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97화 (297/386)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49)

곽용신도 말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문 옆에 서 있는 남자, 태청무역 수출입 4과 한규호 과장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한규호 과장의 모습에서 김형원의 얼굴을 보았다.

-빠르게…… 지원팀을 보내지.

마지막 통화에서 김형원 사장이 그렇게 말했다. 지원팀을 보내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곽용신은 알고 있었다. 지원팀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김훈과 유만호, 그리고 방콕지부장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지원팀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전화를 한 것이다. 경찰, 그리고 관광경찰 핫라인에 테러를 일으키겠다고 예고를 한 것이다.

그런데, 한규호가 문 옆에 서 있었다. 김형원이 진짜로 지원팀을 보낸 것이다.

한규호를 보면서, 그 모습에서 김형원을 보면서, 곽용신의 가슴속에서 감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불씨 하나가 가슴속에 가득 들어찬 인화성 물질에 불을 붙인 것처럼 감정이 뜨겁게 폭발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김형원이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어쩌면 살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그런 곽용신에게 한규호가 다가왔다. 마치 친구를 만나러 오는 듯한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그에게 걸어왔다.

그러나 곽용신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규호를 보지 않았다. 계속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규호를 따라서, 문을 열고 들어올 지원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문을 통해, 특공대든, 국정원 요원이든, 아니면 다른 독립요원이든, 하다못해 태국 경찰이라도 들어오기를 기대하며 계속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왜 안 들어오지?

곽용신이 그렇게 생각하던 그 순간, 그의 어깨에 한규호의 손이 닿았다.

어느새 곽용신에게 다가온 한규호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소?”

한규호가 물었다.

곽용신의 시선이 움직였다. 한규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묻고 싶었다.

설마 혼자 왔냐고.

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정말로 혼자 왔을까 봐.

그의 마음속에서 끓어올랐던 안도감과 희망이 사라지게 될까 봐.

그때 질문 소리가 들렸다.

“혼자 온 건가?”

곽용신이 묻고 싶던 질문이었다.

***

곽용신을 바라보던 한규호는 질문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둘 중 하나가 죽으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했던 남자가 한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규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잠시 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주 선생. 주 선생이셨군.”

한규호가 말했다.

트라이앵글에 있는 프라이멀 카지노에 갔을 때, VIP 게임 룸에서 같이 바카라를 하던 바로 그 남자, 데이빗 박을 찾기 위해 그의 사진을 여기저기 뿌려 댄 남자가 거기 서 있었다.

대니얼 양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기억해 준다니. 기쁘군.”

대니얼 양이 말했다.

“기억하지.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한규호가 말했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거든. 우리 박 사장이 보고 싶어서.”

대니얼 양이 말했다.

“날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한규호가 말했다.

“알고 있었으면 찾아오지 그랬나.”

“뭐, 그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리 좋은 추억은 아니었으니까.”

“섭섭하군. 우리 그때 즐거웠는데.”

“나는 재미없었어. 콘셉트를 잘못 잡아서.”

“콘셉트?”

“실없는 한량 흉내를 낸다고 당신 앞에서 재롱을 떨었지. 그냥 과묵하고 싸가지 없는 콘셉트였으면 편했을 텐데.”

한규호가 말했다.

“내가 용돈도 많이 주고 했는데. 그게 다 연기였다니. 어쩐지 섭섭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만 달러 칩을 줬었지. 내가 충성을 다하겠다고 했고. 잊고 싶은 기억이군.”

그 말에 대니얼 양이 다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다시 물어보지. 혼자 온 건가?”

“특수부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 믿어 주려나?”

“아니.”

“역시 그렇겠지?”

한규호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확인을 안 해 볼 수는 없군.”

대니얼 양은 그렇게 말하고, 부하 중 한 명에게 손짓으로 밖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보냈다.

지시를 받은 부하가 재빨리 문밖으로 뛰어나갔다가 금방 다시 들어와 아무도 없다고 보고했다.

“설마, 진짜 혼자 온 건가?”

“번잡스러운 것을 싫어해서.”

한규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놀랍군. 그때도 그랬지만, 박 사장, 자네는 항상 나를 놀라게 하는군. 하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어. 다른 사람이 혼자 왔다면 그 멍청함을 비웃어 주겠는데, 자네는 뭘 꾸미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단 말이지.”

대니얼 양은 그렇게 말하고,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격납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부하들이 날붙이나 둔기 같은 무기를 집어 들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를 뜨는게 좋겠군. 얌전히 우리와 같이 간다면 다치지는 않을 거야. 나는 박 사장을 정말 보고 싶었거든. 박 사장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솔직한 심정이야.”

