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2) >
“야, 이 자식아.”
곽용신은 허락도 없이 자신의 옆에 앉은 남자에게 낮게 으르렁거렸다.
“ไม่ได้เจอกันนานเลยนะเนี่ยุ. ณช้างช้างเบียร.”
자리에 앉은 남자는 곽용신이 으르렁거림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지나가던 웨이트리스를 불러 가볍게 포옹하고, 자연스러운 태국어로 맥주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웨이트리스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남자의 허벅지 안쪽을 쓰윽 만지고는 몸을 돌렸다.
그런 그녀의 손길에 과장된 모습으로 몸을 떠는 모습을 보인 남자는 여자가 멀어지고 나서야 곽용신에게 몸을 돌렸다.
“오랜만에 보자마자 자식이 뭡니까, 자식이. 어때요? 여기 좋죠?”
남자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맥주병을 들고 있던 곽용신의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왜 하필 여기야.”
곽용신이 낮게 말했다.
“좋잖아요. 여기 데려온 사람들은 다들 좋아하던데? 승섭이 봐요. 좋아하네.”
곽용신이 고개를 돌려 김승섭을 바라보았다.
김승섭은 남자의 말과는 달리 얼굴에 불만을 담고 있었다.
“아니, 씨발, 진짜. 홍가 형님, 진짜 이건 아니지.”
김승섭이 새로 나타난 남자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왜 오랜만에 보는데 너도 인상 쓰고 지랄이야.”
“나도 여기서 일합시다. 나 좀 꽂아 줘요.”
김승섭이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어투였다.
“너 태국어 할 줄 아냐?”
파타야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여행사 오라오라투어의 사장이자 국가정보원 해외정보실 태국지부 소속 요원 홍성민이 김승섭에게 물었다.
“배웁니다, 오늘부터.”
“그래? 그럼 콜.”
홍성민이 시원하게 답했다.
“역시 홍가 형님! 누구랑 다르게 아주 대범하시다니까!”
김승섭이 홍성민에게 양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었다.
“누구랑 다르게?”
두 사람 사이에 앉아 있는 곽용신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김승섭의 양 엄지손가락을 향해 있었다. 꺾어버리기 딱 좋은 각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곽용신은 그 엄지손가락을 꺾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작은 한숨으로 참아낸 후, 홍성민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찾아봤냐?”
“찾아보긴 뭘 찾아봐요, 얼마나 지났다고. 단서도 하나도 없고. 그나저나 뭔 일인지 나도 좀 압시다, 어 땡큐.”
웨이트리스가 맥주를 가져오자 대화가 끊겼다. 홍성민은 맥주를 가져온 웨이트리스에게 초록색의 20바트 지폐 한 장을 건네주었다.
“도대체 뭔 짓을 한 겁니까, 그 냥반은?”
홍성민이 맥주병을 집어 들며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받은 곽용신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서 흐느적거리는 춤을 추고 있는 나신이 보였다, 그래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옷을 갈아입는 댄서가 있었다.
젠장, 말 그대로 눈 둘 곳이 없군.
곽용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아, 진짜. 말 좀 해 봐요.”
홍성민은 말을 아끼는 곽용신에게 투덜거렸다.
“갑자기 전화해서 모용진 그 인간이 방콕에 왔다고, 어디 있는지 찾아라. 그런 이상한 말을 하더니, 직접 두 사람이 날아왔다? 이거 백 퍼센트 뭐 있다는 이야긴데. 무슨 사고 쳤습니까, 그 양반?”
“찾을 수 있냐 없냐?”
곽용신은 설명하지 않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홍성민은 섭섭하다는 시선으로 곽용신을 바라보았다.
“못 찾아요.”
홍성민이 맥주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못 찾는다고?”
곽용신이 물었다.
“못 찾습니다.”
홍성민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이 자식아, 그렇게 쉽게 못 찾는다고 할 게 아니라…….”
“아나, 진짜.”
홍성민이 맥주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잘 들어봐요. 예? 올해 상반기에 파타야에 관광객이 몇 명 왔는지 압니까? 8백만 명이에요, 8백만. 크리스마스, 신년 성수기 인원이 빠져 있는데도 8백만입니다. 뭐 여유 있게 1년에 2천만 명 온다고 칩시다. 흐미, 많이도 온다. 2천만 명 중에 장기 거주하는 비율이 대략 2에서 3 퍼센트 된다고 치고. 적게 잡아 2 퍼센트라고 하면, 16만 명이에요. 외국 여권 가진 사람 16만 명이 여기 장기 거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거기서 또 동양인, 그래 동양인 10퍼센트만 잡아 봅시다. 솔직히 30퍼센트는 잡아야 하는데, 진짜 적게 잡아서 1할이 아시안이라 치고, 그중에 비슷비슷하게 생긴 한중일 이 세 나라 놈들이 1만 6천 명. 그 1만 6천 명 중에서 모용진 같은 늙은이들 나이 대 사람들만 추려도. 사실 그 나이 대 사람들이 여기서 제일 많아 산단 말이죠. 은퇴하고 연금 받아먹는 노인네들. 반절 잡고 8천 명입니다. 모 실장이 여기 숨는다면 그 8천 명 중에 하나란 말입니다. 이해되십니까?”
