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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58화 (258/386)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10) >

야닌은 자신이 사무실에 있었다.

그녀는 사무실 소파에 앉아 제이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크로부터 목표를 놓쳤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녀는 직접 임시 상황실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 그녀를 제이크가 만류했다.

임시라고는 해도 엄연히 작전이었고, 목표를 놓친 시점에서 그녀의 존재가 드러내는 상황은 적절치 않다는 이야기였다. 조금 더 자세한 상항이 파악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다.

야닌은 제이크의 의도를 이해했다.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녀를 제이크가 지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상세한 보고를 가져올 제이크를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크가 편집된 CCTV 영상이 담긴 노트북을 들고 야닌의 사무실로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난 후였다.

제이크는 임시 상황실로 복귀한 현장 요원의 보고를 받고, CCTV 영상과 회수한 증거물을 확보하고 나서야 야닌을 찾아온 것이다.

“찰리는 터미널21에서 미행을 시작했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목표를 따라 5층까지 이동했습니다. 목표가 찰리를 눈치챘다는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야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같은 생각이다. 미행을 발각당할 정도로 미숙했다면 NIA 본부의 현장 요원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이크가 노트북을 열고 실행 파일을 클릭하자 영상이 재생되었다. 터미널21 쇼핑몰의 푸드코트인 Pier21 내부에 설치된 CCTV 영상이었다.

“이자가 목표입니다.”

제이크가 손가락을 화면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재킷을 입고 가방을 한쪽 팔에 낀 남자가 선불카드를 충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화질 영상은 깔끔했지만, 아쉽게도 목표는 카메라를 등지고 있었기에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목표는 1천 바트를 충전했고, 선불카드로 두 개의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푸드코트에 마련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푸드코트 한쪽에 마련된 식사용 테이블이 비쳤다.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나타난 남자가 쟁반을 테이블에, 가방을 옆 좌석에 놓고, 재킷을 벗었다.

다행스럽게도 앵글은 측면이었고, 목표의 얼굴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리가 멀었다. 야닌은 조금 더 자세한 얼굴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대 영상은 현재 작업 중입니다. 조금 후에 조금 더 자세한 영상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야닌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제이크가 말했다.

야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을 피하고자 찰리도 음식을 주문하고, 근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야닌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목표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목표는 빠르지도, 그렇다고 늦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음식을 먹었다. 마치, 밥때에 맞춰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찰리는 어디 있지?”

야닌이 물었다.

“이쪽입니다. 거리는 대략 10여 미터 정도입니다.”

제이크가 노트북 화면 구석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현장 요원의 모습은 화면에 보이지 않았지만, 방향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목표가 찰리를 인지한다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테니까.

“식사는 15분 정도 걸립니다.”

제이크가 말했다.

이미 영상을 확인했고, 음식을 먹는 동안 목표는 찰리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음을 확인했으니, 15분 동안 영상을 볼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야닌은 대답하지 않았다. 제이크는 그녀의 침묵에서, 15분 동안의 목표의 모습을 확인하겠다는 의미를 읽어냈고, 입을 닫았다.

지루한 15분의 시간이 흐르고, 식사를 마친 목표가 숟가락과 포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는 화면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식사를 마친 목표는 재킷과 가방을 두고 충전 데스크로 향했습니다. 찰리는 목표가 선불카드를 환급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고 판단했고 다시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충전 데스크의 모습이 보였고, 몇 초가 흐른 후에 목표의 모습이 나타났다.

목표는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충전 데스크로 다가왔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자연스럽게 화면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목표가 화면 밖으로 나간 순간부터 야닌은 천천히 시간을 카운트했다. 대략 30여 초 정도가 지나자 현장 요원 찰리의 모습이 화면에 들어왔다.

“찰리와 목표와의 시차는 33초입니다.”

제이크가 말했다.

“나머지 영상은?”

“쇼핑몰 전체 CCTV 영상은 전부 확보해 분석 중입니다. 아속역 CCTV는 경찰청에 요청해놓았습니다.”

제이크가 말했다.

“사이비 기자 놈은 아니라는 의미로군.”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둔 야닌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이크도 동의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가방은?”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현재 지문을 분석 중입니다.”

태국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은 입국 심사 과정에서 지문을 등록한다. 정체불명의 목표가 정상적인 경로로 입국했다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가방에 지문이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군.”

야닌이 말했다.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골드바.”

“UBS가 제작한 진품이 맞습니다. 제작 일자는 2001년 6월 12일이고, 2010년에 상해 금 거래소(Shanghai Gold Exchange)에서 홍콩의 골동품 전문회사에 거래된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의 기록은 없습니다.”

“홍콩에 있어야 할 골드바가 방콕에서 발견되었다?”

“목표가 홍콩에서 가져왔거나, 그전에 밀수로 들어온 물건을 사들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차이나타운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야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 골드바가 홍콩에서 밀수되어 들어왔다면 방콕의 차이나타운인 야왈랏 귀금속 거리에서 거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가격의 골드바라면 분명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 명의는?”

“가짜였습니다.”

“그렇겠지. 위치 추적은?”

“북한인들의 대략적인 영역은 확인되었습니다. 끄렁떠이입니다.”

방콕의 대표적 슬럼가의 이름이 나왔다.

“거기밖에 없겠지…….”

야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 야닌은 입을 닫았다.

