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44화 (245/386)

< MISSION 04 : 츠바키 (72) >

“그가 원한다라…….”

대통령은 다시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서류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들어 밀러 국장을 바라보았다.

“한국 정부도 아니고, 이 남자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최우방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요청을 거부해야 한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대통령은 밀러 국장의 답에 다시 서류를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양팔을 뻗어 소파에 얹은 대통령은 밀러 국장을 잠시 바라보았다.

“우리 솔직히 말하지. 나는 이해가 안 되는군. 왜 그렇게 그에게 집착하는지. 기프티드라서?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고, 설사 확인되었다고 해도 그래 봤자 고작 한 사람일 뿐인데, 그가 그렇게 중요한가?”

“핵폭탄의 필요하다는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에서도 일부에서는 꼭 핵으로 만들어진 폭탄이 필요하냐는 이견들이 있었습니다. 재래식 무기로도 충분히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근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지리한 전쟁을 끝낸 것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진 두 방의 리틀보이였습니다.”

“그게 없었더라도 전쟁은 끝났겠지.”

“맞습니다. 몰락 작전(Operation Downfall, 일본 상륙작전)이 시행되었다면, 꼭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일본의 항복을 받아 냈을 것입니다. 이오지마나 오키나와 전투 상황을 감안했을 때, 10만 명이 넘어가는 전사자를 기록하면서 말입니다.”

밀러 국장의 말에 대통령은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지. 그 남자가 핵은 아니지 않나? 그 정도의 가치가 있나?”

“우라늄이 처음 발견된 것은 1789년입니다. 발견한 우라늄을 홑원소 물질로 분리하는 데 50년, 분리하고 정제된 우라늄으로 거대 살상 무기가 만들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백 년에 불과합니다. 우라늄이 발견되고, 실제로 무기화되기까지 150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핵무기로 형체화되지 않았다면, 우라늄은 그저 지질학에서 연대 측정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가진 능력을 실체화할 수 있다?”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핵과 관련해서 추가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차세계대전 말기에 핵 개발에 뛰어든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치독일과 소련은 물론 당시 일본에서도 핵개발을 추진 중이었습니다. 니고연구(ニ号研究)라는 이름으로. 물론 실제로는 우리 기술 수준에 미치지 못했지만, 만약 당시 상대국이 먼저 핵 개발에 성공했다면 지금의 세계지도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흠…….”

대통령은 국장의 말을 이해했다.

처음 기프티드 중요성을 주장했을 때, 국장은 불로(不老)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신체에 대한 완벽한 통제로 의심되는 그의 능력을 실체화할 수 있다면 인류는 더 이상 늙지 않고, 어쩌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미 나이를 많이 먹은 대통령에게는 욕심 나는 이야기였다.

욕심은 났지만, 너무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실제로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의 이야기는, 늙지 않는다는 이야기보다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용할 수 있냐 없냐는 둘째 문제다. 이용하지 못한다 하더라고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투명인간에 관한 기술을 다른 나라에서 확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밀러 국장이 말했다.

“투명인간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지.”

대통령이 말했다.

“염동력도 과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국장이 말했다.

대통령은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두 명의 기프티드 중 하나. 염력을 보유한 앤 챔버에 대한 보고서를 떠올렸다.

“선점, 선점한다라…….”

대통령이 중얼거렸다.

“미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선거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밀러 국장이 말했다.

대통령은 허공을 바라보던 시선을 밀러 국장에게 옮겼다.

그의 말이 맞다.

하지만 재선선거를 앞두고 있는 대통령 입장에서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대통령은 국장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작게 흔들었다.

어찌되었건 그의 말이 맞다.

“자네가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지 모르겠군.”

대통령은 그렇게 투덜거리고는 다시 보고서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밀러 국장은 그런 대통령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다시 서류를 읽던 대통령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용가치는 둘째 치고, 이 친구 마음에 드는군. 한번 만나 보고 싶을 정도야. 능력을 가지고 있고를 떠나서, 똑똑한 녀석은 찾기 힘드니까.”

밀러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네 사람을 우리가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놈들이 확신하고 있나?”

“확신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핑계를 대야 하지?”

“미국 시민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다는 것이 가장 좋은 명분입니다.”

“우리가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는데?”

“암묵적이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좀 꼴이 우스워지겠는데. 던져 줄 만한 다른 것이 있나 고민해 봐야겠군.”

대통령이 말했다.

밀러 국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장 중요한 용건이 끝났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말이지.”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선 밀러 국장에게 말했다.

“만약 그 남자가 죽어도 미국과는 함께하지 않겠다고 그러면 어떻게 할 건가?”

“우리가 가지지 못하면 다른 이들도 가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국장이 말했다.

“원맨아미(One-man army)라던데. 방법은 있고?”

“있습니다.”

국장이 말했다.

***

랭리, CIA 본부의 한 회의실에 앉아 있는 신시아 챔버는 밀러 국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모든 작전이 끝이 났다.

