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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61화 (261/386)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13) >

위를 바라본 곽용신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분노 서린 눈으로 김승섭을 바라보았다.

아고고에 들어온 김승섭은 매와 같은 눈으로 아고고 내부를 둘러보았을 것이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다 천장도 보게 되었을 것이다.

바카라 아고고의 1층 천장, 다시 말해 2층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유리로 되어 있는 2층 바닥에는 짧은 치마를 입은, 입었다는 표현보다는 걸쳤다는 표현이 적합한 무희들이 흐느적거리는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이 앉은 자리, 무대 옆 소파 자리는 그 유리 바닥의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다시 말해, 치마 속이 가장 적나라하게 보이는 각도에 있었다.

김승섭은 아고고를 둘러보다 그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은 것이다.

곽용신은 김승섭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입을 벌린 채로, 위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로, ‘죽어도 태국어를 배워야 되겠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곽용신은 그런 김승섭의 옆얼굴에 깔끔한 클린 펀치를 꽂아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 옆얼굴이 마치 때려 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꽉 쥔 주먹과 김승섭의 옆얼굴까지 거리가 고작 몇십 c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김승섭의 강냉이를 털 수 있었다.

주먹을 날릴 것인지 말 것인지 망설이고 있던 그때, 웨이터가 맥주를 가져와 그의 앞에 놓았다. 웨이터는 맥주를 놓으면서 꽉 쥐어진, 하얗게 될 정도로 꽉 쥐어진 곽용신의 오른손을, 아니 오른쪽 주먹을 보았다. 그리고 무슨 일 있냐는 표정으로 곽용신을 바라보았다.

곽용신은 웨이터가 눈빛으로 보낸 질문을 읽고, 이성을 되찾았다.

패는 건 나중에 숙소에서 패도 된다. 괜히 지금 사람들의 시선을 끌 필요는 없지.

곽용신은 주먹을 내지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면서, 힘겹게 주먹을 풀고 맥주병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차가운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이성이 조금 더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목을 끌어선 좋을 것이 없지. 정신 차려, 곽용신! 너라도 정신 차려야지!

곽용신은 맥주병을 다시 입으로 가져가면서, 김승섭에게서 눈을 떼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계속 그 옆얼굴을 보고 있다가는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정면으로 향하는 그의 시야에, 비키니처럼 생긴 천 쪼가리를 입고 춤을 추고 있는 댄서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들을 보면서 홍성민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한 번은 나오겠지, 남자라면. 그리고 한번 나오면 절대로 한 번에서 끝나지 않고.

무슨 말인지 알겠군.

곽용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유흥이나 섹스 산업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파타야, 아니, 이곳 워킹 스트리트는 거리 전체는 비일상적이고 비상식적인 퇴폐미로 가득했다.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었기에, 혐오감을 뛰어넘는 마력처럼 느껴졌다. 마치 원시 부족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북소리처럼, 사람의 본능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모용진은 술도, 담배도 즐기지 않는다. 여자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퇴폐적인 마력이 가득한 이 도시에 흔들리지 않을까?

생각해 보자. 모용진은 지금 쫓기고 있다. 긴장하고 있다. 과도한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형님.”

김승섭의 목소리가 막 본론으로 들어가려던 곽용신의 상념을 비집고 들어왔다.

“닥쳐.”

곽용신이 말했다.

김승섭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랐지만, 개소리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형님, 여기는 무슨 속옷 종류는 입으면 안 되는 법 같은 게 있나 봐요.”

김승섭은 곽용신의 닥치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닥치라고.”

곽용신이 옆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김승섭의 고개와 시선은 위를 향해 있었다.

때리고 싶다. 있는 힘껏 때리고 싶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김승섭의 옆얼굴에 아주 깔끔한 클린 펀치를 먹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괜찮지 않을까? 가게 안은 시끄럽고, 사람들은 전부 여자들만 바라보고 있으니, 빠른 스트레이트 한 방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괜찮겠지? 깔끔하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방만. 그 정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

그래. 괜찮을 거야. 다들 여자만 보고 있잖아. 그래. 딱 한 방만. 깔끔하게, 딱 한 방만!

