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eet Day (10)
***
“여긴 다 좋은데, 기름이 너무 튀어.”
홍성민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 그 양반 겁나 투덜거리네. 참아요. 냉동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맞은편에 앉은 김승섭이 고기를 뒤집으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종로3가역 인근에 있는 식당, ‘한도삼겹살’ 2층에서 불판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그냥 평래옥 가서 닭무침에 소주나 먹을 것을 그랬나…….”
“이제 와서 뭔 헛소리입니까? 한도 가서 냉삼에 소주 빨고 싶다고 말한 게 성민이 형 당신이잖아요. 벌써 치매 왔습니까?”
“……당신?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나저나 냉삼이 뭔데?”
“냉동 삼겹살. 줄여서 냉삼. 이 양반. 누가 늙은이 아니랄까봐. 시대에 뒤떨어진 것 좀 보소.”
“……너 요즘 점점 선을 자주 넘는다? 아니, 아예 선을 넘어서 산다, 아주? 아예 친구 먹자고 하지? 말 놓지 그래?”
“그래. 좋은 생각이다. 성민아, 안 그래도 같이 나이 먹어 가는 처지에 나도 불편하다 싶었다. 친구 먹은 기념으로 니가 좀 구워라.”
김승섭이 그렇게 말하며 조리용 집게를 홍성민에게 건넸다.
“아 나, 이 자식이 진짜로. 아주 제대로 미쳤구먼.”
홍성민은 그렇게 말했지만, 김승섭에게서 집게를 건네받아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용신이 형은 어쩐대? 온대?”
“안 온답니다. 홍콩 간답니다.”
김승섭이 젓가락으로 불판에 김치를 올리며 말했다.
“그 양반, 힘 좋네. 빼짝 마른 양반이.”
“원래 마른 장작이 잘 탄다잖아요. 형수랑 금실도 좋고. 아들 한 명 더 보고 싶다고 하던데. 근데 그 홍콩 아니고 진짜 홍콩 간답니다. 슬슬 도착 했을라나?”
김승섭이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출장?”
홍성민의 표정과 눈빛이 바뀌었다.
태국에서 돌아온 지 아직 보름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국정원이라고 해도, 그 고생을 하고 돌아온 사람을 바로 출장 보낼 리가 없다.
출장은커녕, 태국에서 돌아온 뒤, 세 사람은 소속도 없이 대기하면서 월급을 축내고 있었다.
“가족 여행 간다던데? 디즈니랜드 간다고.”
“그래? 가족 여행이었군.”
홍성민이 그제야 눈빛을 풀었다. 그러나 심각한 표정은 여전히 얼굴에 남아 있었다.
“뭡니까? 그 표정이?”
“아니, 뭔가 부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부러운 건 알겠는데, 불쌍한 건 뭡니까?”
“휴가를 받았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 하는구나. 뭐 그런 거?”
“그러네. 불쌍하네. 우리 용신이 형. 우리처럼 우울하게 남자끼리 기름 튀는 냉동 삼겹살 구워 먹어야 진짜 쉬는 건데. 그죠?”
김승섭이 정곡을 강하게 찔렀다.
“시끄러워.”
홍성민이 인상 쓰며 말했다.
“아, 좋다. 아, 행복하다. 성민이 형이랑 같이 냉동 삼겹살도 먹고. 우울하게 가족들이랑 디즈니랜드 안 가도 되고. 좋네. 살맛 나네.”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이 자식아. 고기 다 익었네. 고기나 처드세요.”
홍성민이 테이블에 집게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
삼겹살 4인분에 소주 다섯 병이 비워지고 나서야 두 사람의 ‘행복’한 식사가 끝이 났다.
“역시. 삼겹살은 냉동이지.”
홍성민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비워진 불판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디즈니랜드에는 냉동 삼겹살 같은 거 없을 거야.”
“시끄러워.”
홍성민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할까요?”
김승섭이 말했다.
“…….”
