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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52화 (252/386)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4) >

싱가포르 출장을 마치고 막 홍콩으로 돌아온 대니얼 양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사무실이었다.

표면적으로는 HK Antique Trade의 사장실, 실질적으로는 민간 정보 기업 박물관연대의 헤드쿼터가 그의 일터이자 집이었다.

회사로 돌아오자 패트릭 키츠(Patrick Keats)가 그를 맞이했다. 공식적으로 HK Antique Trade 부사장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박물관연대의 2인자로서 대니얼 양이 홍콩을 떠나있는 동안 박물관연대를 관리하는 오른팔이었다.

대니얼 양을 따라 사장실로 들어온 패트릭은 대니얼 양이 의자에 앉기도 전에 보고하기 시작했다.

대니얼 양은 의자에 앉으면서 동시에 가방을 책상 위로 던졌다. 그러면서 얼굴을 보자마자 일 이야기냐 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오른팔을 바라보았지만, 패트릭 키츠는 보고를 멈추지 않았다.

대니얼 양은 책상 위로 두 다리를 올리면서 그의 오랜 심복을 바라보았다.

재미없는 녀석 같으니.

대니얼 양은 기계 같은 어투로 보고를 계속 이어 가는 패트릭 키츠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태국입니다. 손님은 모셨고,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고를 듣는 듯 마는 듯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던 대니얼 양이 처음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패트릭 키츠를 바라보았다.

“방콕?”

“파탸야입니다.”

패트릭 키츠가 대니얼 양의 말을 수정해 주었다.

“융통성 없는 자식. 방콕이나 파타야나.”

대니얼 양이 다시 귀를 파던 새끼손가락을 움직이며 투덜거렸다.

패트릭 키츠는 그런 대니얼 양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민간 정보 기업 박물관연대는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로 돈을 벌었다. 정보의 정확성은 돈이었고, 또한 목숨이었다.

만약 대니얼 양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방콕이나 파타야나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같은 말을 했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내리는 사형선고와 다를 것이 없었다. 20년 넘게 대니얼 양을 아주 가까이서 보필해 온 심복인 패트릭 키츠라 하더라도 말이다.

“손님은 어쩌시고 계신다던데?”

대니얼 양이 물었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 중입니다.”

“흠…….”

대니얼 양은 손을 턱으로 가져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재미없군.

객실에 처량하게 앉아 있는 손님, 한국 국가정보원 해외정보실 전 실장 모용진이 객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한 대니얼 양은 재미없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여자는? 여자 붙여 달라고도 안 하고?”

대니얼 양이 물었다.

“그런 요구는 없었습니다.”

패트릭이 말했다.

“재미없군. 안 그래?”

대니얼 양이 동의를 구했지만, 패트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재미없는 자식.”

대니얼 양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다시 모용진에 집중했다.

그가 술 담배를 안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여자가 없다는 것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를 파타야로 데려간 이유가 있었다.

방콕의 대표 휴양지 중 하나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섹스 투어 목적지인 파타야는 몸을 숨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최적의 장소였고, 몸을 숨기고 싶어 하는 이들이 원하는 대부분을 얻을 수 있는 장소였다.

술, 여자, 마약 같은 그런 단순한 기호품부터 가짜 여권, 신분 세탁, 새로운 목적지로 갈 수 있는 밀항선을 모두 그곳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휴양지로 만들어진 방콕 남부의 해변 휴양지는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보와 일자리와 인력과 장비를 제공하는 본부이자 보급기지였다.

단순히 그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까지 여색을 탐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실제로 박물관연대가 관리했던 인물 중에서 술과 담배를 즐기지 않고, 여자도 요구하지 않았던 인물은 모용진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할지,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망가트릴지에 대한 노하우를 박물관연대는 가지고 있었다.

장시간 동안 과도한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평생을 이쪽 세계에 몸담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육체적 피로는 휴식으로 해소한다 해도 정신적 긴장 상태가 계속되면 긴장을 이완시키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술이나 여자, 아니면 약.

“혹시 호모려나?”

대니얼 양이 물었다.

“그런 징후는 없었습니다.”

