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13화 (313/386)

One Sweet Day (9)

***

한규호는 불안한 눈빛으로 식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완이 중국어로 주문을 할 때, 불안하게 길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 불안감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흔히 외국인들에게는 Grilled Prawn with Chilli Sauce, 한국에서는 깐쇼새우라고 불리는 깐샤오샤런(干烧虾仁), 계란계살볶음인 푸룽셰(芙蓉蟹), 레몬소스로 버무린 닭고기 요리 링몬예(檸檬雞)가 나왔을 때도 과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웨이터가 탄탄면(擔擔麵)과 샤오롱바오(小籠包)를 식탁에 내려놓고 있었다.

“금만정에 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음식들은 꼭 먹어 봐야 해요.”

완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금만정(金滿庭). 홍콩의 대표 쇼핑몰 코즈웨이베이 타임스스퀘어 13층에 있는 광둥 요리 전문점.

약속한 것처럼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에 회사에서 나온 완이 한규호에게 1층으로 내려오라고 했고, 바로 이 식당으로 데려온 것이다.

“저기 말이지.”

한규호는 자신의 접시에 칠리새우를 담아 주는 완에게 말했다.

“네, 왜요? 따로 먹고 싶은 게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너무 많은 것 같은데.”

한규호가 말했다.

“그런가요?”

“일반적으로 봤을 때, 그렇지?”

한규호가 말했다.

“치앙마이에서요.”

완이 다른 접시에 푸룽셰를 뜨면서 말했다.

한규호는 그 접시가 자신의 앞에 놓일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우리 샹그릴라 호텔에서 먹었던 음식 기억나요?”

완이 한규호 앞에 푸롱셰가 담긴 접시를 놓으며 말했다.

“……떠나기 직전에?”

“네. 룸서비스로 시켰던 음식들.”

“스테이크……를 먹었던가?”

한규호가 젓가락으로 새우를 집으며 말했다.

“2킬로그램은 훌쩍 넘을 것 같은 티본스테이크. 커다란 새우가 들어간 크림소스 스파게티, 계란프라이를 두 개 추가한 볶음밥, 치킨앤비프 사태 2인분, 그리고, 시저 샐러드.”

완이 마치 어제저녁에 먹었던 것처럼 음식 이름을 읊었다.

“……많이도 먹었군.”

한규호가 질린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제 기억으로 규호 당신은 항상 잘 먹었어요. 많이 먹었고.”

완이 말했다.

“그때는 비상 상황이었지. 야반도주를 하려던 참이었고. 한동안 음식다운 음식은 먹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른데.”

“괜찮아요. 남겨도 돼요. 포장하면 되니까.”

완이 말했다.

“이번에는 남길 수밖에 없겠군…….”

한규호가 중얼거렸다.

“응?”

그 중얼거림을 들은 완의 눈이 빛났다.

“아니야.”

한규호가 급하게 말했다.

“설마, 다 먹었어요? 아침 차려 놓은 거?”

완이 물었다.

한규호는 대답하지 않고 새우를 입으로 가져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한 그녀의 정성을 생각해서, 초대형 오믈렛과 3층으로 쌓인 펜 케이크와 베이글 하나를 다 먹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다 먹었어요?”

완이 다시 물었다.

“시리얼은 다시 넣어 놨어.”

한규호가 말했다.

완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어제저녁도 적지 않았지. 평상시라면 조금 부족한 정도가 좋아.”

한규호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하며, 다시 새우를 입으로 가져갔다.

“알겠어요. 기억해 둘게요. 하지만 장담은 못 해요. 당신이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좋으니까.”

완이 미소 띤 얼굴로 한규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잘도 기억하고 있었네.”

더 민망해지기 전에 주제를 전환하기 위해 한규호가 말했다.

“뭐를요?”

“샹그릴라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잘도 기억하고 있다고.”