홍성민은 대답 대신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차라리 사표를 쓰라고 하든가. 그것도 아니고, 어디 발령 내지도 않고. 마냥 대기하라고만 하고 있으니 죽겠습니다. 국민의 소중한 세금만 축내고 있자니 죽겠네. 아주.”
“국민의 소중한 세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홍성민이 투덜거렸다.
“알아서 나가란 소릴까요?”
김승섭이 물었다.
“……다 먹었으면 나가자. 진상 부리지 말고.”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꺼내는 김승섭의 복부에 훅을 먹이고 계산을 마친 홍성민은 입구에 비치된 커피 자판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버튼을 눌렀다.
“너도 마실래?”
홍성민이 물었다.
김승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손에 믹스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든 두 사람은 식당 앞에 나와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담배 한 대씩을 입에 물었다.
홍성민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였다. 커피의 달달함과 담배의 씁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때 말이야.”
홍성민이 입을 열었다.
김승섭이 홍성민을 바라보았다.
“자동차 키 가지러 사무실로 조빠지게 뛰어갔을 때.”
김승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에 종이컵이 그대로 놓여 있더라.”
홍성민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가 후룩 소리를 내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렇더군요.”
김승섭이 말했다.
“너도 봤냐?”
“봤죠.”
“그거 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무슨 생각?”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셋이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마시는 마지막 커피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
“……개좆같은 생각했네.”
김승섭도 커피를 홀짝이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홍성민이 씩 웃었다.
“그치? 그래서 ‘나도 개좆같은 소리 하지 마. 이 씨발 놈아.’ 그렇게 말했다니까.”
“퉤퉤퉤 했어요?”
“뭔 퉤퉤퉤?”
“원래 재수 없는 소리 하면 퉤퉤퉤 세 번 해야 하는 거 몰라요?”
“그건 어느 동네 룰이야?”
“전국 공통이에요. 이 양반 참 아는 거 없네.”
“그냐?”
“얼른 해요. 지금.”
김승섭의 말에 홍성민은 씩 웃고는 퉤퉤퉤 하고 소리 내어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김승섭도 씩 웃어 보였다.
“우리. 작전 실패했잖아.”
“그렇죠. 모용진이 잡아 왔으니 작전 성공입니다! 하기에는 너무 부끄럽지.”
홍성민과 김승섭이 방콕 병원 파타야 분원 응급실에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 버린 뒤였다.
전기충격을 당하고,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 두 사람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병원 침상이 아니라, 토막 난 채로 파타야 앞바다에 버려졌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참…… 뭐랄까. 한번 죽다 살아나 보니, 이상하다. 기분이.”
“……무섭습니까?”
김승섭이 물었다.
홍성민이 김승섭을 바라보았다.
“무섭냐고?”
“네.”
김승섭이 흔들림 없는 눈으로 홍성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홍성민이 말했다.
“무섭다. 다시 그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까 봐. 또, 동료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까 봐……. 무섭다.”
홍성민도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김승섭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김승섭이었다.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신 김승섭은 허공을 보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이해……하냐?”
김승섭의 말에 홍성민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는 이해하지.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나는 이해하지.”
“그러냐.”
그렇게 말하고 홍성민도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너는 괜찮냐?”
“뭐, 나도 똑같지. 자다 깨 보니 다 끝나 있어서 실감은 안 나지만, 죽다 살아났는데. 뭐, 아무튼. 그래서 그만둘 겁니까?”
김승섭이 물었다.
홍성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은 못 그만두지. 때리고는 잠을 자도, 맞고는 못 자지. 그 새끼 얼굴에 주먹이라도 꽂아 넣지 않고서는 억울해서 못 그만두지.”
홍성민이 말했다.
‘그 자식’은 홍콩의 민간정보기업 박물관연대의 대표라고 하는 대니얼 양을 의미했다.
태국에 구속된 상태이지만, 중국에서 그의 신병을 넘겨줄 것을 압박하고 있다는 정보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한국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관계자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에게 그 사실이 고지되었다.
“주먹으로는 부족하지. 잡아다가 전기 고문 합시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쓰여 있잖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기에는 전기.”
“그래. 전기에는 전기. 씨발.”
