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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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에 있는 박달산은 수려한 산세를 가지고 있음에도 등산객들이 그다지 많이 찾는 산은 아니었다.
박달산이 등산객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박달산 반경 20km 이내에 유명한 국립공원이 두 개나 있었다. 동쪽으로는 월악산 국립공원이, 남쪽에는 속리산 국립공원이 등산객 대부분을 흡수해 갔다.
거기에 만만치 않은 등반 난이도도 한몫하고 있었다. 서쪽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누릅재 코스의 경우, 출발 지점부터 능선까지 1.5km 동안 400m의 고도를 올라가는, 평균 경사도가 30%에 육박하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만 했다.
단순히 가파른 것뿐만도 아니었다. 숲을 가로지르는 등산로는 좁았고, 거칠었으며, 사시사철 수북한 낙엽이 쌓여 있었다. 미끄러웠고 위험했다. 어느 정도의 장비와 경험을 갖추지 못한 초보 등산객들에게는 위험할 수 있었다.
물론 초보 등산객들에게 외면받는 박달산이라고 해도, 정기적으로 찾는 등산객들도 있었다.
번잡스러운 유명 국립공원을 피해, 홀로 조용한 산행을 즐기려는 등산객이나, 또는 난이도 있는 산행을 원하는 등산 고수들에게 사랑받는 산이 바로 박달산이었다.
그 박달산 정상을 두 명의 중년 남자가 오르고 있었다.
“진짜. 하아, 이놈의 산은……. 진짜로. 하악, 하악, 하아.”
산을 오르는 두 사람 중 뒤처진 남자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정상을 향해 한 발씩 디디는 그의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아이고, 이 친구야. 고작 그거 올라왔다고 그렇게 헉헉대면 우짜냐.”
다른 남자, 등산 초보인 친구를 골탕 먹이겠다고, 험한 누릅재 등반 코스로 끌고 온 남자는 힘들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보였다.
숨을 헐떡이는 남자는 그런 친구의 놀림에 대꾸할 힘도 없는지, 계속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한 발씩 앞으로 걸어 나갈 뿐이었다.
“이제 다아 왔다. 쪼오기 가서 씨원하게 물 한 잔씩 마시면 인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약을 올리던 남자가 50여 미터 앞에 있는 비석, 박달산 정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헬기 불러라. 나는 못 내려가겠다.”
숨을 몰아쉬는 남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다 왔다는 말에 떨리는 다리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박달산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비석에 등을 대고 철퍼덕 주저앉아 버렸다.
“고생했네. 이거 받아라.”
친구가 이온 음료 한 통을 비석에 기대앉은 중년 남자에게 건넸다.
기대앉은 남자는 이온 음료를 건네받고는 단숨에 절반 가까이 마셔 버렸다. 체내에 들어온 수분이 온몸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음료를 건넨 친구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만 좀 퍼져 있고, 저거 좀 봐 봐라.”
이온 음료를 마시고 조금 기력을 회복한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친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동쪽에서부터 남쪽까지 산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굽이굽이 이어진 채로 펼쳐져 있었다.
“내가 장난 아니라고, 진짜 끝장난다고 했지?”
끌고 온 남자가 말했다. 끌려온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 말마따나 장관이었다. 봉우리와 봉우리로 연결된 능선이 박달산을 감싸 안고 있었다. 사람이 그리는 그림으로 그려 낼 수 없는 절경이었다.
“여기 처음 끌려왔을 때, 끌고 온 인간 죽여 버리고 싶더라. 경사는 겁나게 가파르지, 길은 더럽게 험하고 미끄럽지. 그런데 정상에 올라와서 이 광경을 딱 보니까, 고생했던 것이 싹 다 사라지더라. 뭐랄까. 저 능선이 마치, 수고했어. 그동안 열심히 살았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더란 말이지.”
박달산에 처음 오른 남자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박달산을 감싸 안은 능선이 마치 두 팔 벌린 아버지의 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고생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 광경을 보고, 집에 가서 한 두어 달 있는데 또 생각나더란 말이지. 교통도 불편하고, 뭐 변변한 식당도 없고, 등산로는 험하고, 올라올 때마다 내가 미쳤지 왜 여길 또 와서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정상에 올라서 이거 보고 내려가면 뭔가가 쑥 내려간다.”