한규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말에 완이 다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손에 든 식기를 내려놓고 한규호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브리지가 연결되자, 당신이 제일 먼저 나왔어요. 저는 가장 먼저 나오는 사람이 당신이라고 알고 있었어요. 퍼스트클래스, 2A 좌석을 타고 온다고 공지 받았거든요.”

한규호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완을 바라보았다.

“나는 브리지 바로 앞에서 당신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어요. 당신은 제일 먼저 피켓을 보고, 그다음에 내 얼굴을 봤어요.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요.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 미스터 박이냐고 물었어요. 당신은 조금 뚱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했어요.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모시겠다고 했고, 당신에게서 캐리어를 받아들었어요. 그때, 당신은 살짝 주저했어요. 캐리어를 건네줘도 되는지. 하지만 나를 믿지 못해서 주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어요. 대접받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라는 것을 저는 알았어요.”

한규호는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데이빗 박과 프라이멀 카지노의 완으로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였다.

“캐리어를 나에게 빼앗긴 당신이 물었죠. ‘누구?’ 제가 그랬어요. 인사드리겠습니다. 프라이멀 카지노의 완입니다. 제가 데이빗 박 님을 모시게 됩니다. 당신이 다시 물었어요. 모신다고? 제가 대답했죠. 네. 이곳에 계시는 동안 개인 비서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대 당신이 뚱한 표정으로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나요?”

“……기억 안 나는군.”

“흠이라고 했어요. 뚱한 표정으로 ‘흠…….’ 이렇게 말했어요.”

한규호는 그녀의 말에 옛 기억을 더듬었다.

‘흠…….’이라고 말한 것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뚱한 표정을 하기는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트라이앵글로 날아갔어요. 헬리콥터 안에서 당신은 내 허벅지를 봤어요. 훔쳐본 것도 아니고 대놓고.”

“……쓸데없는 것을 기억하는군.”

한규호가 말했다.

한규호는 자신의 얼굴에 감정이 드러날까 봐 두려웠다. 부끄러움이 드러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투덜거리는 한규호에게 완이 다시 말했다.

“적어도 천 번.”

“천 번?”

“수완나품 공항에서 만났을 때부터, 마투피로 가는 산골짜기에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의 기억을 적어도 천 번은 되돌렸어요. 당신이 어떤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잊지 않기 위해, 완전히 새겨 두기 위해서. 천 번은 되돌려봤어요. 덕분에 이제는 잊지 않아요. 잊을 수 없어요.”

그런 한규호에게 완이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좀 자 두라고. 잠에서 깨면 지금보다 훨씬 안락한 공간에서 일어나게 될 거야. 완 양, 잘 자요. 좋은 꿈 꾸고.”

완의 나직한 목소리가 식당의 소음을 뚫고 정확하게 한규호의 고막에 닿았다.

“당신이 해 준 마지막 말.”

완이 한규호의 눈을 보며 말했다.

“…….”

완이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로 손을 뻗었다.

한규호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

예상대로 음식 대부분은 포장되었다. 천하의 한규호라고 하더라도 그 많은 음식을 다 먹을 수는 없었다.

완은 식당에 주소를 알려 주고, 배달을 요청한 다음 한규호를 끌고 쇼핑몰로 향했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구매했다.

겉보기에는 이른 오후의 느긋한 쇼핑을 즐기는 여느 커플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들르는 상점이 전부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이고, 완이 카드를 긁는다는 것이 다른 커플들과 달랐다.

한규호는 자신이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렇게 체념한 상태로, 그녀의 지시에 따라 옷을 입고 보여 주고, 벗고를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3시간 가까이 쇼핑몰을 돌고 나서야 한규호에게 처음으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한규호는 쇼핑몰 내 커피숍에 앉아 차가운 커피를 마시면서 3시간 동안 얼마나 샀는지를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수트만 다섯 벌, 캐쥬얼은 몇 벌을 샀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였고, 각종 구두와 운동화. 슬리퍼, 남성용 화장품 같은 각종 잡화까지. 대충 계산해 봐도 10만 홍콩달러는 훌쩍 넘어섰음이 분명했다.

