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69화 (269/386)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21) >

야닌은 데이빗 박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끄렁떠이로 가야겠다고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에 따라 끄렁떠이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상부의 생각이나, 제이크의 걱정도 이번에는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직접 차를 운전해 끄렁떠이로 가던 와중에 제이크로부터 끄렁떠이의 정보상, 악어의 신원을 확보했고, 바로 북한인들의 아지트 위치를 확인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보고를 받은 야닌은 바로 작전을 변경했다. 잠복조에게 바로 북한인 아지트를 확보할 것을 지시했다.

작전 승인을 받기 위해 며칠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야닌이 처음 이 작전을 보고한 그날 정식으로 승인이 떨어졌다면, 계획대로 잠복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야닌은 그 며칠 사이에 상황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계산했고, 그런 상황에서 잠복조를 투입하는 것은 타이밍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명령을 받은 잠복조는 바로 타격조가 되었고, 그들은 끄렁떠이 빈민가의 한 건물을 곧바로 습격했다.

북한인들의 아지트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좁은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고, 최대한 가까이 접근한 야닌은 하이힐을 신은 채로 골목을 뛰어 들어갔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도 않은 새벽, 빈민가의 한 건물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어디야!”

건물로 뛰어가던 야닌은 건물 앞을 지키고 있던 한 남자, NIA 잠복조 요원 중 한 명에게 소리쳤다.

“3층입니다!”

남자는 야닌의 정체를 알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그녀가 높은 사람일 것이라는 것을 눈치챘고, 빠르게 대답했다.

남자의 말을 들은 야닌은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3층까지 단숨에 올라간 그녀는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NIA 요원들이 캐비닛을 뒤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야닌은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류 같은 것이 아니었다. 즉각적으로 정보를 알려 줄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무릎을 꿇려 있는 두 명의 남자를 보았다. 야닌은 바로 그들에게로 몸을 돌렸다.

“어디 있어? 보스 어디 있어!”

야닌이 오른쪽에 있는 남자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잡으며 물었다.

손톱이 어깨를 파고들자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야닌은 그제야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렸다. 열다섯? 열여섯? 최소한 열일곱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한 남자, 아니 소년은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뭐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야닌은 그 말이 한국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태국 말을 모릅니다.”

옆에 서 있던 요원이 말했다.

야닌은 주먹을 들어 소년의 얼굴을 후려쳤다. 얼굴이 돌아가면서 눈물과 콧물, 침이 튀었다.

“너의 보스 어디 있어?”

야닌이 영어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얼굴을 맞은 소년은 더 크게 울 뿐이었다.

야닌은 옆에 있는 소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소년의 얼굴도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눈물과 공포에 젖은 눈으로 야닌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목 어디 갔어?”

야닌은 이번에는 중국어로 물었다.

“나, 나갔습니다! 조, 조금 전에.”

소년이 어설픈 발음의 중국어로 말했다.

“언제!”

야닌이 물었다.

“하, 한 시간. 두, 두 시간.”

소년이 필사적으로 말했다.

“어디로!”

“모, 모릅니다. 모릅니다!”

소년도 더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不知道’만을 계속 반복했다.

야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 채로 울고 있는 두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정말로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경을 넘은 지 얼마 안 되었을 것이다. 국경을 넘고, 그나마 동포라고 탈북자 조직을 찾아왔을 것이고 심부름이나 하면서 밥을 얻어먹고 있을 것이다.

야닌은 그 둘을 바라보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네.

상황실을 지키고 있는 제이크가 말했다.

“한국말 할 줄 아는 사람 좀 수배해 줘.”

야닌이 말했다.

-이미 확보했습니다. 본부로 오고 있습니다.

제이크가 말했다.

“그래.”

야닌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한쪽 구석에 서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 있던 노인, 다른 이들에게는 촌장이라 불리고, 야닌은 악어라고 부르는 노인은 야닌과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야닌이 노인에게 다가갔다.

“북한 놈들 어디로 갔어?”

