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94화 (294/386)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46)

1990년 6월 23일 개원한 방콕 병원 파타야 분원(分院)은 촌부리주를 대표하는 종합병원 중 하나였다.

태국 최고라고 평가받는 BHG(Bangkok hospital Group) 계열 병원답게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는 물론이고, 호텔 수준이라고 평가받는 병실과 편의 시설, 24시간 통역사 상주 등 기타 서비스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방콕 병원 파타야 분원의 가장 큰 강점은 방콕 병원 본원과의 연계였다.

Sky ICU 서비스라고 불리는 응급헬리콥터 이송 서비스는 파타야에서 유일하게 방콕 병원 파타야 분원만이 운영하는 서비스였다.

그렇기에 방콕 병원 파타야 분원 옥상에 마련된 헬리포트에 헬리콥터가 이착륙하는 장면은 그리 보기 드문 장면은 아니었고, 이날, 늦은 밤에 파타야 병원 옥상으로 접근하는 하얀색의 응급헬리콥터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았다.

약 30분 전 방콕 병원 본원에서 출발한 응급헬리콥터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면서 헬기장으로 접근했다. 그 안에 한규호가 타고 있었다.

한규호는 창문 너머로 파타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계적인 유흥의 도시답게, 파타야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한규호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단지 시선을 그쪽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규호는 길이라는 이름의 정보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병원에 응급헬리콥터가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으로 이동할 때만 해도 완전히 그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5분, 고작 5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종합병원의 응급헬리콥터를 수배했다는 이야기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구급차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헬리콥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래서 한규호는 오토바이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가면서도 함정의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헬리콥터는 준비되어 있었다. 병원 직원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한규호를 바로 옥상에 있는 헬리포트로 안내했고, 하얀색으로 도색된 응급헬리콥터의 로터는 이미 회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한규호가 헬리콥터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자 바로 헬리콥터는 이륙했고, 낮은 고도를 유지하며 빠르게 날아와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파타야에 도착한 것이다.

조직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정보상이라고 해도 혼자서 5분 만에 응급헬리콥터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지금은 그 조직이 한규호에게 도움이 되고 있지만, 앞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물론 위험이 된다고 판단되면 그때 처리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당분간은 귀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헬리콥터가 부드럽게 착륙했다.

-착륙했습니다.

헤드셋을 통해 탑승 승무원의 안내가 흘러나오기 무섭게, 한규호는 헤드셋을 벗고 벨트를 풀어 버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렸다.

로터가 만들어 내는 강한 바람이 한규호의 몸을 때렸다. 그러나 한규호는 개의치 않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한규호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방콕 병원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흑인 중년 남자였다.

“차량이 준비되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영어로 그가 말했다. 특이한 억양이었다.

한규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바로 몸을 뒤로 돌렸다.

남자를 따라 건물로 들어서자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병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잡아 놓고 있었다.

남자를 따라 한규호가 엘리베이터를 타자, 남자는 바로 지하 4층 버튼을 누른 다음에 문을 닫아 버렸다.

문이 닫히자, 중년 남자가 한규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콕에서 한국인 요원에 대한 위치를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고, 바로 여행사를 감시했습니다. 그곳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을 확인했고, 세 명의 남성이 정신을 잃은 채로 승합차에 실렸습니다. 홍성민 요원은 그들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중년 남자가 빠르게 보고했다.

한규호는 남자의 억양에서 유럽 쪽 느낌을 받았다. 모음으로 끝나는 이탈리아어의 특성이 묻어 있었다.

“납치?”

한규호가 물었다.

“그렇게 추측됩니다.”

남자가 답했다.

“어디로 갔는지 확인되었습니까?”

“현재 추적 중입니다. 아직 최종 목적지에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보고에 따르면 차량은 남쪽 방향 수쿰빗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계속 이동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좀티엔 방향입니다. 목적지가 확정되는 대로 바로 좌표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자연스러웠다. 마치 준비된 대사를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엘리베이터가 지하 4층에 멈추었다. 문이 열리자 바로 주차장이 보였다.

“이쪽입니다.”

한규호를 안내한 중년 남자가 앞서 걸어갔다. 한규호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대략 20여 미터를 걸어가자 한쪽에 주차되어 있는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었다.

혼다에서 나온 CB400 Super Four. 400cc 엔진을 가진 오토바이였지만, 워낙 판매 수량이 많아, 그다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지 않는 구형 네이키드 바이크였다.

“오토바이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혹시 몰라 차량도 준비해 놨습니다.”

중년 남자가 주차장 다른 한쪽을 가리켰다. 구급차 한 대가 서 있었다.

한규호는 구급차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CB400 핸들 바에는 휴대전화용 핸즈프리가 장착되어 있었고, 핸즈프리에는 스마트폰이 거치되어 있었다.

스마트폰에는 내비게이션용 지도가 켜져 있었고, 경로가 찍혀 있었다.