한규호는 맞은편에 앉은 여자, 시원하게 카드로 긁고 있는 완을 바라보았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한규호가 물었다.

“응, 뭐가요?”

커피를 홀짝이던 완이 미소를 지어 주었다.

“당신 카드 한도가 얼마나 되는 거야?”

한규호가 테이블에 올려진 완의 지갑을 보면서 물었다.

“모르겠는데요? 회사에서 지급한 카드니까 충분하지 않겠어요?”

“회사? 홍콩?”

한규호가 물었다.

“아니요. 미국요.”

완이 말했다.

CIA의 돈이었군.

한규호가 속으로 생각했다.

CIA 놈들의 돈이라고 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카드도?”

한규호가 물었다.

“어떤 카드요?”

“이 카드 지갑 안에 들어 있는 아멕스.”

완이 건네준 카드 지갑을 테이블에 올리며 물었다.

“이 녀석도 ‘회사’에서 준 거야?”

“아니요. 그건 홍콩에서 제가 직접 발급받았어요.”

완이 말했다.

“마리의 이름으로?”

“네.”

“한도가 얼만데?”

“글쎄요. 잘 기억 안 나는데. 아마 100만 홍콩달러 정도 되지 않을까요?”

“100만? 미국 달러로 하면 얼마 정도 되는 거지?”

“13만 달러 정도? 그 정도 될 것 같은데요?”

완이 말했다.

한화로 1억 5천만 원의 한도가 설정된 카드를 건네준 것이다.

“진짜 차도 살 수 있었겠군.”

한규호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완이 물었다.

“차 필요해요? 차 사 줄까요?”

“……그야말로 기둥서방이군.”

한규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그런 한규호에게 완이 말했다.

“기둥서방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저 어떻게 하면 여자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해야죠,”

완이 싱글 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자신 없는데.”

한규호가 말했다.

“아니요. 잘하고 있어요. 자신감을 가져요.”

완이 말했다.

“어젯밤을 의미하는 거지?”

한규호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조금이라도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고 싶은 의도였다.

“맞아요. 어젯밤처럼만 해 줘요.”

그러나 완은 당황한 기색 따위는 없이, 여전히 생글생글 미소를 보여 주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오히려 한규호의 말문이 막혀 버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최우선 조건.”

완이 말했다.

“최우선 조건?”

“잘 있어 줘요. 꼭 내 곁이 아니라도 상관없어요.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너무 위험한 일 하지 말고. 그렇게 잘 있어 주면. 그것만으로도 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요. 그게 최우선 조건이에요.”

완이 말했다. 그 얼굴에는 어느새 다른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천하의 한규호도 그녀의 말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에 어색한 표정이 떠올랐다.

“알아요? 나는 당신의 그 표정 좋아해요. 사진이라도 찍어서 배경 화면으로 해 두고 싶어요.”

완이 말했다.

한규호는 의식적으로 표정을 바꾸었다. 그래서 더 어색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신체에 대한 완벽한 통제가 가능한 한규호라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그도 어쩔 수 없었다.

한규호는 헛기침을 두어 번하고는 재빨리 다른 주제로 바꾸었다.

“그나저나 괜찮은 거야? 대낮에 이렇게 쇼핑몰을 돌아다녀도? 원래대로라면 스완슨 과장님께서는 호텔 객실에서 문서를 검토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맞아요. 저는 지금 부사장님에게 채찍으로 맞아 가면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죠.”

“그런데?”

“부사장님이 화를 내면서 회사에 비상이 걸렸어요. 휴가 중인 직원까지 전 직원이 다시 회사로 불려 갔어요. 지금쯤 지사장님의 채찍을 맞으며 서류를 검토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스완슨 과장이 오후에 타임스스퀘어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깔끔하군.”

“깔끔하죠?”

“그래. 무서울 정도로 깔끔해.”

“무서운 여자랍니다.”

완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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