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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65화 (265/386)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17) >

홍콩은 세계에서 두 번째,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높은 평균 집값을 가진 도시로 유명했다.

미국 중소 도시에서라면 수영장이 딸린 중형 저택을 구매할 수 있는 1백만 달러의 돈으로 홍콩에서는 고작 22제곱평방미터, 평수로는 7평의 부지를 사들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민간 정보 기업 박물관연대를 이끄는 대니얼 양은 그런 홍콩에 세 개의 거주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니얼 양이 그 비싼 집에 가서 잠을 자는 날은 많아야 일주일에 두 번을 넘지 않았다. 대니얼 양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그의 집무실이었다.

정보라는 상품은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중요한 정보를 다른 누구보다 빨리 확보하고, 분석하는 것이 정보를 다루는 기업의 경쟁력이었고, 민간 정보 기업 박물관연대의 최종 결정권자인 대니얼 양은 당연히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박물관연대를 감추기 위한 위장의 목적이라고 해도, 골동품 거래 업체인 HK Antique Trade도 관리해야 했다.

그렇기에 대니얼 양에게 하루 24시간은 그리 많은 시간이 아니었다.

평균적으로 대니얼 양은 24시간의 4분의 3 이상, 최소 18시간을 일하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대니얼 양도 사람이었고, 사람인만큼 잠을 자야 했다. 그는 사무실에서 잠깐씩 토막 잠을 자는 것으로 수면 욕구를 채웠다.

이날도 대니얼 양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올린 자세로 쪽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 그의 사무실에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오라는 허락이 없었음에도 문이 열렸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가 걸어오는 소리가 사무실을 울렸지만, 대니얼 양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니얼 양이 사무실에 있을 때, 그 문을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남자는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있는 대니얼 양의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 식으로 주무시면 10년 후에는 허리를 펴지 못할 겁니다.”

대니얼 양의 잠을 방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HK Antique Trade의 부사장이자 박물관연대의 이인자인 패트릭 키츠(Patrick Keats)가 말했다.

그러나 대니얼 양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그의 눈은 감겨 있었다.

“태국에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반응이 없었지만, 패트릭은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어 갔다.

“방콕?”

대니얼 양이 대답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다.

“파타야입니다.”

패트릭이 말했다.

“방콕이나 파타야나. 잠을 방해할 정도면 정말 중요한 정보겠지? 그래야 할 거야.”

“들어 보시고 판단하시죠. 사냥개가 포착되었습니다.

패트릭 키츠가 말했다.

대니얼 양의 눈이 떠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패트릭을 바라보았다.

“국정원?”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모용진의 위치 정보를 구매한다는 소문이 랍짱(오토바이 기사)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몇 명?”

“두 명으로 추측됩니다.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추측이라. 당연히 사진도 없겠군.”

“아직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패트릭이 말했다.

“한국에서는?”

“현재까지 확인된 움직임은 없습니다.”

대니얼 양은 처음으로 자세를 풀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두 다리를 내려놓고서는 가볍게 목과 상체를 풀었다.

그러고는 패트릭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정리해 보면, 모용진의 위치 정보를 구매하겠다는 정보가 돌고 있다. 두 사람인 것 같은데 확인은 안 되었다. 사진도 없다. 한국에서도 움직임은 없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내 잠을 깨웠다. 맞나?”

“맞습니다.”

패트릭이 답했다. 그 얼굴에 당황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은 담겨 있지 않았다.

대니얼 양은 그런 패트릭의 얼굴을 잠시 노려보다가 픽 하고 웃어 버렸다.

“재미없는 자식. 현상금이 얼마라던데.”

“10만 바트입니다.”

“푼돈이군, 한국 놈들 맞는 것 같은데. 두 명이라는 건 어떻게 확인했는데?”

“랍짱들의 공통된 정보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두 명, 두 명이라…….”

대니얼 양은 책상을 톡톡 치면서 생각에 잠겼다.

어찌 되었건 모용진이라는 미끼에 처음으로 입질이 온 것이다.

“좋아. 입질이 왔으니 놓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잘 낚아 봐야겠지. 일단 확인부터 해 보자고. 바늘을 건드린 게 진짜 물고기인지, 아니면 굴러가던 돌멩이인지.”

“알겠습니다.”

패트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대니얼 양은 패트릭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용진을 찾는 놈들의 신원을 확인하라고 지시했으니 패트릭은 신원을 알아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다음 다시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렸다.

