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33)
소이 부아카오(Soi Buakhao)는 세컨드 로드와 서드 로드 사이에 있는 좁은 도로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소이 부아카오는 파타야를 방문하는 단기 여행객들에게는 그리 잘 알려진 도로는 아니었다.
파타야 대표적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 해변 비치로드나, 워킹스트리트와는 거리가 있었다. 거기에 도로는 왕복 2차선에 불과했고, 시장까지 있어 항상 번잡했다. 단기 관광객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장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파타야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 특히 은퇴 비자를 발급받은 구주 백인들에게 소이 부아카오는 아주 잘 알려진 장소였다. 정확히는 그들의 거주지였다.
저렴한 월세, 적당한 물가, 그리고 편하게 맥주 한잔을 즐길 수 있는 노천 비어바(Beer bar)와 나이는 많지만, 실력 좋은 마사지사들이 소이 부아카오에 있었다. 은퇴한 노인들은 소이 부아카오에서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홍성민이 바로 그 소이 부아카오를 걸어가고 있었다.
곽용신을 공항으로, 김승섭을 호텔로 보낸 홍성민은 이야기했던 것처럼 판을 흔들기 위해, 소문을 내기 위해, 정보원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다.
빠른 속도로 좁은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와 썽태우를 피해 가며 길을 걸어가던 홍성민은 소이 부아카오에서 괜찮은 파키스탄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티카센터 레스토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홍성민은 담배를 빼 물었다. 그리고 레스토랑 맞은편 골목을 바라보았다.
정식 도로명, 2번 도로 11번 골목(Phattaysaisong 11 Alley). 하지만 소이 허니(Soi Honey)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 골목에 목적지가 있었다.
홍성민은 골목을 바라보며 천천히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 차려. 실수하면 죽는다. 다 같이 죽는다.
마음을 다잡은 홍성민은 불붙어 있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져 버리고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갔다.
소이 허니라고 불리는 이 골목이 유명한 이유는 저렴한 맥주집과 마사지 업소가 모여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다른 지역보다 절반 가격에 이르는 마사지가 유명했다.
골목을 따라 걸어가던 홍성민은 한 마사지 가게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전면 유리에는 재스민 마사지(Jasmin Massage)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업소였다. 가게 앞에는 두 명의 중년 여성들이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사장님은?”
홍성민이 여자들에게 물었다.
음식을 먹던 여자들이 홍성민을 바라보았다. 손님이 아니라 사장 친구라는 것을 알아본 그들은 고개를 돌려 안쪽을 가리킨 다음 다시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홍성민은 그녀들을 살짝 바라보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발 마사지용 리클라이닝 소파가 몇 개 보였고, 그중 하나에 한 중년 남자가 누워 있었다. 누운 상태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여전히 손님 없네. 밥은 먹고 사는 거야? 그리고 내가 저번에도 말했지만, 재스민 스펠링은 jasmine이라고. e가 빠졌어.”
홍성민이 신발을 벗으면서 중년 남자에게 말했다.
“어이구, 이게 누구신가? 오랜만이네.”
홍성민을 본 중년 남자가 고개만 돌린 채로 말했다. 인사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그리 반가운 기색은 없었다.
“오랜만은 무슨. 얼마 전에도 봤구만.”
그렇게 말하며 홍성민도 리클라이닝 소파에 몸을 눕혔다.
“그래. 오늘은 어쩐 일이야? 마사지 받으려고? 스페셜 해 줄까?”
중년 남자가 음란한 손동작을 하면서 말했다.
“스페셜 같은 소리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 없나 하고 찾아온 거지. 뭐 소식 좀 없고?”
홍성민이 두 팔로 머리를 괴면서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라……. 내 경험으로는 보통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져오던데.”
재스민 마사지 가게의 사장, 그리고 홍성민과 협력 관계를 가진 정보원 중 하나인 중년 남자가 홍성민을 보면서 말했다.
“못 당하겠군. 이건 확인 안 된 이야긴데.”
홍성민이 운을 뗐다.
“얼마짜리?”
중년 남자가 물었다.
“아니. 이건 파는 게 아니야. 나도 흘려들은 거라. 좀 확인해 볼까 싶어서.”
홍성민의 말에 중년 남자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파는 게 아니라니. 보물이거나 쓰레기거나 둘 중 하나겠군. 어디서 들었는데?”
홍성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졌다.
“요즘 시아누크빌에서 누구 들어왔다는 소식 못 들었어?”
“흠…….”
정보원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홍성민을 바라보았다.
홍성민은 중년 남자가 그렇게 보리라는 것을 알았다.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서로가 가진 것을 내주기 싫어하는 정보업계 사람들의 본능 같은 눈빛이었다.
“뭐, 그 루트야 항상 번잡하지.”
정보원이 말했다.
시아누크빌과 파타야를 연결하는 해상 밀입국 루트는 언제나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그쪽 관계된 일이야? 어디서 들었는데?”
정보원이 다시 물었다.
니가 대답할 순서다.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포이펫.”
홍성민이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에 있는 국경도시 이름을 말했다.
“포이펫?”
“그래. 거기에서 카지노 롤링 주선하고 약도 팔고, 이런저런 잡일 하는 놈이 지나가면서 이야기해 주더군. 당분간 몸을 좀 사리겠다고.”
