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4 : 츠바키 (70) >
-혀엉님!
전화기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곽용신은 얼굴을 찡그리며 재빨리 전화기를 귀에서 떼어 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귀에서 지잉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미친! 놈아!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
예상치 못한 큰 소리에 화가 난 곽용신은 반사적으로 쌍욕을 막 퍼부으려다, 눈앞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재빨리 말을 멈췄다.
곽용신이 앞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자, 그는 괜찮다는 의미로 그에게 손짓했다.
곽용신은 눈을 한 번 질끈 감은 후, 전화기에 대고 빠르게 말했다.
“야, 나 지금 회의 중이니까 나중에.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뻥치지 마쇼. 회의 중에 무슨 전화를 받는다고! 어딘데? 형수님 몰래 어디 좋은 데 갔습니까? 어? 몇 시야, 거기. 서울 몇 신데요? 뭐야, 저녁 7시네? 참, 우리 형님 힘도 좋아. 저녁밥도 안 자시고 좋은데 가셨구먼. 시끄럽지 않은 거 보니 뭐니 술 마시는 데는 아니고. 오호라~.
오호라 같은 소리하고 있네.
“좀 닥쳐, 이 새끼야!”
곽용신이 소리 질렀다.
뉴델리에 있는 김승섭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발신자를 확인한 곽용신은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했다.
김형원 사장과 마주 앉아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 김승섭의 이 전화가 무언가 기분 나쁘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받지 않으려 했는데, 김형원 사장이 전화를 받으라고 손짓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받은 것이다.
-알겠어요, 알겠고. 앞의 언니에게는 조금 기다리라고 해요. 지금 졸라 중요한 뉴스가 있으니까.
욕을 퍼부으려던 곽용신은 ‘중요한 뉴스’라는 단어에 욕설을 참아 냈다.
두 사람의 소속을 생각할 때, ‘중요한 뉴스’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단어였다.
“뭔데?”
곽용신이 말했다. 그러면서 앞에 앉아 있는 김형원을 보았다.
김형원 사장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할 수는 없고, 그가 사장실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서울 갑니다.
“미친 새끼야!”
곽용신이 소리쳤다.
맥이 탁 풀렸다. 맥이 풀리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김승섭이 눈앞에 있다면 바로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우하하하, 형님도 기뻐할 줄 알았소. 그렇게…….
곽용신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하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김형원 사장에게 사과했다.
고개를 숙이면서, 이 전화를 받으라고 한 것은 사장님이니까 전적으로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전화가 또 올렸다.
이 미친놈이 진짜.
곽용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수신 거부를 하려고 했다.
“받아 봐.”
그런 그에게 김형원 사장이 또 받으라고 권했다.
“네?”
곽용신이 물었다.
“받아 보라고.”
김형원 사장이 말했다.
곽용신은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고는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 진짜. 그 냥반 매너 없네. 전화를 그렇게 끊는 게 어디 있어요?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겁니까? 어디 곽씨입니까?
“한 문장으로.”
곽용신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너 죽인다. 기필코 죽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서술어가 맨 마지막에 나오니까. 그런 거 안 배웠어요?
“세 문장.”
곽용신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고개를 드니 김형원 사장이 웃고 있었다.
이 양반이 진짜. 난 화딱지 나 죽겠구먼.
퇴근하려고 하던 곽용신을 사장실로 부른 것이 이 양반이었다. 전화를 받으라고 한 것도 이 양반이었고.
또 전화가 울렸다.
곽용신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바로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컨테이너!
곽용신의 손이 멈추었다.
-아따, 거 전화 좀 받아요. 컨테이너어!
곽용신은 전화기를 귀로 가져갔다.
“뭔 소리야.”
-컨테이너. 왜, 형님이 잡으라고 했던 거 있잖아요. 아루나찰인지 나발인지 맥마흔라인 있는 그 깡촌으로 가는 컨테이너!
곽용신은 그제야 김승섭이 말하는 컨테이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억해 냈다.
얼마 전 화주 하나가 곽용신을 엿 먹인 적이 있었다.
인도 아루나찰프라데시로 가는 LCL 건이었는데, 컨테이너 짜기 어렵다고 말했지만 하도 해 달라고 해 달라고 난리를 쳐서 겨우 컨테이너 하나를 짰는데, 실무자 놈이 어디서 뽀찌라도 받아 먹었는지 갑자기 짐을 빼 가 버렸다.
그때 하도 화가 나서, 김승섭을 시켜서 컨테이너 하나를 잡으라고 했었더랬다. 김승섭이 그 컨테이너를 말하는 것이다.