다시 쪽잠을 자기 위한 준비를 마친 대니얼 양은 눈을 감았다. 그런 자세로 잠시 동안 있다가 다시 눈을 떴다.

“젠장, 잠만 깨우고는.”

대니얼 양은 그렇게 투덜거리고는 다시 두 다리를 내리고,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었다.

***

패트릭이 다시 대니얼 양을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후였다.

몇 시간 전과 같은 자세로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쪽잠을 자고 있던 대니얼 양은 노크 뒤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내 방에 카메라를 달아 놨지? 내가 책상에 다리를 올리는 모습만 보이면 내 잠을 방해하려고. 그렇지?”

그러나 패트릭은 대니얼 양의 투덜거림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책상 앞으로 다가와 서류 파일을 내려놓았다.

“추가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패트릭이 대니얼 양의 투덜거림을 무시하며 말했다.

“그래, 파타야. 방콕 말고 파타야. 뭔데? 현상금이라도 좀 올라갔대?”

“서울입니다.”

대니얼 양은 바로 눈을 뜨고, 두 다리를 내렸다. 그러고는 패트릭이 내려놓은 서류를 집어 들었다.

대니얼 양은 빠르게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서류에는 오버레이 네트워크, 일명 다크넷 정보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정보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그 위에는 ‘한국 국가정보원 최근 동향’이라는 표제가 달려 있었다.

“얼마?”

대니얼 양이 물었다.

“3포인트입니다.”

패트릭이 답했다.

3포인트, 미화 3천 달러에 판매되는 정보라는 의미였다.

딥웹, 또는 다크넷이라고 오버레이 네트워크에서는 불법적인 모든 것이 거래되었다. 당연히 정보도 거래 품목이었다.

몇몇 승인된 회원들만을 대상으로 정보를 거래하는 정보 거래 사이트가 있었고, 그 사이트에는 다양한 정보가 거래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전 세계 정보기관에서 흘러나온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정보의 신뢰도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바로 정보의 가격이었다.

정보라는 상품은 다른 일반 상품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성이 있었다. 바로 판매자와 구매자의 상호 신뢰가 기본 전제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 곡선의 교점에서 형성된다. 그런데 정보라는 것은 그러한 이론이 통하지 않았다. 특히 다크넷에서 거래되는 정보라는 상품은 더욱 그랬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이 가진 정보를 비싸게 팔고 싶을 것이다. 구매자는 정보의 사실 여부나, 그 가치를 확인하지 못한 채로 정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이러한 거래 구조는 리스크를 구매자에게 전가했다. 판매자가 만들어 낸 가짜 정보나, 구매자가 생각하는 만큼의 가치를 지니지 않은 더미(Dummy) 정보를 비싼 값에 사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다크넷 정보 거래 사이트 운영 주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증된 회원들에게만 판매 자격을 주었다.

박물관연대와 같은, 이쪽 세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대형 정보 상인들을 중심으로 정보의 판매가 이루어졌다.

검증된 판매자들은 판매하는 정보의 신뢰도를 가격으로 제시했다.

정보의 출처가 확실하고, 검증이 가능하고, 가치가 있는 정보에는 비싼 값을, 출처가 불확실하고, 검증이 어렵고, 그리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정보에는 싼값을 매겨 매대에 올려놓았다.

가격이 정보의 신뢰도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된 것이다.

3포인트라는 가격은 판매자도 이 정보가 그다지 가치를 지니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였다. 거짓 정보일 가능성도 있고, 진짜라고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는 의미였다.

패트릭이 그 3포인트짜리 정보를 가져온 것이다.

“3포인트라.”

대니얼 양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패트릭이 가져왔다면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대니얼 양은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서류에는 타이틀처럼 한국 국정원의 최근 움직임이 적혀 있었다. 3포인트라는 가격에 맞게 별 가치가 없는 정보들이었다.

하지만 패트릭은 다르게 생각했다.

서류 말미에 최근 국정원 요원 하나가 태국에 입국했다는 정보가 있었다. 국정원에서 파견한 것인지, 파견했다면 태국 NIA와 협의가 되었는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정보의 출처도 없었다.

그러나 태국으로 간 요원의 이름이 있었다.

“킴세웅숩?”

대니얼 양이 서류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김승섭이라고 읽습니다.”

패트릭이 말했다.

“언제쯤 사진을 받아 볼 수 있을까?”

“현재 방콕공항의 출입국 기록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흐음.”

대니얼 양은 불만족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다시 서류에 쓰인 이름을 읽어 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발음하기 힘든 이름을 가진 이놈이 모용진을 찾는다는 그놈일까?”

