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17화 (317/386)

One Sweet Day (13)

오후 7시부터 40분간 진행된 디즈니랜드 야간 퍼레이드를 감상한 두 사람, 한규호와 완은 다시 호텔로 돌아가고 있었다.

호텔 식당에서 곽용신 가족과 저녁 식사가 약속되어 있었다.

“요원이었어요?”

완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래.”

한규호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몰랐어요. 그래서 그랬구나.”

완이 뭔가 알겠다는 듯 말했다.

“뭐가?”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서로를 경계한 거.”

완이 말했다.

“알았어?”

“알았죠.”

“그걸 알면서도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 거야?”

“대학 선배라고 하길래, 나는 둘 사이에 껄끄러운 뭔가가 있었나 했죠. 한 여자를 두고 싸웠다든가. 그리고 저녁 먹자고 한 건 내가 아닌데요?”

“그건 그렇지.”

“냉정한 표정으로 거절할 것을 그랬나 봐요.”

완이 말했다.

한규호는 냉정한 얼굴로 저녁 초대를 거절하는 완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뭐,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야.”

한규호가 한발 물러섰다.

“나쁜 사람인가요?”

완이 물었다.

한규호는 다시 완을 바라보았다.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면 곽용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뭐. 좋다 나쁘다 할 게 없지. 공무원일 뿐인데. 그리고 신세도 졌고.”

“신세를 졌다고요? 규호 당신이?”

완이 물었다.

“나라고 해야 하려나?”

한규호가 완을 보며 말했다.

“제가 신세를 졌다고요?”

완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한규호는 빙긋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랜만에 놀라고 당황한 표정의 완이 서 있었다.

“말해 줘요. 제가 그 사람을 만났었나요?”

완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좋은데.

심각한 표정의 완의 얼굴을 보면서 한규호는 생각했다.

오랜만에 그가 우위에 섰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

“제가 신세를 진 것은 아니네요.”

탄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다 들은 완이 말했다.

“아니라고?”

“그 요원이 안 왔어도, 저는 미군의 헬기를 타고 갔을 테니 국정원 요원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은 것 아닌가요?”

“……그런가?”

“맞죠. 구출이나 치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되었는데요? 반면에, 규호, 당신은 그와 함께 방글라데시를 빠져나온 거죠? 그러면 신세를 진 것은 당신이 맞는 것 같은데요?”

완이 말했다.

짧은 영광의 순간이 끝나 가고 있었다. 다시 주도권이 완에게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되나?”

“뭐, 제가 신세를 졌다고 하죠. 어찌 되었건 당신을 구하러 온 거니까. 저녁을 우리가 대접했어야 했네요.”

완이 말했다.

한규호는 확신했다. 그동안 아주 미약한 희망의 끈을 놓고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놓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그녀를 이길 수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한규호가 중얼거렸다.

“뭐가요?”

“아니야.”

한규호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한국어는 언제 배웠어?”

한규호가 주제를 전환하기 위해 물었다.

“발음 어때요? 많이 이상해요?”

완이 한국어로 물었다.

“뭐, 잘하는군.”

한규호가 말했다.

“미국에서 시작했어요. 연금 상태였으니까 할 일도 없었고, 배워 두면 여러모로 쓸모 있겠다고 생각해서요.”

“그랬군. 그런 것치고는…… 잘하는데?”

“아주 훌륭한 선생님이 계셨죠.”

“선생님?”

“넷플릭스요.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재미있던데요? 한국 드라마?”

한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영어를 배울 때, 미국 드라마를 보고, 대사를 따라 읽으며 표현과 억양을 배웠다.

“좋은 방법이지.”

“당신도 그렇게 영어를 배웠나요?”

“뭐, 방법 중 하나였지.”

“뭘 봤는데요?”

“뭐, 그냥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봤지.”

“혹시 크리미널 마인드가 포함되어 있나요?”

한규호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완을 바라보았다.

이 여자가 어떻게 아는 거지?

“하치 느낌이 있어요.”

“하치?”

“항상 무서운 표정 하는 팀장.”

