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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64화 (264/386)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16) >

김형원과 유만호가 석촌역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에, 국가정보원 김훈 원장은 청와대에서 대통령, 국가안보실장과 조찬을 먹고 있었다.

청와대 조찬이라고 해도, 음식은 간소했다.

백미 비율이 절반 미만인 잡곡밥에 시금치를 넣고 끓인 된장국, 고등어구이와 나물 몇 가지, 일반적인 밑반찬이 전부였다.

대통령은 이런 방식을 좋아했다. 격의 없는 아침밥을 먹으며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숟가락으로 된장국을 뜨면서 최근 북미 관계 동향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젓가락으로 고등어 살점을 발라내면서, 국가안보실장의 보고를 받았다.

식사가 끝나자 직접 탄 커피믹스를 마시면서 몇 가지 서류에 사인했다.

유만호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김훈 원장이 알게 된 시간은 10시가 넘어서였다. 태국 건이라고 보고받은 김훈 원장은 내곡동 본부가 아닌 을지로의 국정원 안가로 차를 돌렸고, 그곳에서 유만호에게 김형원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예상 밖이군.”

유만호의 이야기를 들은 김훈 원장의 첫 마디였다.

“그렇습니다. 설마 그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상 밖이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유만호가 모순되는 두 문장을 이어 말했다.

김훈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에 변화를 주기 위해 현장 요원의 정보를 노출하는 방법은 이미 수립되어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나리오에 따르면 현장 요원들의 정보를 노출하는 결정은 현장이 아니라 서울에서 진행되었어야 했다. 현장 요원들은 모르게 진행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현장 요원들이 스스로 정보를 노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이 예상 밖이라는 이야기였고, 현장 요원의 정보가 노출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일단은 계획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유만호가 말했다.

정보를 유출하고 상황을 지켜본다는 의미였다.

“타이밍이 안 좋군.”

김훈 원장이 말했다.

“위에서 무슨 말씀이 있었습니까?”

유만호는 김훈 원장이 청와대에서 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심사가 끝났어,”

김훈 원장이 말했다.

“승인이 떨어졌군요.”

유만호가 말했다.

김훈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대통령은 정보위원회의 두 번째 기수 첫 번째 멤버로 곽용신을 승인했다.

“데려와야겠군요, 곽용신이는.”

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면 차차기 국정원장이 될지도 모르는 곽용신을 미끼로 쓸 수는 없었다. 위에서 곽용신의 존재를 인지한 이상, 곽용신은 위험에 노출되어서는 안 되었다.

“어떻게 할까요?”

유만호가 물었다.

“곽용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김훈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유만호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스스로를 미끼로 내걸겠다는 곽용신이, 지금 우리 자리에 앉아 있다면, 부하들, 현장 요원들을 미끼로 내거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제야 유만호는 김훈의 질문을 이해했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규호를 구출해 오기 전까지 유만호는 곽용신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도 못했다.

한국에 오고 김형원이 그를 거둔 후에야 김훈과 유만호는 곽용신을 인지했고, 경력을 분석하고, 쓸 만하다고 평가했다.

일을 시키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 곽용신이 유만호나 김훈의 자리에 올라왔을 때, 그들과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곽용신은 데려와야겠군요.”

유만호가 말했다.

“누가 남지?”

김훈이 물었다.

“곽용신이 빠지면 김승섭과 홍성민이 남습니다.”

“홍성민?”

김훈 원장의 질문에 유만호는 홍성민의 인적 사항이 적혀 있는 인사 파일을 건넸다.

김훈은 서류철을 받아 들고는 살펴보았다.

“곽용신이 데리고 있었군.”

홍성민의 인사 파일에는 사수가 곽용신이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렇습니다.”

“홍성민을 두짓(Dusit) 애들이 알고 있나?”

김훈이 물었다.

두짓, 태국국가정보부(NIA) 본부가 위치한 곳의 지명이었다. 홍성민이 국정원 요원이라는 사실을 NIA가 알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유만호가 답했다.

“그렇군.”

김훈 원장이 인사 파일에 첨부된 홍성민의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

아침 9시 30분. 한국인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파타야 오라오라투어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피곤에 절어 있는 얼굴을 한 홍성민이 들어왔다.

오라오라투어의 사장인 홍성민은 사무실 한쪽 구석에 놓인 소파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풀썩 소리와 함께 소파가 홍성민의 몸을 받아들였다.

“망할 놈의 개애섀키들!”

소파에 누운 홍성민이 욕설을 내뱉었다.

빗자루질하고 있던 태국인 직원이 홍성민의 욕설을 들었는지 말을 걸었다.

“사장님, 손놈 새끼들이 또 갑질했어요?”

그 소리에 홍성민이 몸을 일으켰다.

“응? 넌 그 말은 또 어디서 배웠냐? 아니 갑질은 갑질이고 손놈 새끼는 또 누구한테 배운 거야?”

한인 전문 여행사에 맞게 한국말을 조금은 할 줄 아는 태국인을 직원으로 고용했는데, 어디선가 갑질이라는 말을 배운 것 같았다. 하지만 손놈 새끼라니. 여행 업계 종사자로서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태국 직원이 손가락으로 홍성민을 가리켰다.

“나?”

태국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말을 조심해야 하겠어. 한국말을 하니까 일 시키기는 편한데.

“아냐, 일 봐. 청소해. 아 그리고 ‘손놈 새끼’ 이런 말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알았지?”

“네, 사장님.”

태국 직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홍성민은 다시 소파에 몸을 눕히면서 중얼거렸다.