결정을 내린 곽용신이 주먹을 말아 쥐기 위해 전완근에 힘을 주는 그 순간, 곽용신의 어깨에 손 하나가 올라왔다.

“히야, 우리 용신이 형 재주가 좋아. 오늘도 아주 좋은 자리 잡으셨네?”

전완근에 힘이 들어가고, 딱 적당한 각도로 주먹을 말아 쥐고, 회전력을 더하기 위해 허리에 힘을 주려던 찰나, 김승섭의 탐스러운 옆얼굴에 깔끔한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막 들어가려던 그 타이밍에 홍성민이 곽용신의 어깨를 팡팡 치면서 말했다.

“형님! 홍가 형님! 진짜 꼭 같이 일합시다! 내가 태국어 배울 테니까. 무조건 배울 테니까. 진짜 자음 모음 다 외우고, 성조 다 익히고, 공기 반 소리 반!”

여전히 시선을 위쪽으로 고정한 채로 김승섭이 말했다.

홍성민은 피식 웃고는 두 사람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임마, 등심도 가끔 먹어야 맛있는 거지. 맨날 먹어 봐라. 나중에는 느끼해서 목구멍으로 안 넘어가요. 그거랑 마찬가지야. 여기도 처음에나 신기하고 좋지, 나중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니깐. 그냥 참 저 친구들도 열심히 사는구나. 그런 생각밖에 안 든다고.”

홍성민에 말에 김승섭이 처음으로 천장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려 홍성민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질릴 때까지 먹어 보고 싶어요. 느끼해서 욕지기 날 때까지.”

곽용신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엄지와 중지로 V 자 모양을 만든 다음 김승섭의 눈을 찔러 가며 소리쳤다.

“야, 놀러 왔냐? 우리가 놀러 왔어, 어?”

***

애석하게도 곽용신의 회심의 눈 찌르기는 실패하고 말았다.

마치 예상했다는 듯 김승섭은 손날을 세워 곽용신의 찌르기를 막아냈다. 그렇게 막아내고는 곽용신의 분노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홍성민에게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인재인지를 어필하기 시작했다.

곽용신에게 한소리 들었다고, 돌려차기를 맞았다고, 설사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해서 기죽을 김승섭이 아니었다.

홍성민은 오히려 그런 김승섭을 옆에서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고고 시스템이라고 해도 업소마다 시스템이 다르다는 말씀?”

김승섭이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 같은 눈을 하고 홍성민에게 물었다.

“그렇지. 예를 들어, 바 파인의 경우 어떤 업소에는 바 파인에 모든 비용이 전부 다 포함된 경우도 있고, 어디는 바 파인이 말 그대로 업소에 지불하는 비용만을 의미하기도 한단 말이지. 그럴 때는 데이트 비용은 언니와 따로 이야기해야 하고.”

“그러니까 바 파인의 광의와 협의가 다르다는 말이네.”

“그렇지. 역시 승삽이. 빨리 배우네. 예를 들어서 여기 바카라의 경우는 말이지······.”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곽용신은 어떻게 뚝배기를 깨야 잘 깼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김승섭이야 원래 그런 놈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홍성민 저 자식은 가이드로 위장하라고 했더니 진짜 밤 문화 가이드로 전직이라도 한 것처럼 진지한 얼굴로 파타야 밤 문화 시스템에 대해서 열강을 하고 있었다.

곽용신의 시선이 손에 들린 맥주병으로 향했다.

깨야 할 뚝배기는 두 개인데, 병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병을 더 주문해야 하나?

곽용신은 맥주병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일단 병을 비우자. 누구 뚝배기를 깨든 간에 빈 병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나저나 오늘 뭐 했습니까?”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지 홍성민이 강의를 끝내고 곽용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 하긴요, 똑같죠. 나끌루아 갔다가, 지역 사창가 갔다가, 아무튼 여기저기 겁나 돌아다녔네.”

