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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51화 (251/386)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3) >

“그 인간 술 안 먹는데.”

김승섭이 말했다.

“술 안 먹어?”

홍성민이 물었다.

“그 인간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여자도 따로 없을걸요?”

“그래? 의외네.”

“교회 다니잖아요.”

“그러니까 의외라고.”

홍성민이 말했다

“뭐 아무튼 확률적으로는 여길 이미 떴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 이야기죠?”

김승섭이 물었다.

“그렇지. 술도 안 먹고, 오입도 안 하면 여기 있을 이유가 없네. 아무튼, 누가 뒤 봐준다는 전제하에, 뒤 봐주는 놈들이 가짜 여권 하나 만들어 주면 그거 가지고 어디든 갈 수 있지. 아니, 사실 여권 같은 거 없어도 갈 수 있지. 바다에 떠 있는 요트들 봤습니까? 아, 밤이라 안 보였겠구나. 암튼, 태국에서 가장 많은 요트가 등록되어 있는 곳이 바로 여기 파타야고, 누가 빌리느냐에 따라 관광객 요트도 되고, 밀수선도 되고 그러는 거지. 등록 안 된 요트까지 합하면 뭐, 여기서 흔적 없이 빠져나가는 거야 순식간이지. 뒤 안 봐줘도 뭐 위조 여권 구하는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

홍성민의 말에 곽용신은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쉽지 않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러면 너무 어려워진다.

“방법이 없습니까?”

김승섭이 물었다.

“없어, 낚시 말고는.”

“낚시?”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는 거지. 그 냥반이 여기 남아 있기를 기도하면서. 지금으로서는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일 듯?”

“기어 나올까요?”

“만약 그 인간이 파타야에서 쥐새끼처럼 숨어 있다면 어떻게든 한 번은 나올 거야. 그게 여기가 되었든, LK 메트로가 되었든.”

“LK 메트로?”

“워킹 스트리트 축소판 같은데 하나 더 있어. 아무튼, 한 번은 나오겠지. 남자라면. 그리고 한 번 나오면 절대로 한 번에서 끝나지 않고.”

“술 안 먹는데도?”

“유일한 가능성.”

홍성민이 단언했다.

“결국, 잠복뿐인가.”

김승섭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곽용신은 김승섭의 끄덕임이 매일 이곳에 와야 한다는 기쁨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방법은?”

곽용신이 물었다.

“몸으로 때우기 싫으면 돈.”

“돈?”

“돈 주고 사냥개들을 고용하는 거지. 그럼 뭐라도 물어오겠지. 대부분 구라겠지만.”

“믿을 만한 애들은 있습니까?”

“믿을 만한 애들이라고 하면 믿을 수는 있고?”

“못 믿죠.”

김승섭이 말했다.

홍성민은 곽용신을 돌아보며 물었다.

“형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곽용신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정보원을 고용하는 것은 이쪽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었고, 가장 쉬운 방법이었으니까.

곽용신은 고개를 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럼 낚시밖에 없네. 아니면 그냥 돌아가든가.”

홍성민은 답이 나왔다는 것처럼 결론을 내렸다.

“뭐, 전부는 아니고 일부만 도움받는다 치고, 쓸 만한 놈들이 있습니까?”

김승섭이 곽용신을 대신해 물었다.

“쓸 만한 놈들이라.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긴 한데…….”

홍성민이 맥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방콕에 차논이라는 놈이 있어요.”

홍성민이 말했다.

“차논?”

“NIA에 있다가 나온 놈인데, 방콕에서 정보도 팔아먹고, 사람도 때리고 하면서 밥 먹고 살고 있지.”

“양아치네.”

김승섭의 평가였다.

“양아치지.”

홍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아치는 양아친데, 그래도 실력은 확실하니까.”

“확실합니까?”

“뭐, 양아치래도 NIA 출신 양아치니까. 나름의 연줄도 있고, 끗발도 있고. 무엇보다 독해다고 소문났어.”

“독하다니요?”

“돈이라면 환장을 한대. 빠이팅이 있다고. 아직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지금은 푼돈 받는 일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소문이 퍼지는 거 보면 일을 아예 못하지는 않나 봐.”

“NIA에서는 왜 나온 건데?”

