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98화 (298/386)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50)

야닌은 문으로 뛰어들기 직전에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면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열린 문틈으로 뛰어 들어갔다.

격납고 안으로 들어온 야닌은 바로 방향을 전환해, 뒤따라 들어오는 요원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과 동시에 손에 든 권총을 앞으로 겨누면서 외쳤다.

“모두 움직이지 마!”

그녀는 일단 특정한 곳에 초점을 두지 않고, 격납고 안에 모든 사물을 시야에 넣었다.

안에 사람이 있는지, 있다면 몇 명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첫 번째 절차였다.

확대된 그녀의 시야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몇 명은 서 있었고, 몇 명은 의자에 앉아 있었으며, 몇 명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야닌은 시야를 조금 좁혔다.

우선적으로 의자에 앉아 있거나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그녀의 시야에서 제외시켰다.

위협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서 있는 사람들보다 우선순위가 낮았다.

대치 상황에서 가장 위험이 되는 목표는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교범에 따르면 두 다리로 서 있다는 것은 활동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였고, 위험도가 또한 가장 높았다.

야닌은 서 있는 사람의 수를 재빠르게 헤아렸다.

격납고 안에 다섯 명이 두 다리로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시선과 일직선을 이루고 있는 총구가 움직였다. 그녀 기준으로 가장 오른쪽에 있는 두 명의 남자를 향해 움직였다.

야닌은 두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젊은, 아니 어리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태국인 남성 두 명이었다. 얼굴을 확인한 야닌의 시선이 빠르게 아래로, 그들의 손으로 향했다.

그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야닌의 시선은 다시 그들의 얼굴로 향했고, 그 얼굴에 담긴 공포를 확인했다.

저 두 사람은 위험하지 않다.

그렇게 확신한 야닌의 시선과 총구가 빠르게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다음 목표는 동아시아인의 얼굴을 가진 두 명의 남자. 중년, 그리고 장년 남자였다,

얼굴, 손, 그리고 다시 얼굴을 향해 움직이던 야닌의 시선이 중년 남자의 얼굴에서 잠시 머물렀다.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느낌을 캐치한 그녀의 뇌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시선을 멈칫하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시선을 움직였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한 사람에게, 격납고에 서 있는 다섯 사람 중 유일하게 그녀에게 등을 보이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얼굴은 보이질 않았다. 그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고개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도 야닌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야닌은 기다리지 않았다.

지겹도록 훈련을 반복해 그녀의 본능에 새겨진 절차에 따라 그의 양손을 살펴보기 위해, 야닌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마지막 남자의 양손에 아무것도, 총, 칼, 둔기 같은 무기는 물론, 폭탄의 기폭 장치나 기폭 장치로 사용될 수 있는 휴대전화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그녀의 시선이 위로 움직였다.

조금 전 확인하지 못한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남자의 고개는 멈추어 있었다. 옆얼굴이 보였다.

그 옆얼굴에서 야닌은 정보를 읽어 냈다.

동양인, 청년과 중년의 경계쯤. 익숙한 얼굴.

거기까지 확인한 야닌은 다시 시선을 움직이려 했다.

시선을 움직여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묶여 있는지, 앉아 있는지, 그들에 손에 들린 것이 없는지, 위협은 없는지를 살펴보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이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 중년 남자의 얼굴을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녀의 뇌는 시선을 계속 익숙한 남자의 얼굴에 유지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녀는 그 명령을 거부하고 다음 목표로 시선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시선이 움직이지 않았다.

두뇌의 명령과 그녀의 의지보다 앞선 무언가.

예감, 직감, 또는 본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시선을 그 남자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얼굴에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데이빗 박.

그였다.

그가 서 있었다.

***

대니얼 양과 모용진, 국정원 3인방, 그리고 한규호가 있는 ‘좀티엔 글로벌 쉽야드’에서 250m 떨어진 공터에 차량 한 대가 서 있었다.

토요타의 하이에이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밴 한 대가 시동이 걸린 상태로 서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 어두운 밤이었고, 야간 교통량이 그리 많은 곳도 아니었으며, 밴은 나무 그림자 아래 몸을 숨기고 있었다.

웬만큼 집중해서 살펴보지 않고서는 공터에 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설사, 누군가 거기에 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크게 눈길을 끌지 않았을 것이다.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5세대 차량이었고, 그만큼 세월의 흔적도 잔뜩 묻어 있었다.

방치된 차량이라고 오해를 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이 차량이 오라오라투어에서 출발한 대니얼 양을 추적해 온 바로 그 차량이었다.

허름한 외형과는 다르게, 차량 내부에는 다양한 전자장비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정찰용 드론을 조종하고, 드론에서 촬영된 화면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스크린이 있었다.

그 스크린을 두 명의 남자가 바라보고 있었다.

방콕에서 달려온 길, 그리고 그의 지시에 따라 추적팀을 움직인 파탸야 담당자였다.

그 두 사람은 드론이 추락하기 직전까지 촬영한 마지막 영상의 녹화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파타야 담당자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 놀람과 당혹감이 담뿍 담겨 있었다.

“전혀요. 전혀 몰랐습니다.”

길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다시 재생해 봐.”

파타야 담당자가 말했다.

추적팀원이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세 번째 재생이었다.

차량 한 대가 빠르게 수리조선소로 접근했고, 멈추자마자 사람들이 뛰어 내렸다.

