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90화 (290/386)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42)

“굿 타이밍.”

대니얼 양은 쓰러진 김승섭 뒤에서 전기충격기를 들고 서 있는 부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동향을 감시하라고 밖에 남겨 둔 부하, 파타야에서 고용한 어린 양아치 중 하나가 김승섭 몰래 여행사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전기충격기를 집어 들고 김승섭에게 전기충격을 가한 것이다.

한 번만 쓰고 버릴 생각이었는데, 그중에 이렇게 쓸 만한 놈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니얼 양은 뒤를 돌아보았다. 김승섭에게 손목과 무릎을 차이고, 턱을 밟힌 4조 부조장이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저놈이 가져가는 돈이 얼마였더라.

대니얼 양은 쓰러진 부조장을 보며 생각했다.

대니얼 양은 다시 김승섭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음에 들었다. 순식간에 두 명을 무력화시킨 그의 무력도 마음에 들었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배짱도 마음에 들었다.

그가 국정원에서 얼마를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많아도 부조장이 가져가는 돈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연봉 협상을 이야기했었지. 얼마를 주면 이자를 가질 수 있을까? 옵션은 안 되겠지만.

대니얼 양은 쓰러져 있는 김승섭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김승섭의 연봉을 생각하고 있는 대니얼 양에게 모용진이 다가왔다.

“이제 어떻게 할 거요?”

모용진이 물었다.

대니얼 양은 다시 고개를 돌려 모용진을 바라보았다.

모용진의 얼굴에 불쾌감이 묻어 있었다.

대니얼 양은 그가 왜 불쾌감을 느끼는지 알고 있었다.

모용진은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소동이 일어났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도망치는 쥐새끼처럼 어서 빨리 쥐구멍에 숨고 싶은 것이다.

이놈에게는 얼마를 준다고 했었지?

대니얼 양은 모용진의 얼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가 요구했던 연봉이 100만 달러였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100만 달러. 그만큼의 가치가 없는 인물이었다. 김승섭이라면 몰라도.

하지만 대니얼 양은 미소를 지으며 모용진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모용진은 여전히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부하를 상대하는 상사처럼 행동했다.

대니얼 양은 조금 더 진한 웃음을 지었다.

버려야 되겠군.

그런 의미가 담긴 웃음이었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도록 할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대니얼 양은 모용진에게 그렇게 말하고, 부하들에게 이동을 지시했다.

여행사가 있는 골목이 아무리 외져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건장한 남자 여럿이 서 있는 것은 확실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이 관심 어린 눈으로 여행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승섭을 확보했으니 어차피 여기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었다.

준비라고 해도 별다를 것은 없었다. 그들이 타고 온 차량, 세단 한 대와 승합차 한 대를 여행사 앞에 가져오면 끝이었다.

연락을 받은 차량이 바로 여행사 앞에 도착했고, 대니얼 양의 부하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세 명, 김승섭과 홍성민, 그리고 여행사 직원을 빠르게 차량에 실었다.

그리고 대니얼 양과 모용진, 부하들도 모두 신속하게 차량에 탑승했다.

모두가 차량에 탑승하자, 차량은 바로 출발해 골목을 빠져나갔다.

몇몇 사람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차량이 골목을 빠져나가자 다들 관심을 접고 각자 가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어둠 속에 숨어서, 차량이 골목을 빠져나가 메인 도로로 접어들 때까지 지켜보던 한 백인 남자가 있었다.

그 백인 남자는 차량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방금 골목을 빠져나간 차량의 종류와 번호를 적어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길은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그가 운전하는 차량은 도심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타운외국어학원이 위치한 통로에서 파타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도심고속도로를 이용해 방카피(Bang Kapi)지역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7번 고속도로를 타는 것이었다.

도심 고속도와 방카피 인터체인지는 출퇴근 시간과 상관없이 항상 차량이 몰리는 상습 정체 구간이었지만, 이날은 마치 길에게 어서 빨리 파타야로 가라는 듯 원활한 차량 흐름을 보였다.

길은 오랜만에 운전을 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길은 운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운전이라는 행위는 정보처리의 과정이다. 눈으로 받아들인 시각정보를 뇌에서 분석하고, 다음 상황을 예측해 몸에 신호를 보내는 프로세스의 연속이었다.

길은 운전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쓸데없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웬만하면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예상치 못하게 걸려 온 전화, 그리고 갑자기 발생한 이벤트가 길의 기분을 끌어 올렸고, 고양된 기분을 느낀 길은 오랜만에 직접 운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차를 끌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은 길을 칭찬이라도 하듯, 상습 정체 구간인 도심고속도로가 평소와 달리 뻥 뚫려 있었다.

방카피 인터체인지에 접어든 길은 이 근처에 방콕 병원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정체불명의 데이빗 박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헬리콥터를 탔을까?

그런 생각으로 어두운 하늘을 보고 있을 때, 차 오디오에서 전화가 왔다는 알림음이 들렸다.

