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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233화 (234/386)

< MISSION 04 : 츠바키 (61) >

“시마다 선생.”

웨인 애덤스는 혐오스러움을 감추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억양의 일본어로 말했다.

“누, 누구야?”

중의원 시마다가 놀란 눈으로 골프채를 잡은 손에 힘을 주는 것을 보았다.

몸 안에 일본인의 피가 흐르는 웨인 애덤스는 일본을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의 정치 구조를 혐오했다.

1955년, 소위 55년 체제가 시작된 이후 일본의 보수정당인 자유민주당은 일본의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 이후 선거는 정권은 자민당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절차에 불과해져 버렸다.

자민당 내에서 파벌이 생겼고, 서로 싸웠으며, 가장 세력이 큰 계파가 자민당을 장악하면, 곧 일본도 장악하게 되었다.

일본 국민들은 생각 없이 자민당을 뽑았으니까.

정치권력은 부패해 갔고, 국민들의 관심은 더욱 멀어져 갔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폭발적 경제 성장에, 날이 갈수록 폭등하는 주가와 땅값 버블에 눈이 멀어 버린 일본 국민들은 부패한 정치권력이 더욱 부패하도록 두었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세습했고, 세습된 권력은 더욱 부패해 갔다.

웨인 애덤스는 그런 일본 정치를 혐오했다.

그리고 그 혐오의 대표 모델 중 하나가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시마다 선생, 왜 쓸데없는 짓을 하셨습니까?”

웨인 애덤스가 말했다.

“무, 무슨 소리야!”

웨인 애덤스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받아 든 시나리오에, 그렇게 하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마다가 어떤 상황인지 생각할 정도로 잠시 시간을 준 다음, 웨인 애덤스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에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시마다 선생께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군. 이해하실 수 있도록 좀 도와드리도록.”

뒤에 서 있던 남자는 웨인 애덤스의 지시에 고개를 숙이고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

문이 열리고 두 번째로 들어온 남자.

말없이 웨인 애덤스 뒤에 서 있던 남자.

한규호는 일본인과 닮았고 자연스러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요원이 시마다와 짧은 대화를 하는 동안, 시마다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놈이 맞군.

한규호는 욕망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시마다의 얼굴을 보고 그를 기억해 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온 그 남자였다.

트레이시와 승무원들에게는 음흉한 눈빛을, 그리고 자신에게는 적의가 담긴 눈빛을 보내던 그 남자였다.

한규호는 그날 그에게 교훈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을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된다고 알려 주고 싶었더랬다.

주먹으로 안구에 살짝 충격을 가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CIA가 해결해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더랬다.

앞에 서 있는 요원이 고개를 돌려 한규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한규호에게 일본어로 지시했다.

물론 한규호는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내용은 알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한규호 그 자신이었으니까.

한규호는 지시를 받은 부하처럼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한규호가 나아가자 시마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손에 들린 드라이버 헤드가 위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검도라도 배웠으려나.

한규호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골프채를 잡은 어설픈 파지법이나 뒤로 엉덩이가 쭉 빠진 엉성한 자세를 봤을 때, 그가 무도를 배운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그가 무엇을 배웠든 한규호에게는 상관없었다.

한규호는 골프채를 무시하고 시마다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골프채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갔을 때, 1번 우드의 티타늄 헤드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취미로 골프를 즐기는 아마추어 골퍼들의 평균 스윙 스피드는 시속 90마일 정도다. 그러나 한규호의 머리로 날아오는 드라이버 헤드의 속도는 그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골프 스윙 자세가 아닌, 배팅 타격 자세였기 때문이었는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PGA프로들의 드라이버 스윙 스피드인 시속 120마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백 마일은 충분히 넘길 정도의 속도로 티타늄헤드가 한규호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물론 한규호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한규호는 골프채를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뒤로 빼는 것만으로 헤드를 피해 냈다.

***

밀러 국장은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는 알지 못했지만, 그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재미있군.

밀러 국장의 생각이었다.

