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4 : 츠바키 (68) >
츠네타카는 잠에서 깨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진통제에서 깨어났다.
그 남자, 브랜든이 끔찍한 소식을 전해 준 뒤에야 츠네타카에게 진통제가 허용되었다.
온몸을 지배하는 육체적 고통에 신음하던 츠네타카는 진통제를 맞고 나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진통제를 맞고 잠이 들었지만, 츠네타카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는 꿈을 꾸었다. 악몽이었다. 악몽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그 끔찍함을 다 표현해 낼 수 없는 그런 꿈을 꾸었다.
꿈에서 츠네타카는 미국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영화에서 봤던 오렌지색의 수의를 입고 겁에 질린 눈으로 교도관에 이끌려 감옥으로 끌려 들어갔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그에게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꿈속에서 츠네타카는 두려움을 가득 안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죄수들을 바라보았다.
죄수들은 웃고 있었다. 기대하는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츠네타카가 자신의 방으로 배정되기를 기대하는 웃음이었다.
츠네타카는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였음에도 그 시선이 보였다.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보였다.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츠네타카는 꿈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그런 생각뿐이었다.
여기다.
간수가 말했다.
미국 교도소임에도 교도관이 일본어로 말했지만, 츠네타카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츠네타카는 고개를 들었다. 분명히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어느새 한 감방 안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근육질의 남자가 츠네타카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츠네타카는 잠에서 깨어났다.
악몽 때문에 깨어난 것은 아니었다.
진통제 효과가 다하면서 몸에 고통이 찾아오고, 고통이 의식을 깨운 것이다.
츠네타카는 잘 뜨이지 않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육체적 고통도 깨어났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모든 신경계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츠네타카는 아직 꿈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악몽에서 깨어났지만, 여운이, 정신적 고통의 여운이 온몸을 흐르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츠네타카는 깨어나고 싶었다. 이 꿈에서, 이 악몽 같은 꿈에서 다시 한번 깨어나고 싶었다.
이 꿈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악몽이 막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 깨어나고 싶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츠네타카는 시선을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브랜든이었다.
***
노크도 없이 들어온 한규호는 잠시 츠네타카를 보다가 의자를 끌고 와 침대 옆에 앉았다.
“깨어 있었군.”
한규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츠네타카를 보면서 말했다.
“좀 어떤가.”
한규호가 물었다.
츠네타카는 말이 없었다.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쉬는데 내가 방해가 된 건가?”
한규호가 물었다.
“살…….”
츠네타카가 입을 열었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한규호가 말했다.
“살려…… 줘.”
츠네타카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한규호는 말없이 잠시 츠네타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자네를 살려 줄 수 있겠나.”
한규호가 말했다.
“도, 도와줘. 자네가, 자네만이 나를…… 나, 나를…….”
“내가 어떻게?”
“제발 미, 미국만. 미국만 안 가게 막아 주면. 내, 내가 자, 자네가 원, 원하는 것을 저, 전부 다.”
“너무하는군, 자네는.”
한규호가 츠네타카의 말을 끊었다.
“이보게, 히로시.”
한규호가 고개를 살짝 흔들면서 말했다.
“나에게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 그게 무슨…….”
츠네타카가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부탁할 상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나?”
겨우 뜨고 있던 츠네타카의 부어오른 눈이 커졌다.
“나는 자네를 친구라고 생각했네. 그런데 자네는 나를 배신했지. 그래, 배신.”
한규호가 ‘배신’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나직하게 읊조렸다.
“나에게 여자를 붙이고, 내 아내에게는 약을 먹였지. 그뿐만 아니라 그녀를 지켜 내지도 못하고, 위험에 빠트렸지. 그런데…… 나에게 도와 달라고 하다니,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일세.”
한규호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감정을 실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히로시.”
한규호가 조용히 말했다.
“도와 달라고 했나?”
츠네타카는 한규호의 나직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감정을 느꼈다.
“미국에만 안 가면 되는 건가?”
츠네타카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목에 감겨 있는 깁스 때문이기도 했지만, 깁스가 없었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한규호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분노가 그의 고막에서 공포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한규호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입을 천천히 츠네타카의 얼굴로 가져갔다.
“안 가게 해 줄 수 있지.”
한규호의 말에 츠네카의 눈이 커졌다.
“죽으면 안 가도 되겠지.”
그 말이 츠네타카에게는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나는 말이지. 솔직히 재판이고 법정이고 그런 거 다 필요 없이, 그저 자네를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야.”
한규호가 목소리를 더 낮췄다.
그렇지만 츠네타카의 옆얼굴에 바싹 붙어 있었기에, 츠네타카는 그 소리가 더 크게, 강렬하게 들려왔다.
“그렇게 하고 싶군. 지금 당장 이 손으로 자네 목을 졸라 버리고 싶군. 아니, 그건 너무 편안한 죽음이지. 내가 앉아 있는 의자를 들고 자네 발끝부터 뼈를 다 조각내면서 올라가고 싶은 기분이야. 그렇게 하고 싶어.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말이지.”
한규호의 속삭임에 츠네타카는 몸을 떨었다.