이날 처음 박달산에 오른 친구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힘들게 올라온 것에 대한 보상,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고생했다. 동쪽으로 내려가면 거리는 좀 더 길어도, 길은 편하니까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좀만 다리쉼 했다가 가자고.”
이끌고 온 중년 남자가 배낭에서 보급식으로 양갱을 꺼내며 말했다.
“저기, 저쪽으로 내려가면 안 되냐?”
처음 박달산에 오른 친구가 남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딱 보기에도 남쪽 사면이 경사가 완만해서 올라오고 내려가기에 편할 것 같았다.
보급식을 꺼내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남쪽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쪽으로는 못 가.”
“왜?”
“막혔어.”
“막혔다고?”
“쩌어기. 저 산등성이에 있는 건물 보여?”
친구가 남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에 작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저거 중심으로 철조망이 엄청나게 넓게 처져 있어. 길을 딱 막고 있다니까.”
남자는 양갱 껍질을 까면서 투덜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저게 뭔데? 군부대야?”
“부대는 아니고, 사유지라고 하던데?”
“사유지인데 철조망을 깔아 놨다고?”
“철조망도 그냥 철조망이 아니고, 쩌어기부터, 저기까지 대부분을 다 깔아 놨다더만. 저번에 만난 약초꾼이 그러는데, 철조망으로 남쪽 사면이 대부분 다 막혀 있다고 하더라고. 뭐, 자기는 약초꾼이라고 하는데, 약초꾼인지, 야생 대마 찾아다니는 떨쟁이인지 모르지. 아무튼, 약초꾼들은 저쪽으로 아예 접근을 안 한디야. CCTV도 엄청 깔아 놨다고 하데.”
“무슨 비밀 시설이라도 지어 놓은 건가? 철조망에 무슨 CCTV까지 설치했대?”
“CCTV도 CCTV지만 약초꾼들이 저쪽에 아예 얼씬도 안 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대.”
“다른 이유? 뭔데?”
“밤만 되면 뭔가가 나온다고 하더라고.”
“뭔가?”
“그래. 밤만 되면 저기서 귀신이 나온대.”
***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면서 박달산 남쪽 사면에도 천천히 어둠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스며든 어둠은 빠르게 진군하는 군대처럼, 박달산을 빠르게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빛과의 전투에서 어둠이 완전한 승리를 이끌어 낸 후, 모든 인공적인 빛이 사라진 박달산 남쪽 사면에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 시간은 밤 10시가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무언가’가 나타나면서 어둠이 내려앉은 박달산에 새로운 소리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짐승의 발소리처럼, 자연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이 만든 인공적인 무언가, 흔히 신발창이라고 불리는 딱딱한 무언가가 바닥을 찼을 때 만들어지는 소리였다.
야심한 밤, 한 치 앞도 헤아릴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박달산을 빠른 속도로 뛰어오르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였다.
얼굴에 세월이 잔뜩 묻어 있는 장년 남자가 야심한 박달산을 빠른 속도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약초꾼들이 말하는 귀신의 정체였다.
박달산 남쪽 사면에 광범위하게 설치된 철조망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그저 군데군데 설치된 CCTV와 사유지를 침범하면 고발하겠다는 표지판만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지역 주민들조차 박달산 남쪽에 위치한 건물이 무엇인지, 누가 남쪽 사면에 광범위하게 철조망을 쳐 놓았는지, 알지 못했다.
군청에서 건축물대장을 열람하면 건물의 소유주를 알 수 있었겠지만, 당연하게도 지역 주민 중에서 건축물대장 등본을 열람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역 주민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그저, 어느 정체불명의 회사가 건물과 임야를 소유하고 있고, 일반인들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고 있으며, 그 건물 진입 도로에 정기적으로 차량이 오고 간다는 사실 정도뿐이었다.
박달산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건물은 네덜란드의 곡물회사인 에우로파 프룩스(EUROPA Frūx)가 소유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에우로파 프룩스의 산하 연구소 소유의 건물이었다.
에우로파 프룩스는 세계 곡물 시장을 지배하는 5대 곡물 메이저 중 하나였다. 미국의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 아르헨티나의 벙기, 미국의 카길,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 컴퍼니와 더불어 탑파이브 곡물메이저 ABCDE 중 E를 담당하는 에우로파 프룩스가 박달산 남쪽 사면에 임야를 사들이고 건물을 올린 것은 이곳에서 극동 지역에서 자생하는 종자를 연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에우로파 프룩스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진출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이었다.