“…….”

“보통 자기와 비슷한 캐릭터를 따라 하게 되죠.”

“비슷하다고?”

“미간.”

“미간?”

“미간에 주름 잡고서 말할 때. 지금처럼.”

한규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자신의 미간으로 가져갔다. 그의 손가락에 미간 주름이 느껴졌다.

완은 그 모습을 보고 귀엽다는 듯 웃었다.

***

호텔에 들어선 두 사람은 미키마우스 모양의 와플을 파는 것으로 유명한 디즈니랜드 호텔 내 식당 ‘월트의 카페(WALT'S CAFE)’로 향했다. 곽용신 가족과 만나기로 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두 사람이 식당에 들어섰을 때, 곽용신 가족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머, 죄송해요. 저희가 늦었네요.”

완이 두 사람을 맞이하는 곽용신의 아내에게 웃으며 사과했다.

“아니에요. 우리도 방금 왔어요. 이리로 앉으세요.”

곽용신의 아내가 반가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곽용신의 두 딸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어서 와.”

곽용신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규호에게 말했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한규호와 완, 곽용신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딸 해서 여섯 명이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공교롭게도 한규호의 자리는 곽용신의 옆이었다.

갑자기 곽용신이 한규호에게 얼굴을 가져와 작게 속삭였다.

“거절했어야지.”

한규호는 순간적으로 짜증이 솟았다.

지금 누구 때문에 여기에 끌려 왔는데. 그 바보 같은 ‘후배’만 아니었어도, 같이 저녁을 먹을 일은 없었을 텐데.

“누구 때문인데.”

한규호가 귓속말로 말했다.

곽용신의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남자 둘이서 뭘 그렇게 소곤거리고 있어요?”

“아, 아냐. 그냥.”

곽용신이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사이가 좋네요.”

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한규호는 어쩐지 그 미소가 밉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고 음식을 먹는 동안 대화를 주도한 것은 테이블의 여성들이었다.

완과 곽용신의 아내, 두 사람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언니 동생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고, 거기에 곽용신의 두 딸이 끼어들면서, 한규호와 곽용신은 자연스럽게 침묵하고 음식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학교 다닐 때 어땠어요? 우리 용신 씨는?”

곽용신의 아내가 한규호에게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선배는…….”

그렇게 입을 뗀, 한규호는 곽용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다지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과묵한 선배였죠.”

한규호가 말했다.

“저이 고향 친구들도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쓸데없는 말은 안 하는 사람이었다고.”

곽용신의 아내가 말했다.

곽용신의 얼굴에 안도감이 퍼졌다.

“과묵한 것치고는 이상하게 후배들에게는 인기가 좋았습니다. 특히 여자 후배들에게요.”

한규호가 말했다.

곽용신의 얼굴에 퍼져 나가던 안도감이 썰물처럼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다시 긴장감이 떠올랐다.

“어머, 그랬어요? 몰랐네요.”

“유명했죠. 아주. 소문이 장난 아니었어요.”

곽용신이 얼굴 근육을 움직였다.

‘제발 그만해.’ 얼굴 근육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요? 소문이라. 어떤 소문인지 궁금한데요?”

곽용신의 아내가 곽용신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뭐, 그저 소문이었을 뿐이니까요. 생각해 보니 ‘학생회관 비상계단 사건’은 증인이 있기는 했군요.”

그렇게 말한 한규호는 할 말은 많지만 더 이상은 안 하겠다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파스타로 포크를 가져갔다.

“학생회관 비상계단이라. 궁금하네요. ‘사건’이라고 이름 붙을 정도면.”

곽용신의 아내가 곽용신을 보면서 말했다.

한규호가 마지막 치명타를 날렸다.

“뭐, 그때는 다들 혈기가 왕성했을 때니까요.”

곽용신은 눈을 감아 버렸다.

한규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입으로 포크를 가져갔다.

“우리 규호 씨는 어땠어요? 학교 다닐 때?”

완이 곽용신에게 물었다.

“규호는 아주 유명한 바람둥이였어요.”

