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07화 (307/386)

One Sweet Day (3)

“언제 왔어요?”

완이 한규호의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조금 전에.”

한규호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는 완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얼마나 조금 전에?”

완이 물었다.

“아주 조금 전에.”

한규호가 답했다.

“얼마나 조금 전에?”

완이 다시 물었다.

한규호의 미소가 바뀌었다. 조금 머쓱하다는 느낌의 미소였다.

오래 기다렸구나.

완은 그 미소에 숨은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왜 전화 안 했어요?”

완이 물었다.

“전화?”

“번호 알잖아요.”

“잊어버렸어.”

한규호가 말했다.

“진짜로?”

한규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뺨에 닿아 있는 그녀의 손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진짜로요?”

완이 다시 물었다.

“아니.”

한규호가 답했다.

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

완에게서 몇 미터 떨어져 있던 신시아 챔버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얼굴이었구나.

신시아 챔버는 완의 손이 닿아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쁘지 않은 얼굴이었다. 첫눈에 보고 반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쩐지 믿음직스러운 느낌을 주는 그런 얼굴이었다.

저 얼굴을 가진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여자들이 있었다. 신시아 챔버가 아는 사람만 셋이었다.

한규호의 얼굴을 보고 있던 신시아 챔버의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졌다.

예상치 못한 시간,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는 깜작 이벤트가 그녀의 심장박동을 조금 빠른 속도로 뛰게 만들었다.

만나 보고 싶었다.

단순히 그가 미국이 주목하는 기프티드라서, 신시아 챔버 그녀가 기프티드를 담당하는 요원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스튜라는 코드명을 가진 저 남자는 그녀의 세 딸과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앤 챔버를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 준 사람이 그였다. 챔버가의 막내딸, 이제는 마리아 챔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베르나의 목숨을 구한 것도 그였고, 규를 미국으로 보내 준 사람도 그였다.

사윗감 후보라고 했었지.

신시아 챔버는 밀러 국장의 말을 떠올리며 완을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한규호를 바라봤다.

눈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싫은데.

신시아 챔버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신시아 챔버가 몇 미터 앞에 접근할 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보며 신시아 챔버는 어쩐지 방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남자 친구를 대하는 것 같은 심술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처음인데, 이런 기분은.

신시아 챔버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에게 계속 다가갔다.

그때, 남자의 고개가 움직였다. 그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

한규호는 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감각은 여전히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한규호가 의도적으로 감각을 확대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저,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얼굴에, 한규호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심적으로 격양된 상태였고, 그런 격양이 그의 감각을 확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확대된 감각에 다가오는 누군가가 잡혔다.

한규호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완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중년 여성의 얼굴을 보았다.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아카사카 일본대사관 통신실 전면의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서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중년 여성이 한규호에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한규호도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완이 뒤를 돌아보았다. 한 발 뒤에 신시아 챔버가 서 있었다.

신시아 챔버의 시선이 완을 향했다.

자신을 인지했지만, 완의 손은 여전히 그의 뺨에 닿아 있었다.

“소개해 주지 않을래요? 미스 스완슨?”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완을 미스 스완슨이라고 불렀다.

그 호칭 안에는 보는 사람들의 눈이 있으니 자중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완은 한규호의 뺨에서 손을 떼어 냈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완전히 손을 떼어 낸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손을 덮고 있던 한규호의 손을 잡았다.

“이분은…….”

완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한규호의 얼굴을 보았다.

“제 약혼자입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네요.”

완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신시아 챔버는 그녀의 미소를 보면서 조금 전 그녀가 보여 주었던 미소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녀가 지었던 미소가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미소라고 한다면, 지금 그녀의 미소는 그녀가 행복해서 짓는 그런 미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본사’에서 오신 부사장님이세요. 방문 기간 동안 제가 수행을 담당하고 있어요.”

완이 한규호에게 신시아 챔버를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마리의 약혼자인 ‘한’이라고 합니다.”

한규호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말했다.

“반가워요. 신시아 ‘챔버’예요.”

신시아 챔버가 한규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규호는 잡혀 있지 않은 다른 손, 오른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인사라기보다 서로에 대한 탐색 같은 눈 맞춤이었다.

“미안해서 어쩌죠? 미스 스완슨과 협의할 내용이 있는데.”

신시아 챔버가 한규호에게 말했다.

“방해가 되었군요. 죄송합니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얼굴만 보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한규호가 말했다.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마치, 근처에서 일하는 약혼자가, 이 근처를 지나가다 잠시 약혼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들른 것처럼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신시아 챔버는 완을 바라보았다.

‘잠시 얼굴만 보고 갈 생각’이라는 그의 말에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전히 은은한 행복감이 그녀의 얼굴에서 배어 나왔다.

못 들은 것일까?

신시아 챔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규호의 손을 놓는 완의 모습이 보였다.

한규호의 손을 놓은 완은 들고 있던 가방을 열고, 안에서 갈색의 카드 지갑을 꺼내 한규호에게 건넸다.

신용카드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갈색 가죽 카드 지갑이 한규호의 손에 쥐어졌다.

한규호는 카드 지갑을 열어 보았다.

지갑 안에는 출입문용 카드 키와 주소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한규호는 다시 완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었을까? 언제부터 이 지갑을 가방 안에 넣고 다녔을까?

완은 그런 한규호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한규호에게 말했다.

“일단 집에 가서 쉬고 있어요. 퇴근하고 갈게요. 아마 많이 늦지는 않을 거예요.”

