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12화 (312/386)

One Sweet Day (8)

***

오후 3시 5분에 로마 레오나르도 국제공항을 출발한 알리탈리아(Alitalia) 758편 항공기는 도착 예정 시간인 오전 10시 25분보다 40여 분 빠른 9시 43분에 인천공항 34R 활주로에 착륙했다. 활주로에 부드럽게 착륙한 비행기는 천천히 게이트를 향해 나아갔다.

그 비행기 2A 좌석에 타고 있는 남자는 창밖을 슬쩍 바라보고는 다시, 손에 들고 있는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비행이 시작되고 그의 손에 들린 세 번째 책 표지에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Korean Grammar for International Learners)’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책은 몇 페이지 남아 있지 않았다. 책을 든 남자는 비행기가 멈추기 전까지 이 책을 다 읽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글자까지 집중해서 책을 읽어 내려갔고, 그가 책을 완독한 그 순간, 안전벨트의 사인이 꺼졌다.

남자는 책을 덮고는 잠시 동안 표지를 바라보았다.

유럽에서 사용하는 언어 전부와 아랍어, 중국어, 태국어, 그리고 미얀마어를 거의 모국어처럼 알고 있는 남자, 질베르토 베드로 신부는 비행 동안 읽은 세 권의 책을 통해 기본적인 한국어와 문법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본 개념을 익힐 수 있었다.

그는 표지를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 권의 한국어 교본에는 공통적으로 ‘Postposi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영어로 Postposition, 또는 Particle이라고 표현되는 ‘조사’의 변형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 부분이고, ‘Postposition’의 다양한 활용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단순한 문법적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쓰여 있었다. 조사를 자연스럽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발음이나 억양처럼, 실제 대화를 통한 다양한 사례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흥미롭군.”

베드로 신부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국에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왕이면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국어를 배워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입국장 문이 열리자, 입국하는 사람들을 마중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 손에 캐리어를 들고 걸어가던 베드로 신부는 그들 중에서 ‘Fabio Conti’라고 쓰여 있는 환영 팻말을 손에 들고 서 있는 한 남자를 찾았다.

베드로 신부는 팻말을 들고 있던 남자에게 다가갔다.

“Professor Conti?”

베드로 신부가 다가가자 팻말을 들고 있던 남자가 영어로 물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가 콘티입니다.”

베드로 신부가 한국어로 답했다.

“아, 한국말을 할 줄 아시는군요.”

“그리 능숙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 신부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한국어 교본에 적혀 있던 표현을 사용했다. 교본에는 ‘능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한국인들이 놀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 말처럼 마중 나온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잘하시네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알아들으시니 다행입니다. 발음은 어떻습니까?”

“발음도 아주 훌륭합니다. 자연스러운데요?”

“자연스럽습니까?”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한 수준입니다. 일단 가실까요?”

마중 나온 남자가 베드로 신부의 캐리어를 받아 들며 말했다.

베드로 신부는 앞서 걸어가는 남자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국인과의 한국어 첫 대화가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쩐지 한국에서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한국에 있는 동안 베드로 신부가 사용할 이름은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Sapienza-Universita di Roma) 부설 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파비오 콘티였다.

파비오 콘티 교수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이유는 논문 작성을 위해서였다.

짧으면 두 달, 길면 반년 정도의 일정으로 자매결연 협약을 맺은 한국의 가톨릭대학교로 연구 출장을 온 것이었다.

인천공항으로 마중 나온 남자는 가톨릭대학교 교무처 직원이었다. 그 교직원의 차를 타고, 역곡역 인근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성심 캠퍼스에 도착한 그는 그에게 배정된 숙소, 외국인 교수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국제교류관 한 객실을 안내받았다.

거실과 분리된 침실, 욕실과 작은 부엌으로 구성된 단출한 공간이었다.

베드로 신부는 객실을 돌아보며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혼자 살기에, 부족하지도, 그리 과하지도 않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베드로 신부는 이곳에서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연구 출장처럼, 가톨릭대학교에 숙소를 요청한 이유는 단순한 위장 목적이었다.

위장 기업을 통해서 서울 도심에 레지던스 객실을 이미 예약해 놓았다. 그곳에서 그가 한국에 온 진짜 목적을 수행할 것이다.

베드로 신부는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짐을 풀었다.

짐이라고 해도 대단한 것은 없었다. 그저 옷 몇 벌과 책 몇 권, 그리고 위장용 노트북이 전부였다.

누군가가 이 객실을 찾아 왔을 때,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로 보이기 위한 소품이었다.

얼마 안 되는 소품을 정리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베드로 신부는 문으로 다가가 보안경을 통해 밖을 살펴보았다.

문 너머에는 사제복을 입은 한국 남자가 서 있었다.

한국인 사제를 확인한 베드로 신부가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한국인 사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베드로 신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파비오 콘티?”

베드로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들어오라는 의미로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한국인 사제가 문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좀 그렇지 않아?”

이탈리아어였다.

“바로 알겠어?”

베드로 신부가 물었다.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파비오 카펠로와 브루노 콘티.”

한국인 사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파비오 카펠라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AS 로마를 지휘했던 명장, 바티스투아와 델베키오, 토티와 함께, 00-01시즌 세리에 A의 우승을 일궈 낸 전설적인 감독의 이름이었고, 브루노 콘티는 80년대 전성기를 이끌며, AS 로마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전설적인 선수의 이름이었다.