“사장놈 새끼, 이런 말도 쓰는 거 아냐? 아무튼, 앞으로는 말조심 좀 해야지.”

손놈 새끼나 사장놈 새끼는 그렇다고 쳐도, 방심하다가 본사의 업무 내용이라도 흘러가면 문제가 커진다.

“그래도 그 기레기들은 진짜 개새끼들이었어.”

홍성민은 두 팔로 머리를 괴면서 오늘 아침 픽업했던 단체 손님들을 떠올렸다.

파타야에 골프 치러 온 50대 단체 일곱 명이었다. 지방 중소 도시 시청 출입 기자단이라고 했다.

아침에 분명히 픽업 시간을 알려 줬는데, 제시간에 맞춰 로비로 내려온 인간이 한 놈도 없었다.

로비에서 전화를 걸어 직접 깨워야 했고, 시간이 없다고,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음에도 모든 인간이 다 모일 때까지 40분이 넘게 걸려 버렸다.

골프장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차 안에서 해장에는 해장술이 최고라며 소주 팩을 까질 않나, 배고프다고 먹을 것을 사오라고 하지를 않나.

힘들게 사서 먹여 놨더니 멀미해서 차에다 다 토해 버리질 않나, 뻔히 동행이 토한 것을 알면서도 차 관리를 안 해서 냄새가 난다고 지랄하지를 않나.

아직 올해가 지나려면 몇 달 남아 있었지만, 올해의 진상 팀 강력한 후보였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후 라운딩이 끝나면 기레기 놈들을 또 모셔 와야 했다.

홍성민은 빗자루질하는 직원을 보면서, 오후 라운딩이 끝나면 저 녀석에게 픽업을 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눈을 감자 잠이 몰려왔다.

어젯밤 늦게까지, 아니, 새벽까지 워킹스트리트의 아고고와 클럽들을 돌아다녔다.

곽용신과 김승섭을 호텔에 데려다주니 손놈 새끼들 픽업 시간까지 채 1시간 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자두자, 일단 술이나 깨자는 마음으로 승합차에 누워 있었지만, 김승섭이 제안했던 계획이 마음에 걸려서 제대로 쪽잠도 자지 못했다.

곽용신은 당분간은 만나지 말자고 했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홍성민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했고, 조만간 이곳을 떠날 두 사람을 위해서 신분을 노출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 관점에서 곽용신의 선택이 옳았다.

하지만 옳다고 해서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동료가 위험에 처할 수 있게 되는 상황에서 몸을 사리고 있으라는데 마냥 알겠다고 하고 짱 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냥 동료도 아니었다. 곽용신과 김승섭이였다.

“젠장, 모르겠네.”

홍성민은 다시 중얼거렸다. 태국인 직원은 그의 말을 들었는지 어땠는지, 빗자루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 주머니에 들어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홍성민은 누워 있는 상태에서 인상을 찌푸렸다. 아주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조금 전 골프장에 모셔다 드린 진상 기레기 손님 새끼들이 무언가 사고를 친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장님, 전화.”

빗자루질 하던 직원이 홍성민에게 말했다.

“알았다, 알았어, 임마.”

그래. 저 녀석을 보내야지. 뭔진 모르겠지만 저 녀석을 보내야겠어.

홍성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뻗어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 액정에 뜬 번호를 확인하고 몸을 일으켰다.

방콕에서 온 전화였다. 정확히는 국정원 태국 지부장의 전화였다.

홍성민은 몸을 일으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라오라투어입니다.”

홍성민이 말했다.

-서울에서 전화가 올 거야.

전화 너머에서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약자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통나무집.

홍성민의 눈이 커졌다.

통나무집. 국정원 본부를 의미하는 코드였다.

***

홍성민은 전화를 끊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한쪽 구석에 마련된 탕비실로 걸어가 싱크대에 놓여 있는 컵 중에서 가장 깨끗한 놈을 골라 커피믹스 두 봉을 뜯어 넣은 다음 뜨거운 물을 부었다.

홍성민은 젓가락으로 대충 두어 번 휘저은 다음,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컵을 입으로 가져가자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단맛이 강한 커피가 그의 미각을 강하게 자극했다. 홍성민은 터져 나오려는 욕지기를 참아 내며 커피믹스를 천천히 마셨다.

급하게 정신을 차려야 할 때, 커피믹스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홍성민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국정원은 조직이었고, 그래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명령이라는 것은 더욱 그랬다.

방콕에서 전화가 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방콕 지부장은 홍성민의 직속상관이었고, 그에게서 지시를 받는 것이 정식 체계였다.

그러나 방콕 지부장은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내곡동에서 전화가 올 것이라는 말을 전달할 뿐이었다. 내곡동에서, 국정원 본사에서 직접 지시를 내린다는 의미였다.

홍성민은 인상을 쓰면서 머그잔을 바라보았다. 커피를 반 정도 마셨는데, 녹지 않은 분말이 입에 씹혔다. 남아 있는 절반이 더 달고, 역할 것이다.

버려 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홍성민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8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홍성민은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머그잔을 내려놓고 전화기를 들어 통화 버튼을 누르고 얼굴로 가져갔다.

“오라오라투어입니다.”

홍성민이 말했다.

-내곡동이네.

전화기 너머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약자 성함 말씀해 주십시오.”

홍성민이 물었다.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

내곡동이라고 바로 네! 국가정보원 태국 지부 홍성민 요원입니다 할 수는 없었으니까.

-원장이네.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말했다.

이런 씨이발.

홍성민이 속으로 외쳤다.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1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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