백인, 키는 160 후반? 몸매를 드러내는 투피스 정장, 군살 없는 몸매, 격투술을 연마한 것 같지는 않은 다리. 하이힐.

“확인을 위해 여쭈어보겠습니다. 서용석 특무상사님 맞으신지요?”

여자가 물었다.

서용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저 여자에 대한 분석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얀 얼굴에 붉은 립스틱이 대조를 이루었다. 나이는 백인인 것을 감안하면 대략 20대 중후반, 많아도 서른 초반을 넘기지 않을 것 같았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여자가 물었다.

서용석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푸른 눈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런 서용석의 눈을 마주 보며 여자가 말했다.

서용석은 그녀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옷차림도 그렇고, 보이는 외형에서도 서용석을 뛰어넘는 전투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용석은 몸을 비켜 길을 터 주었다.

여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다음, 숙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구두가 바닥을 치는 또각또각 소리가 서용석의 숙소 안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여자가 완전히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서용석은 문을 닫았다. 단순히 문을 닫는 데에서 끝내지 않고 문을 잠가 버렸다.

나쁜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미녀에게서 욕정을 느꼈고, 나쁜 짓을 하겠다는 의도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상황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생각으로 문을 잠근 것이다.

숙소 안으로 돌아온 여자도 속옷만 입은 남자가 문을 잠그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서용석이 문을 잠글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차분한 눈으로 서용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용석은 앉으라는 말도, 무언가를 마시겠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여자의 눈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불쾌감을 드렸다면 사과드립니다.”

여자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러나 서용석은 그녀의 사과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의 주인께서 안부를 전하셨습니다.”

여자가 말했다.

문장에 이질적인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주인’. 상황에 맞지 않은 단어였다.

서용석은 어떠한 말도,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계속 여자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너는 누구지? 너의 주인이 누구지?

그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베르그만, 얀 베르그만 회장님께서 저의 주인 되십니다.”

여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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