부하가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모르지. 실제로 항문에 물건을 집어넣기 전까지 그런 취향을 모르고 살고 있을 수도 있잖아. 교회 다닌다며? 그러니까 그 독실한 신앙심으로 그런 욕망을 꾹꾹 눌러 왔을지도 모르지. 아. 혹시 페도필리아려나? 페도필리아라면 절대로 들키지 않겠지. 들켰으면 진작에 들켰을 터이고. 뭐 그런 취향이라면 우리도 어찌해 줄 수도 없고…… 지금 거기 담당자가 누구지?”

“로드(Road)입니다.”

“로드라…….”

박물관연대 소속원의 모든 인적 사항을 기억하고 있는 대니얼 양은 바로 한 남자를 떠올렸다.

코드명 로드. 38세, 태국 나콘라차시마 출생, 태국왕립경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왕립태국경찰(Royal Thai Police)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직 태국 경찰. 계급은 OF-4(พันตำรวจตรี, 경정). 왕실 경호대인 904 왕실경비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왕립태국경찰 정보부 정보담당관.

태국 동북부 이싼(อีสาน) 지방의 가난하고 자식 많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를 찾아낸 것은 것은 태국 총괄 책임자였던 웨이(Way)였다.

웨이가 대니얼 양에게 그를 소개했고, 대니얼 양은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그에게 투자를 시작했고, 로드는 박물관연대의 사람이 되었다. 또한 다음 태국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될 사람이었다. 배신만 하지 않는다면,

“로드가 파타야에 가 있나?”

대니얼 양이 물었다.

“파타야는 레이더(Radar)가 지키고 있습니다.”

“레이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들은 대니얼 양은 기억을 더듬어 레이더라는 인물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태국 경찰 출신의 스물아홉 살 청년의 프로필을 떠올렸다.

“그놈, 잘생겼더랬지?”

대니얼 양이 말했다.

잘생긴 얼굴, 180이 넘는 키. 흰 피부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미남이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조합되었다.

잘생긴 얼굴을 가진 젊은 경찰은 상관의 아내와 끽 깐(불륜 관계)이었고, 박물관연대는 그 사실을 이용해 그를 포섭했다.

“그렇습니다.”

패트릭이 말했다.

“좋아. 콘도에 가서 모용진 시중을 들라고 하지, 혹시 달라고 하면 한번 대 주라고 하고.”

대니얼 양이 가벼운 농담처럼 말했다.

“알겠습니다.”

농담처럼 던졌지만,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명령이라는 것을 패트릭은 잘 알고 있었다.

“예쁘장한 불알 주름을 가진 그놈에게도 반응이 없으면, 담당을 바꾸도록 하지. 리스트 작성하고.”

“알겠습니다.”

패트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몇 시간 안에 리스트가 만들어질 것이다. 다양한 목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의 이름이 명단에 오를 것이다.

“일단 지켜보자고. 다른 건?”

“없습니다.”

심복이 답했다.

대니얼 양은 두 다리를 책상에서 내리면서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본 심복은 바로 몸을 돌렸다.

대니얼 양이 가방을 열고, 서류를 꺼내려는 모습을 보이려 하자 패트릭은 빠르게 몸을 돌렸다. 서류의 내용에서 시선을 떨구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대니얼 양의 곁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였다.

“방콕이라고 했지?”

대니얼 양이 사무실을 나가려는 패트릭의 뒤통수에 말을 던졌다.

“파타야입니다.”

대니얼의 말에 움직임을 멈춘 패트릭은 뒤를 돌아보지 답했다.

“방콕이나 파타야나. 꽉 막힌 놈 같으니. 길(Gil) 그 새끼는? 움직임이 없나?”

대니얼이 ‘길(Gil)’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렸다.

“지켜보고 있습니다만. 현재까지 보고할 사항은 없습니다.”

대니얼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복인 패트릭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끄덕임을 본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무실을 나갔다.

패트릭이 방을 나가고 문이 닫히자 대니얼 양은 가지고 온 서류 몇 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번 싱가포르 출장은 수확물이 많았다. 정치적, 외교적으로 민감한 정보뿐만 아니라 해운산업에 큰 파문을 가져올 정보도 얻어왔다. 특히 IMO(국제해사기구)에 사람을 하나 심어 넣은 것이 수확이라면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싱가포르 정계와 화교 사회에 파장을 일으킬 영상 하나도 확보했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 쓰일지 결정되지 않았지만, 대니얼 양에게 많은 돈을 가져다줄 8분짜리 영상이었다.

