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21화 (321/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4)

***

멧돼지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향해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쓰러트리지 못했다. 쓰러트리기는커녕 무언가에 상처를 입었다. 등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쉽지 않은 놈이다.

멧돼지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속여야겠다.

다시 빠른 속도로 달려든다. 마치 조금 전처럼 뒤가 없는 돌진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진짜 의도는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사정거리 안에만 들어온다면 엄니로 찢어발기도록 하자.

그렇게 결정했다.

멧돼지는 사람들을 상대한 적이 있었다. 다수의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덤벼들었지만, 그들은 멧돼지를 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고작 한 사람뿐이었다.

절대로 자신을 해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멧돼지는 다시 전신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

멧돼지가 다시 서용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용석은 침착한 시선으로 멧돼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본능과 상처가 생성한 분노 때문일까? 그래서 다시 저렇게 달려드는 것일까?

그런 상황이라면 서용석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하지만 저 노련한 녀석이 그렇게 단순한 공격을 계속 감행할 것인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평생을 목숨이 오가는 사선에서 살았던 그의 육감이 그렇게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함정,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사냥꾼들이 멧돼지에 대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육중한 체구를 바탕으로 하는 돌진이나, 대동맥을 단숨에 끊어 버릴 수 있는 엄니가 아니었다.

멧돼지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부분은 지능이었다.

멧돼지는 그 어느 야생동물보다 지능이 높았다. 상처를 입으면 얼음물이나 송진 가루를 이용해 지혈했고, 도망을 칠 때는 계곡이나 낙엽이 많이 쌓여 있는 장소를 활용해 흔적을 지웠다.

멧돼지는 사냥감이면서, 동시에 사냥꾼이기도 했다.

눈앞의 멧돼지는 300kg이 넘어가는 녀석이었다. 저 정도로 성장했다면, 그만큼 많은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트럭과 같은 기세로 달려오던 멧돼지의 속도가 몇 미터 앞에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서용석은 빠르게 멈추는 멧돼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예상대로군.

서용석은 당황하지 않았다.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서용석은 앞으로 몸을 날렸다. 자신의 속도를 높여서 둘 사이의 상대 속도를 유지했다.

단 세 번의 뜀박질로 멧돼지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다.

당황한 것은 멧돼지였다. 사람보다 지능이 낮은 멧돼지는 당황한 상황에서 본능에 따라 머리를 들이밀었다.

예상한 움직임이었다. 서용석은 머리를 피하고자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동안 열심히 단련한 하체가 의지에 따라 직각에 가까운 각도로 서용석의 몸을 횡 이동시켰다.

하지만 완전히 피해 내지는 못했다. 멧돼지의 엄니가 서용석의 왼쪽 허벅지를 스쳤다.

아주 살짝 스쳤지만, 바지는 물론, 살점이 한 뭉텅이나 뜯겨 나갔다.

살점이 뜯겨 나가고, 출혈이 발생했음에도, 서용석은 개의치 않았다. 마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손에 든 총검으로 멧돼지의 등을 강하게 찔렀다.

등가죽을 뚫고 들어간 칼날이 딱딱한 무언가에 걸리는 느낌이 칼자루를 타고 손에 전달되었다.

힘이 부족했다. 척추에 닿았지만 끊어 내지 못했다. 그렇게 단련했음에도, 아직 부족했다.

서용석은 칼날을 뽑아내는 대신에, 재빨리 왼손으로 칼 손잡이를 강하게 찍어 눌렀다. 그 힘으로 딱딱한 무언가에 막혀 있던 18cm의 칼날이 막고 있던 등뼈를 뚫고 멧돼지 안으로 쑥 들어갔다.

등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 멧돼지가 몸을 크게 요동쳤다. 그러나 등에 깊숙이 박힌 칼날은 빠지지 않았다.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미약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던 척수 신경을 끊어 버렸다.

멧돼지의 뒷다리가 허물어져 내렸다. 마치, 생명을 잃은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척추 신경이 끊어졌다는 증거였다.

서용석은 척추를 끊었다는 증거를 확인했음에도 칼을 뽑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칼을 잡고 있는 두 손에 힘을 주어, 안쪽을 휘저어 버렸다.

멧돼지의 앞발이 강하게 땅을 굴렀다. 도망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이미 기능을 상실한 뒷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앞다리만으로는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설사 벗어날 수 있다고 해도, 서용석은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서용석은 칼을 뽑는 것과 동시에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띄웠고, 멧돼지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다시 칼을 들어 올려 등을 두어 번 더 찔렀다.

서용석은 멧돼지의 등을 찌르면서 그 남자를 떠올렸다.

칼 한 자루만으로 자신과 부대원과 1호 손님 얀 베르그만을 난자하던 그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서용석은 눈밭에서 칼춤을 추는 그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손에 들고 있는 칼로 멧돼지의 첫 번째 급소, 눈과 귀 사이, 뇌로 이어지는 신경이 지나가는 부위를 강하게 찔렀다.

***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에 있는 석재(石材) 장치장에는 언제나처럼 카페리를 통해 중국에서 들어온 컨테이너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빼곡하게 쌓인 컨테이너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석재가 실려 있었고, 그 석재를 빼내고 트럭에 싣기 위해, 지게차들이 컨테이너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장치장 한구석에는 사무실로 사용하는 조립식 컨테이너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 2층 난간에서 한 남자가 손에 든 서류를 흔들면서 장치장 안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씨발! 형님! 그거 말고! 안쪽에 있는 거! 연운항에서 온 거 먼저 빼라니까아!”

