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85화 (285/386)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37)

***

방콕지부장을 밀쳐 내고 공항 청사 안으로 뛰어 들어온 곽용신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면에 에스컬레이터가 보였고, 곽용신은 지체 없이 에스컬레이터로 몸을 날렸다.

곽용신은 에스컬레이터로 뛰어가면서 자신에게 욕을 퍼부었다.

멍청한 자식. 차를 넘겨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곽용신을 선배님이라고 불렀던 젊은 남자가 곽용신이 타고 온 차량을 끌고 갔다. 그가 공항을 떠나지 않았다면 주차장에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곽용신은 주차장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량 중에서 그가 타고 온 토요타 야리스를 빠르게 찾는 것은 불가능했고, 설사 찾았다고 하더라도, 젊은 남자가 순순히 차 열쇠를 넘겨주지는 않으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곽용신은 1층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곽용신은 최대한 빨리 파타야로, 김승섭과 홍성민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고 지금 가장 빠른 방법은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공항 입국장에는 언제나 택시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간 곽용신은 서 있는 사람들을 밀쳐 내면서 재빨리 입국장으로 뛰어갔다.

1층에 도착한 후, 전력으로 공항 청사를 빠져나온 곽용신은 택시가 서 있는 플랫폼으로 달려갔고, 대기 줄을 만들기 위해 설치된 펜스를 뛰어넘은 다음, 막 택시를 타려고 하는 승객을 밀쳐 내고 택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택시를 타려던 승객도, 승객을 관리하는 택시회사 직원도, 택시 기사도 곽용신을 제지하지 못하고 놀란 눈으로 바라만 볼뿐이었다.

곽용신이 문을 닫으며 택시 기사에게 외쳤다.

“파타야. 파타야!”

***

택시 기사는 막 타려던 손님을 밀쳐 내고 뒷좌석에 뛰어든 손님, 아니 불청객이 파타야라고 외치는 것을 들었다. 파타야에 가고 싶다는 의미라는 것은 이해했다.

그러나 택시 기사는 출발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 갑자기 뛰어든 불청객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목적지를 알았지만, 이 불청객을 태우고 파타야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런 손님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택시 기사는 이 손님을 자신의 택시에서 몰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항에 상주하고 있는 택시회사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택시 기사가 요청하면 직원이 공항 보안 요원을 불러와 이 불청객을 끌어 내릴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택시회사 직원에게 막 고개를 돌리려던 택시 기사의 눈에, 갑작스럽게 뛰어든 불청객이 지갑을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돌아가던 택시 기사의 시선이 멈추었다.

불청객은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지폐를 꺼내 택시 기사에게 건넸다.

택시 기사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불청객의 손에 잡힌 지폐 다발로 움직였다.

최소 10장, 많으면 15장 이상, 1만에서 1만 5천 바트.

파타야를 다섯 번은 왕복할 정도의 금액이 그 손에 들려 있었다.

“파타야!”

불청객이 다시 외쳤다.

택시 기사의 시선이 불청객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그 눈에 담겨 있는 간절함을 보았다.

이런 눈을 한 승객들은 대부분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대학 졸업자의 평균 월급에 육박하는 1만 5천 바트의 돈은 웬만한 문제를 감수해도 될 정도로 적지 않은 돈이었다.

“오, 오케이.”

택시 운전사가 말했다.

“허리 업! 플리즈! 허리 업!”

불청객이 다시 외쳤다.

그 기세에 눌려, 택시 기사는 액셀을 평소보다 조금 더 힘주어 밟았다.

***

택시가 급출발하자, 곽용신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하지만 곽용신은 안전벨트를 매는 대신에,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안전벨트보다 김승섭과 홍성민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휴대전화의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불이 켜졌고, 홍성민에게서 메시지가 들어 왔다는 알림이 보였다.

곽용신은 빠르게 휴대전화 잠금을 풀었다.