길은 센터패시아에 뜬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파타야 담당자의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길은 출발하기 전, 담당자에게 문자로 오라오라투어를 감시하고, 홍성민의 위치를 파악하고, 파타야 전역에 1급 경계를 발령하라고 지시를 내렸었다.

약 30분 전이였다.

그에게 전화가 왔다는 것은 그 30분 사이에 무언가 이벤트가 발생했다는 의미였다.

길은 핸들에 달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말씀하시죠.”

길이 프랑스어로 말했다.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도 프랑스어가 들려왔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길이 말했다.

-지시를 받고 바로 여행사로 왔습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여행사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5분 전에 신원 미상의 한 남자가 여행사에 접근했고, 그가 들어가고 불이 켜진 후, 곧바로 여행사 내부에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싸움은 금방 끝났고, 여행사 안에 있던 사람들은 차량을 불러 바로 철수했습니다. 차량은 승합차와 세단 각 한 대씩입니다.

파타야와 라용 지역을 총괄하는 담당자가 빠르게 상황을 보고했다.

“몇 명입니까? 그중에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길이 물었다.

-운전사 두 명을 포함해 총 인원은 열두 명입니다. 우선 여행사에 접근한 남자 한 명, 동아시아인으로 추측됩니다. 홍성민은 아닙니다. 그리고 싸움이 발생한 이후 여행사로 들어간 남자 한 명, 이 남자는 태국인으로 추측됩니다. 아주 젊었습니다. 여행사 안에 있던 사람은 8명입니다. 그들 중 셋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한 명은 처음 여행사로 들어간 동양인 남자입니다. 또 다른 한 명은 홍성민으로 추측됩니다. 그 외에 인식할 수 있는 얼굴은 없었습니다.

“차량은?”

-번호를 확보했고, 추적팀에 번호를 보냈습니다. 현재 추적 중입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길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담당자는 GIGN(프랑스 국가헌병대 개인그룹) FAO(la Force Appui Opérationnel : 작전지원부대)에서 작전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담당했었다. 작전 진행에 있어서는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담당자가 현장에서 추적 중이라고 말한다면 차량을 놓칠 일은 없을 것이다.

“좋습니다. 추가적인 상황이 있으면 계속 상황을 알려 주시죠.”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전화가 끊기자 길은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앞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차분했다.

그러나 그의 심장박동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지금 파타야에서 무언가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길은 아주 오랜만에 흥분되는 기분을 느꼈다.

“더 빨리 가야 하겠는데.”

길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운전모드를 스포츠로 바꿨다. 그리고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는 오른발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엔진에서 야생마 같은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

“수상한 차는?”

대니얼 양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부하에게 물었다. 대니얼 양이 홍콩에서 직접 데려온 부하는 네 명이었다. 지금 세단 운전대를 잡은 부하가 그 넷 중 하나였다.

“특별히 눈에 띄는 차량은 없습니다.”

부하가 사이드미러를 힐긋 보고 말했다.

원하는 대답을 들었음에도 대니얼 양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운전하는 부하를 바라보았다.

대니얼 양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는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김승섭에게 박살이 난 부조장 때문에, 직접 데려온 부하들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져 있었다.

“확실해?”

대니얼 양이 다시 물었다.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부하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의심이 많으시군.”

대니얼 양의 옆에 앉아 있던 모용진이 말했다.

대니얼 양은 모용진을 돌아보았다.

안전하게 차량에 탑승하고 출발했기 때문인지, 그의 얼굴에 드리웠던 불안감은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안전하게 모셔야 하니까요.”

대니얼 양은 그렇게 말해 주었다.

모용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마치 부하를 대하는 것처럼 거만함이 묻어 있는 끄덕임이었다.

대니얼 양은 그 끄덕임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만족하셔서 다행입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미소였다.

그러나 대니얼 양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과연 이 늙은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용진을 버리기로 이미 결정을 내렸다.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김승섭을 낚은 상황에서 미끼의 역할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이 미끼로 데이빗 박을 낚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대니얼 양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전화벨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대니얼 양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전화기에는 이름 하나가 떠 있었다.

하지만 대니얼 양은 그 이름을 읽을 수 없었다. 한글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화는 홍성민의 것이었다.

홍성민이 전기충격을 받고 쓰러지던 그 순간에 이 전화가 울렸고, 대니얼 양은 전화를 회수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기 전에 끊어져 버렸고, 지문이 아닌 패턴 방식으로 잠겨 있는 전화를 홍성민의 협조 없이는 열어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홍성민은 협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김승섭이 아니군요.”

대니얼 양이 그렇게 말하며 모용진에게 전화기를 내밀었다.

그들은 조금 전에 전화가 김승섭에게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승섭은 지금 그들의 손안에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홍성민에게 전화를 해 왔다는 의미였다.

“곽용신.”

모용진이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읽었다.

“아는 이름입니까?”

대니얼 양이 물었다.

“내가 받지.”

모용진이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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