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10화 (310/386)

One Sweet Day (6)

곽용신이 현관문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둘째 딸이었다.

“아빠아아아아아아!”

거실에 앉아 그림책을 그리고 있던 막내가 색연필을 내던지고 곽용신에게 달려들었다.

곽용신은 몸을 굽히고 둘째 딸을 안아 들었다.

그리 가볍지 않은, 그렇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무게감이 그의 두 팔에 느껴졌다.

둘째 딸이 전화했었다.

방콕 공항에서 다시 파타야로 넘어가는 도중에, 아내의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왔었다.

보고 싶다고 했었다. 언제 오냐고 물었다. 빨리 오라고 외쳤다.

“아빠! 아빠! 아빠! 아빠!”

둘째 딸이 곽용신의 품에 머리를 비볐다.

“우리 봉순이. 엄마 말 잘 듣고 있었어요?”

곽용신이 둘째 딸의 정수리를 보면서 말했다.

“응! 나 말도 잘 듣고, 밥도 잘 먹고!”

둘째 딸이 칭찬해 달라는 듯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말했다.

“그래. 잘했네. 우리 봉순이. 선물 사 줘야겠다.”

선물이라는 말에, 둘째 딸이 곽용신 품 안에서 두 팔을 뻗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 움직임에, 곽용신의 팔에 무게감이 조금 더 걸렸다.

곽용신의 행복감이 조금 더 묵직해졌다.

“잘 다녀왔어?”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곽용신은 고개를 돌렸다.

거실에 아내와 아내를 닮아 차분한 성격의 첫째 딸이 곽용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이라는 감정을 담은 아내의 눈빛에, 걱정이라는 감정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응. 오래 걸렸네.”

곽용신이 말했다.

“밥은?”

아내가 물었다.

“어. 밥은…….”

곽용신은 그렇게 말하고는 거실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9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 가족들은 이미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대충…… 먹었어.”

곽용신이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안 먹고 왔구나.”

아내가 말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알아차렸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지. 찬밥 좀 남았으면 좋겠는데.”

곽용신이 거실로 걸어 들어오면서 말했다.

“늦은 밤에 라면이 뭐가 좋다고. 씻을 동안 밥 되니까.”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부엌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곽용신에게 첫째 딸이 다가왔다.

곽용신은 오랜만에 무리해서 두 딸을 다 안아 올렸다.

그리고 잠시 동안 두 팔에 걸리는 묵직한 행복감을 느꼈다.

그렇게 삶의 이유를 안고, 거실로 돌아온 곽용신은 두 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빠 일단 씻자. 씻고 놀아 줄게.”

논다는 말에, 둘째 딸은 신난다는 듯 두 팔을 들고 빙글빙글 돌면서 거실을 뛰어다녔다.

둘째 딸이 뛰는 모습을 보자 덜컥 겁부터 나는 곽용신이었다.

소음 방지 매트를 깔아 놓기는 했지만, 아파트에 사는 사람으로서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둘째 딸을 제지하려던 곽용신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이게 맞는 건가?

오랜만에 아빠를 본 딸이 신나 춤을 추려 하는데, 자기 집에서 행복감을 표현하려 하는데, 그 행복감을 억지로 막아야 하는 게 맞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집이니까, 내 딸이니까 마음껏 뛰어놀게 하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행복에 관한 근원적인 의문이었다.

왜 아파트를 선택했을까?

살기 편해서? 가장 큰 자산인 집의 가치가 올라가니까? 남들도 다들 아파트에 사니까?

곽용신은 그런 생각을 하며 둘째 딸에게 팔을 뻗으며 말했다.

“이리 와. 아빠가 안아 줄게.”

아빠의 의도를 모르는 둘째 딸은 안아 준다는 말에 두 팔을 벌리며 곽용신의 품에 안겨 왔다.

둘째 딸을 안아 들며 곽용신은 계속 생각했다.

이 작은 아이가 자기 집에서 뛸 때마다 혼을 내야 할까? 꾸준하게 올라가는 이 아파트에 살기 위해서? 그게 올바른 선택일까?

거기까지 생각한 곽용신에게 갑자기 다른 질문이 찾아왔다.

국정원에서 계속 일 해야 할까?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 동안 아이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아이들이 크는 것도 보지 못하고 사는 이 삶이 과연 제대로 된 삶일까?

그러한 질문이 찾아왔다.

***

아이들은 10시가 넘어가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잠자리에 들어갔다.

밤 10시가 되면 무조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규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아내의 규칙 1호였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부전공으로 배운 아내는 아이들에게 꿈을 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충분한 잠과 좋은 꿈이 아이들의 정신과 신체를 올바르게 성장시킨다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었다.

곽용신도 그런 아내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서 집에 있을 때는 아이들이 좋은 꿈을 꿀 수 있도록 책을 읽어 주고는 했었다.

