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18화 (318/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1)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신도림 디큐브시티 41층에 있는 쉐라톤 호텔 로비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체크아웃이 마감되는 정오부터 체크인이 시작되는 오후 두 시까지가 호텔에 있어서 가장 조용한 시간이었다. 특히 로비가 그랬다. 리셉션 스태프를 비롯해 로비에서 기다리는 호텔 직원들은 오후 한 시쯤의 짧은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차임 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졸음을 참고 있던 벨보이는 차임 음을 듣고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남자를 보았다.

가벼운 차림이었다. 가방도 없었다. 체크인을 하려는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알아챘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벨보이가 작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약속을 잡았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남자가 말했다.

한규호였다.

오전 7시 55분에 홍콩공항을 출발하는 캐세이퍼시픽 CX434편을 타고, 12시 2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한규호는 공항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신도림에 있는 이 호텔을 찾아온 것이다.

‘그 남자’가 지정한 약속 장소가 바로 이 호텔이었다.

벨보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한규호에게 길을 터 주었다.

시야를 확보한 한규호는 고개를 돌려 로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의 모습을 확인했다.

캐주얼한 정장을 입은 남자, 얼마 전 방콕에서 만났던 길이라는 남자가 한규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분위기가 바뀌었군.

다가오는 남자를 확인한 한규호의 감상이었다. 방콕에서 봤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방콕에서, 타운외국어학원에서 봤을 때, 남자는 강사의 느낌이 강했다. 여대생에게 인기 있는 젊은 강사의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비즈니스맨처럼 보였다.

단순히 복장이 바뀌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바로 오셨군요.”

눈앞에까지 다가온 남자가 한규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한규호도 손을 뻗었다.

그 남자의 손을 잡고, 눈을 보면서, 조금 전 완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

약 30여 분 전, 인천공항에 도착한 한규호가 입국 심사를 마치고, 막 공항 1층 입국장에 들어섰을 때, 주머니에 들어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화면에는 완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마치 보고 있기라도 한 듯,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한규호는 잠시 그 번호를 바라보았다.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그 번호를 바라보다가, 통화 버튼을 누른 다음, 얼굴로 전화기를 가져갔다.

-잘 도착했어요?

전화기를 타고 완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몇 시간 전까지, 직접 들었던 목소리였다.

“그래.”

한규호가 말했다. 짧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짧고, 차가운 대답을 들었음에도, 완은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착했을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한규호는 후회했다.

전화를 받지 말 것을.

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런 후회가 들었다.

-후회하고 있죠?

다시 전화기에서 완의 목소리가 들렸고, 순간적으로 한규호의 발이 멈추었다.

-에이, 전화 안 받는 건데. 그렇게 후회하고 있죠?

한규호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완이 말했다.

-괜찮아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아니, 미안해하지 말아 줘요.

다시 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한규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홍콩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오는 세 시간 동안 그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던 감정, 마음을 짓누르는 감정의 실체를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미안함.

한규호는 아주 오랫동안 느끼지 않았던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약속했던 일주일, 지켜 줘서 고마워요.

다시 완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고맙다는 말을 못 했어요. 그 말을 하고 싶어 전화했어요.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가 어떤 표정을 하고서, 말을 하는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여보세요? 듣고 있어요? 지금?

“……그래.”

한규호가 짧게 말했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안 끊었네요.

완이 말했다.

“그래. 아직.”

예전의 한규호였다면 끊어 버렸을 것이다. 아무런 부담 없이 전화를 끊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전화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다행이에요. 끊었을까 봐 걱정했어요. 아직 해 줄 말이 남아 있어요.

완이 말했다.

“……해 줄 말?”

-그 남자는 바티칸 쪽 사람이에요.

“그 남자?”

-그 남자의 연락을 받은 것 맞죠? 제가 태국에서 소개해 준 정보상?

“……그래.”

-그 남자에 관해서 물어보지 못했잖아요. 투정을 들어 준다고.

완이 말했다.

한규호는 눈을 감았다. 수많은 사람으로 혼잡한 입국장 한가운데 서서, 전화기를 얼굴에 가져다 댄 채로 눈을 감아 버렸다.