만족스러운 수확이었지.

싱가포르 출장을 그렇게 평가한 대니얼 양은 책상 위에 서류를 내려놓고 그에게 돈을 가져다줄 수확물을 다시 검토하기 위해 서류 상단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서류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른 후, 대니얼 양은 생각이 여전히 파타야에 머물러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시선과 생각의 괴리를 느끼던 대니얼 양은 고개를 들었다.

재미없군.

한국 국가정보원 1급을 조심스럽게 파타야에 모셔다 놓았다. 모용진이라는 인물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대니얼 양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모용진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내는 틈이었다.

정보라는 것은 틈에서 새어 나온다. 모용진을 빼냄으로써 국정원에 틈이 생기고, 새어나오는 정보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데이빗 박에 대한 정보라든가.

그러나 현재까지 어떠한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정보가 새어 나오기는커녕, 틈이 생겼다는 징후도 보이질 않고 있다.

“한국 놈들,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들어.”

대니얼 양은 시선을 위로 향한 채, 손톱으로 책상을 탁탁 치면서 중얼거렸다.

***

보고를 마치고 자신의 사무실, 부사장실로 돌아온 패트릭 키츠는 방콕과 파타야에서 가용한 인원의 리스트를 작성할 것을 지시했다.

모용진이 어떠한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든 부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인종과 나이대, 체격과 외형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 여성이겠지만, 일부 남성들도 포함해 당장 동원 가능한 사람들의 이름이 리스트에 오를 것이다.

지시를 내린 패트릭은 시선을 모니터로 옮겨 화면 위에 떠 있는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모용진에 대한 파일이었다.

모용진은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고, 김규택을 이용하는 계획도 그의 생각이었다. 경인이라는 냄새를 흘리고, 김규택을 일본으로 보내고, 그 사이에 자신은 빠져나온다.

박물관연대의 수장인 대니얼 양은 일본 간사이 지부장에게 김규택을 좀 흔들어 놓을 것을 지시했고, 김규택은 당연하게도 넘어갔다.

결론적으로 김규택은 꼬리를 잡혔고 오사카에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잡혀 끌려가 버렸다. 간사이 지부장이 노출된 것은 예상 못 한 피해였지만,

패트릭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의 유일한 상사인 대니얼 양이 의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김규택이라는 도구를 통해 국정원을 흔들어보고 싶어 했을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간사이 지부장 교체를 위한 포석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시선은 김규택에게 모였고, 모용진은 한국에서 빠져나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국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전직 국정원 1급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추었고, 전직 요원이 체포되었음에도 국정원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지 않다.

움직임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어디선가 움직이고는 있을 것이다. 박물관연대의 감시망에 포착되지 않는 것일 뿐.

패트릭 키츠는 스크롤을 움직여 모용진이 해외정보실장으로 일하던 당시의 국정원 해외사업 목록을 살펴보았다. 이미 여러 번 확인했지만,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하나하나 확실하게 정독해 나갔다.

목록에는 박물관연대와 관련된 작전도 들어있었다. 패트릭이 직접 개입해 국정원의 앞길을 막은 작전도 있었다.

모용진은 무능한 사람이다. 본인의 출세와 관련해서는 날카로운 감각을 지니고 있지만, 조직과 국가에 대한 기여도 측면에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사람이었다.

패트릭은 이런 존재들을 염증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몸에는 크든 작든 염증이 있다. 이 염증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병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그 염증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건강을 망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모용진은 박물관연대에 필요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보스는 모용진을 원했을까?

패트릭의 머리에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데이빗 박.

패트릭은 데이빗 박에 대한 보스의 집착을 알고 있었다. 보스가 일본 나이쵸의 의뢰를 받아 트라이앵글에 다녀오는 동안 홍콩을 지킨 사람이 패트릭이었기에, 트라이앵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패트릭도 알고 있었다.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데이빗 박에 대한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니얼 양에게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올 것이다.

그렇지만 대니얼 양이 데이빗 박이라는 인물에 대해 보여주는 집착은 그 이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패트릭은 다시 국정원 해외사업 목록을 천천히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해외사업 목록에서 트라이앵글 카지노와 관련된 사안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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