“아…… 그래. 그, 그거.”
곽용신이 말했다.
-까먹고 계셨구먼.
전화기 너머에서 정곡을 찌르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까. 까먹긴 누가!”
까먹고 있었다. 완벽하게 까먹고 있었다.
영재상사 그 과장 놈도 엿 먹이고, 인도에서 꿀 빨고 있는 김승섭이도 괴롭힐 의도였지, 그 결과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참 나, 이거 말해 줘야 하나?
“말해 인마, 빨리.”
-뭐, 형님이 숟가락 안 올린 건 아니니까. 그 컨테이너 말입니다.
“그게 왜?”
-그 안에 폭탄 들어있습니다.
“폭탄?”
-정확히는 폭탄 재료.
곽용신이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폭탄 재료가 들어 있었다고?
영재상사가 폭탄 재료를 보낸 건가? 어떤 의도로? 왜? 태청무역이 국정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려나? 정보가 어디서 흘러들어갔을까?
-몰랐구먼, 이 양반,
“한국에서 들어간 거냐?”
곽용신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 이 양반 쫄았네. 목소리 까는 거 보니까.
김승섭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한국에서 맥마흔 라인에 뭐 먹을 게 있다고 폭탄을 보냅니까? 여기 토호 애들이 중국 애들 진지라도 깔라고 했는지, 무기상 통해서 들여온 것 같더만, IBI(Intelligence Bureau of India, 인도정보부)이야기로는 평택에서 출발한 컨테이너를 가지고 공해상에서 작업을 한 것으로 보고 있더란 말입니다.
“작업?”
-그래요. 컨테이너 따고, 짐 바꿔치기. 마지막 출발지가 한국이니까. 검역의 눈길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 같더라고. 암튼 짐 바꿔치기해서 어물쩡 넘어가려고 했는데 재수 없게 잡힌 거지.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첩보를 입수한 국정원 요원 김승섭 님께서 인도 놈들에게 선물을 안겨 준 거지, 음하하하하.
곽용신은 어떤 상황인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어딘가에서 폭탄 재료를 선적한 컨테이너를 만들었다. 그게 동아시아에서 돌고 돌다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들른 것이다. 한국에서 뭣도 아닌 의미 없는 짐을 하나 껴 넣어, 최종 출발지가 한국발인 컨테이너가 만들어진 것이다.
영재상사 병신 같은 과장 놈. 폭탄 재료가 들어있는 LCL 출발지 세탁에 사용되는 줄도 모르고, 뽀찌 준다니까 신나서 갈아탔구먼.
잘되었다. 덕분에 아주 탈탈 털 수 있겠어.
곽용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나저나 몰랐구먼 이 양반.
김승섭이 말했다.
몰랐다. 당연히. 거기에 그런 게 들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 알았지 임마. 그거 잡으라고 내가 말했잖아.”
-오호, 아시고 계셨다?
“그, 그럼 임마!”
곽용신은 그렇게 말하고 김형원 사장을 보았다.
웃으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민망함이 몰려 왔다.
-아무튼 여기 애들 난리 났어요. 졸라 높은 냥반에게 고맙다고 전화 겁나 오고. 정보 어디서 입수했는지 알려 달라고 하는데, 씨바 안 된다고 했지. 우리 비선 정보다. 그러면서. 뭐 아무튼 지금 분위기로는 인도 애들이 비공식적으로다가 본사에 고맙다고 할 테고, 본사는 우리 김승섭이가 훌륭한 인재인 줄은 알았지만, 역시 훌륭하군. 이렇게 훌륭한 인재를 인도에 처박아 둘 수는 없지 하면서 서울로 복귀 명령 빡! 이게 다 형님 덕분입니다. 물론 기록에는 안 남겠지만, 음하하하하하!
다시 김승섭의 개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곽용신은 김승섭의 대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특히 이 부분이 더 마음에 안 들었다. 김승섭의 개소리에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젠장.”
곽용신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전화를 끊었다.
“후배 사랑이 대단하군.”
김형원 사장이 말했다.
“죽 쒀서 개 준 거죠.”
곽용신이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죽은 안 쒔지. 개도 아니고.”
김형원 사장이 말했다.
곽용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을 세우겠다고 의도적으로 작전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억울할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김승섭에게, 능력은 있지만 정치질을 못해 현장으로만 돌아다니는 김승섭이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그나저나, 왜 보자고 하셨는지…….”
곽용신이 대화의 주제를 전환했다.