대니얼 양이 말했다.

“나는 얌전히 따라간다 치고, 다른 사람들은?”

한규호가 물었다.

대니얼 양이 의자에 묶여 있는 김승섭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안타깝군. 이 친구는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대니얼 양은 한규호를 제외한 다른 인질들을 이곳에서 처리할 생각이었다. 물론 모용진도 포함해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한규호가 말했다.

“어떻게?”

대니얼 양이 물었다.

“밖에 승합차가 있더군. 그걸 타고 갈까 하는데. 나, 국정원 요원 세 명. 그리고 저기 저 인간도.”

한규호의 시선이 모용진에게 닿았다.

“운전은 주 선생께서 직접 해 줬으면 좋겠군. 묻고 싶은 것도 있고, 인질 역할도 해 줘야 하니까. 당신 부하들이 따라오면 귀찮아지잖아. 기왕이면 당신 부하들은 한쪽 구석에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라고 해 줘. 그러면 다칠 일은 없을 거야. 나는 뭐 다쳐도 상관없어. 솔직한 심정이야.”

대니얼 양이 이해가 안 간다는 눈으로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다. 그러나 전혀 상황과 맞지 않았다.

저 자신감의 원천이 뭐지? 총이라도 가지고 온 것일까?

대니얼 양은 다시 한규호의 전신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백번 양보해서 그가 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기껏해야 권총일 터이고, 권총이라는 것은 다수와의 싸움에서 그다지 효율적인 무기는 아니었다.

“싫다면?”

대니얼 양이 물었다.

“싫다면 억지로 그렇게 만들어야지.”

한규호가 말했다.

“권총이라도 숨겨 놓았나?”

대니얼 양이 물었다.

“아니. 그런 거 없는데.”

한규호가 두 손을 벌려 보이며 말했다.

“맨손으로 상대하겠다?”

“그렇지.”

대니얼 양의 얼굴에서 놀람이라는 감정이 천천히 사라졌다.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데이빗 박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전투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혼자서 다수를, 그것도 무기를 들고 있는 다수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해 봐.”

대니얼 양이 말했다.

“그럴까.”

한규호가 말했다.

***

잘못한 것은 아닐까?

일반 도로를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로 달려가면서 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카와리 빌리지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는 그 남자, 데이빗 박에게 수리조선소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단순히 위치만 알려 준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 최소 열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말해 주었다.

허튼 생각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혼자 그곳에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경고였다.

그는 기다릴 것이다. 길이 올 때까지. 와서 도움을 줄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채무를 안길 수 있다.

그것이 길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수리조선소의 위치를 확인한 데이빗 박은 바로 출발해 버렸다.

드론으로 격납고를 실시간 감시하던 그의 부하들이 데이빗 박이 도착한 것을 확인해 주었다. 격납고 앞을 지키던 세 명을 순식간에 처리한 다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보고해 주었다.

백번 양보해서, 기습으로 세 명 정도는 처리할 수 있다고 해도, 격납고 안에는 최소 여덟, 아홉 명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혼자서 상대하기에 불가능했다.

위치를 알려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길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미 일반 국도에서 시속 100km 가까운 속도로 빠르게 달려가는 차량의 액셀을 더 힘주어 밟았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파타야 담당자가 외쳤다.

“보고 들어옵니다!”

동시에 센터패시아에 전화가 걸려 왔다는 표시가 들어왔다.

길은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방콕에서 온 전화였다.

***

한규호는 오른쪽 종아리 근육에 힘을 주었다.

그것이 유일한 준비 동작이었다.

오른쪽 종아리 근육에 응축된 에너지가 초속 100m의 신경전달 속도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아킬레스건을 타고 오른발 끝으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농축된 에너지가 발끝에서 터져 나오며 운동에너지로 전환되었고, 한규호의 몸이 화살처럼 첫 번째 목표를 향해 쏘아졌다.

한규호가 상정한 첫 번째 목표, 두 시 방향, 5m 위치에서 파이프렌치를 들고 서 있는 남자의 품으로, 0.5초라는 시간에, 오른발 종아리 근육만으로 만들어 낸 시속 36km의 속도로 파고들었다.

첫 번째 목표는 반응하지 못했다. 반응은커녕, 놀라지도 못했다.

자신의 후두융기, 일명 목울대에 한규호의 주먹이 닿을 때까지 대니얼 양과 대화하는 한규호를 바라보던 그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한규호의 주먹이 그의 목에 닿은 그 순간에서야 그의 두뇌는 놀라움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받은 그의 얼굴 근육이 놀라움이라는 표정을 드러내기 전에, 그의 갑상연골이 목 안으로 함몰되었고, 목에서 발생한 고통이 신경을 타고, 전신으로 빠르게 퍼졌다.