홍성민이 손으로 테이블에 숫자를 써 가면서 말했다.
“얼마 안 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김승섭이 말했다.
곽용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8천 명? 생각 외로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이 자식아, 얼마 안 되긴. 답답하네. 여기가 한국이냐! 여기서 그 8천 명을 어떻게 뒤질 건데.”
“경찰?”
김승섭이 말했다.
“경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홍성민이 맥주를 들면서 투덜거렸다.
“너. 태국 경찰에 아는 사람 없냐?”
곽용신이 물었다.
“선이 어디 있어요, 선이. 꼴랑 하꼬방 여행사. 그것도 방콕도 아니고 파타야에 처박아 놓고선.”
홍성민이 말했다.
“아 씨바, 진짜 졸라 부럽다.”
김승섭이 중얼거렸다.
곽용신은 김승섭의 중얼거림을 애써 무시하고는 다시 홍성민에게 물었다.
“정보부 애들은?”
“NIA(National Intelligence Agency : 태국국가정보부)? 그놈들이 도와줄까? 아니, 그러니까 생각났네. 도대체 뭔 사고를 친 겁니까?”
홍성민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말투로 물었다.
“사고?”
곽용신이 뭔가 뜨끔한 기분을 감추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NIA 애들이 우리한테만 엄청 까칠하게 굽디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들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우리는 뭐 잘못한 거 없는데. 잘못하기는커녕 친하게 지내자고 뇌물 가져다 바치고, 만나면 앞에서 싱글싱글 웃고 그랬는데 갑자기 왜 지랄들인지 이유를 모르겠네. 방콕에서는 본사에서 사고 친 것 같다고 그러던데. 뭔 사고 쳤습니까?”
홍성민의 말에 곽용신은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데이빗 박.
한 과장이 태국에 입국할 때 만들어진 위장 신분. 그리고 그가 미얀마로 넘어오면서 일이 커졌다. 태국 놈들은 데이빗 박의 정체를 모르니 화가 났겠지.
모용진이 물먹게 된 계기도 그 때문이었고.
곽용신이 입을 다물기 위해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홍성민은 그 모습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아무튼 NIA 애들이 도와줄 거라고 기대도 하지 마십쇼.”
홍성민이 말했다.
“CCTV 확인은 어떻게 한 겁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김승섭이 홍성민에게 물었다.
모용진이 이곳 파타야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이 바로 홍성민이었다.
“어떻게 하긴, 이거지.”
홍성민이 손가락 두 개로 원 모양을 만들면서 말했다.
***
김규택이 간사이국제공항행 비행기를 타던 그 날, 모용진도 인천공항에 있었다. 그러나 모용진은 일본행이 아니라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의 태청무역, 김형원 사장과 곽용신은 김규택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모용진의 지시를 받는 김규택을 우선 확보하고, 그다음에 모용진을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곽용신이 직접 오사카까지 가서 김규택을 잡아 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오사카에서 잡혀 온 김규택은 포기라도 한 듯,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진술했다. 그리고 김규택이 모용진과 같은 배를 탄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진술에 따르면 김규택이 처음 일본에 오게 된 이유는 모용진의 지시를 받아서였지만,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 자신이 모용진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규택이 텐마역 맥도날드에서 만난 남자는 김규택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고, 모용진을 대신해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건넸다.
제안을 받은 김규택은 한국으로 돌아와 모용진과 접촉하지 않고 혼자서 정보를 찾아다니다 김형원과 곽용신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김규택이 모용진과 한 팀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모용진이 태국으로, 그것도 김규택이 오사카행 비행기를 탄 날에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김형원과 곽용신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모용진이 김규택을 이용한 것이라고. 김규택을 미끼로 던져 넣고, 김규택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사이에 몸을 빼낸 것이라고.
모용진의 출국은 김형원과 곽용신이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실시간 출입국 정보를 확보할 정도로 태청무역은 운신의 범위가 넓지 않았다. 그런 변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놓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김규택은 국정원, 그리고 정보위원회 입장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대신에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모용진을 확보해야 했다.
단순히 ‘놓쳤음’이라는 보고로 끝날 사안이 아니었다. 그가 태국에 있는지, 있다면 어디로 갔는지, 누구에 도움을 받아 움직였는지를 찾아야 했다.