스튜가 직접 시마다를 손봐 주기 위해 움직였다는 보고를 받은 밀러 국장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번 베네수엘라 작전에서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그저 관망한다. 마치 나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듯, CIA의 장난질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듯,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상황이 시작되면,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으면 스튜는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에 들어간다.

그리고 확실하게 마무리를 한다.

엘 푸에르토의 본거지로 홀로 들어가 조직원들을 몰살시키고 보스를 납치해 왔다.

베르나를 구할 때도, 그가 직접 몸을 움직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중의원을 직접 손봐 주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그것도 그럴싸한 시나리오까지 직접 써 가면서.

물론 뒷수습을 해야 하는 CIA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픈 일이 될 것이다.

그가 쓴 시나리오가 어디까지 먹힐는지 모르겠지만, 뒤처리를 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밀러 국장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가 움직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 손을 쓰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와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

머리를 살짝 뒤로 움직임으로써 시속 1백 마일의 속도로 날아오는 골프채의 헤드를 피한 한규호는 바로 시마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분노에서 공포로 바뀌어 가는 시마다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였다.

좋군.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꿈치로 시마다의 왼발 엄지발가락이 있는 곳을 힘껏 밟았다.

신경이 몰려 있는 발끝에서 시작된 고통이 초속 10미터의 속도로 시마다의 척수를 타고 뇌로 흘러들어 갔다.

고통에 겨운 소리를 지르기 위해 시마다의 입이 열렸다.

그러나 시마다는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한규호의 오른손 손바닥이 시마다의 턱을 위로 후려쳐 버렸다.

시마다는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고개가 뒤로 심하게 꺾였다.

한규호는 아주 섬세하게 힘 조절을 했다.

고통은 극대화하면서 정신은 잃지 않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힘 조절이 중요했다.

좀 셌나?

마치 뽑힐 듯 뒤로 꺾이는 시마다의 머리를 보면서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데.

한규호는 그가 정신을 잃지 못하도록 시마다의 오른쪽 정강이를 걷어찼다.

부러지지 않도록, 그저 금만 조금 가고 고통은 충분하도록, 그리고 그 고통 때문에 정신을 잃지 않을 정도의 강도로 살짝 찼다.

물론 한규호의 기준에서의 살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왼쪽 정강이에서 시작된 고통이 시마다의 정신을 깨웠다.

“끄아아아아아악!”

시마다는 결국 소리를 질렀다.

시마다가 상상했던 것처럼, 고통으로 점철된 비명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짜증 나는 시선이었지.

한규호는 비행기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시마다의 시선을 떠올리며 중지 손가락을 살짝 세워 주먹을 말았다.

그리고 고통 때문에 질끈 감고 있는 그의 눈동자 위를 가볍게 끊어 쳤다.

안구만 살짝 파열되도록.

미묘하군.

한규호는 방금 자신의 펀치에 그렇게 평가를 내렸다.

재수 없으면 치료를 통해 그의 안구가 다시 기능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힘 조절은 쉽지 않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규호는 시마다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했다.

그리고 고통이 극대화될 수 있는 부위를 골라 적당한 강도로 계속 타격했다.

때리는 것보다, 의식을 잃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그렇게 약 2분여간 시마다를 타작한 한규호는 다시 주먹을 쥐고 중지를 세웠다.

조금 전 미묘하다고 느꼈던 안구에 확실히 마무리를 할까 싶은 마음에.

그러다 눈물, 콧물, 침으로 범벅되어 있는 시마다의 얼굴을 보았다.

손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규호는 시마다를 지탱하고 있던 손을 풀었다.

시마다의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한규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한다는 이유로 차출되어 온 요원이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규호는 그 모습에 눈을 살짝 찡그리고는 턱짓을 했다.

대사를 하라는 지시였다.

***

웨인 애덤스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본부에서는 알려 주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말라고 했다.

그저 이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시나리오를 받았고, 외웠고, 지금 이 장소로 오게 된 것이다.

