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29)
김승섭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에 누워 코를 파고 있었다.
그의 모든 신경은 콧구멍 안에 들어간 새끼손가락에 집중되어 있었다.
살짝 깊숙한 곳에 코딱지 하나가 느껴졌는데, 건들다가 안쪽으로 들어갔는지 제대로 잡히질 않았다.
김승섭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이상 손가락이 깊게 들어가면 피를 본다는 것을.
하지만 김승섭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조금 더 찔러 넣었다. 조금만 더 깊숙이 들어가면 비강의 혈관을 건드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저 코딱지를 빼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간 손가락에 코딱지의 촉감이 느껴졌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지.
김승섭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깊숙한 곳에 있는 코딱지는 여자의 마음과 비슷했다. 확실하게 잡았다고 방심하다가는 놓쳐 버리는 수가 있었고, 한 번 놓치면 다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방심하지 않은 덕분인지 코딱지가 손가락에 딸려 왔다.
공기 속의 이물질이 코털에 걸리고, 코에서 분비되는 점액과 섞인 다음 날숨의 온기로 딱딱하게 고체화된 분비물이 그의 새끼손가락에 걸려 있었다.
“별것도 아닌 게. 사람 짜증 나게 하고 말이야.”
김승섭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상체를 반쯤 일으키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코딱지를 파냈으면 처리해야 했고, 처리하기 위해서는 휴지가 필요했다.
TV 옆에 휴지 곽이 보였지만, 휴지를 뽑아 들기 위해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몇 발자국을 걸어가야 했다.
김승섭은 잠시 고민하다 손가락 두 개로 둘둘 말아서 틱 하고 튕겨 냈다.
그가 튕겨 낸 코딱지가 벽에 맞고 다시 튕겨 바닥에 놓인 캐리어 안으로 떨어졌다.
김승섭은 그 모습을 보았지만,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기에는 너무 귀찮았고, 그의 캐리어도 아니었다.
김승섭은 다시 침대로 몸을 눕혔다. 그리고 두 팔을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으아~ 지겹다. 지겨워 죽겠다.”
김승섭이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그때 삐리릭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승섭이 고개를 돌리자 편의점 봉지를 들고 있는 곽용신이 황당하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사 왔습니까? 맛있는 거 사 왔습니까?”
김승섭이 물었다.
“……뭐 하냐? 지금 여기서.”
곽용신이 물었다.
“뭐 하긴요. 할 것도 없고 잠이나 잘라 그러죠.”
김승섭이 침대를 팡팡 치면서 말했다.
“처잘 거면 네 방에서 처주무시지. 왜 여기 와서 난리야.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방과 침대와 캐리어의 주인인 곽용신이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나가면 나간다고 말을 해야지. 내려와서 문 두들겼는데 대답이 없길래. 걱정되어서 들어온 거 아닙니까. 형님 혼자서 뭐 재미있는 거 보다가 혈압 올라서 쓰러졌나 싶어서 말이지.”
“어떻게 들어왔냐고, 임마!”
“리셉션에. 키 안에 두고 왔다고 열어 달라 했지. 바로 열어 주던데?”
곽용신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망할 놈의 싸구려 호텔 같으니.
곽용신이 투덜거렸다.
“그나저나 형님.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김승섭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뭐가?”
“왜. 그 김형원, 그 양반에게 이야기한 게 언젠데, 후속 지시도 없고, 그렇다고 들어오라는 말도 없고. 서울에서 우리 까먹은 거 아닙니까?”
곽용신은 대답 없이 그런 김승섭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게 며칠쨉니까. 확실히 이야기하기는 했어요? 제대로 설명한 거 맞아요? 언제까지 이렇게 호텔에만 처박혀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게 보고 있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요.”
김승섭이 불만을 토해 냈다.
“피.”
곽용신이 말했다.
“네?”
“너 코피 난다.”
김승섭은 그제야 손을 가져가 코 밑을 닦았다. 선홍색의 피가 손가락에 묻어났다.
젠장. 느낌이 싸하더라니.
김승섭은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 김승섭에게 곽용신이 휴지 곽을 던져 주면서 말했다.