대니얼 양이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었다.

“알 수 없습니다.”

패트릭이 말했다.

“당연히 알 수 없지. 지금 정답을 달라고 한 게 아니잖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어보는 거지.”

대니얼 양이 패트릭을 보면서 말했다.

패트릭도 그런 대니얼 양을 바라보았다. 그의 짜증 섞인 얼굴을 보면서 평소의 대니얼 양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대니얼 양은 민간 정보 기업 박물관연대의 최종 결정권자였다. 눈앞에 이 최종 결정권자는 검증된 정보 없이는 어느 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금 무언가를 결정하고 싶어 했다. 검증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일을 진행하고 싶어 했다.

“파타야에서 포착된 인물은 두 명입니다.”

패트릭이 말을 시작했다.

“몇 시간 전, 파타야에서 취합된 정보에 따르면 모용진의 정보를 찾아다니는 사람은 두 명의 남자입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들어온 정보에는 김승섭 단 한 명뿐입니다.”

대니얼 양은 패트릭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두 개의 가설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우선 김승섭의 태국 입국이 모용진과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그에게 집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다른 가설은 김승섭의 입국이 모용진을 추적하기 위한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그러면 파타야에서 두 명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합니다.”

“설명해 봐.”

“김승섭이 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모용진을 추적하기 위해 태국에 입국했다면, 통역을 고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파견되어 있던 국정원 요원과 같이 움직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입국한 국정원 요원이 김승섭 혼자가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어떠한 가능성도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말 되는군. 방콕이라면 몰라도. 파타야에 국정원 놈이 있을까?”

“태국에 있는 국정원 요원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깜둥이라면?”

흑색 요원, 태국과 협의가 안 된 비밀 파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빠른 시간 내에 확인은 불가능합니다.”

패트릭이 말했다.

“좋아.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패트릭은 대니얼 양이 그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평상시에 대니얼 양이라면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검증을 마친 다음, 확실하게 움직여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어떻게 움직일지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단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상황을 유추하려 하고 있었다.

트라이앵글을 다녀온 이후, 대니얼 양은 조금 변했다. 한국 관련 사안에서 특히 그랬다.

“일단 준비를 합니다.”

“준비?”

“파타야에 사람을 준비해 놓습니다.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일단 준비를 해 놓고, 김승섭이 모용진을 찾아다닌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행동을 결정합니다. 모용진은 파타야에서 빼냅니다. 그곳에 둘 이유가 없습니다.”

패트릭은 대니얼 양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서 그가 원한 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다고 그가 원하는 답을 말할 생각도 없었다.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일을 진행하기에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맞는 말이야.”

대니얼 양의 말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들어.”

패트릭은 말없이 최종 결정권자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차피 패트릭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다.

“이렇게 하지.”

대니얼 양이 입을 열었다.

“김세웅숩인가. 이상한 이름을 가진 그놈을 일단 찾아. 어디 있는지 위치를 확보하고, 그다음에 생포하자고. 모용진과 대면시키는 거지. 그럼 알겠지, 어떤 목적으로 태국에 왔는지. 모용진도 오랜만에 고향 사람 만나서 반가울 거야. 둘이서 정담을 나누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지.”

패트릭은 그 말에 아무런 반응하지 않았다.

무언의 부정이었다.

김승섭은 국정원 요원이었다. 막무가내로 국정원 요원을 포획하는 방식은 박물관연대의 방식이 아니었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군. 그래, 뭘 걱정하는지 알지. 이렇게 하자고.”

대니얼 양이 다시 말했다.

“방콕에 북한 애들이 좀 있지? 그놈들에게 일을 주자고. 용돈 좀 쥐여 주고, ‘네놈들을 잡으러 온 국정원 놈이다.’ 그렇게 말해 주면 눈에 불을 켜고 잡으려 할 거야. 그림이 아름답지 않아? 탈북자들이 국정원 요원을 납치한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패트릭이 말했다.

탈북자를 이용해 국정원 요원을 납치한다. 표면적으로 남북 간의 문제로 보일 것이다.

남북 관련 사안이라면 눈에 불을 키는 국정원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응할 것이고, 박물관연대가 원하는 틈이 더욱 벌어질 것이다.

박물관연대의 이름을 잘만 숨긴다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로드에게는 내가 연락하지. 일단 그 이름 어려운 놈의 사진, 그리고 지금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를 확인해 와.”

패트릭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

대니얼 양은 그 모습을 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제야 좀 재미있어지는군.”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1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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