김승섭이 대신 대답했다.

“날도 더운데 고생하셨네.”

홍성민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진짜 더워 죽는 줄 알았네. 뭔 놈의 햇볕이 그리 센지. 피부가 아프다고, 그만 좀 싸돌아다니라고 막 비명을 지르더라니까요? 또 실내는 에어컨을 어찌나 씨게 트는지. 땀 겁나게 흘렸다가 실내 들어가면 땀이 팍 식어 버리니까 춥고.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몰라.”

김승섭이 투덜거렸다.

“우리 승삽이는 태국에서 일 몬 하겄네.”

홍성민이 김승섭을 보면서 말했다.

“행복해서 말입니다. 이렇게 행복해서 어떻게 사나 몰라. 홍가 형님 성급하시기는!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거 안 배웠습니까?”

김승섭의 번개 같은 태세 전환에 홍성민은 씩 웃으며 다시 곽용신에게 물었다.

“뭐 소득 좀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곽용신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홍성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득이 있을 리가 없다. 곽용신과 김승섭 두 사람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를 하는 심정으로 파타야를 돌아다녔을 것이다. 사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를 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를 한다고 해도 말이죠.”

홍성민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듯 김승섭이 맥주병을 들면서 말을 이었다.

“바늘이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좀 신나서 찾아볼 텐데 말이죠. 모용진 그 인간이 여기 있는지, 아니면 진작에 도망쳤는지. 참말로. 여기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어떻게든 비벼 볼 텐데, 그런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괜히 헛짓거리만 하는 거 아닐까 그게 제일 걱정이네요.”

김승섭이 말했다.

곽용신과 홍성민은 김승섭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한 말에 반응이 없자 김승섭은 두 사람을 보았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왜요? 왜 사람을 그런 눈으로 봅니까?”

김승섭이 물었다.

“뭐랄까, 그냥. 승삽이 네가 뭔가 지금 상황에 맞는 말을 하는 게, 좀 뭐랄까, 기분 나빠서?”

홍성민이 말했다.

곽용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 나, 뭐래 이 양반들. 나 같은 인재를 두고.”

김승섭이 그렇게 투덜거리며 다시 시선을 위로 향했다.

곽용신은 다시 무방비로 노출된 그 옆얼굴에 유혹을 느꼈다.

“어쩔 겁니까?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을 텐데. 그 인간이 여기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볼 방법이 없으니 환장하겠네.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모래사장을 전부 뒤져서라도 바늘을 찾아보면 될 터이고, 없다는 확신만 있다면 그냥 짐 싸서 돌아가면 되는 건데 말이죠.”

홍성민이 얼마 남지 않은 맥주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홍성민의 말에 곽용신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맞는 말이다.

확신만 있다면, 모용진이 이곳에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돈도, 시간도, 노력도 들여 볼 만한데, 확신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없다는 확신도 없으니 떠날 수도 없었다.

홍성민을 기다리면서 찔끔찔끔 마셨던 탓인지 맥주병이 거의 비어 있었다.

한 모금도 안 되는 마지막 액체가 곽용신의 식도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 작은 양의 액체가 목을 적셔 주었지만, 곽용신은 갈증이 더욱 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 병 더 주문할까?

곽용신은 잠깐 고민했지만, 마음속으로 머리를 저었다.

맥주를 더 마신다고 해서 지금의 갈증이 해소될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그가 느끼는 갈증은 맥주나 물 같은 것으로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쩔 겁니까?”

홍성민이 물었다.

곽용신은 맥주병을 내려놓으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스테이지 위에서 비키니 상의 끈을 풀어 내리던 무희와 눈이 마주쳤다.

윤택이 흐르는 흑진주 같은 눈동자가 빨아들일 것처럼 곽용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곽용신은 그녀의 매혹적인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나가자. 도저히 여기서는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네.”

김승섭의 얼굴에 실망이 번졌다.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1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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