“코 후볐냐?”
“내가 앱니까. 코를 파게.”
재빨리 휴지를 뽑아 코로 가져가던 김승섭이 말했다.
곽용신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진 이물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김승섭을 바라보았다.
“아, 진짜로. 맨날 여기 처박혀만 있으니 답답하고 그래서 혈압이 올라 코피가 터진 거 아닙니까. 형님. 다시 그 양반에게 전화해 봐요. 어떻게 할 건지, 어쩌라는 건지.”
휴지로 코를 막은 김승섭이 괜스레 찔끔한 마음에 오히려 큰 소리로 투덜거렸다. 그의 시선이 힐긋 캐리어를 바라보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곽용신은 캐리어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곽용신은 그런 김승섭에게 뭐라고 말할까 하다가 입을 닫았다.
김승섭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김승섭이 생각해 낸 계획을 김형원에게 전달하고 벌써 며칠이 지났다.
김형원은 위험하다고 했고, 지원 방법을 찾아볼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김형원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며칠 동안 아무런 지시 없이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지시가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곽용신은 지금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감.
김승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저렇게 조바심을 내는 것이었다.
곽용신은 손에 들고 있던 편의점 봉투에서 두유 한 팩을 꺼내 김승섭에게 던져 주면서 물었다
“홍성민은? 별말 없고?”
“형님이 짱 박혀 있으라고 했잖아요. 이쪽에서 연락한다고. 당연히 연락 없지. 이 양반 나이 먹더니 지각 능력이 저하되었나. 아직 치매를 걱정할 때는 아닌데.”
“너 요즘 말이 좀 심하다. 그런 생각 안 드냐?”
곽용신이 김승섭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뭐 언제는 안 그랬나. 새삼스럽게.”
김승섭이 한 손으로는 코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두유 팩에 빨대를 꽂으면서 말했다.
“네가 요즘 매가 그리웠구나. 지랄하는 거 보니. 그래. 옛정이 있는데, 때려 달라면 때려 줘야지. 정신이 바짝 들도록.”
편의점 봉투를 내려놓은 곽용신이 한 발자국 다가가며 말했다.
“환자예요, 환자. 안 보여요? 이 피? 권투 시합 중에도 피 나면 경기 멈추는 거 몰라요?”
김승섭이 휴지를 들이밀며 반항했다.
“적당한 피는 괜찮아. 투쟁심도 불러오고, 관객들도 좋아하고. 탁터스톱 전까지 시합은 계속되는 거야. 임마.”
곽용신이 막 김승섭에게 다가가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곽용신의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 소리를 듣고 김승섭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전화나 받아 봐요. 본사 높은 분 전화일지도 모르니.”
곽용신은 잠시 김승섭을 노려보다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냈다.
“서울이군.”
액정을 바라보던 곽용신이 말했다.
“복귀하라는 명령이면 좋겠는데. 자리 비켜 줘요?”
김승섭이 말했다.
“뭐, 상관없겠지.”
곽용신은 그렇게 말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태청무역 곽용신입니다.”
***
곽용신이 이름을 말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는 잠깐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곽용신은 잠시 기다렸다가 얼굴에서 전화기를 떼어 낸 다음 화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전화는 연결되어 있었다.
“여보세요?”
곽용신이 물었다.
-곽 부장?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곽용신은 처음 들어 본 목소리 톤이었다.
“네,”
곽용신이 대답했다.
-본사네.
전화기 너머 상대가 말했다.
“누구십니까?”
하지만 곽용신은 상대방의 정체를 물었다.
본사라고 해서 바로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한직에서 떠도는 곽용신입니다. 귀한 본사 분께서 어찌한 일로 전화를 주셨는지요. 할 수는 없었다. 기본적인 확인 절차가 필요했다.
“유만호.”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이 말했다,
유만호?
곽용신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그 이름을 찾아냈다.
하지만 찾아낸 것은 그 이름뿐이었다. ‘유만호’라는 이름을 들어 보았다는 것을 떠올렸을 뿐,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곽용신은 침대에 앉아 있는 김승섭을 바라보았다. 김승섭이 누구냐는 듯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말씀해 주시죠.”