남자는 장치장 한가운데 있는 컨테이너로 다가가는 지게차 기사를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지만, 지게차 기사는 남자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 나! 진짜. 저 인간이!”

소리를 지르던 남자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난간에서 몸을 떼어 냈다. 그러고는 다급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와 지게차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남자의 뜀박질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장치장 입구에 선 한규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하군.

한규호는 부자연스럽게 뛰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저기 있네. 박 부장! 어이! 박 부장!”

한규호 옆에 서 있던 수위가 뛰어가는 남자를 소리쳐 불렀다.

그러나 박 부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수위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지, 장치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박 부장! 손님 왔다고!”

수위가 더 크게 소리쳐 불렀지만, 그 소리는 장치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지게차와 화물 트럭의 엔진 소음에 묻혀 버렸다.

“제가 안으로 들어가 봐도 될까요?”

한규호가 수위에게 물었다.

“뭐, 그러슈. 위험하니 조심하고.”

수위가 출입을 허락하자, 한규호는 수위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장치장 안으로 발을 옮겼다.

트럭과 지게차를 피해 장치장 안으로 들어온 한규호는 걸음을 멈추고 지게차 기사를 향해 소리치고 있는 박 부장이라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박 부장이라는 남자는 목에 핏대를 잔뜩 세우고, 지게차 기사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 이걸 빼면 어떻게 해! 이거 빼서 어따 두려고? 여기 장치장 한가운데? 동선 다 개꼬이게 만들라고? 지게차 다 멈추게 하고, 장치장 개판 만들려고 그래요?”

“아니. 쪼오기 두면 되잖여.”

지게차 기사가 손가락으로 비어 있는 공간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양반, 또 낮술 먹었지? 소주 깠지?”

“아, 아니여. 술은 무, 무슨.”

실제로 지게차 기사는 점심에 반주를 했는지, 당황해하는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술도 안 먹었는데, 왜 술주정을 하고 있는데? 그럼 지금 맨 정신이라는 거야? 맨 정신에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거야? 일로 와 봐. 진짜 술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해 보게!”

박 부장이라는 남자가 지게차에 매달리겠다는 기세로 다가갔다.

“오케이! 오케이! 알겠습니다! 박 부장님! 그럼 저거 먼저 빼라 이거지?”

행여나 박 부장이라는 남자가 지게차에 매달려 자신의 얼굴에 코를 가져 댈 것을 걱정했는지, 지게차 기사는 재빨리 지게차를 빼서, 장치장 안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진짜 음주 측정기라도 사 놓든가 해야지.”

박 부장이라는 남자가 멀어져 가는 지게차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잘 지내고 있군.

한규호는 그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근 1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얼굴을 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1년에 두서너 번은 만나 밥을 먹고는 했었다. 그랬는데, 최근에는 어쩌다 보니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다.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한규호는 박 부장이라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박 부장님.”

한규호가 남자를 불렀다.

“아! 또 뭔데?”

박 부장이라는 남자가 그렇게 외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 뭐야? 너, 이 자식, 왜 여기 있어?”

박 부장이라는 남자, 국군정보사령부 직할 대북작전팀 진도에서 진도 2를 담당했던 남자, 박종연이 한규호를 보면서 말했다.

그 얼굴에 반가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

***

한규호는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았다.

과장을 좀 보태면 세숫대야만 한 용기에 담긴 해물 칼국수, 초대형 파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회 무침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인근 칼국숫집으로 한규호를 끌고 온 박종연은 한규호의 의사도 묻지 않고 멋대로 음식을 주문해 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테이블에 있는 음식들이었다.

한규호는 음식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재수 없게 밥상머리에서 왜 한숨질이야.”

박종연이 소주병을 따면서 말했다.

한규호가 그런 박종연을 보며 말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뭔지 압니까?”

“성욕을 참을 수 있다는 거?”

박종연이 말했다.

“참을 수 있습니까?”

한규호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럼. 참을 수 있지. 안 참았으면 진작 하렘을 만들었지.”

박종연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렘 같은 소리 하네, 콩밥 먹고 있겠지.”

한규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이 자식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절대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한 적이 없다? 사람 때린 적 없어요?”

“여자는 때린 적 없어.”

“남자는?”

“남자는 있었지.”

“그런데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그건 안 부끄럽지.”

박종연이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규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한규호를 보고 박종연이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을 물은 건데?”

“사람은 실수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 동물은 멍청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한규호가 말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저번에 밥 먹을 때도 그 고생을 해 놓고, 이렇게 또 잔뜩 시켰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간장게장 식당 안 갔잖아.”

“차라리 게 껍데기를 씹어 먹고 말지, 이걸 어떻게 다 먹어요?”

“왜 다 못 먹어. 다 부드러운 음식인데.”

“아니, 지금 식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시끄러워. 자식아. 못 먹으면 남기면 되지.”

박종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소주병을 들었다.

한규호는 그런 박종연을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한규호는 술을 받으며 완을 떠올렸다.

그녀도 그랬다.

홍콩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광둥 요리 전문점 금만정 한 테이블에서, 맞은편에 앉아 웃음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알겠어요. 기억해 둘게요. 하지만 장담은 못 해요. 당신이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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