기회를 잡았다 싶었는지, 곽용신이 공격을 개시했다.

“아주 적극적이었죠. 국적을 가리지 않았어요.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들과 친하게 지냈죠, 규호야, 왜 기억나냐? 그 미국에서 온 그 친구.”

곽용신이 한규호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한규호는 전혀 당황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좋은 시절이었지. 선배도, 나도.”

한규호 입가에 옅은 미소를 보면서 곽용신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인기 좋았다고 하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네요.”

완이 한규호를 보며 말했다.

“내가 그랬잖아. 나 장난 아니었다니까. 물론 선배에 비하면야, 뭐.”

한규호가 말했다.

회심의 스트레이트를 날렸지만, 한규호는 그 스트레이트에 아무런 대미지도 입지 않았다. 대미지를 입기는커녕 카운터까지 날려 왔다.

“재미있겠는데요. 그 장난 아닌 시절 이야기.”

곽용신의 아내가 곽용신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 목소리에 날이 선 느낌이 들었다.

곽용신은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

식사가 끝났지만, 만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식사를 대접받았으니, 차를 대접하겠다고 완이 말했고, 곽용신의 아내가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곽용신 부부와 두 딸, 한규호와 완은 ‘씨 브리즈 바(Sea Breeze Bar)’로 자리를 옮겼다.

곽용신과 곽용신의 아내, 그리고 한규호는 맥주를, 완은 커피를, 그리고 곽용신의 두 딸은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어머, 이 곡 오랜만이다.”

서로의 음료를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곽용신의 아내가 바 안에 들려오는 음악을 듣고는 말했다.

“……그러네. 진짜 오랜만이네.”

곽용신이 말했다.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투맨이 같이 부른 ‘One sweet day’의 전주가 바 안에 흐르고 있었다.

“원 스윗 데이네요.”

완이 말했다.

곽용신의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이가 이 곡을 진짜 좋아해요. 아무 음식으로나 배 채우는 거 말고, 진짜 좋은 음식 먹고 싶을 때처럼, 진짜 좋은 노래 듣고 싶으면 이 노래 듣는다고.”

곽용신의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곽용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자기 학교 다닐 때 많이 들었겠네. 무슨 추억이 있는 곡 아니야?”

갑작스러운 공격에 맥주를 입으로 가져가던 곽용신의 몸이 멈추었다.

“맞는 것 같은데요?”

완이 그 모습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들켜 버렸네.”

한규호가 곽용신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물론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귓속말이었다.

곽용신은 눈을 질끈 감았다.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 않으려면 이 자리가 끝나야 했다. 하지만 이 자리가 끝나는 것이 무서웠다.

“선배가 감성적인 부분이 있죠. 추억을 소중히 하고.”

한규호가 다시 한번 곽용신을 찔렀다.

“그래서 그렇구나. 어쩐지.”

곽용신의 아내가 말했다.

“……어쩐지?”

곽용신이 말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가사를 생각하면 딱 맞네. 죽어서라도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잖아.”

곽용신의 아내가 말했다.

그 말에 사람들은 바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가사에 집중했다.

And I know you're shining down on me from Heaven.

Like so many friends we've lost along the way.

And I know eventually we'll be together.

One sweet day.

And I'll wait patiently to see you in heaven.

“……그러네요.”

가사를 들은 완이 나직하게 말했다.

***

밤 9시, 한국 시각으로 10시가 가까워지자, 곽용신의 두 딸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곽용신의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완은 그런 그녀를 돕겠다고 곽용신의 막내딸을 안아 들고서 객실로 올라간 후, 바에는 곽용신과 한규호 두 사람만이 어색하게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맥주만을 마셨다. 그렇게 지속 된 침묵을 깬 것은 곽용신이었다.

“학생회관 비상계단?”

곽용신이 한규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거짓말을 할 때는 구체적 사례를 들라고 배웠지. 절대 거짓말이라고 의심받지 않을 거야.”

한규호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 고맙군.”

“천만에.”

한규호가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뭐, 아무튼,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못 했군.”