제이크는 그의 상관이 고민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무엇을 고민하는지도 알았다.

이쯤에서 손을 뗄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판을 벌릴 것인가.

목표를 놓쳤다. 쇼핑몰과 아속역 인근의 모든 CCTV를 확인하고 있기는 하지만, CCTV 영상만으로 목표의 행방을 알아내기에는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방법은? 현 상황에서 정체불명의 목표를 추적하려 한다면 끄렁떠이에 있는 북한인들을 감시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정체불명의 목표가 무엇을 하려 하든 간에 그 일을 북한인들이 할 것이고, 북한인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면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북한인들을 감시하고 목표를 찾아내기에, 지금 규모로는 버거웠다. 아니, 정확히는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잠복한다고 해도, 현재 운용 중인 네 명의 현장 요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잠복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인 1조의 잠복조가 세 개 조는 있어야 했다. 거기에 추가로 잠복조를 지원하기 위한 지원조, 그리고 잠복조와 지원조를 지휘하는 지휘부도 구성해야 했다.

인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휴대전화 도청을 위해서는 본부 정보 분석 팀의 협조를 받아야 했다.

예산도 문제였다. 제이크와 야닌이 지금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작전비용에도 한계가 있었다.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본부에 정식 작전으로 승인을 받아야 했다. 야닌은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다.

제이크는 불편한 마음으로 야닌을 바라보았다.

1급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작전에는 실익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차논을 다시 불러들여.”

침묵을 끝낸 야닌이 말했다. 제이크는 그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알겠습니다.”

“보고준비에 얼마나 걸리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영상 분석까지 완료하려면 적어도 2시간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부탁해.”

야닌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이크가 말했다.

***

방콕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방콕 시내 시장은 방콕 북쪽에 있는 짜뚜짝(Chatuchak) 주말 시장이었다.

1.13km² 부지에 5천 개가 넘는 점포가 가득 들어찬 이 주말 시장은 토, 일 이틀 동안 방문자만 60만 명을 기록하는 방콕의 대표적 관광명소였다.

그러나 방콕에 장기체류하는 외국인들은 짜뚜짝 시장을 이용하지 않았다. 현지인들과 같은 물가로 물건을 구입하고 싶어 하는 장기체류 외국인들은 끄렁떠이(Khlong Toei) 구역에 있는 끄렁떠이 재래시장을 이용했다.

태국 전역에서 생산되는 농·축·수산물이 끄렁떠이 재래시장에 모였고, 그렇게 모인 식료품은 방콕과 방콕 인근 위성도시에 사는 1천5백만 명의 시민들의 먹거리가 되었다.

장기체류 외국인들은 신선하고, 저렴하며, 정이 있는 재래시장에서 현지인들처럼 흥정하고, 식재료를 사들이고, 길거리 음식을 사 먹었다.

짜뚜작 시장이 한국의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이라고 한다면, 끄렁떠이 시장은 가락 시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방콕에 오래 살았다고 해도, 아무리 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 해도 끄렁떠이 시장을 이용할 때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칙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시장구역을 벗어나 빈민가에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이었다.

방콕 최대 슬럼인 끄렁떠이 빈민가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고향을 등지고 무작정 대도시로 올라온 순박한 시골 사람들, 그 순박한 사람들을 등쳐 먹는 양아치, 양아치를 등쳐 먹은 지역 깡패와 지역 깡패를 등쳐 먹는 부패 경찰이 끄렁떠이에 살고 있었다.

거기서 조금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약쟁이와 장물장이, 그리고 그들에게 기생하는 범죄자와 그 범죄자에게 도움을 주거나, 때로는 범죄자들을 밀고하는 정보 상인이 있었다.

가장 깊숙한 골목, 가장 어둡고, 가장 지저분한 골목에는 태국에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들이 있었다. 햇빛과 법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외국인들은 조직을 이루고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또는 빼앗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외국인 조직 중 하나가 탈북자 조직이었다. 그리고 탈북자들을 모아 조직을 만들어 낸 인물이 김택경이였다.

탈북자 조직을 이끄는 김택경은 자신의 아지트, 아지트라는 이름이 무색한 좁은 골방에 앉아 부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택경은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8시 반, 그의 부하가 의뢰인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이었다.

김택경의 부하, 5년 전 김택경과 함께 조국을 등진 그의 오른팔은 김택경이 있는 아지트에서 약 4km 떨어져 있는 룸피니(Lumphini) 공원에 나가 있었다.

김택경의 시선이 시간에서 휴대전화 전체로 천천히 줌아웃 되었다.

몇 시간 전, 저 휴대전화로 정체불명의 의뢰인에게서 전화가 결려왔다.

부탁할 일이 있다.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다. 오늘 봤으면 한다.

전화기 너머에서 남조선말이 흘러나왔고, 김택경은 돈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조선이든, 미 제국주의자든 상관없었다. 조직을 이끄는 김택경에게는 돈이 될지, 되지 않을지가 가장 중요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김택경은 문자를 확인했다.

-만났습니다.

부하가 보낸 문자였다.

김택경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있던 담배 한 대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앞으로 1시간 후에 의뢰인이 이곳으로 찾아올 것이다.

약 1시간. 1시간 후에는 알게 될 것이다.

의뢰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를 줄 것인지. 그리고 의뢰인이 이곳을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김택경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면서, 책상 위에 올려진 손도끼를 잡아들었다.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1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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