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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91화 (291/386)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43)

대니얼 양은 고개를 저었다.

직접 전화를 받겠다며 손을 내민 모용진에게 확실한 거절의 의사표시를 보여 주었다.

대니얼 양은 모용진에게 전화를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넘겨주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모용진이 전화를 받으면 한국어로 대화할 것이 분명했다. 대니얼 양은 한국어 대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를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두 번째로,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상관처럼,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는 것처럼, ‘내가 받지’라고 말하며 손을 내미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모용진이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했다. 쓸데없는 말을 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은 제가 먼저 받도록 하지요. 안전을 위한 조치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니얼 양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양해해 달라는 듯, 모두 다 모용진을 위한 의도라는 것을 이해해 달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모용진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런 말 하지 않고 내민 손을 거두어 갔다.

대니얼 양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가 연결되고 대니얼 양이 스피커폰 모드로 전환하기도 전에, 전화기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국말이었다.

***

택시 뒷자리에 앉아 있는 곽용신은 초조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얼굴에 대고 있었다. 홍성민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전화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홍성민이 전화를 받을 수 있다면, 곽용신에게서 걸려 온 부재중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진작 다시 전화를 걸어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파타야로 가면서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혹시나 전화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으로 홍성민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귀 옆에 붙어 있는 전화가 짧게 진동했다. 통화가 연결되었다는 신호였다.

“야! 이 자식아! 대체 지금 어디야!”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곽용신이 크게 소리쳤다. 안도감과 분노가 함께 섞여 있는 고함이었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짧은 안도감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불길함이 그 자리를 빠르게 메운 다음, 곽용신의 등줄기를 빠르게 타고 흘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런 불길함이었다.

잠깐의 침묵 후에 전화기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곽 요원님이십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가 물어왔다. 영어였고, 처음 들어 본 목소리였다.

영어, 처음 들어 본 목소리, 그리고 약간 울리는 음성.

곽용신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누군가가 홍성민의 전화기를 가지고 스피커폰 모드로 전화를 받고 있는 것이다.

“……누구냐.”

곽용신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질문은 제가 먼저 했습니다. 곽용신 요원님 맞으십니까?

상대방이 말했다.

곽용신은 스피커폰 모드라고 확신했다.

“……그래. 당신은 누구지?”

곽용신이 말했다.

-곽 요원님, 반갑습니다. 처음 인사드리는군요.

상대방이 말했다.

“누구지? 당신은?”

곽용신이 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질문을 받지 않겠습니다.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 전화기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말이죠.

전화기 너머의 상대가 말했다.

홍성민을 확보하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답 대신이라고 하기는 무엇하지만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인사 나누시죠.

상대방이 말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한국어가 들려왔다.

-나를 찾으러 왔나?

세월이 묻어 있는 목소리.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모……용진.”

곽용신이 그 이름을 씹어뱉듯 말했다.

-예의가 없군. 김승섭도, 자네도.

모용진이 말했다.

곽용신은 눈을 감아 버렸다.

모용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홍성민의 전화가 그의 손에 있다. 그리고 김승섭의 이름이 나왔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숨이 막혔다. 순간적으로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지금 어디지?

곽용신은 억지로 흉곽을 확대했다. 숨을 쉬기 위해서, 질문하기 위해서.

“두 사람은 괜찮나?”

곽용신이 물었다.

-지금 어디지?

모용진이 다시 물었다.

-두 분, 잠시만.

처음 영어로 말했던 남자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영어로 말씀해 주시죠.

그가 말했다.

-말해. 지금 어디인지.

그러나 모용진은 다시 한국어로 말했다.

곽용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의 상황을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정체불명의 남자는 영어로 이야기해 달라고 말했고, 모용진은 계속 한국어를 고집했다.

갈등이 생겼고 그 갈등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주도권을 누가 가졌는지 판단할 수 있었다.

-곽 요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처음 남자가 말했고, 잠시 동안 전화기에서 소리가 멀어졌다.

곽용신은 그들이 스피커를 막은 채,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곽용신에게는 작은 행운이었다. 곽용신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으니까.

평정심을 유지할 것, 목표에 집중할 것, 생각하고 말할 것, 감정적인 적을 만들지 말 것.

곽용신은 그 짧은 시간 동안 협상의 대원칙 네 가지를 기억해 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전화기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어였고, 처음 전화를 받은 남자였다.

“괜찮습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첫 번째 원칙을 다시 떠올리며 곽용신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지요. 홍성민 요원은 전화를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모 선생이 이야기를 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김승섭 요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화해서 확인해 보신다 하셔도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곽용신이 말했다.

