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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95화 (295/386)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47)

사눅 파크를 출발한 곽용신은 뒷자리에 앉아 허리에 칼날을 가져대 대고 있는 남자의 지시에 따라 30분 넘게 오토바이를 몰고 있었다.

그 30분 동안, 곽용신은 뒷자리 남자의 지시에 따라 계속 골목길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골목길 안에서도 계속 방향을 바꿔야 했다.

곽용신은 남자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는 미행을 걱정하는 것이다.

진짜로 곽용신이 혼자인지, 누군가가 뒤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확인하려고 일부러 좁은 골목길을 우회하며 경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따라올까 봐 긴장하는 것은 곽용신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누군가가 따라와야 했다.

곽용신은 추적당하기 위해 전화기를 구입했고, 전화로 테러를 일으키겠다고 예고했고, 심 카드를 바꿔 꼈고, 전화기를 사타구니에 숨겼다.

하지만 김승섭과 홍성민을 만나기도 전에 경찰에게 추적당하고, 잡혀 버린다면, 판을 흔들겠다는 그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적어도, 김승섭과 홍성민의 얼굴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잡히지 말아야 했다.

곽용신은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나 혼자뿐이라고, 지원팀 같은 것은 없다고 설득하고 싶은 욕망과, 언제 경찰이 따라붙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계속 오토바이를 몰아가고 있었다.

불안감이 조금씩 커져 가던 그때, 뒷자리에 탄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멈춰. 천천히.”

30분 동안 왼쪽, 또는 오른쪽 방향 지시만을 내렸던 남자가 처음으로 멈추라고 말했다.

곽용신은 액셀을 잡은 오른손에 힘을 천천히 풀었다.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며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허튼 생각하지 마.”

남자가 곽용신의 옆구리에 닿은 칼을 조금 더 강하게 찌르면서 말했다.

다음 단계다.

곽용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뒷자리 남자는 30분을 배회하고 나서야 미행이 없다고 확신했고, 그 사실을 보고하려 하는 것이다.

곽용신은 뒷자리에 앉은 남자의 움직임을 느꼈다. 그 남자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약 20여 초 정도, 메시지를 보내고, 답을 받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남자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출발해. 천천히. 허튼 생각 하지 말고.”

곽용신은 다시 고개를 끄덕인 후, 액셀을 잡은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며 오토바이가 다시 앞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엔진 회전수만큼 곽용신의 심장박동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답이 왔을까? 뭐라고 왔을까?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일까? 아니면 다시 골목을 배회하게 될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교차로에서 좌회전 대로로 진입한 다음 속도를 높여.”

다음 단계다.

곽용신은 확신했다.

***

파타야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온 길이 약속 장소인 오션 라이프 인슈어런스 앞에 도착하자, 건물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파타야 지역 담당자가 빠르게 다가와 문을 열었다.

담당자가 조수석에 엉덩이를 붙이는 것을 보자마자, 길은 액셀을 밟아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담당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당황하지 않고 안전벨트를 당겨 버클에 끼웠다.

“오션마리나?”

길이 담당자에게 물었다.

길은 오라오라투어에서 소란을 일으킨 정체불명인 납치범들의 최종 도착지가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오션마리나, 좀티엔 남부에 위치한 요트 정박지, 동시에 파타야로 통하는 주요 밀입국 게이트에서 그들이 멈추었다는 보고를 파타야에 도착하기 전에 받은 상태였다.

“정확히는 오션마리나 남쪽 100m 지점에 위치한 수리조선소입니다.”

“수리조선소?”

“중소형 요트를 수리 하거나 개조 작업을 하는 일종의 정비공장입니다. 현재 운영 중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길은 담당자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드론은 아직 떠 있습니까?”

길이 물었다.

담당자는 차량을 추적하기 위해 드론을 띄웠다.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를 장착한 개조 드론을 띄워 차량을 추적하고 위치를 찾아낸 것이다.

“아직 떠 있습니다. 하지만 운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추적팀에서는 길어야 15분 정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그 남자는 어디쯤 있습니까?”

길이 데이빗 박의 위치를 물었다.

“현재 나카와리 빌리지 인근입니다. 수리조선소에서 4km 떨어진 위치입니다.”

“위치만 알려 주면 바로 갈 수 있겠군요.”

“몇 분 안에 가능합니다.”

“크라쓰이는?”

크라쓰이. 목과 가슴 일부만 남아 있는 처녀 귀신의 이름, 그리고 NIA의 2급 요원 야닌의 별명.

길은 그녀가 며칠 전 파타야로 내려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복귀 명령이 떨어진 것도, 그녀가 그 명령을 거부하고 계속 파타야에 머무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경찰서를 떠난 것은 확인되었지만, 집행사무소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재 위치도 불명입니다.”

길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테러 관련 사안에서 NIA가 빠질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녀가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언가 있어.

길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체불명의 납치범, 4km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데이빗 박,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파타야에 내려와 있는 야닌, 갑자기 걸려온 테러 협박 전화.

마치 테이블에 널브러져 있는 직소 퍼즐 조각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이음새만 맞추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될 것 같은데, 중간 중간에 퍼즐이 빠진 것처럼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무언가 있어.

길이 속으로 열심히 퍼즐들을 맞춰 가고 있을 때, 담당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추적팀에서 보고 들어옵니다.”