그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이미 아이들은 꿈나라에 가 있었다.

누구를 닮았는지, 한 번 잠들면 웬만한 소리에는 꿈쩍도 안 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곽용신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식탁으로 걸어갔다.

식탁에는 갑작스럽게 준비한 것치고는 꽤나 제대로 된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곽용신이 좋아하는 매콤한 맛이 강한 된장찌개, 파가 많이 들어간 계란말이와 감자채 볶음, 그리고 아내의 손맛이 담긴 몇 가지 기본 반찬들이 갓 지은 밥과 함께 식탁에 올려져 있었다.

완벽했다. 밥만 빼면.

아내는 이런저런 잡곡을 섞은 현미밥을 고집했다. 잡곡까지는 어떻게 이해해도 현미만큼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흰 쌀밥이 좋은데.

곽용신은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식탁에 앉았다.

늦게 밥을 차려 준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숟가락을 들어 제일 먼저 된장찌개를 한 숟갈 떠먹어 보았다.

언제나 집밥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된장찌개의 짭조름하고, 그러면서도 알싸한 맛이 혀 위를 감돌았다.

“역시.”

곽용신이 말했다.

“뭐가?”

맞은 편에 앉은 아내가 물었다.

“맛있다고.”

곽용신은 그렇게 말하며 밥을 조금 떠 입에 넣고 씹었다.

평상시에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현미의 식감이 오늘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된장 보내 주셨어.”

아내가 말했다.

그랬군. 그래서 유난히 맛있었는지도.

곽용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끓여서 맛있는 거지.”

짧은 시간에 정답을 떠올린 자신의 순발력을 칭찬하며 곽용신은 다시 된장찌개로 숟가락을 가져갔다.

“잘렸어?”

아내가 물었다.

“응?”

“아니. 평소에 안 하던 말을 하니까. 혹시 잘렸나 해서.”

아내가 반쯤 장난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

“잘렸으면 좋겠어?”

곽용신은 계란말이로 젓가락을 가져가며 물었다.

그러나 계란말이를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갈 때까지 아내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계란말이를 씹던 곽용신이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는 아내의 눈이 곽용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아내가 말했다.

곽용신의 동작이 잠시 멈추었다.

곽용신은 다시 시선을 돌려 수저를 움직였다.

계속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면, 깊은 곳에 감춰 놓은 생각을 아내에게 들킬 것만 같았다.

“오래 걸렸네. 이번에는.”

아내가 말했다.

길어도 2주 정도라고 말하고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었다. 실제로 집에 돌아온 것은 약속한 2주를 훌쩍 지나서였다.

“……미안.”

곽용신이 사과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미안하긴. 무슨 일 하는지 뻔히 아는데.”

아내가 다시 말했다.

곽용신은 젓가락을 놀리면서 생각했다.

예전에, 군사정부 시절, 중앙정보부. 안기부 시절만 해도 요원들은 여러모로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했었다. 경제적 혜택은 물론, 비공식적인 사회적 특권을 누렸다고 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다. 요원이라고 해도, 일반 공무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국정원 요원이라고 해도, 그 가족이라고 해도 특권을 누리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선배들이 이혼하고는 했다. 홍성민이나 김승섭처럼 젊은 요원 중에서는 결혼에 대한 생각을 애초에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요원의 일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사장님이 전화해 주셨어.”

곽용신이 고개를 들었다.

사장? 김형원 사장이 전화했다고?

“언제?”

“자기 떠나고 한 사나흘 되었나? 그때쯤.”

“뭐라고?”

“자꾸 출장 보내서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애들 옷 사 입히라고 용돈 좀 보낸다고.”

“용돈을 보낸다고?”

“응. 통장 확인하니까 100만 원 보내셨더라. 사장님은 애 안 키우셨나?”

“……모르겠는데.”

곽용신이 말했다.

그는 김형원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전설처럼 내려오는 프라하의 이야기 정도였지만, 프라하의 이야기야 애초에 과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애들 옷 얼마나 한다고 돈을 그렇게 많이 보내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니, 사실 그것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들더라.”

“……어떤 생각?”

“……위험한 데 갔구나. 그런 생각.”

곽용신의 숟가락이 멈출 뻔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계속 숟가락을 움직였다.

“이상하더라고. 그렇게 큰돈이 들어왔는데, 하나도 안 기쁘더라고. 그냥, 뭐랄까.”

“……무슨 말인지 알아.”

“아니. 자기는 모를 거야. 비슷하게 유추할 수는 있어도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은 모를 거야.”

“…….”

곽용신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해. 밥 먹는데 소화 안 되겠다.”

아내가 사과했다.

“아니야. 당연히 해야 하는 이야긴데.”

곽용신이 말했다.

남편인 자신 말고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가 들어 줘야 하는 이야기였다.