“몸을 사리겠다고? 왜?”
“뭐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나?”
홍성민이 질문했다.
니가 대답하지 않으면 나도 대답하지 않아. 그런 의미를 담아 바라보면서.
사실 홍성민은 누가 그 출입국 루트로 들어오든 그다지 관심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스케치를 할 뿐이었다.
“얼마 전 특이한 손님이 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정보원이 말했다.
당연히 특별한 손님이 오셨겠지.
홍성민은 속으로 생각했다.
파타야-시아누크빌 밀입국 루트를 이용하는 사람이 특별한 손님이 아닐 수가 없다. 정상적인 입국 절차를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왜 몸을 사린다고 했지?”
정보원이 이번에는 홍성민의 순서라는 듯 질문을 던졌다.
“시아누크빌에서 나쁜 손님이 파타야로 들어갈 것 같다고 하더군.”
홍성민은 ‘특별한’ 대신에 ‘나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나쁜 손님?”
“그래. 나쁜 손님.”
“에라완?”
정보원이 물었다.
에라완 사원, 2015년 방콕 폭탄 테러가 발생한 사원의 이름이었다.
홍성민은 어깨를 으쓱했다.
알지?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몸짓이었다.
그 몸짓을 본 정보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건 못 팔겠군.”
정보원이 말했다.
“그렇지. 아무리 비싸도 목숨값에는 부족할 테니까.”
홍성민이 말했다.
2015년 방콕 에라완 사원 폭탄 테러 사건 이후 태국 정부는 테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입을 함부로 놀리다가는 목이 날아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 특이한 손님은 누구지?”
홍성민이 물었다.
홍성민은 특이한 손님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의심의 씨앗을 심어 놓으려는 의도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미안. 지금은 말 못 해 주겠군.”
정보원이 말했다.
홍성민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지?”
내가 이야기했으니, 너도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로 물었다.
그렇지만 알고 있었다. 정보원은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해해 줘. 사안이 사안인 만큼.”
홍성민은 말을 아끼는 정보원의 태도를 이해했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하지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그가 여기에서 할 일은 전부 끝났다. 분란의 씨앗을 심었고, 정보원이 씨앗의 싹을 틔울 것이다.
“친구는 사귀기 어렵지. 하지만 잃는 것은 순식간이지.”
홍성민이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대신에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뒤돌아선 홍성민에게 정보원이 말했다.
홍성민은 관심 없다는 듯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기 위해 몸을 굽혔다.
“이번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두짓에서 사람들이 내려와 있다는 소문이 있어.”
정보원이 말했다.
신발을 신던 홍성민의 몸이 멈추었다.
“두짓?”
홍성민 물었다.
두짓, NIA의 본부가 있는 지명의 이름, NIA 요원들이 내려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당분간 조용히 있으라고.”
“그거 고맙군.”
홍성민은 고작 그 정도냐는 뉘앙스를 담아 말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정보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 그리고.”
홍성민이 뒤를 돌아보았다.
“한 번에 말해.”
홍성민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모용진이라는 한국인에 대한 위치 정보를 산다고 하더군. 한국인 두 명이라던데.”
문을 열기 위해 힘을 주던 홍성민의 몸이 굳었다.
“한국인 두 명?”
“그래. 그중 한 명은 이름도 나왔어. 세웅숩 킴? 세웅섭 킴? 들어본 적 있어?”
홍성민의 눈이 커졌다.
***
을지로에 있는 대한장비협회에는 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상근부회장 유만호만이 협회를 지키고 있었다.
자신의 사무실 소파에 앉아 있는 유만호는 담뱃갑을 집어 들고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밤 10시가 가까워진 시간, 직원들은 이미 모두 퇴근했기에 그가 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만호는 아지랑이를 그리며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사이로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9시 42분이었다. 태국 시각으로 저녁 7시 42분. 계획대로라면 40여 분 전에 곽용신이 출발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유만호는 아직 길게 남아 있는 장초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 전화기를 집어 들고, 전화번호부에서 전화번호 하나를 찾은 다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짧은 통화 연결음 뒤에 통화가 연결되었다.
-말해.
전화 너머의 남자가 말했다.
국정원에서 유만호에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진행하겠습니다.”
유만호가 김훈 원장에게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유만호는 다시 전화기에서 전화번호 하나를 찾아냈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조금 전보다 조금 더 긴 통화 연결음이 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외로 거는 전화였으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전화가 연결되고 전화기 너머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유만호가 말했다.
-현재 출국장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정원 방콕지부장이 말했다.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곽용신은?”
-촌부리 인터체인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대략 65km 남았습니다, 50분에서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방콕지부장이 말했다.
곽용신이 탄 차량에는 GPS가 달려 있었고, 국정원 방콕 지부장은 곽용신이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겠지?”
유만호가 다시 물었다.
-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곽용신이 도착하면 바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 말을 끝으로 유만호는 전화를 끊었다.
유만호는 다시 담뱃갑을 잡았다.
정보상이 이용하는 사이트에 김승섭의 이름을 풀었다.
방콕지부를 통해 파타야에 모용진을 찾는 한국인 두 명이 있다는 소문을 내게 했다.
그리고 곽용신은 공항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