홍콩에 간 이유 중 하나였다. 그 남자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서.

자신을 길이라고 불러 달라던 남자, 짧은 시간 안에 종합병원의 응급헬기를 움직이는 능력을 갖춘 남자, 태국 정부 깊숙한 곳에 선이 닿아 있는 정보상. 그 남자를 소개해 준 완에게 그 남자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서.

하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그녀가 부탁했던 일주일, 그녀가 선물해 준 일주일.

끝끝내 물어보지 못한 채로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물어보지 못했는데, 알려 주기 위해서 완이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방콕에 있는 타운외국어학원은 바티칸이 동남아시아 정보 수집을 위해 구축한 거점이에요. 전대 식양이 거점을 구축할 때, 도와주었어요.

“……왜 식양이 바티칸을 도운 거지?”

한규호가 물었다.

중국과 바티칸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였다. 식양이 바티칸을 도울 이유가 없었다.

중국 정부는 1957년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라는 단체를 설립한다. 종교계를 장악하기 위한 시도였다. 중국 정부의 어용 종교 집단인 중국천주교애국회는 바티칸의 동의 없이 자체적으로 가톨릭 사제와 주교를 임명하고 세례를 주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바티칸은 중국 정부가 임명한 사제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에 반정부 혐의로 감옥에 구금되어 있는 궁핀메이(龔品梅) 이냐시오 주교를 인펙토레 추기경(In Pectore: ‘가슴에 품고’라는 의미의 말로, 교황이 서임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대외에 이름을 밝히지 않고 교황만이 알고 있는 추기경)으로 서임하고, 중국 내의 지하 교회(종교 억압이 있는 국가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비밀 교회)를 지원하면서 양국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어 갔다.

바티칸이 대만과 수교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이 심혈을 기울여 벼려 낸 칼인 식양이 바티칸을 도울 이유가 없었다.

-인도네시아 화교 학살 사건 당시, 전대 식양이 바티칸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중국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기댈 곳이 없었죠. 다른 나라들은 중국의 눈치를 보았으니까요.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은 바티칸뿐이었어요. 싱가포르 화교들이 인도네시아에 전세기를 띄울 때, 바티칸이 도와주었어요. 그때부터 중국 정부는 알지 못하는 식양과 바티칸 사이에 밀월 관계가 형성되었고, ACRP를 가운데 두고, 계속 이어졌고요. 내가 식양 자리를 물려받은 지금까지도요.

“ACRP가 뭐지?”

-종교와 평화에 관한 아시아 종교자 협의회(Asian Conference on Religion and peace)를 말해요. 싱가포르에 본부가 있어요. 물론 ACRP 사무국 직원들은 자신들이 가운데 껴 있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어요.

“그 남자의 이름은?”

한규호가 물었다.

-알지 못해요. 여러모로 알아봤지만, 알아낸 것이 거의 없었어요. 바티칸 도서관이나 바티칸 은행 쪽 사람이라고 의심만 하고 있어요. 그 남자도 태국에서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어요. 마치 진짜 정보상이라도 된 것처럼 고위층을 상대로 가치 없는 정보를 사고파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어요. 딱 한 번 같이 일해 봤어요. 정확히는 제가 도움을 주었어요.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국제구호단체의 위장 신분을 만들어 주었어요. 그 일을 제외하고는, 접점이 없어요.

“미얀마?”

-미얀마 북부에, 정확히는 북부를 지배하는 군벌들에 관해 관심을 보였어요. 남들 모르게 미얀마를 다녀오고 싶어 했어요. ACRP를 통해서 요청을 해 왔고요.

“왜 미얀마를 간 거지?”

-몰라요. 그저 무언가를 찾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언가를 찾는다는 완의 말을 듣고서, 한규호는 한 남자를 떠올렸다.

미얀마 서부에 있는 작은 도시, 마투피의 교회 종탑에 있던 남자. 조준경 없는 Kar98k를 가지고 1km 거리에 있던 한규호를 저격한 남자.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저격을 했던 외눈의 남자가 떠올랐다.