옆에서 듣고 있던 곽용신이 물었다.

“내부 사정이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사고 친 것 같다고 하던데요. 돈 좋아하는 놈이니까 뭐 어디서 뒷돈이라도 받다 걸렸나 보지. 아니지, 돈 받았다고 짤렸을까? NIA 놈들 다들 돈 받는데. 높은 양반에게 밉보였으려나?”

“흠, 확실하지 않은 놈은 믿을 수 없는데.”

김승섭이 말했다.

“이 동네에 확실한 놈이 있기는 있냐?”

“그건 그렇지.”

김승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 새끼가 그나마 일 맡길 만한 놈 중 하나일 겁니다. 지금 방콕 인타마라 아고고를 거점으로 활동한다고 합디다.”

홍성민이 말했다.

“그 차논이라는 놈 말고 다른 놈은?”

곽용신이 물었다.

“경찰 출신들이 몇 있기는 한데, 그놈들은…… 글쎄요. 난 확신을 못 하겠네.”

“확신을 못 한다?”

“음, 일을 맡기면 하기는 할 텐데. 돈 좀 쥐여 주고, 사진 주고, 이놈 좀 찾아 달라고 하면 찾기는 할 텐데…….”

“그런데.”

“뭐 사진이 파타야 전역에 쫙 깔리겠죠. 사실 그게 문제지. 술집 마마상, 아가씨, 웨이터들은 물론 지나다니는 랍짱 기사들부터 길거리에서 소매치기하는 양아치까지 전부 다 모용진 사진을 들고 다닐 것 같은데요.”

“랍짱?”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요.”

“오토바이 택시? 혹시 그 주황색 조끼 입고 있는 애들?”

“맞아요. 워킹 스트리트 입구 앞에 대기 타던 애들 봤습니까?”

“그 친구들이 사람 찾는 일도 하나?”

“뭐, 여러 가지 하죠. 사람도 태우고, 물건도 배달하고, 가끔 사람도 때리고.”

“때린다고?”

옆에서 듣고 있던 김승섭이 물었다.

“어디서든 조합의 힘은 강한 법이지.”

홍성민이 말했다.

“아무튼, 경찰 출신 놈들에게 일 맡기면 보나 마나 파타야 전역에 사진 쭈아아아아악 뿌려 버릴 테니까. 그건 안 될 것 같고.”

곽용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런 뭐 양아치, 잔챙이들 말고. 좀 확실히 일하는 애들 없어요? 태국 정도의 경제 규모면 기업처럼 하는 놈들도 있을 것 같은데.”

김승섭이 홍성민에게 말했다.

“기업이라……. 뭐, 한 명 생각나기는 하는데, 그 인간은 없는 셈 치죠.”

홍성민이 말했다.

“없는 셈 치라고요? 왜요?”

“비싸.”

“네?”

“방콕에서 활동하는 놈인데……. 뭐, 실력으로 따지면 태국에서, 아니지 동남아시아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으려나. 아무튼, 일 하나는 확실히 하는 것으로 이 동네에서는 유명하니까. 근데 비싸, 비싸도 너무 비싸.”

“비싸요? 비싸 봤자 태국인데. 뭐 얼마나 하겠어요.”

김승섭이 말했다.

“접수비가 3백만.”

홍성민이 말했다.

“3백만? 원?”

“바트.”

“3백만 바트? 그게 얼만데요. 딸라로 하면.”

“10만.”

“10만 달러면…… 어디보자 일 십 백 천 만…… 1억 조금 넘네. 그 정도면 뭐.”

김승섭이 손가락으로 헤아리면서 말했다.

“그 정도면? 너 1억 있어? 1억이 임마 누구 집 강아지 이름이야?”

“예비비 있잖아요.”

“다 썼다고, 임마. 그리고 씨바 어떤 미친놈이 예비비를 1억씩 깔고 가냐? 우리가 무슨 CIA냐? 어? 그리고 1억이 있다고 쳐도 그래. 접수비라고. 접수 비용만 1억이 넘는다고. 일을 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데 기본 1억 깔고 간다고 임마. 실제 의뢰 비용은 따로고. 일 들어가면 또 비용 추가되고. 아니, 돈도 돈이지만, 일을 맡을지도 미지수야. 확실한 사람에게 소개받지 못하면 애초에 만나 주지도 않을 테니까.”

