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53화 (253/386)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5) >

소이 인타마라(Soi Inthamara).

방콕, 태국.

방콕도시철도 BTS(Bangkok Transit System) 사판콰이(สะพานควาย, Saphan Khwai)역에서 남쪽으로 500m 정도 남쪽, 수티산(Sutthisan)로드를 좌우로 관통하는 도로의 이름은 소이 인타마라였다.

소이 인타마라, 줄여서 인타라고 불리는 이 곳은 최근들어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방콕의 3대 유흥가인 팟퐁, 나나플라자, 소이 카우보이와 더불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유흥가가 바로 소이 인타마라였다.

소이 인타마라도 다른 유흥가와 마찬가지로 아고고가 주력 업종이었고, 그중에서도 Rainbow3, Byton 그리고 T DET69(티뎃혹까오)가 소이 인타마라를 대표하는 3대장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면 술과 여자와 돈을 찾아 수많은 욕망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그 말은 낮 동안에는 방콕에서 가장 조용하고 한산한 장소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당연히 소이 인타마라의 대표 아고고 중 하나인 T DET69 내부에도 모든 전등이 꺼져 있었다.

단 한 곳, 3중 잠금장치와 방음판으로 만들어진 내실 하나를 제외하고는.

아고고에서 내실은 스테프가 사용하는 공간을 의미했다. 종업원들이 옷을 갈아입고, 짬을 내 밥을 먹고, 잠시 토막잠을 자는 그런 공간을 의미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이 내실은 T DET69를 찾는 손님들은 물론, 가게에서 일하는 어떠한 스태프들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오직 단 한 사람, 내실에 앉아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스무 개의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그 남자만이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이십여 개의 모니터에는 다양한 화면이 비치고 있었다.

차량과 사람이 오가는 도로, 늙은 개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골목, 끄렁떠이 재래시장의 약방 골목, 불 꺼진 회의실, 늦은 오후의 밀회를 즐기는 불륜 남녀가 엉켜있는 호텔 객실 등 수많은 영상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얼마 전까지 치앙마이에서 태국국가정보부(NIA) 4급 요원으로 근무했던 차논(ชานน)이었다.

그가 이 내실의 주인이었다.

차논의 시선은 CCTV 영상 중 도로를 비추고 있는 한 영상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있는 장소, ‘T DET69’가 위치한 소이 인타마라의 도로를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영상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적하고 단조로웠다. 한적한 도로, 드물게 지나다니는 차량과 그보다 더 빈도가 적은 행인들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차논은 그런 단조로운 영상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담뱃갑을 집어 들기 위해 손을 뻗을 때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CCTV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귀한 손님이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귀한 손님이 처음 모습을 보일 장소가 바로 지금 CCTV 화면이 비추고 있는 저 장소였다.

두어 대의 담배를 피우고 나서야, 택시 한 대가 속도를 줄이는 것이 보였다. 화면 속의 택시가 멈추고,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내렸다.

차논은 시계를 보았다. 약속한 시각이었다.

시간을 보지 않았더라도, 차논은 택시에서 내린 남자가 그가 기다리던 귀한 손님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차논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여전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속의 남자는 천천히 몸을 굽혔다. 그리고 손을 뻗어 왼쪽 신발 끈을 풀어냈다가 다시 묶었다. 신발 끈을 묶은 남자는 몸을 일으킨 다음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내 겨드랑이에 낀 다음, 다시 몸을 굽혀 마저 오른쪽 신발 끈도 다시 묶어버렸다.

약속된 순서, 약속된 행동이었다.

차논은 화면 너머로 약속된 행동을 확인한 후에야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잡았고, 약속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화면 속 남자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방금 들어온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차논의 전화기가 진동했다.

답장을 확인한 차논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귀한 손님을 맞으러 갈 시간이었다.

몸을 돌려 나가는 차논의 등 뒤로, T DET69의 뒷문으로 연결되는 골목으로 걸어들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

직원들이 사용하는 뒷문이 열렸다. 그리고 조금 전 택시에서 내린 남자가 불 꺼져 있는 T DET69 아고고 안으로 들어왔다.