그리고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레드유ㅓㄴ즉시연랃

알아볼 수 없는 문자가 쓰여 있었다.

그러나 곽용신은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내실 안에 숨죽인 채로 숨어 있던 대니얼 양은 외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밖에서 감시하던 부하가 누군가가 여행사로 접근하고 있다고 알려온 지 1분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대니얼 양은 준비하라는 의미로 손짓을 했다.

문 옆에 서 있던 남자, 박물관연대에서 유일하게 무력을 담당하는 4조의 부조장이 대니얼 양의 손짓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을 끝으로, 내실 안에 유일한 광원이었던 휴대전화 빛이 전부 꺼졌다.

내실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고, 침묵이 감돌았다.

대니얼 양은 그 상태로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서 사무실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유추하려 했다.

걸음 소리, 무언가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말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대니얼 양은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국말이었다.

확실한 것은 화자가 화가 나 있고, 내실과 통하는 문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었다.

문 옆에 서 있는 부조장도 같은 소리를 들었고, 같은 판단을 내렸다. 그는 전기충격기, 일명 스턴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발걸음이 조금씩 가까워졌고, 내실 문에 열쇠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부조장은 전기충격기를 일반 남성의 목이 위치한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문이 열렸고, 열린 문틈으로 약한 빛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발이 문지방을 넘었다.

부조장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전기충격기를 앞으로 뻗었고, 들어온 사람의 목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바로 버튼을 눌렀다.

전압 6만 볼트의 전류가 전기충격기에서 목표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전기충격기는 상대방을 무력화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장비 중 하나였다. 아주 짧은 시간,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전기충격만으로도 목표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부조장은 2초가 넘도록 전기충격기를 목표에 목에 대고 있었다.

전기충격을 받은 목표는 고통스러워했다. 온몸의 근육이 수축하면서 쓰러지지도 못한 채로, 온몸을 떨며 고통스러워했다.

부조장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2초의 시간을 아주 좋아했다.

버튼을 놓자, 목표의 몸이 허물어지듯 쓰러지기 시작했다.

“잡아.”

부조장의 말과 동시에, 근처에 서 있던 부하 몇 명이 목표의 몸을 부축했다.

부조장은 웃음을 지었다. 모든 것이 그의 생각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죽은 거 아냐?”

어느새 다가온 대니얼 양이 축 늘어진 홍성민의 몸을 보며 말했다.

일반적으로 전기충격기의 전압은 6만 볼트의 고전압이지만, 전류는 몇 밀리암페어(mA)에 불과해 실질적인 살상의 가능성은 적었다. 가능성이 적다는 것은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장시간에 노출될 경우 심폐근 정지로 사망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죽지 않았습니다.”

부조장이 말했다.

성인 남성에게 2초 정도의 전기충격은 괜찮았다.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지식이었다.

“사디스트 자식 같으니. 불 좀 비쳐 봐.”

대니얼 양은 그렇게 말하며, 젊은 조직원들이 부축하고 있는 홍성민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잡고, 얼굴을 들어 올렸다.

옆에 있던 부하가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서 홍성민의 얼굴을 비추어 주었다.

정신을 잃은 것 같았지만 죽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대니얼 양은 내실 구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안대로 눈을 가린 남자가 무릎을 꿇은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

대니얼 양이 눈짓하자, 부하 중 하나가 그에게 다가가 눈을 가린 안대를 풀어 버렸다.

시야를 확보한 남자는 겁에 질린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대니얼 양에게 머리를 잡힌 홍성민의 얼굴을 보았다.

“เขาเป็นเจ้านายของคุณหรือไม่?(너희 사장 맞아?)”

대니얼 양이 태국어로 물었다.

구석에 제압되어 있던 남자, 오라오라투어의 태국인 직원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격렬한 끄덕임에 대니얼 양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 잘되고 있군.

대니얼 양은 그렇게 생각하며, 부조장에게 눈짓했다.