“저, 저도 모, 모릅니…….”

야닌의 손이 움직였다. 그리고 노인의 턱을 잡았다. 그녀의 손톱이 노인의 뺨을 파고 들어갔다.

“어디로 갔어!”

야닌이 소리쳤다.

턱을 잡혀 있는 노인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주름지고 탄력 없는 뺨에 손톱이 더 깊게 파고들었지만 아프지도 않은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야닌은 노인의 턱을 놓았다. 그리고 손을 움직여 노인의 바지 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를 꺼낸 다음, 노인의 얼굴로 가져가며 말했다.

“전화번호.”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 북한인 조직을 이끄는 김택경의 전화번호를 찾아 다시 야닌에게 건네주었다.

휴대전화를 넘겨받은 야닌은 옆에 서 있던 요원에게 휴대전화를 넘겨주면서 말했다.

“위치 추적해. 그리고 이 자식 데려가.”

요원이 휴대전화를 받아 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두 놈도.”

야닌이 고개를 돌리며 한쪽 구석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는 소년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

창고에는 단 한 사람, 한규호만이 서 있었다.

한규호는 그의 발치에 쓰러져 있던 남자에게로 몸을 굽혔다. 몇 시간 전 한규호의 턱에 오른쪽 훅을 먹인 김택경의 오른팔이었다.

한규호는 그 남자의 손에 쥐인 손도끼를 잡아 들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이 창고에서 한규호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의식을 잃지 않은 한 남자에게 다가갔다.

한규호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의식을 잃지 않은 남자, 끄렁떠이에서 탈북자 조직을 이끄는 김택경은 부하의 손도끼를 손에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전화가 울리고, 모두의 시선이 거기에 집중되는 사이에, 그가 몸을 일으켰고, 이제 다 모였나 하고 질문을 던진 후에 바로 몸을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김택경은 그 남자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저 남자는 혼자서 10여 명이 넘어가는 조직원들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그가 움직이고, 타격음이 두어 번 들리면 조직원들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한 사람당 주먹질 한두 번으로 모두 무력화시켰다. 의식을 잃게 만들어 버렸다.

김택경은 그 남자에게서 발차기를 당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의도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 김택경으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남자의 돌려차기가 김택경의 턱을 스쳤다.

타격으로서 가치는 없는 발차기였다. 그러나 김택경의 뇌를 진동하기에는 충분한 강도였고, 뇌진탕을 일으킨 김택경은 온몸의 통제력을 상실한 채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진 상태로, 한규호가 남아 있는 자신의 부하들을 처리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말할 수 있나?”

한규호가 쓰러져 있는 김택경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러나 김택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답하지 못했다.

약한 뇌진탕 상태에 빠진 김택경은 입을 여는 순간 구토를 할 것 같았다.

대답 없는 김택경의 모습을 보고 한규호는 천천히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김택경의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김택경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그의 손에 들린 손도끼를 향했다. 새벽 비명을 도끼날이 반사하고 있었다.

“말 못 하겠나?”

한규호가 다시 물었다.

“누, 누구냐. 너는.”

김택경은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실제로 쥐어짜서 말했다. 욕지기가 핑하고 그의 위를 자극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한규호의 손에 들린 손도끼를 향해 있었다.

“말할 수 있군. 짧게 끝내지. 서용석은 어디 있지?”

한규호는 김택경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김택경의 눈에 감정이 피어올랐다. 한규호는 그 감정을 읽었다.

놀라움? 의문?

한규호는 그 감정을 정확히 판독할 수 없었다.

“다시 묻지. 535의 서용석. 어디 있지?”

한규호가 다시 물었다.

***

한규호의 생각은 이러했다.

만약 서용석이 아직 방콕에 있다면, 방콕에 남아 있다면, 서용석은 어둠의 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한규호 그 자신이 서용석의 등허리에 칼을 찔러 넣었다. 왼쪽 귀를 뜯어냈고, 팔뚝 상완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하지만 서용석은 살아남았고, 베네수엘라에 군사고문으로 와서 론울프를 시행했다.