몇 시간 후에는 여자를 원하는 수많은 남자와 그 남자들의 돈을 원하는 여자들과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 찰 공간에 단 두 남자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ยินดีต้อนรับสู่สำนักงานของฉัน(어서 오십시오).”

차논이 악수를 청하기 위해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차논을 잠시 바라보고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차논의 손을 잡았다.

차논은 악수를 하면서 빠르게 의뢰인을 관찰했다.

의뢰인의 얼굴 생김새는 타이족(族)이 아니었다.

의뢰인은 처음 연락을 해 왔을 때부터 영어를 사용했었다. 차논은 의뢰인이 태국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자 외국인일 확률이 높다는 판단했다.

하지만 확신하지는 않았다. 차논은 확실해질 때까지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았다.

의뢰인의 얼굴에는 세월이 스쳐 간 흔적이 주름이라는 형태로 묻어 있었다. 50대 중후반, 60은 넘지 않은 것 같았다.

나이치고는 손은 부드러웠다. 차논은 남자가 몸을 쓰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해도 전투력이 없다고 속단하지도 않았다.

“กรุณามาที่นี่(이쪽으로 오시죠).”

손을 놓은 차논은 의뢰인을 한쪽 구석에 있는 소파로 안내했다. 유일하게 전등을 켜 놓은 좌석이었다.

차논은 안내를 하면서 빠르게 의뢰인이 입고 있는 복장을 살펴보았다. 면바지에 특색 없는 회색 면 재킷과 회색 리넨 셔츠. 손에는 보스톤 백을 들고 있었다.

일부러 시장에서 허름한 옷을 골라 사 입었군.

차논은 그렇게 생각했다.

차논은 의뢰인을 만날 때 옷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쪽 세계에서 옷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특히 차논을 찾아온 손님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이 시간에 여기에 와서 차논을 만나려는 사람들은 더러운 일들을 해 주길 원했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려 했다.

그가 시장의 싸구려 옷을 입었다고 해서 편견을 가질 정도로 차논은 멍청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가 지불한 접수비를 생각한다면 그가 땀에 절어 있는 거지 옷을 입고 왔다 하더라도 그를 극진히 반겼을 것이다.

귀한 손님이었다. 차논에게 있어서 귀한 손님이라는 의미는 많은 의뢰비를 지불하는 손님이라는 의미였다.

눈앞의 이 의뢰인은 접수비로 30만 바트(9천 달러)를 미리 지불했다. 의뢰 접수비라는 것은 일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돈이었다. 그렇기에 의뢰 접수비로만 30만 바트는 절대로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리고 30만 바트의 접수비라는 것은 3백만 바트(9만 달러)짜리 일이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ฉันจะทำอะไรให้คุณ(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차논이 의뢰인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물었다.

“In English(영어로).”

의뢰인이 말했다.

차논은 살짝 웃음 지어 보이고는 다시 영어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바 파인.”

의뢰인이 말했다.

바 파인? 바 파인을 원한다고?

차논은 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바 파인(Bar Fine). 바에 지불하는 벌금, 정확히 말하면 조기 퇴근 시 여성 종업원들이 업소에 지불해야 하는 벌금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성을 자신의 숙소로 데려가기 위해 손님이 바에 지불하는 화대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물론 의뢰인이 말한 바 파인은 여자를 데려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을 구해 달라는 의미였다.

“어떤 아가씨를 찾으십니까?”

차논이 물었다. 바 파인은 흔한 의뢰이다. 그러나 3백만 바트짜리 바 파인은 절대 흔하다고 할 수 없었다.

“Korean.”

의뢰인이 말했다. 차논이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한국…… 말씀이십니까?”

차논은 천천히 남자의 말을 되물었다.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한 습관이었다.

차논은 빠르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한국, 한국이라.

한국은 징병제 국가였고, 징병제 국가 중에서도 질 높은 병력을 보유한 나라였다.

나나플라자(방콕 유흥가)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젊은 까올리(한국인)에게 소총을 쥐여 주면 바로 한 개 소대쯤은 금방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아주 질 좋은 병력으로.

문제는 한국이 안정된 나라라는 것이다.