퇴근하려던 그를 붙잡은 이유가 무엇인지 들을 차례였다.
“꼬리를 잡았어.”
김형원 사장이 말했다.
***
곽용신의 입사 동기인 문정규가 ‘데이빗 박’에 대한 정보를 원했다.
데이빗 박이라는 이름은 문정규가 몰라야 하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가 알고 있었다. 정보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곽용신은, 정확히 정보위원회는 미끼를 하나 던져 주기로 했다.
독립 요원 데이빗 박에 대한 그럴싸한 가짜 파일을 하나 문정규에게 던져 주고, 그 파일이 어디로 가는지 역추적해 데이빗 박을 찾는 자들이 누구인지 파악하기로 했다.
그리고 꼬리를 잡은 것이다.
“누구입니까?”
곽용신이 물었다.
“김규택.”
김형원 사장이 말했다.
김규택?
곽용신은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누굽니까, 그놈이?”
곽용신이 물었다.
김형원은 대답 대신 웃음을 지었다.
이 업계에서는 정보가 힘이고 돈이었다. 그래서 이 업계에 근무하는 놈들은 몰라도 모른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몰라도 아는 척하는 직업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곽용신은 당연하다는 듯 누구인지 물어온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에 부끄러움 같은 것도 없다.
윗분들이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능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은 가지지 못한 솔직함이 싫었을 것이다.
덕분에 김형원이 곽용신을 주울 수 있었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얼마 전에 회사 그만둔 쫄따구 중 하나니까.”
“쫄따구…… 3급입니까?”
곽용신이 말했다.
마음에 담아 두고 있군.
김형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6급.”
“쫄따구네요.”
“그래. 쫄따구지.”
“근데 꼴랑 6급으로 회사 나간 그 쫄따구 놈이 왜 한 과장에 대해서 파고 다니는 걸까요? 아니, 이 질문은 멍청한 질문이네요. 뒤에 누구입니까?”
곽용신이 말했다.
“모용진.”
김형원 사장이 말했다.
“해외정보실장?”
곽용신이 말했다.
“전(前).”
김형원이 정정했다.
“호오라, 모 실장님이시란 말이지. 재미있군요.”
곽용신이 말했다.
그가 한국에 붙어 있지 못하고 사랑하는 두 딸과 덜 사랑하는 마누라를 두고 해외로 돌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모용진에게 밉보였기 때문이다.
묘용진은 얼마나 모교를 사랑하는지, 본인 대학 후배가 아닌 모든 요원들을 무시하고 미워했다.
뭐, 개중에는 김승섭이처럼 같은 학교를 나왔지만 밉보이는 경우가 있기도 했지만.
“재미있나?”
“네. 제가 참 도움을 많이 받았었거든요.”
“그랬군.”
“그나저나 그 양반이 어떻게 데이빗 박을…… 아니지. 해외정보실장이었으니까 알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왜 파고 다니는 것인지가…….”
거기까지 말한 곽용신은 단어 하나를 떠올렸다.
“그거……로군요. 경인.”
곽용신이 말했다.
경인.
임진왜란 당시 조선 반도를 침입한 왜군들에게 도움을 준 순왜(順倭)의 대표적 인물인 국경인의 이름을 딴 국정원 코드. 일본과 관련된 내부 배신자를 지칭하는 국정원 코드.
“우리가 미끼로 던진 서류가 곽 부장 동기인 문정규에게로 넘어갔지. 문정규는 며칠 동안 서류를 검토했고, 별 가치가 없다는 정보라는 것을 알았겠지.”
“그렇겠죠.”
직접 가짜 서류를 만들어 낸 곽용신이 말했다.
“문정규는 서류를 김규택에게 넘겼고, 김규택은 모용진에게 넘겼고.”
“그럼 모 실장이…… 일본에 데이빗 박의 정보를 넘긴다는 이야기인가요? 일본 놈들이 한 과장에 대해서 알고 있고?”
“이제 알아봐야지.”
“어떻게 알아봅니까?”
“잡아 와야지.”
“누가요?”
“곽 부장.”
“저 혼자요?”
“그러고 보니, 밑에 직원 충원해 달라고 했지?”
“그, 그랬죠.”
“공을 세웠으니 본국으로 오겠군.”
“누……가요?”
“사이좋고 운도 좋은 두 사람이 뭉치면 시너지 효과가 생기지 않겠나?”
“사이가 좋다고요?”
곽용신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잔뜩 실려 있었다.
< MISSION 04 : 츠바키 (70)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