곽용신이 말했다.
-유만호. 본사의.
곽용신은 김승섭에게 입 모양으로 유만호라고 말해 주었다.
김승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상황이 바뀐 것이 있나?
유만호가 물었다.
곽용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 작전은 정식 작전이 아니었기에, 작전명도, 관계자인지 확인할 때 사용하는 작전 코드도 없었다.
그렇기에 본사의 유만호라고 해도 진짜 본사의 유만호인지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설사 본사의 유만호라고 해도 그는 곽용신의 직속상관이 아니었다. 그는 작전에 관해 물어볼 권한이 없었고, 곽용신은 대답할 의무가 없었다.
유만호는 곽용신이 보낸 침묵이 신호를 읽어 냈다.
-흠.
전화기 너머에서 불만이 섞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곽용신은 그런 것에는 전혀 쫄지 않았다.
“어쩐 일이십니까?”
곽용신이 다시 물었다.
-이번 출장은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 본사의 지시를 받도록.
유만호가 말했다.
곽용신은 예감이 들었다. 어쩐지 그를 싫어할 것만 같은 예감이.
“확인해 보겠습니다.”
곽용신은 그렇게 답했다.
-그래. 그래야겠지. 확인해 보라고. 그리고 한번 잘 생각해 봐. 본사를 상대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앞으로 도움이 될지를 말이야. 언제까지 김 사장 밑에 있을 것이 아니라면.
곽용신은 자신의 예감이 들어맞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아 이 자식하고는 잘 안 맞겠구나. 서로 피곤하겠구나’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유만호와 통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유만호가 바로 그런 케이스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서, 어쩐 일이십니까?”
곽용신이 다시 물었다.
-지금 대기하고 있나?
곽용신은 그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본사의 지시를 따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 유만호가 지휘권자라는 것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으면 유만호의 심기가 불편해지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길 바랐다.
-재미있군. 좋아. 나중에 출장이 끝나면 그때 직접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곽용신의 의도가 통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곽용신이 같은 네 번째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일 14시. 수완나품 공항 출국장 5번 게이트. 거기에 가서 지원팀을 만나고 지시를 받도록. 김승섭도 함께 있나?
곽용신은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김승섭은 현장을 지킨다. 공항에는 너 혼자 간다.
유만호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 분노가 묻어 있다는 것을 곽용신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확인합니까?”
곽용신이 물었다.
-확인할 필요 없어. 그쪽에서 알아볼 테니까.
“아니. 지금 이 지시가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합니까.”
곽용신이 말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곽용신은 상대방이 진짜 열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듣던 것보다 배짱이 있군. 왜 밖으로만 돌았는지 알 것 같아. 한국에 돌아오면 꼭 만나 봐야 하겠어. 꼭.
“기대되는군요. 어떻게 확인합니까?”
곽용신이 다시 물었다.
-내일 홍성민이 차량을 가지고 갈 거야.
유만호가 말했다.
홍성민은 태국에 정식으로 파견된 요원이다. 그 홍성민이 움직인다는 것은 방콕 지사, 나아가 서울 본부의 지시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유만호는 홍성민이 국정원 본부가 움직인 증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홍성민을 통해 확인하라는 것은 다른 의미도 담겨 있었다. 김형원이 이번 작전에서 배제되었다는 의미였다.
곽용신 입장에서 가장 간단한 확인 방법은 김형원과 통화를 하는 것이다. 김형원에게 이번 작전은 본사의 지시를 받으라고 확인받는 것이다. 그런데 유만호는 이런 쉬운 방법 대신 홍성민을 통해 본사의 지시임을 확인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배짱은 있지만, 그리 똑똑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 직접 말해 주지. 김 사장은 이번 출장에서 빠졌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유만호가 말했다.
김형원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이해했습니다.”
곽용신이 말했다.
-알겠냐고 물었다.
유만호가 말했다.
“이해했습니다.”
곽용신이 같은 대답을 했다.
-……정말로 기대되는군. 한국에서 보지.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