자신의 모국에서,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예비역들이 방콕에 와서 불법적인 해결사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이곳에 와서 해결사 일을 하는 한국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깡패, 도박꾼, 약쟁이였다. 실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이라……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차논은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의뢰인의 말에 끊겨 버렸다.

“북쪽.”

“북쪽?”

차논이 되물었다.

차논의 되물음에 남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침묵으로 긍정을 표시할 뿐이었다.

북한은 위험한데.

북쪽이라는 말을 들은 차논의 머릿속을 스치고 간 첫 번째 생각이었다.

같이 일해 본 적은 없었지만, 북한에서 온, 정확히 북한에서 탈출한 전직 군 출신들이 방콕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북한 애들이 필요하시다…….”

차논이 중얼거렸다.

“안 되오?”

남자가 물었다.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지만?”

의뢰인이 물었다.

차논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말투와 표정, 눈빛에서 아무것도 읽어 낼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차논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추천해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차논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찾아다 줄 수는 있지만 추천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를 담아서.

“잘 아시겠지만……. 그쪽 출신들은, 음, 쉽게 말하면 뒤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일을 제대로 해낸다는. 그, 뭐랄까. 신용이 부족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설사 원하시는 일이 제대로 안 되었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불가능합니다.”

차논은 의뢰인에게 그런 설명을 하면서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남자는 북한 출신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비용 부분도 그렇습니다. 그쪽 출신들은 자신들에 실력에 대해 자부심이 좀 강한 편이라.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 말은 거짓이었다. 북한 출신들과 일을 해 본 적 없는 차논은 그들이 움직이는 데 얼마나 들어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거절하기 위한 명분으로 비용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비용이 부담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의뢰인은 말없이 차논을 바라보다가 옆에 있던 보스턴백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천천히 가방을 열고, 손을 넣어 무언가를 잡은 후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차논은 의뢰인이 꺼낸 무언가가 테이블 위에 올려지기 전에 골드바라는 알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졌을 때, 스위스 UBS은행에서 발행한 1kg짜리 24k 골드바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골드바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남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가방에 손을 넣어 하나씩, 하나씩 해서 총 세 개의 골드바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바 파인. 되겠소?”

의뢰인이 물었다.

차논은 대답하지 못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골드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1kg 골드바가 세 개. 미화로 15만 달러. 태국 돈으로 약 450만 바트의 가치를 가진 물건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되겠소?”

의뢰인이 다시 물었다.

차논의 시선이 골드바에서 천천히 의뢰인에게로 옮겨졌다. 차논은 그 얼굴을 보면서 욕망을 느꼈다.

지금 여기서 그를 처리해 버랄까?

차논은 아무런 도구가 없어도, 두 손만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그의 목을 꺾어 버릴 수 있었다.

그의 목을 꺾어 버리고, 그 시체를 처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가 타고 온 택시에는 기록이 남아 있을까? 그 택시를 탄 곳에 흔적이 남아 있을까? 그가 여기에 왔다는 것을 누가 알고 있을까?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면 누군가 그를 찾을까?

그런 생각이 빠르게 차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되오?”

차논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뢰인은 다시 같은 어조로 물었다.

“……됩니다.”

그런 의뢰인의 눈을 바라보며 차논이 답했다.

차논의 답을 들은 남자는 다시 손을 움직여 골드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던 역순으로 천천히 하나씩 골드바를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차논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손이 멈추었을 때, 테이블 위에는 골드바 하나가 남아 있었다.

차논은 그 골드바에 손을 가져가고 싶은 유혹을 참으며 물었다.

“꼭 북한이어야 합니까?”

차논이 물었다.

남자는 대답 없이 가방을 닫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5일 후에 전화하겠소.”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렸다.

차논은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의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잠시만!”

남자가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는 순간, 차논은 남자를 불러 세웠다. 남자는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차논을 돌아보았다,

“성함은?”

차논이 남자에게 이름을 물었다.

“본명을 알려 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식할 수 있는 이름은 있어야 합니다.”

차논이 빠르게 말했다.

“백금.”

남자가 말했다.

“빼끔?”

차논이 빠르게 되뇌었다. 처음 들어보는 발음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돌렸고. 문을 열고 걸어 나갔다.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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