전투력을 회복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전투력을 회복한 서용석이 아직 방콕에 남아 있다면 그는 밥을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활용했을 것이다. 범죄 조직을 꾸렸을 것이다.

태국의 탈북자들 미국의 이탈리아계 이민자가 아니었다. 탈북자들이 여러 개의 조직을 꾸리고 조직의 연합체를 이룰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저 둥지를 잃은 개미들처럼 흩어져서 살고 있거나, 기껏해야 한두 개의 조직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규호는 차논을 이용해 북한 조직을 찾아냈고, 스스로를, 정확히는 데이빗 박이라는 신분과 백금이라는 이름의 미끼로 걸어서 그들을 유인했다. 그리고 한규호의 생각대로, 북한인들은 데이빗 박이라는 미끼를 물었고, 이곳으로 한규호를 데려왔다.

그러나 서용석은 이 창고에 나타나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이 남자는 백금이라는 단어에 반응하지 않았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 서용석이 더는 이곳에 없다는 시나리오가 채택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다.

“다시 묻지. 서용석. 535의 서용석. 어디 있지?”

한규호가 물었다.

“535의 서……용석. 공화국영웅?”

김택경이 힘겹게 말했다.

알고 있군.

한규호는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규호는 눈앞에 쓰러져 있는 이 남자의 과거나 정체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이 자가 서용석을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서용석이 방콕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조금 더 커졌다.

“그…… 배, 배신자 놈을, 왜, 여기서 찾지?”

김택경이 다시 말했다.

“배신자?”

한규호가 물었다.

“그, 그래. 그, 그놈은…….”

거기까지 말한 김택경은 인상을 강하게 찡그렸다. 그리고는 배 속에 있는 것을 게워 내기 시작했다.

김택경의 토사물이 바닥에서 튀어 올라 한규호의 신발에까지 묻었다. 그러나 한규호는 발을 피하지 않고 그저 구토하는 김택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한참을 게워 내던 김택경은 조금 정신이 드는지 토사물 묻어 있는 얼굴로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배신자.”

계속 이어 말하라는 의미로 한규호가 다시 말했다.

“뒈져 버려라. 이 개자식아.”

김택경이 말했다. 구토를 하고 나서 조금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한규호는 서용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서용석이 방콕에 있다는 확신만이라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탈북자 조직을 유인해 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까지 시간을 끌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한규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손에 든 손도끼의 원래 주인, 한규호는 모르고 있었지만, 김택경의 오른팔에게 다가가 그의 발목을 잡고 김택경이 있는 곳으로 끌어왔다.

끌려오는 오른팔은 죽지는 않았는지, 끌려오는 동작에 반응해 몸을 움직였지만, 의식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그리 오래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군.”

끌고 온 오른팔을 내려놓은 한규호가 말했다.

“이 개애새끼가.”

김택경이 한규호를 노려보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김택경은 한규호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손도끼로 오른팔을 해치겠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묻지. 배신자.”

한규호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김택경은 한규호가 정말로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서용석은 조국을 배신했다. 남미에서 도망을 쳤다.”

김택경이 말했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말을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동요 계층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주었고, 죽어 가는 놈을 살려 주었지. 그런데도 그 배신자는 조국을 배신했다.”

“서용석은 어디에 있지?”

“그 배신자 놈이 몸을 감춘 곳은 남미였어! 그 미친놈을 왜 여기서…….”

소리 지르기 위해 몸에 힘을 주었던 김택경은 다시 구토를 시작했다.

두 번째 구토에, 한규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 발자국 물러났다.

토사물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구토하고 있는 저 남자에게서 더는 얻어 낼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서용석이 방콕에 있다는, 또는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한규호는 손도끼를 내려놓았다.

더 손도끼를 사용할 일도, 이곳에 있을 필요도 없었다.

한규호는 구토하는 김택경을 두고 몸을 돌렸다.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2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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