“내일도 일찍 나갈 거야?”

아내가 물었다.

남편의 직장은 성남에 있었다.

주말을 검단에 있는 집에서 보내면, 외곽순환이 막히기 전에 나가야 한다며 월요일마다 새벽 5시 반 이전에 집을 나섰다.

“아니. 내일은 안 나가.”

곽용신이 말했다.

“휴가?”

아내가 물었다.

“망했어. 회사.”

곽용신이 말했다.

아내가 그리 놀라지 않는 표정으로 곽용신을 바라보았다.

회사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다른 집이었다면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곽용신의 아내는 금방 그 숨은 뜻을 이해했다.

“다른 데로 가겠네.”

“응.”

“멀어도 좋으니 한국이었으면 좋겠다.”

아내가 말했다.

“뭐, 모르지. 또 외국 나가라고 한다면 그만둬 버릴까?”

곽용신이 말했다.

“그럴 수 있겠어?”

아내가 말했다.

“응?”

“좋아하잖아. 자기가 하는 일.”

“…….”

“그렇게 좋아하는 국정원 그만둘 수 있겠어?”

아내가 물었다.

곽용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두어 숟가락 남아 있는 밥에 된장찌개 국물을 적셔 비볐다.

그렇게 잠시 침묵하던 곽용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봉순이가.”

“응?”

“봉순이가 아빠 와서 좋다고 막 뛰더라. 근데, 그거 보는데 걱정이 제일 먼저 들더라. 층간 소음 생길 텐데, 밑에 집에서 싫어할 텐데.”

그 말에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아이가, 자기 집에서 행복해서 뛰는 것도 못 하는 집이 과연 내 집이 맞는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행복해지자고 아파트에서 사는 건데, 아파트에서 살아서 행복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말하고, 곽용신은 비벼진 밥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씹은 다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행복해지자고 일하는 건데, 우리 애들 크는 것도 못 보고, 이렇게 가족 걱정시키면서 사는 게 과연 행복하게 일하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더라. 좋아하지. 좋아해. 근데, 지금은 모르겠다. 과연 가족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게 맞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

곽용신이 다시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근데, 나 관두면 우리 뭐 먹고 살지?”

곽용신의 말에 아내의 얼굴에 피식하고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건 내가 해야 하는 말인데?”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냥 확 관둬 버려. 이렇게 말해 주는 게 더 좋은데. 멋있잖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아내가 말했다.

“어떻게?”

“자기 퇴직금으로 치킨집 차리지.”

“결국, 치킨집인가…….”

곽용신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면 해남 가서 농사나 지을까? 애들도 뛰어놀 수 있고.”

아내의 친정은 해남이었다. 곽용신의 장인은 그곳에서 꽤 넓은 경작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데.

곽용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은 좋아하시겠군. 그건 그렇고. 사실 휴가도 맞아. 2주 정도 쉴 수 있어.”

“그래?”

“그래서 말인데. 우리 여행이라도 갔다 올까? 애들이랑?”

“여행? 갑자기?”

“뭐, 보너스도 받았고.”

곽용신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 들어 있던 봉투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소위 말하는 금일봉이었다. 귀국해서 청와대의 안가에서 대기할 때, ‘높은 분’이 직접 건네준 종이 봉투였다.

아내가 봉투를 집어 들었다. 기대보다 얇은 두께에 살짝 실망스러움이 눈동자를 스쳐 갔다.

하지만 봉투를 열었을 때, 그녀의 실망스러움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봉투에 들어 있는 것은 2천만 원이 찍혀 있는 수표 한 장이었다.

곽용신은 아내의 표정을 보면서 ‘높은’분들께서 용돈을 줄 때, 수표를 주는 이유가 실망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주기 위함이라는 소문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표를 보던 아내가 다시 곽용신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 걱정이 서려 있었다.

현명한 여자다. 2천만 원이라는 금액보다, 그 금액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를 알아챈 것이다.

“나만 받은 거 아니니까.”

곽용신이 재빨리 말했다.

나 혼자 받은 거 아니야. 나 혼자 위험했던 거 아니야. 그런 의미를 담아서.

그러나 아내는 그리 마음을 놓지 않은 표정이었다.

“뭐, 오랜만에 시간도 생겼고, 돈도 생겼고 하니. 애들이랑 같이 가까운 데나 갔다 오면 어떨까 싶어서. 추억도 만들어 주고 싶고.”

곽용신이 재빨리 주제를 전환했다. 아이는 훌륭한 방패막이 된다.

“아빠랑 같이 간다고 하면 좋아하겠다. 어디 생각해 둔 곳이 있어?”

“디즈니랜드에 가 볼까? 애들도 좋아할 테니.”

“디즈니랜드? 도쿄?”

“요즘 시국에서 일본은 좀 그렇고, 홍콩이 어떨까 싶은데.”

곽용신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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