트레이시와 스튜는 더 이상 그곳에서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았고, 사후 처리에 대한 계획도 수립되었다.

물론 대부분이 스튜, 그 남자가 생각해 낸 시나리오대로였지만.

밀러 국장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고, 대통령이 승인을 하면, 물론 승인하겠지만, 트레이시와 스튜,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작전을 종료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은 작전 진행 말미에 합류하게 된 신시아 챔버의 일도 끝난다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도버아메리칸 인슈어런스의 부사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국장이 그녀에게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신시아 챔버는 국장이 왜 자신에게 기다리라고 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국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남자의 말에 신시아 챔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발을 옮기기 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의 또 다른 딸에 관한 이야기를 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

“가치에 대해서 말해 봐.”

국장이 말했다.

“우선 가장 큰 가치는 스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에요.”

신시아 챔버가 준비한 대답을 시작했다.

“스튜가 그녀를 데려왔고. 구해 왔다가 맞겠네요. 총상을 입고 의식이 없는 그녀를 업고 왔으니까. 우리에게 넘기고 어떠한 요구도 해 오지 않았어요. 단순히 거기서 끝났다면, 그녀의 가치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겠죠. 두 사람 사이에서 두 번의 통화가 이루어졌고, 첫 번째 통화에서 그가 베르나를 구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었고, 두 번째 통화에서 그녀가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었죠. 두 번째는 그가 걸어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두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 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가치에요. 스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밀러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애틀, 머다이나, 챔버가 저택에 의지하고 있는 그녀의 가장 큰 가치는 역시 스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유대감으로.

“또?”

“스튜를 제외하고서라도 그녀가 가지는 가치가 있어요. 대표적으로 안드레.”

신시아 챔버가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CIA 코드명 안드레,

80년대 말, 미국에 유학온 젊은 중국 유학생들을 포섭하고, 지원한다는 전략 아래 쩡장(曾江)이 선정되었다.

칭화대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그를 지원하고, 중국 정부 안에 핵심 세력으로 키워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도록 한다는 장기 전략에 따라 그에 대한 지원이 시작되었다.

그런 미국의 도움 덕분인지, 아니면, 그가 능력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안드레는 중국 국무원 산하 상무부(商务部) 부부장(副部長), 차관 자리에까지 올라섰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가 상무부 부장(장관)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지원만 하던 미국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오랜 기간 지원하고, 이제야 그 결실을 막 보려던 찰나에, 그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가 왜 사라졌는지, 어디로 갔는지, 미국은 알지 못했다.

중요한 계획이었던 만큼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 추적했지만, 미국은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 안드레의 거취를 알려 준 사람이 그녀였다.

헤베필리아를 가지고 있던 안드레가 한 번의 실수를 했고, 그래서 내몽골 자치구의 한 건물에 유폐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려 준 것이다.

“안드레에 대해서 알고 있었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녀가 MSS 소속이라고는 가정해도, 그런 정보를 알 정도의 직위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녀는 너무 젊은데. 그런데도, 그녀는 안드레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죠.”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그녀에게서 얻은 안드레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는 안드레의 위치를 찾아냈죠. 그리고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사실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그녀의 정체도 같이 찾아다녔어요. 그녀가 기밀을 알 정도로 높은 자리에 있었다면, 중국은 분명 배신자인 그녀를 찾아다닐 테고, 우리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죠.”

밀러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몰라요. 그녀가 어떠한 정보를 가졌는지. 그저 MSS의 하급 요원이 운 좋게 안드레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고, 그녀가 가진 유일한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 주었는지도 몰라요. 사실대로 말하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약 그것이 그녀가 가진 유일한 정보라면, 고작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해서 그 정보를 사용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요.”

“그럴까?”

밀러 국장이 물었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상대방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주려고 하죠. 그녀가 스튜를 사랑하고 있고, 그래서 전화 통화 한 번에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그녀라면, 그렇게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그를 사랑하고 있고, 그 정보가 그녀가 가진 유일한 것이었다면, 분명 다른 상황에서 그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했을 것이에요.”

밀러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세 번째 가치는 친화력이에요.”

밀러 국장은 말없이 신시아 챔버를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있어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기분 좋게 해 주는 그런 특유의 아우라가 있어요. 계측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분명히 그녀가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장담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지?”

밀러 국장이 물었다.

“딱히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네요. 우리는 공식적으로 미인계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그녀의 그런 매력은 도움이 안 되겠죠.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해요.”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그녀를 이용하는 것은 둘째 문제에요. 우선은 우리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의견이에요. 다른 이들에게 빼앗긴다면 확실하게 미국의 손해에요.”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국장은 조금 전 자신이 대통령 앞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같은 평가를 받는군.

스튜가 데러온 여자가 스튜와 같은 평가를 받았다.

“배신의 가능성은?”

밀러 국장이 물었다.

“배제할 수는 없어요.”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밀러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리고 오지. 이야기를 나눠 보게.”

밀러 국장이 말했다.

신시아 챔버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MISSION 04 : 츠바키 (7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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