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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67화 (267/386)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19) >

끄렁떠이 빈민가에서 탈북자 조직을 이끄는 김택경은 목표의 신원을 확인하고, 위치까지 확보했지만, 바로 목표를 포획하겠다고 조직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의뢰를 받자마자 목표가 거주하는 콘도에 부하 몇 명을 보내 목표를 24시간 감시하라고 지시했지만, 나머지 조직원들에게는 전부 대기시켰다.

큰돈이 들어오는 일 앞에서 쓸데없는 말썽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막무가내로 목표를 확보할 생각은 없었다.

전직 보위부원이었던 김택경은 조사와 계획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 특히 목표를 생포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사와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생포는 사살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이었으니까.

그래서 김택경은 그의 오른팔, 김택경과 함께 태국 국경을 넘은 다섯 명의 보위부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부하와 며칠 동안 납치 계획을 수립하고 점검했다.

이날도 두 사람은 태블릿으로 아속역 인근 지도를 띄워 놓고 목표의 동선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속역에 잠복해 있는 부하들이 며칠 동안 목표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기록했고, 목표의 대략적인 행동반경과 움직임을 대략적으로 그려 낼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정리해 보자. 목표는 보통 오전 11시에서 정오 사이에 기상. 주변 쇼핑몰 푸드코트나, 한인촌 한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마사지를 받지.”

김택경이 태블릿의 지도를 보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헬스랜드를 이용할 때도 있고, 가까운 로드숍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90분 서비스를 받습니다.”

오른팔이 말했다.

“마사지가 끝나면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가지고 숙소로 복귀. 그리고 낮잠. 9시에 일어나면 소이 카우보이에서 두어 시간을 보낸 다음 나나플라자로 이동. 자정이 넘어가면 테메, 아니면 스크레치독.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은 대략 04시에서 05시.”

거기까지 말한 김택경은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평소 스케줄에 따르면 클럽에 있을 시간이었다.

“지금은 어디 있지?”

“스크레치독입니다.”

오른팔이 방콕에서 유망한 2부클럽(밤 열 시부터 새벽 네 시까지 운영하는 클럽)의 상호를 말했다.

태블릿에 올라간 김택경의 손가락이 움직였고, 스크래치독 클럽이 있는 윈저호텔이 확대되었다.

“애들은 안에 들어가 있나?”

“밖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오른팔이 말했다.

김택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목상 커피숍인 테메라면 몰라도, 스크래치독은 클럽이었다. 그리고 김택경의 조직원들은 클럽에 어울리는 외형은 아니었다.

그놈의 궁기(窮氣)가 문제였다.

한중일 사람들과 같은 극동아시아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탈북자들은 기본적으로 체구가 작았다.

특히 탈북 과정에서 고생한 김택경의 부하들은 아무리 씻겨도 지워지지 않는 빈곤함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빈곤함은 클럽에 어울리지 않았다.

김택경은 지도를 보면서 작전이 끝나고 잔금을 받으면 부하들에게 새 옷을 사 입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체형을 더 키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옷이라도 제대로 입히고 싶었다. 비싼 옷까지는 아니더라도, 깨끗한 새 옷이라도.

“내일, 잡도록 하자.”

김택경이 말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 주십시오.”

오른팔이 말했다.

“내일 여기.”

김택경의 손가락이 스크레치독 클럽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커피숍을 지목했다. 커피숍은 방콕의 중심 도로인 스쿰빗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었고, 작은 골목이 있어 차량을 숨겨 놓기에 좋았다.

“내일, 클럽에서 나오면 여기에서 잡는다. 소이18에서 이 골목으로 타고 들어가서 이 도로로 나온다.”

김택경의 손가락이 커피숍 남쪽 좁은 골목을 따라 움직였다.

김택경의 손가락은 계속 지도를 따라 움직여 방콕 남부에 있는 사뭇쁘라깐(สมุทรปราการ)읍의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오른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세부적인 계획은 다 나와 있었다. 어디에서 납치할 것인지, 어느 길을 통해 이동할 것인지,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까지.

김택경은 목표를 포획한 다음, 끄렁떠이에 아지트로 데려올 생각은 없었다.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아지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구금 장소를 하나 찾아 놓았다.

303번 국도 동쪽, 짜오프라야강변(江邊)에 위치한 버려진 창고였다. 밤에는 사람이 찾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알겠습니다.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부하의 말을 들은 김태경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조사도, 계획 수립도 모두 끝났다. 이제 행동만이 남아 있었다.

행동, 술에 잔뜩 취한 목표를 흔적이 남지 않게 납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막 불을 붙이려는 순간, 테이블에 올려진 그의 휴대전화기가 진동했다.

김택경은 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시간도 확인했다.

새벽 2시 38분.

김택경은 다시 한번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확인했다.

촌장. 그 단어가 액정에 떠 있었다.

처음이었다. 그가 이 시간에 전화를 걸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김택경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이 늦은 시간에.”

김택경이 전화를 들면서 말했다.

-깨웠나? 미안하네. 늙으면 잠이 줄어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화를 건 노인, 사람들이 ‘촌장(นครินทร์)’이라고 부르는 이 노인은 끄렁떠이의 지배자 중 하나였고, 김택경에게 일을 주선해 준 정보상이었다.