길은 담당자를 바라보았다.

담당자는 오른손을 귀에 가져간 상태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어셋으로 현장 추적팀에게 실시간 보고를 받는 것이다.

“오토바이 한 대가 수리조선소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

길은 오토바이라는 단어에서 데이빗 박을 떠올렸다.

최종 목적지를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성인 남성 두 명, 그 남자는 아닙니다.”

담당자가 빠르게 말했다.

***

야닌의 손에 들려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야닌은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전화기를 귀에 가져가기도 전에 전화기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GPS 신호가 멈추었습니다.

제이크의 목소리였다.

“어디?”

야닌이 물었다.

-좀티엔 글로벌 쉽야드입니다. 오션마리나 100m 남쪽에 있습니다.

“좀티엔 글로벌 쉽야드. 오션마리나 남쪽 100m.”

야닌이 제이크의 말을 복창했다.

태블릿을 들고 있던 요원이 야닌의 말을 듣고 재빨리 태블릿을 조작해 위치를 찾아냈다.

“15분입니다!”

태블릿을 들고 있던 요원이 외쳤다.

“15분 거리. 이대로 들어간다.”

야닌이 제이크에게 말했다.

-안 됩니다. 지금 지원팀을 보내겠습니다.

제이크가 말했다.

“아니. 이대로 들어간다.”

야닌이 말했다.

-안 됩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제이크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야닌은 그대로 통화를 끊어 버렸다.

“장비 점검해.”

야닌이 차에 타고 있던 다른 요원들에게 말했다.

***

“안 됩니다!”

제이크가 소리쳤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상황실에 있던 요원들이 모두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제이크는 전화기를 얼굴에서 떼어 내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전화가 끊겼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

“젠장할!”

제이크는 소리를 질렀다.

제이크는 야닌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야닌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제이크는 전화기를 집어 던졌다.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받지 않는 전화를 계속 거는 행동은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할 뿐이었다.

“90팀 현재 위치!”

제이크가 상황 요원에게 소리쳤다.

90th 테스크포스(หน่วยปฏิบัติการเฉพาะกิจ 90 ). 정식 명칭 Special Operation Battalion, King's Guard, 1 특전군 디비전 소속 대테러 강습 부대의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를 물었다.

“집행 사무소 인근입니다. 5분 이내에 강습 가능합니다.”

상황 요원이 외쳤다.

“강습 중지! 그대로 좀티엔으로 이동 명령 하달해!”

제이크가 상황 요원에게 외쳤다.

“네?”

상황 요원이 되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90팀은 킹스 가드(King's Guard) 직할이었고, 대테러 상황에서 NIA의 지시를 받기는 했지만, 제이크는 그들을 움직일 권한이 없었다.

제이크는 상황 요원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멱살을 틀어잡으며 말했다.

“요원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싶나?”

제이크가 씹어 삼킬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이동 명령 하달해!”

제이크가 상황 요원의 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

‘Jomtien Global Shipyard’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 밑에 오토바이를 세운 곽용신은 뒤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남자의 지시에 따라 눈앞에 보이는 건물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곽용신이 어둠 속에 서 있는 건물을 처음 보았을 때는 창고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그 건물은 창고가 아니었다.

건물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폐선박의 잔해가 이곳이 일반 창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선박을 수리 하는 격납고였다.

곽용신은 폐선박 잔해를 바라보면서 얼마 전 홍성민에게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태국에서 가장 많은 요트가 등록되어 있는 곳이 바로 여기 파타야고, 누가 빌리느냐에 따라 관광객 요트도 되고, 밀수선도 되고 그러는 거지. 등록 안 된 요트까지 합하면 뭐, 여기서 흔적 없이 빠져나가는 거야 순식간이지.

납치범들은 바다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속도 늦추지 말고 계속 걸어.”

뒤에서 칼을 겨눈 채 두어 발 떨어져 걷던 남자가 곽용신에게 말했다.

곽용신은 잔해에서 눈을 거두고 다시 격납고를 바라보았다. 건물 3층 정도의 높이, 웬만한 중소형 요트는 들어갈 정도의 규모처럼 보였다.

곽용신이 다가가자 격납고에서, 정확히는 격납고의 그림자가 만들어 낸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모습을 보였다.

곽용신은 그들을 보았다.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소년티가 묻어 있는 두 사람이 곽용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각각 둔기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보초로군. 일단 세 명.

곽용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보초라고 한다면 곽용신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

곽용신의 생각대로, 보초 역할을 하는 남자 둘은 곽용신 뒤에서 따라오는 남자를 확인하고 길을 비켜 주었다.

곽용신은 그들을 무시하고 앞으로 몇 미터를 더 걸어갔다.

격납고 문 옆에도 한 남자가 지키고 있었다.

동아시아인. 손목에 붕대, 얼굴에 부상을 입었고. 전투력은 저하된 상태.

곽용신은 빠르게 그를 분석했다.

곽용신 뒤에서 따라오던 남자가 문 옆을 지키고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

중국어. 중국 놈들일까?

중국어를 들은 남자가 격납고 한쪽에 있는 문,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문을 열어 주었다.

문이 열리고,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들어가.”

뒤에 따라오던 남자가 말했다.

지금까지 네 명.

곽용신은 그렇게 되뇌며 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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