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45화 (246/386)

< MISSION 04 : 츠바키 (73, 完) >

트레이시는 상황실에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 여자, 카멜리아라고 하는 그 여자가 있는 공간을 비추는 영상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파악할 정도로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한규호가 방을 나가자 그녀는 잠시 방문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트레이시는 화면 속 여자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카멜리아. 매춘부를 의미하는 속어.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에게 붙어 있는 카멜리아란 코드명은 마치 가축에게 찍힌 낙인 같다고 트레이시는 느꼈다.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는 낙인.

트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만약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리고 그 나라의 요원이 되었다면 똑같은 선택을 강요받았을까? 불합리하고 비인권적인 명령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트레이시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다.

그때 상황실의 문이 열리고, 한규호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트레이시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같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는 상황실 옆에 달린 회의실로 가자는 의미로 눈짓을 보냈다.

트레이시는 감시용 모니터에서 몸을 돌려, 그의 뒤를 따라서 회의실로 들어갔다.

한규호는 익숙한 동작으로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트레이시는 문을 닫고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다르다.

트레이시는 한규호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훨씬 쉽게 절정에 이를 수 있다.

또한 신체 구조적으로 성행위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 남성들은 여성보다 성행위에 적극적인 포지션을 취한다.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으려 하고, 기회가 없으면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달랐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는 며칠 동안, 틈을 보이지 않은 것은 오히려 한규호 이 남자였다.

이 남자는 다른 남자들과는 달랐다.

“저 여자인가요? 내가 한국까지 가서 감시해야 하는 여자가?”

트레이시가 물었다.

“그래. 잘 부탁해.”

한규호가 말했다.

마치 간단한 일을 부탁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며칠 전 한규호가 부탁했었다.

카멜리아를 한국으로 데려갈 생각이고, 그녀에게 같이 가줄 수 있는지를.

트레이시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일이 그녀에게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를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줄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일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 망쳤다.

이 남자가 더 이상 자신을 원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CIA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 남자와는 더 이상 같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말했다.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한국에 가서 카멜리아 옆을 지켜 줬으면 좋겠다고.

묻고 싶었다. 왜 자신을 버리지 않는지 묻고 싶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응?”

한규호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물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물어보고 싶어요.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일단 좀 앉으시지.”

한규호가 그의 맞은편 의자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트레이시는 그가 말한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뭐가 묻고 싶으십니까?”

한규호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죠?”

트레이시가 물었다.

“대충 끝났으니 돌아가야지.”

“코시자와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건가요?”

트레이시가 물었다.

한규호가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물어보는 것뿐이에요. 다른 의도는 없어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그런가. 흠, 뭐. 간단히 정리하면, 츠네타카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지. 미국에 도착하면 잘 교육받은 다음에 의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서겠지. 증언이 끝나면 그 친구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할 테니까. 그다음은 뭐,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고. 시마다는 고자가 되었으니. 아니, 그 나이에는 고자보다 걷지 못하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하려나. 아무튼 생식능력을 상실하신 시마다 의원께서 이대로 포기하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야겠지. 그것도 내가 할 일이 아니고. 코시자와, 아니 그 전에 코시자와 일당들. 이름도 기억 안 나는군. 나이초의 누구, 뭐, 방위성의 아무개라고 했던데. 그놈들도 미국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국장에게 직접 부탁했느니, 알아서 해 주겠지. 마지막으로 코시자와. 그 양반은 사실 고민을 안 한 것은 아니야. 그냥 몰래 접근해서 목을 살짝 꺾어 줄까 그런 고민 말이지.”

한규호가 몇 사람의 목숨과 인생이 걸려 있는 이야기를 마치 쇼핑 리스트를 정리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그게 그리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왜, 일본인들은 사람 죽으면 야스쿠니에 봉헌하고 신으로 모신다는데, 코시자와가 죽었다고 야스쿠니에 위패가 올라갈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냥 죽어 버리면 코시자와라는 이름이 힘을 가질 것 같단 말이지. 그 이름을 이용해 제2, 제3의 코시자와가 나올 수도 있고. 그러니 역시 사회적으로 죽여 버리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동의하십니까?”

트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라도 벌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벌을 줘도 되겠지. 그러니 지금은 패스. 이로써 내가 할 일은 없군요. 뭐 나보고 다시 그 호텔로 돌아가 수영장에서 책이나 보라고 하는 의도로 질문한 것은 아니시겠지?”

“아니에요.”

“그럼 나도 귀국. 작전 끝. 잘 쉬다 가는군. 당신은 여기서 조금 더 있다가 그 무서운 아가씨를 데리고 오면 되고. 궁금한 것은 그게 전부?”

한규호가 말했다.

“그녀.”

트레이시가 물었다.

“응?”

“왜 카멜리아를 데려가려는 거죠?”

트레이시가 물었다.

정작 그녀가 하고 싶은 질문은 이게 아니었지만.

한규호는 트레이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트레이시의 눈동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비밀인데.”

한규호가 말했다.

“알겠어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흐음.”

한규호는 트레이시가 빠르게 수긍하자 뭔가 불만족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해 드릴까나.”

그런 불만족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해 드릴까나, 왜 그녀를 데려가는지를.”

한규호가 다시 말했다.

트레이시는 그 말투에 장난기가 묻어 있다고 느꼈다.

“그래. 뭐 당신도 관계자니까 알긴 알아야 하겠지. 그런데 말이지.”