홍성민이 말했다.

“흐미, 뭐 그런 상도덕 없는 새끼가 다 있어.”

김승섭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뭐 그만큼 실력은 확실하다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뭐 돈 1억이 우리한테나 큰돈이지, 있는 놈들이야 돈 1억 정도야 뭐. 태국 하이쏘가 얼마나 부잔지 알아?”

“하이쏘가 뭔데요?”

“……너 임마, 여기서 일하는 거 다시 생각해 봐야겠네.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 없어, 상식이.”

홍성민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김승섭을 보면서 말했다.

“아니, 이 형님 보게. 홍가 형,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합니까. 인도에서 몇 년 동안 처박혀 있다가 태국은 처음 왔는데 모를 수도 있지. 그런 건 용신이 형도 몰라요.”

김승섭이 곽용신을 바라보며 억울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하이쏘, 하이 소사이어티(High Society)의 약자. 왕족, 재벌, 군부, 고위직 등 태국의 부를 독점하면서 태국을 실질 지배하는 그들만의 카르텔.”

곽용신이 말했다.

“역시 용신이 형! 모르는 게 없어. 승삽이 넌 임마, 아직 멀었어, 짜식아.”

홍성민이 김승섭에게 약 올리듯 웃음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했다.

“참 나, 센스 없게. 모른 척해 줄 수도 있지. 똑똑해서 아주 좋으시겠어들!”

김승섭이 투덜거렸다.

“승삽이 말마따나 그 상도덕 없는 새끼가 실력은 제일 확실하기는 한데, 돈도 없고, 설사 돈 있어도 당장 접근할 수도 없고. 아니, 접근할 수 있다고 해도, 모용진 그 인간이 태국에 아직 남아 있는지 없는지 확인부터 하는 것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그 인간이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헛돈을 써도 쓸 거 아니야.”

홍성민이 말했다.

“있는지 없는지 확인부터라…….”

곽용신이 자신의 손에 든 맥주병을 들어 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

모용진은 파타야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파타야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나끌루아(นาเกลือ)의 오래된 콘도 객실에 있었다.

모용진은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바닥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모용진은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해외정보실 실장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더 국정원 원장 자리는 꿈꿀 수 없게 되었다. 그대로 뒷방 늙은이로 밀려났다가, 은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아 왔던, 또는 직접 뒷방으로 보내 버렸던 선배들처럼.

물론 그런 노후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애들도 다 키워냈고, 벌어놓은 돈도 충분했다. 이대로 아내와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서 노후를 보내기에는 그리 부족하지 않은 금액이 통장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모용진에게 안정된 노후 같은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지역에서 가장 좋은 고등학교와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를 나왔다. 평생 단 한 번도 경쟁에서 실패한 적 없이 국정원 1급이라는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마지막 단 한 계단만이 남아 있었다.

한 발자국만 더 올라가면 국가정보원 원장이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데, 그 옥좌가 손끝에 닿아 있었는데, 그 마지막 경쟁에서 주저앉게 된 것이다.

모용진은 불 꺼진 바닥에서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유만호 그리고 김형원.

그 둘이 진행한 무언가, 해외정보실장인 자신도 모르게 태국에서 진행한 무언가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태국에서 항의가 들어오고, 중국에서 협박을 해 왔다. 해외정보실장인 자신은 원인을 알지 못했다. 원인을 알지 못했음에도 책임을 져야 했다. 해외정보실 실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인생에서 맛본 첫 실패, 그리고 유일한 실패. 모용진은 자신이 실패하리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김영원과 유만호, 두 사람은 모용진이 사용하는 도구였을 뿐, 단 한 번도 경쟁 상대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특히 김형원이 자신에게 위험 요소가 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모용진은 지쳐 있는 표정의 김형원 얼굴을 떠올렸다. 김형원은 언제나 그 얼굴이었다. 프라하에서 그날 이후, 김형원은 언제나 지쳐있고, 무기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김형원에게 발목을 잡혔다. 아니, 발목을 물렸다.

모용진은 이빨을 사리물었다. 그 입에서 까득 소리가 새어 나왔다.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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