한편으로 그 일을 국정원의 도움 없이 태청무역이 가지고 있는 힘만으로 진행해야 했다. 다시 말하면 방콕에 있는 국정원 지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곽용신이 홍성민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곽용신의 전화를 받은 홍성민은 AOT(ท่าอากาศยานไทย, 태국공항공사)와 고속도로국(กรมทางหลวง)에서 CCTV 영상을 입수하고 분석해 모용진이 입국한 사실을 확인했다.
모용진은 공항에서 준비된 차량에 탑승했고, 모용진을 태운 차량은 방콕-촌부리를 연결하는 7번 고속도로를 통해 촌부리 쪽으로 이동했다.
모용진의 마지막 행적은 파타야 입구에 위치한 PTT 주유소의 CCTV에서 찾을 수 있었다.
차량이 그곳에서 기름을 넣었고, 모용진이 차에서 내려 화장실을 다녀온 모습이 주유소 CCTV에 기록되어 있었다.
파타야. 모용진의 마지막 흔적은 파타야에 남아 있었다.
김승섭과 곽용신이 여기에 오게 된 이유였다.
***
“돈 많이 들었어요. 그거 확인한다고 예비비 다 들어갔다고요. 진짜 딴사람 같았으면 그냥 쌩까고 말았겠지만. 특별히 형님 부탁이니까 들어준 겁니다. 사람 고생한 것도 모르고 말이야.”
홍성민이 다시 투덜거렸다.
홍성민이 국정원에 입사하고, 신입 교육을 이수한 후, 처음 현장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사수가 곽용신이었다. 홍성민에게 있어서 곽용신은 직장 선배이자 사수였으며 스승이고 또한 믿고 등을 맡길 만한 전우였다. 그렇기에, 본사에서 내려온 지시가 아님에도 예비비를 써 가면서 알아봐 준 것이었다.
“여기 있기는 할까?”
곽용신이 물었다.
“몰라요. 나 말 안 할라요. 뭐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홍성민이 그렇게 말하면서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는 홍성민을 곽용신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뽀대’ 나게 살고 싶어서 국정원에 들어왔다고 말하던 홍성민. 출세나 승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책상에서 서류와 씨름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구르는 것을 더 좋아했다.
파타야 여행사 사장으로 위장한 지금이 뽀대 나게 사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경인.”
곽용신이 맥주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뿔난 표정으로 맥주병을 입으로 가져가던 홍성민의 눈이 커졌다.
“경인?”
홍성민이 다시 물었다.
“그래.”
“그 양반이?”
“그래.”
홍성민은 곽용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농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물론 곽용신은 농담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리고 경인은 농담거리도 아니었다.
“경인, 경인이라, 흠…….”
홍성민의 표정이 바뀌었다.
경인, 일본과의 내통을 의미하는 국정원 내부 코드.
어디에서나 배신자는 용서받지 못한다. 하물며 정보기관은 오죽하겠는가. 더군다나 일본 쪽 배신자라면 국정원에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 있을까?”
곽용신이 다시 물었다.
“반반.”
홍성민은 다시 맥주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반반이라…….”
홍성민의 말을 김승섭이 되뇌었다.
“아니, 7 대 3.”
홍성민이 다시 말했다.
“7은?”
곽용신이 물었다.
“없을 확률이 7. 아직 남아 있을 확률이 3.”
“남아 있을 확률부터 들어보자.”
곽용신이 말했다.
“파타야는 도망쳐온 놈들에게는 천국이니까. 술 마실 수 있고, 여자 많고, 또 사람도 많고. 여기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 했는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당장 가진 돈이 얼마인지가 제일 중요하니까. 그리고 필리핀보다 안전하고 ”
“안전하다?”
“여기서야 밤길에 총 맞을 일은 없으니까. 칼이라면 몰라도.”
“칼은 맞습니까?”
김승섭이 물었다.
“꽐라 되어서 어두운 골목에 혼자 기어들어 가면 칼 맞지. 한국은 뭐 아리랑치기 없나.”
홍성민이 맥주를 홀짝이면서 말했다.
김승섭이 슬쩍 자신이 맥주를 내려놓았다.
“뭐 아무튼, 모용진 그 인간이 숨겠다고 마음먹으면 여기만큼 숨기 좋은 곳은 없다 이겁니다. 적당히 염색하고, 안경 쓰고 그러면 찾기 힘들지. 삭발하고, 어디 문신이라도 좀 하면 거의 못 찾지. 술이고 여자고 다 필요없다는 생각으로 어딘가에 숨어만 있으면 절대로 못 찾고.”
홍성민이 말했다.
< MISSION 05 : 바 파인(Bar Fine)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