곽용신이 말했다.

“뭐가.”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 나도, 김승섭도, 홍성민도.”

곽용신이 그렇게 말하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일이었을 뿐이니까.”

한규호가 별것 아니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잊지 않도록 하지. 목숨을 빚진 것은 사실이니까.”

“뭐, 예전에 신세진 것을 갚았다고 하지.”

“신세?”

“방글라데시.”

한규호가 말했다.

곽용신은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가지 않았다면 한규호가 위험했을까?

아닐 것이다.

이 괴물 같은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찢어진 복막을 꿰매고, 여권을 구해 방글라데시를 빠져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파타야 외곽에 있는 수리조선소에 이 남자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가족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또한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곽용신에게 한규호가 말했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할까? 휴가 중이니까.”

곽용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애가 아이답지 않게 차분하던데.”

한규호가 주제를 바꿨다.

“애 엄마를 닮아서.”

곽용신이 말했다.

“일곱 살이라고 했던가?”

곽용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규호는 독립요원이었다. 독립요원은 용병과 비슷했다. 지금은 같은 편에 서 있다고 해도, 언제 반대편으로 돌아설지 몰랐다.

그런 독립요원에게 가족에 대해, 개인 신상에 대해 말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런 곽용신의 마음을 알았는지, 한규호는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일곱 살. 작은애가 네 살. 아니, 다섯인가?”

곽용신이 말했다.

“나쁜 아빠로군. 아이 나이도 모르고.”

“그러게…… 나쁜 아빠네. 아이 나이도 모르고, 크는 것도 못 보고.”

곽용신이 말했다.

한규호는 다시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그나저나 약혼자라고?”

“……그래.”

한규호가 말했다.

“그럼 결혼을 하겠다는 이야기네.”

“……뭐.”

한규호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때, 아이들을 재운 곽용신의 아내가 다시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리…… 씨는?”

곽용신이 물었다.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고.”

곽용신의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규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규호 씨.”

“네.”

“놓치지 마요.”

곽용신의 아내가 말했다.

“……네?”

“처음 만난 내가 이런 말 하는 거, 조금 이상하지만, 같은 여자가 봤을 때, 마리 씨. 진짜진짜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절대로 놓치지 마요. 절대로.”

곽용신의 아내가 한규호에게 힘주어 말했다.

“……감사합니다.”

한규호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곽용신의 아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규호는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문가를 바라보았다.

그때 한규호의 전화기가 짧게 진동했다.

완이 건네준 전화기가 아니라, 그가 평소에 사용하는 전화기였다.

한규호는 전화기를 확인했다.

메일이 들어왔다는 표시창이 떠 있었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입구 쪽으로 걸어가며 이메일 애플리케이션을 실행시켰다.

2단계 인증으로 보안에 특화되어 있는 프로톤메일(ProtonMail)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이 메일 주소를 아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태국에서 만난 정보상 길, 그와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만든 이메일 계정이었다.

두 단계의 인증을 하고서야 열린 이메일에는 +8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한국의 국가번호였다.

그 메일 계정으로 한국의 이동통신 번호가 찍힌 메일이 온 것이다.

문 앞에 선 한규호는 메일을 잠시 바라보다 전화번호를 눌렀다.

짧은 통화 연결음 뒤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흔적을 찾았습니다.

전화 너머의 상대방이 말했다. 길의 목소리였다.

“그곳?”

한규호가 물었다.

-이곳입니다.

길이 말했다.

한규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서용석이 한국으로 향했다는 이야기에서 두 개의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귀국했습니까?

길이 물었다.

“……아직. 안 들어갔습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언제 들어오십니까?

길이 물었다.

한규호의 대답은 하나였다.

최대한 빨리.

그렇게 말하려고 입술을 움직이던 한규호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완이 서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항공편을 마련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한규호는 시선을 완에게 고정한 채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길의 목소리를 들었다.

“괜찮습니다.”

완을 바라보며 한규호가 말했다.

“내일 저녁에 들어갑니다.”

한규호가 완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One Sweet Day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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