웨인 애덤스는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머리로 날아오는 드라이버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는 모습을 봤을 때, 이미 웨인 애덤스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그가 시마다를, 현직 중의원에게 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웨인 애덤스는 당연히 CIA 요원으로서 격투 훈련을 받았고, 그래서 정체불명의 이 남자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고통이 극대화되는 부위만을 골라 때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손짓 하나하나, 발길 하나하나가 효율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아주 깔끔하고 효율적인 타격이었다.

그보다 놀라운 사실은, 시마다가 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웨인 애덤스는 알고 있었다. 저렇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면서 상대방의 정신을 계속 유지하게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실을 알기에, 웨인 애덤스는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시마다를 개 패듯 패던 남자가 동작을 멈추고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가 턱짓을 했다.

웨인 애덤스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 몸 안에서 울려 대는 심장박동 속도로는 말을 더듬을 것만 같았다.

“시마다 선생.”

아주 조금 마음을 진정시킨 웨인 애덤스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듯, 익숙한 장면이라는 듯한 말투로 시마다에게 말했다.

그러나 바닥에 쓰러진 시마다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숨을 헐떡이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쩌지? 정신을 잃은 것인가? 아직 대사가 남았는데.

웨인 애덤스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 순간.

그 순간 남자의 발 앞굽이 시마다의 무릎을 강하게 찍는 것을 보았다.

무릎 인대가 있는 부위였다.

웨인 애덤스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시마다를 보면서, 그가 다시는 정상적으로 걷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안쓰럽다는 마음 같은 것은 없었다.

“시마다, 시마다 선생.”

웨인 애덤스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다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네…….”

시마다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내 말 들리시지?”

웨인 애덤스가 말했다.

시마다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답을 대신했다.

“고개만 끄덕이는데?”

웨인 애덤스는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말했다.

물론 시마다가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였다.

“드, 들립니다! 들립니다!”

시마다가 빠르게 외쳤다.

다행이군.

웨인 애덤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나리오에 마지막 대사를 할 시간이었다.

시마다가 이 대사를 들어야 했다. 그 때문에 일본어가 유창한 그가 차출되어 온 것이었으니까.

“시마다 선생,”

“네…….”

시마다가 힘겹게 말했다.

“다시는 회장님을 거스르지 마세요, 두 번 다시는. 아시겠지요?”

웨인 애덤스가 마지막 대사를 꺼냈다.

“알! 알겠습니다! 다, 다, 다, 다, 다시는 코시자와 회장님을!”

시마다가 소리 질렀다.

회장님은 코시자와를 이야기하는 것이었군,

시나리오에 쓰여 있던 ‘회장’의 정체를 시마다를 통해서 알게 된 웨인 애덤스는 한 발자국 물러서며 생각했다.

어찌되었건 웨인 애덤스는 연기를 모두 끝냈다. 그가 등장하는 신은 이제 끝이 났다.

웨인 애덤스는 자신의 지시를 받아 시마다에게 고통을 주는 부하 역할을 맡은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가 알아들었습니다.

그런 의미를 담은 끄덕임이었다.

그리고 웨인 애덤스의 모든 연기가 끝이 났다.

이제 카메라는 그 남자에게로 넘어가 있었다.

웨인 애덤스는 그가 어떻게 이 신을 끝낼 것인지 궁금했다.

부하 연기를 하는 남자는 웨인 애덤스의 끄덕임을 보고는 시선을 다시 시마다에게로 돌렸다.

그리고는 잔뜩 웅크리고 있는 시마다를 발로 툭 하고 차서 몸을 돌렸다.

눕는 자세를 만들려는 것 같았다.

시마다는 다시 몸을 웅크리려 했지만 그는 발로 그 동작을 방해했다.

마치 축구공을 툭툭 건드리는 모습이었다.

뭘 하려고 그러지?

웨인 애덤스는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몇 번의 발길질 끝에 자세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남자의 발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을 때, 웨인 애덤스는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찡그렸다.

설마.

그리고 그의 우려대로, 남자의 발이 누워 있는 시마다의 사타구니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꽈직.

웨인 애덤스는 처음 들어 보는, 고환이 깨지는 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 MISSION 04 : 츠바키 (6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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