“나가라고 그러면 원장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사정해야지, 뭐. 아니면 용신이 형이 책임자였으니까 그 양반만 모가지 날리라고 하든가.”
“그거 괜찮네. 똑똑한데?”
“내가 좀 똑똑하잖아요. 요즘 소주가 많이 약해졌어. 술이 부족하네. 소주나 더 빨러 갑시다. 형님이 1차 샀으니 내가 2차 살게요.”
“그래. 어디 좋은 데 가자.”
“이 양반이 취했나? 헛소리를 하시네. 좋은 데는 무슨 좋은 뎁니까? 을지로 가서 골뱅이나 먹어요.”
“또 골뱅이? 그 코스 안 지겹냐? 삼겹살 다음에 골뱅이? 거기서 리베이트 받냐?”
“싫어요?”
“아니. 싫은 건 아니고. 야, 근데 씨발 영화 보면 국정원 요원들 맨날 재벌 회장이랑 요정 가고, 룸싸롱 가고 그러는데 우리는 왜 맨날 삼겹살에 골뱅이야.”
“그거야 높은 분들 이야기고. 우리 같은 쫄따구가 기생집은 무슨. 얼른 갑시다. 술맛 떨어지기 전에.”
김승섭이 홍성민에게 빈 종이컵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
6호선 이태원역 2번 출구 맞은편에 있는 할리스 커피 구석에 외국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태원이라는 지역적 특성 덕분에 외형적으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는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이태원의 외국인들에게 녹아들어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한국어로 된 책이 들려 있었다. 한국어 교본이 아니라 일반 소설책이 들려 있었다. 그게 다른 외국인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그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이탈리아어로 말을 걸었다.
“아이고, 콘티 교수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책을 보고 있던 남자, 한국에서는 파비오 콘티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질베르토 베드로 신부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얼굴의 한국 남자가 서 있었다. 보았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베드로 신부에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베드로 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환한 미소를 보여 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날 처음 보는 두 사람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손을 맞잡고 반가움을 표현했다.
“독특한 책을 보시네요.”
한국 남자가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베드로 신부의 손에는 하얀색 바탕의 책이 들려 있었다.
표지에는 ‘황석영 중단편전집 2 삼포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었다.
“친구가 추천해 주더군요.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하면서.”
베드로 신부가 책을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어떻게. 도움이 좀 되셨습니까?”
한국 남자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한국 모습이랑 너무나도 달라, 마치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군요.”
베드로 신부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책을 보며 말했다.
“70년대 초반쯤에 나왔을 테니, 벌써 반세기나 지난 이야기군요. 50년이라는 시간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옛이야기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지요.”
한국인 남자가 말했다.
베드로 신부는 반세기라는 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의 기준에서 50년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제2의 고향인 바티칸이라면 50년 전이나, 50년 후에도 그다지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아는 베드로 신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있는 한국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눈빛으로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바티칸 도서관 협력자 중 한 명이며 한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남자는 베드로 신부의 눈빛을 이해하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확인되었습니다.”
한국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찍힌 CCTV 영상의 캡처 화면이었다. 중년 남성이 입국 심사를 받는 장면이 인화되어 있었다.
한쪽 귓바퀴가 없는 남자였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산티아고와 시드니, 싱가포르를 거쳐 방콕에 입국한 일본계 브라질 3세 파울로 까밀로 스즈키(Paulo Camilo Suzuki). 정확히는 그 이름을 쓰는 서용석이라는 남자의 출국 기록은 태국에 없었다.
서용석이라는 남자가 태국을 떠났다면, 기록을 남기지 않고 출국을 했다면 밀입국 루트를 이용했을 것이 분명했고, 파타야-시아누크빌 밀입국 루트가 유력했다.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쪽 귀가 없다는 서용석의 특징은 밀입국 브로커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고, 그가 시아누크빌로 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베드로 신부는 캄보디아 정보망을 가동했고, 프놈펜 공항에서 그의 얼굴이 찍힌 영상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한쪽 귓바퀴가 없는 남자, 데이빗 박이 찾는 서용석이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영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