그 남자가 떠오를 이유가 없었다. 억지로 연결점을 찾아낸다면 미얀마는 단어뿐이었다.

하지만 바티칸에서 온 그 남자가 미얀마 군벌들에 관한 관심을 보였고, 무언가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규호는 그 남자를 떠올렸다.

***

안내를 받아, 호텔 객실로 올라온 한규호는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 바티칸에서 왔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국토 면적이 0.44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한 바티칸은 절대로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작은 나라이기는커녕, 한규호가 속한 정보 세계에서 바티칸은 손꼽히는 강국 중 하나였다.

바티칸 도서관 비밀문서고, 바티칸 우취 및 주화국, 바티칸 은행(Banca Vaticana)이라고 불리는 교황청 종교사업협회(Istituto per le Opere di Religione:IOR)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바티칸 시국의 주요 정보기관이었고,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가톨릭 수도회, 평신도회, NGO, 그리고 바티칸이 소유한 회사에서도 정보를 수집해 바티칸으로 보냈다.

실질적으로 전 세계에 바티칸의 손길이 뻗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휴민트(인적정보) 영역으로만 본다면 CIA보다 넓었다.

완의 말대로 눈앞의 남자가 바티칸 소속이라면, 짧은 시간 내에 서용석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 설명되었다.

한규호 맞은편에 앉은 남자, 도서관 비밀문서고 소속의 베드로 신부도 자신을 바라보는 한규호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강한 눈빛, 하지만 감정을 읽을 수는 없는 그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흥미로운 사람이다.

베드로 신부는 자신을 바라보는 한규호의 눈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 한국 남자에게 자꾸 흥미가 생겼다.

베드로 신부는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서류 봉투가 테이블에 올려졌지만, 한규호의 시선은 여전히 베드로 신부를 향해 있었다.

너는 누구지?

그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확인해 보시죠.”

베드로 신부가 한규호에게 말했다.

한규호는 조금 더 베드로 신부를 주시하다가 손을 뻗어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봉투 안에는 한 장의 사진과 한 장의 서류가 들어 있었다.

한규호는 먼저 사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사진 속에 찍힌 인물을 바라보았다.

베드로 신부는 사진을 확인하는 한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남자가 맞군.

사진 속 인물을 확인하는 한규호를 보면서, 베드로 신부는 자신이 목표를 제대로 찾았다고 확신했다.

한규호가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은 인천공항 입국 심사장 보안카메라로 촬영한 동영상을 캡쳐한 사진이었다.

그 사진에는 한 남자의 옆얼굴이 찍혀 있었다.

“맞습니까?”

베드로 신부가 물었다.

한규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사진 속 남자의 옆얼굴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의 남자, 입국 심사를 받는 남자의 옆얼굴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왼쪽 귀가 없었다.

그 왼쪽 귀를 날려 버린 장본인 한규호는 사진 속 남자가 서용석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서용석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서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왼쪽 귀가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사진 속 남자의 옆얼굴에서 느껴지는 기운, 사진 너머에서도 느낄 정도로 강한 기운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사선을 넘나드는 사람만이, 먹이를 사냥하는 맹수만이 가질 수 있는 기운이었다.

“맞군요.”

한규호가 말했다.

베드로 신부는 한규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입니까?”

한규호가 물었다.

“8년 전입니다. 태국에 입국한 후에, 밀입국 경로를 통해 캄보디아 국경을 넘은 다음, 프놈펜에서 바로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이름으로?”

한규호가 물었다.

서용석은 파울로 까밀로 스즈키라는 신분을 사용했다. CIA가 그 신분을 찾아냈고 베네수엘라에서 육로를 통해 콜롬비아로 넘어간 후에 칠레 산티아고와 시드니, 싱가포르를 거쳐 방콕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아닙니다.”

베드로 신부는 그렇게 말하며, 봉투 안에 들어 있던 서류를 집어 한규호에게 건넸다.

서류는 여권 사본이었고, 사진에는 서용석의 얼굴이 있었다.

“한국 여권을 사용했습니다. ‘송한승’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날 이후, 출국 기록은 없습니다.”

베드로 신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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