“괜찮습니다.”

김택경이 말했다.

-의뢰인을 만났나?

노인이 물었다.

좋지 않다.

노인의 질문을 들은 김택경의 머릿속을 스쳐간 첫 번째 생각이었다.

“만났습니다.”

김택경이 솔직하게 말했다.

저 늙은 뱀이 확인하려고 한다면, 며칠 전 의뢰인이 다녀갔다는 사실쯤은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해서 얻을 것이 없었다.

-그래. 무슨 일을 부탁하던가.

노인이 다시 물었다.

그러나 김택경은 이 질문에는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끄렁떠이의 지배자라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어찌 물으십니까?”

-내가 일을 주선하기도 했고. 그래도 같은 동네에서 사는 이웃사촌인데, 도와줄 것은 없는지 궁금해서 말이지.

노인이 답했다.

김택경은 어이가 없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이웃사촌이라니. 어느 이웃사촌이 목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빤단 말인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일이 끝나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알 필요 없다는 의미를 담아 김택경이 말했다.

-도움이 필요 없다?

노인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도움을 받아야 할 텐데.

노인이 말했다.

김택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늙은 뱀이. 어디서 돈 냄새를 맡았군.

이번 일의 의뢰비가 얼마인지 김택경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만약 이야기가 흘러갔다면 의뢰를 맡긴 그 남자에게서 흘러나왔을 것이다.

개새끼. 이중으로 의뢰를 했나 보군

“내부의 일입니다.”

김택경이 말했다.

아무리 끄렁떠이의 노인이라고 해도 조직 내부의 일에까지 관여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김택경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다.

-거짓말은 안 되지. 내가 주선했는데, 내부의 일이라니.

노인이 말했다.

“민족의 일입니다.”

김택경이 다시 말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민족이라. 재미있는 단어를 쓰는군. 이보게. 내 말을 잘 들어 봐.

노인이 마치, 수업하는 노교수의 말투로 말했다.

-자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자네 식구들 아니겠는가?

협박하려는 것일까? 하도 오래 살아 미쳐 버린 늙은 뱀이 끝을 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나도 마찬가지일세. 내가 지키고 싶은 것도 하나뿐이야. 바로 이곳이지. 남들은 다들 빈민가라고, 쓰레기장이라고 욕하는 이 끄렁떠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나?

“……무슨 말씀이신지.”

김택경이 물었다. 이 늙은 뱀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지. 확신을 주게.

“무슨 확신 말입니까?”

-끄렁떠이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노인이 말했다.

“어떻게 하면 확신을 가지시겠습니까?”

-무슨 일인가?

김택경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르신, 도가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김택경이 말했다.

-이해하네. 자네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내가 이해하지. 그러니 이번 한 번은 그냥 넘어가 주겠네.

김택경은 눈을 감았다.

언젠가는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저 늙은 뱀과 싸우기에는 아직 많은 것이 부족했다.

“어르신, 아침에 찾아뵙겠습니다.”

내일 부하를 통해 적당한 돈을 보내겠다는 이야기였다.

-자네, 무언가를 오해하고 있군.

노인이 말했다.

김택경은 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지금, 저 늙은이를 치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끄렁떠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러나 답은 빨리 나왔다. 불가능. 아직 저 늙은 뱀의 대가리를 자를 정도의 힘은 없었다.

“제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습니까?”

-쉽게 말해 주지. 끄렁떠이에 외국 스파이 놈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말이야.

김택경은 말문이 막혔다.

오해하고 있는 것은 저 늙은이였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오해하고 있었다.

“오해십니다.”

-오해하지 않게 해 주게.

“어떻게 해 드릴까요?”

-무슨 일인가?

노인이 물었다.

김택경은 상대방이 듣지 못하도록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사람을 찾아 달랍니다.”

-누구?

“동포입니다.”

-북?

“어르신.”

-한 번 더 참겠네.

“저희가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이네.

이 미친 늙은이. 내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네놈 목을 직접 썰어 주마. 그때까지 살아 있어라.

김택경은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말했다.

“……한국인입니다. 이름도 말해 드려야 합니까?”

-부탁하지.

김택경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를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계산했다.

그 이름을 알려 주면 어떠한 득이 있고, 실이 있을까? 이름을 알려 주지 않으면 어떠한 실이 있을까?

“부탁이 있습니다.”

-이름만 말해 주면 전화를 끊지. 개입하지도, 방해하지도 않겠네. 자네가 벌어들일 돈에도 일절 관심이 없어. 나는 그저 끄렁떠이에 안전을 확보하고 싶을 뿐이야. 약속하지.

김택경은 눈을 감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다.

“데이빗 박.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알겠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김택경은 끊어진 전화기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 눈에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오른팔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런 김택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상관이 분노했을 때 보이는 눈빛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바로 움직인다.”

여전히 전화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김택경이 말했다.

“네?”

오른팔이 물었다.

“애들을 깨워. 지금 바로 목표를 포획한다.”

김택경이 전화기 노려보면서 말했다.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1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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