신시아 챔버는 ‘많이 늦지 않는다.’는 말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에 간단히 먹을 것이 있으니 일단 꺼내 먹어요. 하지만 너무 많이 먹지는 말아요. 있다가 저녁 먹어야 하니까. 알겠죠?”

완은 자연스럽게 말했다. 언제나 약혼자가 찾아오면 그렇게 말해 왔던 것처럼.

한규호는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알겠죠?”

완이 다시 물었다.

“알겠어.”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완이 다시 한규호의 손을 잡았다.

“많이 늦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

한규호는 다시 한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끄덕임을 보고서야, 완은 한규호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신시아 챔버에게로 몸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부사장님. 다시 가실까요?”

신시아 챔버는 한규호에게 등을 돌리는 완을 보면서, 자신이 괜한 심술을 부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알고 있었어?”

찻잔을 내려놓은 신시아 챔버가 맞은편에 앉은 완에게 물었다.

완과 신시아 챔버, 두 사람은 완이 말했던, 작고 조용하지만, 괜찮은 찻잎을 쓰는 찻집에 앉아서 찻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아니요. 몰랐어요.”

완이 말했다.

신시아 챔버는 한규호가 오늘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냐고 물은 것이고, 완은 몰랐다고 대답한 것이다.

“몰랐다는 것치고는 너무 준비가 철저한 것 같은데.”

신시아 챔버가 다시 물었다.

완이 한규호에게 건네준 카드 지갑. 그녀가 평상시에 사용하는 카드 지갑이 아니었다.

카드 키는 그렇다고 해도, 주소가 적혀 있는 포스트잇은 누군가에게, 물론 한규호에게, 건네주기 위해 준비했음이 분명했다.

“태국에서 일이 끝나면 홍콩에 들른다고 했어요.”

“그래서 준비하고 있었다?”

“네.”

두 손으로 찻잔을 들고 있는 완이 두 번째 미소, 그녀가 행복해서 짓는 미소를 보여 주며 말했다.

그 미소를 보면서 신시아 챔버도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질 좋은 찻잎이 완벽한 온도와 찻물에 제대로 우러났을 때만 맛볼 수 있는 그윽함이 그녀의 입안에 감돌았다.

그 향기를 맡으며, 신시아 챔버는 어쩐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시아 챔버가 보기에 완은 제대로 우려낸 차 같은 사람이었다. 은은한 향기가 풍겨 나오는 그런 아가씨였다.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면, 스튜. CIA가 주목하는 기프티드 한규호가 아닌 일반인 남자를 만나고 있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일반인 남자를 만나, 일반적인 가정을 꾸리려 한다면 나는 웃으며 축하해 줄 수 있을까?

신시아 챔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약혼자?”

신시아 챔버가 물었다.

“놀래 주기 위해서 연락도 없이 찾아온 약혼자라고 하면 행동이 설명되지 않겠어요? 놀란 것도, 집 열쇠를 건네주는 것도?”

“그 시나리오도 미리 준비한 거야?”

“아니요. 급하게 생각했어요. 미스 스완슨이라고 부르셔서 그게 더 당황스러웠어요.”

“당황한 것치고는 너무 자연스럽던데? 저녁 먹어야 하니까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한 것도 자연스러웠고.”

신시아 챔버의 말에 완의 얼굴에 미안함이 담긴 미소가 피어올랐다.

“죄송해요.”

“아니야. 미안하기는 심술부린 내가 더 미안하지. 바로 보내 줬어야 했는데.”

그 말에 완이 다른 미소를 보여 주었다.

그 말이 맞아요. 그렇게 말하는 미소였다.

“못 말리겠다.”

신시아 챔버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

홍콩섬 남서부에 위치한 사이버포트(CyberPort)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설립되었다.

하나는 신도시 개발을 통한 경제 활성화였고, 또 다른 하나는 경제구조 전환이었다.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돌려받은 중국 정부는 새로운 지배제도 안에서도 홍콩의 위상을 유지하고 싶어 했고, 중국 본토와 시너지 효과를 통한 경제 활성화도 필요했다. 그에 대한 대답이 신도시 개발이었고, 그 대상지가 바로 홍콩섬 남서부 지역이었다.

남서부 지역을 신도시 개발지로 결정한 후, 홍콩행정부는 신도시의 방향성을 고민했다.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어떤 생산성을 창출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개념이 바로 금융산업에 집중되어 있는 홍콩의 경제구조를 신지식 창출로 전환하자는 생각이었다.

향후 새로운 주도산업으로 성장할 IT 기업을 한곳에 집중하고, 벤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홍콩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육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홍콩 사이버포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사이버포트를 한규호가 택시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완이 건네준 카드 지갑 안에 있던 주소를 택시 기사에게 보여 주었고, 택시 기사가 그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비싸겠는데.

한규호는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이버포트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회사는 복지가 좋다고 했다. 방 두 개짜리 전망 좋은 맨션을 얻어 줬다고 했다.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홍콩이라고 해도, 나쁘지 않은 집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도버아메리칸 인슈어런스에서 구해 줬는지, 아니면 CIA가 구해 줬는지 모르겠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사이버 포트를 보고 있자니 그의 예상을 뛰어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규호의 예상대로, 택시는 홍콩섬 남서부, 해안가에 있는 한 고층 콘도미니엄 앞에 멈추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들어 맨션의 층수를 세어 보았다.

“쓸데없이…… 높군.”

한규호는 그렇게 눈으로 층수를 세어 보다 고개를 젓고는 맨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