“도와 달라고? 도와줄까? 아프기는 하겠지만, 미국에 가서 변기 노릇을 하는 것보다는 덜 고통스럽지 않겠어? 아니, 고통의 강도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지 못하겠군. 하지만 훨씬 짧기는 할 텐데 말이지.”
한규호가 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때 문이 열렸다.
“뭐 하는 짓입니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소리쳤다.
***
츠네타카는 한규호의 악마같은 속삭임을 듣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소리가 아닌 텔레파시처럼 그의 온몸을 파고들고 있었다.
눈을 감는 것처럼 귀를 닫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뭐 하는 짓입니까!”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란 츠네타카는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타박상 부위의 고통이 강해졌다.
하지만 츠네타카는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놀라 있었다.
“도대체, 여기서 지금 뭘 하는 짓입니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소리쳤다.
츠네타카는 그를 보았다.
중년의 백인 남성이었다.
백인 남성의 시선은 브랜든을 향해 있었다.
“……그냥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어느새 츠테나카의 귀에서 머리를 뗀 브랜든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뚜벅뚜벅 걸어와 브랜든 앞에 서있다.
“나가시오, 당장! 경고하는데, 다시는 멋대로 행동하지 마시오! 그리고, 이번 일은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도 잊지 마시오. 나가시오! 당장!”
남자가 손으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브랜든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고, 그저 츠네타카를 계속 바라보았다.
“내가 한 말. 잘 생각해 보라고.”
브랜든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문으로 걸어가 나가 버렸다.
츠네타카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놀라움 가득한 눈으로, 방으로 들어온 또 다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미스터 츠네타카?”
남자가 말했다.
“네? 네.”
고개를 끄덕이려던 츠네타카는 다시 한번 깁스의 존재를 확인하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사과드리겠습니다, 미스터 츠네타카.”
“…….”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츠네타카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어벙벙한 모습만을 하고 있었다.
“그가 뭐라고 하던가요?”
남자가 물었다. 츠네타카는 브랜든이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미래를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죽음이라는 선택지를 제안했다는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닙니다. 그가 뭐라고 했든 잊으세요. 이제, 다시는 그와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네…… 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남자가 말했다.
“아, 저…….”
“제 이야기는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남자가 물었다.
“……네.”
츠네타카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워졌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표정에서 츠네타카는 공포를 느꼈다.
***
문을 열고 나온 한규호는 미소를 지었다.
연기력이 나쁘지 않군.
한규호는 방금 그를 츠네타카의 병실에서 쫓아낸 남자, 상황을 본다는 로랜드 요원을 그렇게 평가했다.
이 또한 한규호가 쓴 시나리오였다.
고전 명작인 굿캅, 배드캅 시나리오를 그가 직접 각색한 시나리오였다.
밀러 국장과 대화를 하면서 떠올린 생각을 빠르게 각본화 시킨 것이다.
***
“그럼 몇 가지 부탁할 것이 있는데. 서로의 돈독한 협조 관계를 위한 가계약 조건으로 들어주시면 좋겠군.”
한규호가 말했다.
-계약은 이진법이지. 0 아니면 1. 계약은 맺었을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고, 가계약이라는 단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밀러 국장이 말했다.
“그러니까 하자는 말이지.”
한규호가 말했다.
-일단 들어 보지. 밀러 국장이 말했다.
“카멜리아라는 그 여자는 내가 데려가도록 하겠소.”
한규호가 말했다.
-원하는 대로.
“정확히 말하면 데려가는 것은 아니지. 데려다 주시오. 태청무역에 연락해서 그녀가 쉴 만한 곳을 만들어 두라고 전하고, 그녀의 거처가 마련되면, 당신네들이 책임지고 그녀를 그곳까지 보내 주시오.”
한규호의 말을 들은 밀러 국장은 자신이 직접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것’이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을 기억했다.
그리고 한규호가 자신에게 마치 지시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사실도 상기했다.
-그러지.
국장이 말했다.
“트레이시는 당분간 한국으로 파견 보내 주면 좋겠는데.”
-한국?
밀러 국장이 물었다.
“알다시피 태청무역에는 그 여자를 케어할 수 있는 적당한 담당자가 없어서. 트레이시가 그녀를 담당해 주었으면 하니까.”
한규호가 말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시마다도 좀 처리해 줬으면 좋겠군요.”
-처리라면?
“시마다에게 약을 좀 쳐 놨지.”
-약?
“시마다는 코시자와가 자신을 린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요. 그러니 그가 적당히 치료가 끝나면, 그때 옆에서 시마다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군요.”
-도와준다니. 어떻게 말이지?
“시마다가 코시자와에게 쫄지 않도록, 자신을 고자로 만든 코시자와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정도가 좋지 않겠소? 가지고 있는 코시자와 파일이 있으면 두어 개 던져 주면서, 감히 선생님을 이렇게 만든 코시자와 놈을, 가진 것이라고는 돈뿐인 그놈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옆에서 부추기는 놈을 한둘 붙여 주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겠소? 뭐 예를 들어 총리라든가.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개들 있잖소.”
-이이제이. 좋은 생각이군.
“뭐. 고전이니까.”
-또 있나?
“마지막으로 코시자와.”
-어떻게 하길 원하나?
“죄를 지었으며 벌을 받아야지.”
한규호가 말했다.
< MISSION 04 : 츠바키 (6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