차량에서 뛰어내린 다섯 명은 자세를 낮춘 채 빠르게 수리조선소로 달려갔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드론에 달린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는 그들의 모습을 깔끔한 화질로 잡아낼 수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손에 권총이 들려 있는 것도, 가장 선두에 서서 창고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이 여자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권총을 든 여자.

길은 그 여자가 크라쓰이, NIA 2급 요원 야닌 윗미따난(ญาณิน วิสมิตะนันท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왜 그녀가 저곳에 있는 것일까? 어떻게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일까?

“다른 드론은 없었습니다.”

그런 길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듯 추적팀원이 말했다.

태국은 무인정찰기가 없다. 고고도에서 추적할 위성도 없다. NIA가 계속 그들을 추적하고 있었다면 길의 추적팀처럼 드론을 이용하거나, 차량을 동원해 미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론도 없었다. 차량도 없었다.

어떻게 그녀가 저 위치를 알았을까? 어떻게 따라붙었을까?

“어떻게 하실 겁니까?”

파타야 담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은 그를 바라보았다.

철수해야 한다.

그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길이라고 해도, NIA가 모습을 나타낸 상황에서, 이 이상 개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까 걸려 온 전화.”

길이 말했다.

파타야 담당자는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 길에게 걸려 온 전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길은 그 전화를 직접 받았다. 그래서 파타야 담당자는 그 전화에 어떠한 내용이 담겨 있는지 전혀 몰랐다.

“방콕에서 온 전화였습니다. 해자(Moat)에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하더군요.”

파타야 담당자의 눈이 커졌다.

해자의 물이 흐르고 있다고? 일이 그렇게까지 커졌다고?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성 주위에 경계로 파놓은 구덩이를 의미하는 해자(垓子)는 방콕의 한 거점을 지칭하는 코드였다.

방콕에서 유일하게 해자로 둘러싸인 거점, 현재 태국 국왕이 거주하는 치뜨랄타 궁전(Royal Chitralada Palace)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해자에 물이 흐른다. 태국 최고의 권력인 왕실이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생각입니까?”

담당자가 일어서는 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뒤를 부탁합니다.”

길이 말했다.

“안 됩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위험했다. 그것도 너무 위험했다.

납치범들, 한국의 국정원 요원, 정체불명의 데이빗 박, 그리고 총기를 가지고 있는 NIA요원들이 있는 곳에 그를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길은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72시간 동안 모든 활동을 중단합니다. ‘도서관’에서 추가 지시가 내려오지 않으면 72시간 후에 계획에 따라 철수합니다.”

길이 말했다.

그는 웃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파타야 담당자는 지금 상황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정보의 부재와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황은 작전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입장에서 공포영화나 다를 바가 없었다.

반면에 길은 웃고 있었다. 예측 불가능한 이 상황을 그는 서스펜스 스릴러처럼 만끽하고 있었다.

“뒤를 부탁합니다.”

길은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뛰어 내렸다.

차에서 뛰어 내린 길은 바로 수리조선소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약 100여 미터를 나아가던 길의 발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빛 하나 없는 밤하늘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길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들려오고 있었다.

헬리콥터가 다가오고 있었다.

***

NIA 요원들, 야닌이 방콕에서 직접 데려온 요원들이 격납고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 손을 보여, 야닌이 조금 전 했던 말들과 비슷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요원들의 외침은 파동의 형태로 격납고 안에 모든 사물에 난반사했다.

그러나 야닌의 귀에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감각은 모두 닫혀 있었다.

오직 시각만이, 데이빗 박을 담고 있는 그녀의 그 눈동자만이 두뇌와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가 여기 있었다.

그의 흔적을 찾아, 1급 승진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모두의 반대를 감수하고 이곳에 왔다. 복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음에도, 1급 승진이 날아갈 수 있음에도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데이빗 박의 꼬리를 잡기 위해, 작은 흔적 하나를 찾기 위해서.

그런데 그가 여기 있었다. 그녀의 몇 미터 앞에 그가 서 있었다.

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야닌의 입이 열렸다.

“……데이빗.”

야닌이 입에서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처음으로 그녀의 청각을 깨웠다.

“데이빗 박.”

그녀가 그의 풀네임을 말했다.

“데이빗 박!”

야닌이 그의 얼굴로 총을 겨누며 그 이름을 강하게 외쳤다.

격납고 안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

한규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여자,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총구가 그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한규호는 총구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다.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이 그녀의 눈동자에 요동치고 있었다.

누구지?

그 눈을 본 한규호의 생각이었다.

분명 그를 알고 있었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이유가 없었다.

그 여자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데이빗 박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왔다.

총구가 머리를 향했다.

그를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좋은 감정은 아니었다.

태국에서 나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여자가 누구지?

그런 생각을 하던 한규호는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대화를 떠올렸다.

미얀마 중부에 있는 휴양도시 칼로에서, 완과 마주 앉아 생각보다 괜찮은 크로아상을 먹던 그때, 완이 했던 말.

-태국에서도 바로 알았겠군요. 그녀는 카지노에 상주하다시피 하니까. 본명은 모르고, 우리는 남 아줌마라고 불렀어요. 당신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했던 그 태국 여자 딜러. 살집이 있는…….

그녀였다. 그녀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돼지 아줌마. 그녀였군.

한규호가 그녀를 알아보았다.

“살을 많이 뺐군요.”

한규호가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니 못 알아볼 수밖에. 오랜만이군요.”

그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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