고통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그의 손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손가락이 이완되면서 잡고 있던 파이프렌치를 놓아 버렸다.

목울대를 때린 한규호의 손이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며, 막 자유를 얻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려던 파이프렌치를 잡아챘다.

파이프렌치를 잡아챈 한규호의 오른손이 호를 그리며 회전했고, 옆에 서 있던 두 번째 목표의 어깨를 파이프렌치로 강하게 때렸다.

무쇠로 주조된 파이프렌치에 의해 견갑골이 수십 조각으로 박살이 나는 소리가 격납고 전체에 다 전달되기도 전에 한규호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한규호의 손이 올라갔다가 다시 호를 그리며 내려왔고, 그 손에 들린 둔기는 더 큰 지름을 가진 호를 그렸다.

커다란 호를 그린 파이프렌치가 눈높이에 도달하기 직전에, 한규호는 렌치를 놓았다.

흔히 ‘던졌다’라고 표현하는 동작이었다.

호를 그리며 운동에너지를 담뿍 담은 파이프렌치가 메이저리그 투수가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보다 빠른 속도로 세 번째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세 번째 목표는 얼굴에 경악을 표시할 정도의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로 날아오는 파이프렌치를 피하거나 막을 정도의 시간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의 인중에 무쇠로 주조된 파이프렌치가 꽂혔고, 앞니와 윗잇몸, 윗잇몸을 받치는 위턱뼈가 얼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그러나 한규호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미 네 번째 목표를 향해 몸을 돌렸고, 다시 다리에 힘을 주었다.

6m 거리를 단 두 걸음만으로 좁혔고, 착지와 동시에 로우킥으로 그의 무릎 슬개골과 경골이 만나는 지점을 차 버렸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신체 구조상 꺾이지 말아야 하는 방향으로 네 번째 목표의 무릎이 꺾여 버렸고, 자연스럽게 그의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허물어지는 그의 턱에 한규호의 팔꿈치가 꽂혔고, 네 번째 목표의 머리는 목 인대의 허용 범위를 넘어서는 각도로 돌아가 버렸다.

팔꿈치를 회수한 한규호는 바로 사이트 스텝을 밟았다. 그리고 왼쪽 2m 옆에 서 있던 다섯 번째 목표의 가슴에 옆차기를 찔러 넣었다.

사이트 스탭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실린 옆차기가 4번, 5번, 6번 갈비뼈를 박살 내면서, 다섯 번째 목표를 몇 미터 날려 버렸다.

5초.

오른쪽 장딴지에 힘을 준 준비 동작에서부터, 다섯 명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5초에 불과했다.

5초 만에 다섯 명을 처리한 한규호는 움직임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규호를 포함해 격납고에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은 여섯 명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규호를 바라보고 있는 대니얼 양과 모용진 그리고 곽용신. 엉거주춤한 자세로 흉기를 들고 있는 대니얼 양의 부하 두 사람.

“칼 내려놔.”

한규호가 대니얼 양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대니얼 양이 태국에서 고용한 어린 깡패들은 한규호의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의미는 알아들었다.

그들은 재빨리 손에 든 흉기를 던져 버렸다.

“인질도 필요 없겠는데.”

한규호가 대니얼 양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대니얼 양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규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묻고 싶은 게 있으니 일단 운전을 부탁해 볼까?”

한규호가 대니얼 양에게 미소를 지어 주며 말했다.

“저 두 친구에게, 정신 잃은 요원들 부축해서 차에 실으라고 해. 쓸데없는 생각해도 괜찮다고 말해. 죽고 싶으면 말이지.”

한규호의 시선이 모용진을 향했다.

“얌전히 따라오시겠소?”

모용진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규호는 곽용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곽용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뭐 해야 할 것 있소?”

고개를 저으려던 곽용신의 얼굴에 경악이 피어올랐다.

“테러!”

곽용신이 소리쳤다.

한규호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눈빛으로 곽용신을 바라보았다.

“빨리 여기를 떠야 해! 경찰에 테러 예고를 했어! 번호. 번호가 추적당할 거야!”

곽용신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그리고 바지춤에 손을 넣어 사타구니 사이에 숨겨 놓은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한규호의 시선이 그의 손에 들린 전화기로 향했다.

바 형태의 피처폰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모두 움직이지 마!”

그때 입구 쪽에서 하이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한규호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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