“아무튼, 로마니스타들이란.”

한국인 사제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AS 로마의 서포터의 별명이 로마니스타였다. 그리고 베드로 신부가 바로 로마니스타 중 한 명이었다.

“괜찮지 않을까? 한국에서 세리에의 인기가 그렇게 높지도 않고, 파비오라면 몰라도 브루노 콘티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을 것 같지도 않은데.”

베드로 신부가 한국인 사제에게 씩 웃어 주며 말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이름에 로마니스타의 유치함이 묻어 있다. 이게 핵심이지.”

한국인 사제가 말했다.

“로마인이 아닌 자네는 모를 거야. AS 로마의 위대함을.”

“로마인 같은 소리 하네. 월드컵 때는 브라질 응원하면서.”

한국인 사제도 그렇게 말하고 씩 웃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고, 손을 맞잡았다.

“얼마만이지? 5년도 넘은 것 같은데.”

한국인 사제가 말했다.

“7년. 만으로 6년하고 8개월 12일.”

베드로 신부가 말했다.

“여전히 지독한 기억력이네.”

한국인 사제, 김대길 하상 바오로 신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로마 국제공항에서 작별의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6년 8개월 12일 만에 재회한 것이다.

김대길 하상 바오로 신부가 바티칸으로 유학을 갔던 당시 친구가 된 두 사제는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에 베드로 신부가 파비오 콘티라는 신분으로 가톨릭대에 연구 출장을 올 수 있었던 것도 김대길 신부가 도와준 덕분이었다.

“짐 정리나 도와주려고 했더니, 뭐 정리할 짐이 없네.”

김대길 신부가 말했다.

“청빈은 사제의 덕목이 아니던가.”

베드로 신부가 말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진짜배기 한국 음식을 대접해 주지.”

김대길 신부가 베드로 신부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했다.

***

가톨릭대학교 정문에서 골목을 따라 100여 미터 내려간 곳에 있는 홍천식당은 맛있는 제육볶음과 저렴한 음식값으로 지역 주민은 물론 가톨릭대학교 학생들에게도 사랑받는 오래된 식당이었다.

그 홍천식당 마룻바닥에 베드로 신부가 어색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꼭 여기여야 했을까?”

베드로 신부가 불만스럽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베드로 신부의 맞은편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김대길 신부가 있었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런 게 있어. 한국에서 살 거면 좌식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아. 벌써 무릎이 아파 오는데.”

베드로 신부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김대길 신부가 그런 베드로 신부를 보면서 히죽 웃었다.

“신부님, 오랜만에 오셨네.”

식당 주인아줌마가 밑반찬 몇 가지를 식탁에 내려놓으며 김대길 신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안에는 소주도 한 병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게요. 온다 온다 하면서 자주 못 오네. 그나저나, 내가 소주 시켰던가?”

“안 시키셨나? 매번 오실 때마다 반주로 한 병씩 하시니 가져왔지.”

“잘했어요. 두고 가세요.”

김대길 신부가 그렇게 말하며 소주를 받아 들었다.

베드로 신부가 ‘그러면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김대길 신부를 바라보았다.

“뭘 알아듣는 표정을 하고 있어.”

김대길 신부가 소주병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문 안 했는데, 올 때마다 마시니까 알아서 가져왔다는 의미 아냐?”

베드로 신부가 소주병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대길 신부가 뜨악한 표정으로 베드로 신부를 바라보았다.

“그 끔찍한 기억력도 부족해 이제는 독심술까지 배워 온 거야?”

“독심술 대신 한국어를 배웠지.”

“언제?”

“비행기 타고 오면서.”

“비행기 타고 오면서 배운 한국어로 지금 대화를 알아들었다고?”

“전부는 아니고, 대충 60퍼센트 정도?”

김대길 신부는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저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시간 동안 집중하면 한글 정도는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몇 시간 공부해서 일상적인 대화를 반 가까이나 알아들었다고?

“항상 생각하지만, 정말 어이가 없군.”

김대길 신부는 그렇게 말하며 소주병을 땄다.

“그나저나 한국에는 갑자기 왜 온 거야?”

김대길 신부가 물었다.

베드로 신부가 일반 사제가 아니라는 것을, 바티칸의 명을 받아 일반 사제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게 이상했다.

어느 날부터, 한동안 어디론가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했고, 사제복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본인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소속부터 수상쩍었다.

바티칸 우취주화국(Ufficio Filatelico e Numismatico)과 더불어 수상쩍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곳이 바로 바티칸 도서관이었다.

그저, 베드로 신부가 가진 말도 안 되는 기억력을 바티칸이 어찌어찌 활용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뭐, 우리 같은 졸병들이야 항상 똑같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베드로 신부가 말했다.

“……위험하지는 않은 거지?”

김대길 신부는 베드로 신부의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뒤에 그분께서 계시는데, 위험할 게 뭐 있겠어.”

베드로 신부가 씩 웃으며 말했다.

“계셔도 위험한 건 위험한 거지.”

김대길 신부가 자신이 잔에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사람을 좀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베드로 신부가 소주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람?”

“그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것 같아서.”

“찾는 사람? 아니면 찾아 달라는 사람?”

김대길 신부가 물었다.

베드로 신부는 대답 없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입으로 소주잔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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