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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41화 (242/386)

< MISSION 04 : 츠바키 (69) >

“코시자와. 그냥 두고 가기는 그렇고, 그렇다고 직접 손을 쓰는 것도 뭐······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 거야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를 죽여 버린다면 사회적 죽음을 안겨 주는 것이 먼저. 그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츠네타카를 이용해서?”

트레이시가 말했다.

“그래.”

한규호가 말했다.

“어떻게 할 건가요?”

트레이시가 물었다.

“배드캅, 굿캅.”

한규호가 말했다.

“알려 주세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뭐, 뻔한 이야기지. 내가 가서 겁을 좀 준 다음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잘 달래서 말을 듣게 만든다.”

트레이시는 말없이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나중에 기회가 있을 거야. 당신이 직접 그의 목을 꺾을 수 있는 날이. 그런 날이 있겠지만, 조금만 참아 줘.”

한규호의 말에 트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할 건지 듣고 싶어요.”

트레이시가 물었다.

“이미 겁은 좀 주고 왔어. 넌 감옥에 갈 것이다. 재소자들의 인권이 살아 있는 일본 감옥이 아니라, 자연권이 살아 있는 미국 교도소로 가게 될 것이다. 그곳에 가면 모두 너의 항문을 원할 것이다. 그렇게 알려 줬지.”

“기뻐했겠군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아주 기뻐하더군. 지금쯤 미국 교도소에서 만인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나쁘지 않아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마음에 드나 보군.”

“완전히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가. 그냥 그렇게 진행할까?”

한규호가 말했다.

“배드캅, 굿캅은 뭐죠?”

트레이시가 물었다.

“내가 다시 가서 한번 겁을 주는 거지.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들어와 나를 제지하고, 그리고 그에게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거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요?”

“증인보호프로그램.”

한규호가 말했다.

트레이시이 얼굴에 불만이 피어 올랐다.

“마음에 안 드시는군.”

“솔직히, 그래요.”

한규호는 트레이시의 얼굴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트레이시는 자신이 지금 말을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규호는 그녀에게 의견을 묻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사실 한규호는 그녀에게 이런 설명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면 조직은 그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다.

하물며 자신은 작전을 망쳤다. 불과 20여 분 전만 하더라도, 작전을 망쳤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마치 작전의 일원인 것처럼 한규호에게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느꼈고, 혐오감이 찾아왔다.

트레이시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뭐가?”

한규호가 물었다.

“…….”

트레이시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우선 이야기를 들어 보시죠.”

한규호가 그녀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들어와 츠네타카를 괴롭히는 나를 쫓아낼 거야. 그리고 츠네타카에게 사과를 하는 거지. 무례했다고. 츠네타카는 얼떨떨하겠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트레이시는 다시 자신에게 설명하는 한규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사과를 한 다음, 제안을 하나 하는 거지. 감옥에 갈 것인지, 아니면 청문회에서 발언을 할 것인지.”

한규호가 말했다.

“청문회요?”

“그래. 미의회청문회(United States congressional hearing).”

한규호가 말했다.

***

“저희 제안은 이렇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브랜든을 쫓아낸 남자가 말을 끝냈다.

츠네타카는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남자의 말에 담겨 있는 의미는 이해했다. 이해는 했는데,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 청문회에 증인으로 서라는…… 그런……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남자가 브랜든을 쫓아내고 한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었다.

미국은 츠네타카를 미국 법정에 기소할 생각이라고. 시마다가 사람을 동원하고, 츠네타카를 폭행하고, 애블린을 납치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정치·외교역학적 관계에 따라 시마다는 건드릴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 모든 죄를 츠네타카가 뒤집어쓰고, 미국에 가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브랜든이 이미 했던 이야기였다.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 해 준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제안을 하나 하겠다고 했다.

미국 상원의회에서 증언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코시자와중공업을 비롯해 일본 방위산업 카르텔이 심각하게 우경화되어 있고, 그래서 무기 도입과 개발 등에서 자위대를 일본군으로 개편하는 야욕을 품고 있다는 증언을 청문회에서 하겠냐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시나리오 하나를 들려주었다.

츠네타카는 코시자와중공업의 직원으로서 차세대 전투기 계약 사업을 진행하던 중, 코시자와중공업 측으로부터 무리한 지시를 받게 되었다는 것.

협상에 상대측인 애블린을 육체적인 관계로 끌어들이라는 이야기였고, 츠네타카는 그런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츠네타카는 미국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분위기를 좋아했고, 최근 일본의 우경화 분위기에 우려하고 있었기에, 그러한 지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배경 설명까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츠네타카는 MD시스템즈 에이전트의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함께 있다가 코시자와중공업에서 보낸 야쿠자들에게 린치를 당했다. 그런 결론이었다.

완벽했다.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즈, 증인보, 보호프로그램은, 저, 적용받을 수 있습니까?”

츠네나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말한 그대로로군.

로랜드는 츠네타카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츠네타카가 그 제안을 들으면 분명히 증인보호프로그램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그 남자가 말했었다.

뭐지, 그 남자는?

로랜드는 이 시나리오를 작성한 남자, ‘요청한 모든 것을 다 들어줘야 하는 남자’를 떠올렸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집, 새로운 직장, 새로운 이름, 그리고 새로운 국적.”