소위 말하는 IMF 시절, 한국이 외환 위기를 겪고 있던 90년대 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에 토종 종묘회사들을 헐값에 인수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에 진출하였다.
에우로파 프룩스가 원한 것은 영세한 한국 종묘회사 같은 것은 아니었다. 한국 종묘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품종 특허를 확보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회사를 헐값에 인수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의 자생 종자에 대한 품종 특허를 확보할 수 있었고, 그렇게 확보한 품종 특허를 연구하기 위해, 특히 터미네이터 종자(유전자 조작으로 2세대 씨앗의 번식력이 제거된 종자)의 개발을 위해 박달산 남쪽 사면에 연구소를 설립한 것이다.
에우로파 프룩스 극동종자 연구소, 그것이 박달산 남쪽 사면을 광범위하게 차지하고 있는 건물의 정체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이 건물에서 더 이상의 연구는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언론이 유전자 조작에 관해 관심을 보였고, 대중 사이에서 유전자 조작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곡물 메이저들의 품종 독점과 터미네이터 종자 개발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증가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에우로파 프룩스도 여타 곡물 메이저와 마찬가지로 터미네이터 종자에 관한 연구를 중단했다. 연구를 중단한 에우로파 프룩스는 종자 연구를 위해 세계 곳곳에 만들어 놓은 비밀연구소를 폐쇄하고, 시설을 매각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극동종자 연구소도 기능을 멈추었다. 연구진과 장비를 철수시켰다. 하지만 시설은 매각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었다. 박달산 남쪽의 건물과 건물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 있는 임야를 에우로파 프룩스는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남겨 둔 건물에, CCTV를 포함한 보안 장치를 계속 가동했고, 상주 관리 인력을 배치해 놓고 있었다.
야심한 밤, 박달산을 뛰어 올라가는 남자가 바로 시설에 상주하는 관리 인력 중 한 사람이었다.
시설 보안 담당자, 그의 직책명이었다. 보안 담당자로서 야간에 철조망을 점검하고, 접근하는 외부인을 차단하기 위한 야간 순찰이라는 명분으로 밤마다 산을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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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보안 담당자인 장년 남자는 산길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완만한 남쪽 사면이라고 해도, 산은 산이었다. 그럼에도 장년 남자는 마치,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빠른 보폭과 속도로 산길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차라리 경사도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어둠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이었다. 경사져 있고, 어둡고, 험한 산길을, 남자는 손전등 하나 없이, 별빛만을 의지해 뛰고 있는 것이다.
온 사위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마치 육상 선수처럼 빠른 속도로 달리는 남자의 모습을 누군가가 보았다면, 귀신이라고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순찰 활동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남자는 지금 순찰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매일 밤 산을 뛰어오르며 체력을 키웠고, 야간 시력을 끌어 올렸다.
마치, 정해진 시간에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무슬림처럼, 이곳에 온 뒤, 단 하루도 빼먹지 않은, 그 만의 미사였다.
이미 일반인이라면 불가능할 정도의 속도로 산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장년 남자는 발끝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몸에 부하를 조금 더 주려는 의도였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부하를 주어서 신체 능력을 조금씩 늘리려는 의도였다.
조금씩 부하를 주는 방법을 통해서 지금에 도달했다.
남자는 예전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전투용 대검에 등허리를 찔렸다. 근육을 찢고 들어온 칼날이 혈관과 신경을 자르고, 장기를 망가트렸다.
의사는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이라고 말했다. 살아남은 것이 행운이라고 했다. 살아남았지만 신체 기능 일부를 영구히 상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껏해야 걷는 정도라고 했고, 걸을 수 있다고 해도, 일반인처럼 걷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지금 운동선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산길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까지 반년이 걸렸다. 다른 이들처럼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걷는 데 다시 반년이 걸렸고, 어린아이가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뛰는 데 다시 반년이 걸렸다.
조금씩, 아주 조금이라도 몸에 부하를 주었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회복하기 위해,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몸에 부하를 주었고, 그 부하에 신체를 적응시키면서, 지금의 몸을 만들어 갔다.
하지만 남자는 만족하지 않았다. 20대, 최전성기의 신체를 이미 넘어섰음에도, 그는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박달산의 귀신이라고 불리는 장년 남자, 한때 조선인민군 총 참모부 직할 535 정찰대를 이끌던 서용석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