부조장은 여행사 직원에게 다가가 턱에 짧은 훅을 넣었고, 턱이 돌아간 직원은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계속할까요?”

부조장이 대니얼 양에게 물었다. 목뼈를 부러트려도 되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니.”

대니얼 양이 말했다.

실망스러운 표정이 부조장의 얼굴을 스쳤다.

“나중에.”

대니얼 양이 말했다.

부조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행하게도, 여행사 직원은 대니얼 양의 얼굴을 보았다. 그를 살려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처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더 안전한 곳에서,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심받지 않는 죽음을 안겨 주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으니까.

대니얼 양의 고개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한쪽 벽에 등을 대고 서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Is he right?”

***

목을 통해 고압의 전류가 흘러들어 오고, 고압의 전류는 홍성민의 온몸을 타고 빠르게 흘러들었다.

홍성민은 모든 신경이 불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전류에 의해 수축된 근육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쓰러지지도 못한 채로 100년처럼 느껴지는 2초를 견뎌 내야 했다.

전류가 끊어지자, 그제야 홍성민은 쓰러질 수 있었다.

하지만 홍성민은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훈련받지 않은 요원이었다면 이미 눈을 까뒤집고 정신 줄을 놓았을 충격에도, 홍성민은 의식을 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각을 모두 유지한 것도 아니었다. 6만 볼트의 전기가 그의 온 신경을 휘저어 놓았고, 모든 감각이 뒤섞여 그의 뇌를 두드리고 있었다.

홍성민이 감각의 일부분을 찾았을 때, 누군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고개가 들려 있다는 것을 촉감으로 알 수 있었다.

촉감 다음에 청각이 천천히 회복되었다.

누군가가 태국어로 말했다. 어색한 발음의 태국어로 너의 사장이냐고 묻고 있었다.

그다음에는 영어였다.

그가 맞아? 그런 질문이었다.

영어 질문이 끝난 시점에서 홍성민은 시각을 되찾았다. 정확히는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눈꺼풀을 움직이는 전두근과 안륜근(눈둘레근)이 움직였고, 눈을 떠 앞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어둠 속이었고, 초점도 맞지 않아 그나마 흐릿하게 보이는 사물도, 두서너 개로 보였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홍성민은 그를 바라보고 싶었다. 고개를 돌리고 초점을 맞춰, 다가오는 누군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얼굴 근육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설사 목에 힘이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를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 머리를 고정하고 있었으니까.

다가온 누군가는 홍성민의 얼굴 바로 앞까지 머리를 들이밀었다.

홍성민은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초점은 제대로 잡히지를 않았다.

“It’s him.”

목소리가 들렸다. 질문한 남자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런 목소리였다.

누구지? 누가 나를 확인해 주는 거지?

홍성민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한국어가 들려왔다.

“나를 찾았나?”

홍성민은 눈동자만을 움직여 목소리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초점은 잡히지 않았고, 눈앞의 얼굴은 여러 개로 흐릿하게 보였다.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홍성민은 그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모…… 용진…….”

홍성민이 힘겹게 입을 열어 그의 이름을 말했다.

“김승섭은 호텔에 있나?”

모용진이 물었다.

“조…….”

홍성민의 입이 다시 열렸다.

모용진은 미약하게 들리는 홍성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갔다.

“좆……까. 씨발……놈아…….”

홍성민이 말했다.

모용진은 얼굴을 떼어 냈다. 그리고 홍성민의 머리카락을 잡고 있는 대니얼 양을 바라보았다.

고통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대니얼 양은 한국어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분위기로 둘의 짧은 대화를 유추할 수 있었고, 모용진의 시선도 이해할 수 있었다.

부조장이 좋아하겠군.

대니얼 양은 그렇게 생각하며 부조장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드는 그 순간, 갑작스러운 음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니얼 양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홍성민의 허리, 정확히는 바지 주머니가 있었다.

바지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홍성민의 전화기가 힘차게 벨 소리를 쏟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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