로랜드가 말했다.

“물론 미국 시민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츠네타카의 눈이 심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감옥을 피할 수 있다. 단순히 감옥에 안 가는 것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지금까지 이뤄 놓은 것들을 전부 버려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로랜드는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츠네타카에게 물었다.

***

“일본의 신문과 방송은 언론이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없지. 권력과 금력의 노예가 된 지 오래니. 아니, 그들 스스로가 권력이고, 재벌이니 같은 동료라고 해 줄까? 아무리 코시자와와 코시자와중공업의 비리를 이야기해 봤자 언론들은 보도하지 않을 거야. 설사 보도했다고 해도, 유사 민주주의국가 일본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한규호가 말했다.

“그러니까 시작은 미국에서 하는 거지. 우리 친구 츠네타카가 상원의회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고, 미국에서 받아쓰고, 속보, 특집, 기획 기사가 전 세계로 타진되고. 궁금하지 않아? 그런 상황에서도 일본 언론들이 열심히 재벌들을 위해 펜을 움직일지가 말이야.”

트레이시는 그저 멍한 얼굴로 한규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상황에서 시마다가 움직이는 거지. 시마다에게 코시자와 관련 파일 몇 개 던져 주고 옆구리 좀 찔러 주면 이제 사는 즐거움이라고는 없는 시마다의 마음이 움찔움찔하지 않겠어? 그래. 나는 국민의 대표인데, 나를 린치한 것은 국민에 대한 폭거이고, 헌법과 국가에 대한 반역이다. 휠체어를 타고 기자회견을 하겠지.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하는 시마다 뒤에, 다른 정치인들 몇몇이 도열해 있으면 그림이 되겠군. 이런 상황이면 무조건 움직이겠지.”

한규호의 말을 듣는 트레이시는 의견을 제시하기는 커녕 고개도 끄덕일 수 없었다.

마치 이런 상황이 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 한규호는 대비하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 이야기 했지? 마지막으로 섹스 스캔들로 마무리하면?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요. 나는 정치를 혐오해요. 그런 이야기하는 일본 국민들께서도 신나서 기사를 클릭하겠지. 코시자와는 사망 선고를 받게 되는 것이고. 사회적인 사망 선고.”

거기까지 말한 한규호는 살짝 웃었다. 트레이시의 멍한 얼굴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마다는 뭐. 형벌이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이 나라는 엉망이 될 테니까. 솔직히 난 그 상황이 나쁘다는 생각이 안 드는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츠네타카는 증인보호프로램을 적용하고, 뭐, 나중에 찾아서 죽여 버리든가, 그게 싫으면 적당히 마약이나 공급해 주든가. 벌을 받게 하는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지. CIA는 잘하잖아, 그런 일들.”

트레이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어디에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알지 못했다. 벌을 받게 하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데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CIA가 그런 일을 잘 처리한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이 정도면 애블린 양께서도 만족하실는지요.”

한규호가 말했다.

트레이시는 다시 멍한 얼굴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상황실에서 나온 밀러 국장은 다음 일정을 위해 발을 옮기고 있었다.

스튜와의 대화는 오랜만에 느껴 보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국장에 자리에 오르고, 아니, 국장에 자리에 오르기 전에도, 어느 정도 지위가 오른 후에도, 그에게 이런 자극을 준 사람을 만나지 못했었다.

“기분 좋아 보이네요.”

국장의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사람이 말했다.

밀러 국장은 시선을 옆으로 향했다. 신시아 챔버가 미소를 지으며 국장을 보고 있었다.

“즐거운 대화였나 보네요.”

밀러 국장은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그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졌다.

“기대되네요. 직접 만나 보고 싶어요.”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사윗감으로 적절한지 보겠다는 이야기인가?”

밀러 국장이 말했다.

그 말에 신시아 챔버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밀러 국장이 농담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보기는커녕 농담한다는 이야기도 들어 보지 못했다.

“사윗감이라…….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거죠?”

신시아 챔버가 물었다.

“선택지가 있나?”

밀러 국장이 물었다.

“난 딸이 두 명이니까요. 아니, 세 명이네요. 하지만 막내는 안 되겠죠. 너무 어리니까.”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밀러 국장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아무튼, 엄마로서는 그냥 농담처럼 흘려들을 수는 없는 이야기네요. 물론 앤은 아니겠지요.”

신시아 챔버가 말했다.

앤 챔버의 제한 조건은 출산이다. 그녀가 아기를 낳으면 그녀는 가지고 있는 능력을 잃는다.

아니, 아직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둘째 딸의 사망이 제한조건이었던 케이스 1의 사례가 있었으니까.

앤 챔버는 그녀의 제한조건이 출산이라고 말했고, 그렇다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요즘은 결혼한다고 전부 다 애를 가지는 것은 아니니까.”

밀러 국장이 말했다.

신시아 챔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밀러 국장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신시아 챔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궁금하지 않나?”

밀러 국장이 물었다.

“뭐가 말이죠?”

신시아 챔버가 불편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기프티드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밀러 국장이 말했다.

< MISSION 04 : 츠바키 (6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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