“그런데요?”

“당신네 국장님이 알게 되는 건 싫은데.”

트레이시는 한규호의 눈을 바라보았다.

“……약속드릴 수는 없어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그런가? 그렇겠지? 나 같은 파견 사원보다는 직장 상사가 더 가까울 테니까.”

한규호가 그렇게 말하면서 손톱 끝으로 책상을 톡톡 쳤다.

트레이시는 그 말을, 그보다 밀러 국장이 더 가깝다는 그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럼 나도 말해 주고 싶지 않은데.”

한규호는 여전히 손톱으로 책상을 일정한 리듬으로 치면서 말했다.

그러다 그의 손이 딱 멎었다.

“하지만 뭐, 말해 줄까나? 사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한규호가 말했다.

트레이시는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을 주었다.

비밀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는데도 말해 준다고 하는 이 남자에게 휘둘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에 넘겨주기 싫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

“……왜죠?”

“우선 강짜를 놓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해 주면 되겠군. 요즘 당신의 조국 때문에 스트레스가 조금 쌓였거든. 그리고.”

“그리고요?”

“서용석, 그 남자에 대한 정보를 당신 조국이 알아냈더군.”

“국장이…… 알려 주던가요?”

트레이시가 물었다.

“알려 주기는 했지. 알려 준 것이 전부인지, 또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트레이시는 무표정하려고 노력했지만, 마음속에서 동요가 이는 것은 참지 못했다.

절차에 따르며 서용석이라는 남자의 정보는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직접 국장이 한규호에게 말해 주었다.

거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도 뭐 카드 한 장을 가지고 싶었다 정도로 해 두지. 나중에 협상해야 할지도 모르니.”

“그녀가 카드로서 가치가 있을까요?”

“없을까?”

트레이시는 그녀가 미국 요원이 아니라고 말을 하려 했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 요원이라도, 예를 들어 그녀 자신이라도, 과연 밀러 국장에게 가치가 있을까?

“……이스라엘이 귀찮게 할 텐데요. 그녀 말처럼 절대로 잊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부탁했지. 당신들이 데리고 있는 것으로 해 달라.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니까.”

트레이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있나요?”

“미국에 넘기면 이스라엘에 돌려줄 테니까.”

한규호가 말했다.

트레이시는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스라엘 요원이다. 그녀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이야기지?

“그게 무슨 상관이…….”

거기까지 말하던 트레이시는 말을 멈추었다.

설마.

“그래. 사실 나와 상관은 없지. 그저, 강짜를 부리고 싶었다 정도로 이해해 두라고.”

그렇게 말하는 한규호를 보면서 트레이시는 확신했다.

이 남자는 그 여자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몸을 여는 그녀를 조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녀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 하나가 풀렸다.

그가 왜 시애틀의 그 여자, 자신을 규라고 불러 달라 했던 그 여자를 미국으로 보냈는지.

베네수엘라에서 전혀 상관없는 일곱 살 여자아이를 구하고, 끝까지 남아 마피아를 처리하고 왔는지.

그리고 왜 자신에게 다시 손을 내밀어 주었는지.

그리고 또 다른 의문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 원하는 대로 하세요. 저를 통해서 그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해요. 약속드릴 수 있어요. 그런 일은 없어요.

왜 그녀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는지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트레이시는 그를 바라보았다.

“또 있습니까, 질문이?”

한규호가 물었다.

“……포인세티아.”

트레이시가 말했다.

“나에게서 포인세티아가 떠오른다고 했죠?”

트레이시가 물었다.

“끈질기군.”

한규호가 말했다.

“무슨 의미죠?”

“비밀인데.”

그러나 트레이시는 이번에는 수궁하지 못했다.

“알려 줘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한규호는 잠시 그녀의 눈을 보다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는 입을 열었다.

“붉은 잎이 매력적인 포인세티아. 포인세티아의 전설에 대해서 들어 보셨습니까?”

한규호가 말했다.

트레이시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한규호의 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멕시코 어느 시골 마을의 가난한 소녀는 예수님께 바칠 선물을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제단에 봉헌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더랬지. 그래서 소녀는 울고 있었고. 그때 그녀의 오빠가 말해 주었지. 예수님께서는 값진 선물보다 마음이 담긴 선물을 더 좋아하실 거야. 그 말을 들은 소녀는 제단이라도 예쁘게 꾸미겠다는 마음으로, 길가에 피어 있는 포인세티아를 꺾어 정성스럽게 화환을 만들었지. 그리고 성당 제단에 조심스럽게 놓았는데, 꽃잎이 붉게 변한 것이지. 그때부터 크리스마스에 포인세티아를 장식하는 전통이 생겼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는지.”

트레이시는 한규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사실은 말이지. 포인세티아의 그 붉은 잎은, 화사한 색으로 포인세티아의 가치를 끌어올린 그 붉은색 꽃잎은 꽃잎이 아니라 사실은 포엽이야. 꽃잎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의 보호 잎이지. 그리고 포인세티아의 실제 꽃잎은, 그 화려한 색의 포엽 안에 감추어져 있지. 아주 작은 꽃잎이 말이지.”

트레이시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자신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 당신은 화려한 포엽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었지. 그 화려함 뒤에 숨어 있는 작은 꽃잎을 감추려 했다. 그 모습에서 포인세티아가 떠올랐었다. 그런 이야기.”

한규호는 트레이시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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