“내비게이션 목적지는 좀티엔으로 설정해 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고된 차량의 위치입니다.”

중년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뒷좌석에 놓여 있는 헬멧을 들어 한규호에게 건넸다.

“헬멧에는 블루투스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최종 목적지가 확인되면 여기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청 사항이 있으시면 핸들 바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두 번 누르시면 바로 저와 통화하실 수 있습니다.”

한규호는 헬멧을 받아들면서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에는 어떠한 감정적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일을 해 본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조직이 확실하군.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헬멧을 썼다.

그리고 오토바이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400cc의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배기음이 지하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길이 말했다.

조금 전 방콕 병원 파타야 분원에 도착한 데이빗 박이 병원에 근무하는 부하를 만났고, 오토바이를 타고 남쪽으로 달려갔다는 전직 GIGN 출신 파타야 담당자의 보고에 대한 대답이었다.

-마르코는 철수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사무실로 오시겠습니까?

담장자가 말했다. 병원에서 한규호를 상대했던 부하를 만나보겠냐는 질문이었다.

“아니. 일단은 그를 따라가도록 하지요. 저와 합류했으면 합니다. 파타야 입구까지 대략 30분 정도 남았습니다.”

길이 말했다.

-30분. 알겠습니다.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면 50m 앞에 오션 라이프 인슈어런스가 있습니다. 그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약속 장소를 정한 길은 핸들에 달린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운전에 집중하기 위해 전방에 시선을 고정했다.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50분, 방콕에서 출발해 파타야로 가는 50분의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홍성민의 여행사에는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들이닥쳤고, 홍성민을 포함해 몇 명의 인물이 납치되었다.

파타야에 테러를 일으키겠다는 협박 전화가 경찰에 걸려 왔다. NIA 본부가 있는 두짓, 태국 왕립경찰본부, 촌부리주 경찰, 파타야 경찰, 방콕과 파타야를 담당하는 11보병사단이 뒤집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길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가 태국에 와서 정보상 일을 시작한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예측 못 한 상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적은 없었다.

처음 차논이 정체불명의 의뢰인을 만났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까지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거기에서 시작한 작은 날갯짓 하나가 태풍이 되어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길은 다시 내비게이션을 힐끔 보았다. 여전히 파타야까지 남아 있는 시간은 30분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길은 오른발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이미 시속 120km가 넘는 속도였지만, 길은 전혀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다시 신호가 잡혔습니다.

전화에서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타야로 데려온 요원 몇 명과 촌부리 법원 파타야 지소를 향해 달려가던 야닌은 제이크의 말을 듣자마자 옆에 있던 요원에게 손짓을 했다.

옆자리 요원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에서 재빨리 지도 어플을 켜서 그녀 쪽을 향해 보여 주었다.

“어디.”

-사눅 파크입니다. 파타야 카트 스피드웨이 인근입니다.

제이크의 말에 그녀는 재빨리 손가락으로 움직여 파타야 카트 스피드웨이를 찾았다.

파타야 카트 스피드웨이 바로 인근에 사눅 파크가 보였다. 그들이 달려가는 촌부리 법원 파타야 지소에서 동쪽으로 2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찾았어. 계속 거기에 있어?”

-이동 중입니다. 9번 골목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야닌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텝 프라싯 9번 골목을 찾아냈다.

-계속 이동하면 좀티엔 세컨드로드로 연결됩니다.

“확인했어. 지금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있는 거야?”

-신호가 약합니다. 잡혔다 끊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티엔 세컨드로드로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알았어. 추가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 이야기해 줘.”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전화를 끊은 야닌은 특별한 지시 없이 계속 지도를 바라보았다.

지도를 바라보면서, 좀티엔 세컨드로드와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골목을 살펴보면서, 왜 테러를 일으키겠다고 협박 전화를 걸어온 한국 전화번호가 남쪽으로, 좀티엔으로 달려가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테러라고 했다. 순차적으로 폭발물을 터트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협박 전화를 걸어온 번호는 좀티엔으로 가고 있었다. 상황에 맞지 않았다.

끊겼던 신호가 다시 연결된 것도 이해가 안 되었다. 다시 전원이 켜졌고, 남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

미끼? 아니면 따라오라는 신호?

야닌은 그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실제 폭발 장소에서 시선을 떨구기 위한 미끼이거나, 아니면, 따라오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거나.

“법원 분소까지 얼마나 남았지?”

야닌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요원에게 물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5분 안에 도착합니다.”

운전대를 잡은 요원이 말했다.

“이대로 계속 직진해.”

야닌이 말했다.

“좀티엔 세컨드로드로 간다. 속도 줄이지 말고,”

야닌이 테러가 예고된 법원을 지나칠 것을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야닌의 지시를 받은 요원이 빠르게 대답하고, 액셀을 밟은 오른발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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