그 남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지금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쓸데없는 말로 상대방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우선 어디 계신지 궁금하군요. 지금 위치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남자가 물었다.

“홍성민과 김승섭은 안전합니까?”

곽용신은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도록 최대한 차분한 말투로.

-말씀드렸다시피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질문을 하나씩 주고받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두 사람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없이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곽용신이 말했다.

협상의 기술 두 번째. 목표에 집중할 것.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두 사람의 안전이었다.

-안전하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두 사람은 안전합니까?”

곽용신이 다시 물었다.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지금은.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말했다.

지금은.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곽용신은 미약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은 두 사람이 안전하다고 전제를 깔기로 했다.

“고속도로입니다. 지금 파타야로 가는 중입니다.”

곽용신이 남자의 질문에 답했다.

-좋습니다. 이렇게 매끄러운 대화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군요. 지금 몇 분이 오고 계시죠?

“혼자입니다.”

곽용신이 답했다.

-혼자…… 오고 계신단 말씀입니까?

상대방이 다시 물었다.

“두 사람은 안전합니까?”

곽용신이 물었다.

나는 너의 말을 믿었다. 그러니 너도 나의 말을 믿어라.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질문이었다.

-제가 실례를 했군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첫 통화에서 상대방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두 사람은 나의 지시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 둘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두 사람을 놓아주신다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곽용신이 말했다.

-제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모용진에 대한 모든 추적을 중단하겠습니다.”

곽용신이 말했다.

-솔직히 그리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군요. 추적을 계속하셔도 저는 별로 상관없습니다만.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곽용신이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가 말했다.

-전화상으로 이야기가 길어지면 의도치 않는 오해가 발생하고는 합니다.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하도록 할까요? 만나실 의향이 있다면 말입니다.

“두 사람을 놓아주신다면.”

곽용신이 말했다.

-만난 후로 하는 것으로 할까요? 아시다시피 제가 우위에 서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의 말이 맞았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베팅할 순서였고, 곽용신은 콜인지, 드롭인지밖에 선택할 수 없었다.

사실 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테이블에 김승섭과 홍성민이 올라가 있었다.

“……위치를 알려 주시죠.”

곽용신이 말했다.

-파타야에는 언제쯤이면 도착할까요?

곽용신은 정면을 바라보았다. 운전자 옆 내비게이션에는 파타야까지 25분가량 남아 있다는 표시가 있었다.

“대략 40분. 여유 있게 50분.”

-35분 후에 오실 장소를 문자로 보내 드리도록 하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혼자라는 것이 확인되면, 우리는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걸어온 이 번호로 메시지를 보내면 되겠죠?

“……알겠습니다.”

곽용신이 말했다.

-이제 이 전화로는 통화가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

곽용신은 끊어진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차분한 눈빛으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의 심장은 전력 질주를 한 단거리 주자처럼 빠르게 뛰고 있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온몸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후회라는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홍성민의 문자를 빨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혼자만 공항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여행사에서 바로 철수하기로 결정했어야 했는데, 김승섭과 홍성민을 이번 작전에 투입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태국에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곽용신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술이 찢어지고 비릿한 혈향이 느껴졌다.

곽용신은 비릿한 혈향을 느끼면서 자신에게 소리 질렀다.

후회하지 마.

그렇게 소리쳤다.

후회하지 말라고. 지금은 후회할 때가 아니라고.

곽용신은 손에 든 전화기를 꽉 쥔 채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해. 어떻게 할지 빨리 생각해.

그렇게 자신에게 명령했다.

만약, 정체불명 남자의 말처럼, 모용진의 말처럼, 홍성민과 김승섭이 그들의 손에 떨어졌다면, 곽용신이 간다고 해도 그들을 구출해 낼 방법이 없다.

그러나 안 갈 수도 없었다.

방콕 지부에서는 지원을 받을 수 없고, 설사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1분1초가 금보다 더 값진 지금 상황에서 지원팀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다.

김형원.

그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 상황에서 외부의 지원이나 도움은 없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곽용신이 모용진 일당을 만난다 하더라도, 홍성민과 김승섭을 구출하기는 쉽지가 않다.

아니, 구출은커녕, 곽용신 또한 불구덩이 한가운데에 뛰어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그도, 홍성민도, 김승섭도 모두 죽는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는 없다.

생각해. 생각을 멈추지 마.

곽용신은 손이 하얗게 될 정도로 힘주어 전화기를 꽉 잡고서 생각하고 계속 생각했다.

방법을 생각해야 해. 판을 흔들 방법을.

판을 흔들어야 해. 판을 흔들어야 해.

그 순간 곽용신의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판을 제대로 흔들 수 있는 아이디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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