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04 : 츠바키 (60) >
시마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밀 아지트 중 한 곳에 앉아 있었다.
도쿄 외곽에 자리 잡은 한 건물 지하실에 마련되어 있는 이 아지트는 시마다가 선거 때 사용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었다.
선거기간에는 시마다의 선거운동원들, 물론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선거운동원들이 합법적이지 않은 선거운동을 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당연히 선거가 끝나면 이곳은 다시 빈 공간이 되었다.
사람들과 서류가 사라지고, 이곳을 관리하는 전직 야쿠자 출신 관리인 두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물론 이 아지트의 소유주인 시마다는 가끔 이 사무실을 사용하고는 했었다.
보통 누군가에게 교훈을 줄 때, 이 장소를 사용하고는 했다.
다른 용도, 예를 들면 비공식 정치후원금을 받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시마다가 이곳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보통 누군가가 이 장소에서 고통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시마다는 오늘도 같은 의도로 이 장소를 찾았다.
혹시 니시야마구치구미에서 늦게라도 연락이 오면, 동영상을 가져오겠다는 연락이 온다면, 이곳으로 오라고 할 생각이었다.
누가 동영상을 가지고 오든, 물론, 구미쵸에게 직접 오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그게 누구이든 간에, 시마다는 직접 그 머리를 깨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나 전화는 끝끝내 오지 않았다. 시마다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아지트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마다의 얼굴은 차분해 보였다.
분노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시마다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지금 당장은 술을 먹고 싶지도, 비서를 포함해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니시야마구치구미의 조직원의 목을 하나하나 전부 다 그의 손으로 따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회적인 죽음을 안겨 주는 것이 우선이다. 시마다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 조직을 박살 내는 것이 먼저다.
조직이 박살 나고 나서야 야쿠자 놈들은 뒤늦은 후회를 할 것이다.
감히 나를, 이 시마다를 거역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다.
후회한다 해도 이미 소용없다. 그때부터 시작이니까.
새로 시마다의 손발이 될 개들을 동원해 조직이 박살 난 놈들을 하나하나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이곳으로 잡아 올 것이다.
구미쵸를 비롯해 간부들만 잡아들여도 두 자릿수가 넘어간다.
얼마나 걸릴까, 한 번에 한 놈씩 잡아 온다면?
오래 걸릴 것이다. 아주 오래 걸릴 것이다.
차라리 잘되었군.
시마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즐거운 사냥을 오래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즐거움은 사냥에서 끝나지 않는다.
잡아 온 사냥감을 도축하는 즐거움도 오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고통으로 점철된 비명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울 것이다.
시마다는 그 장면을 상상했다.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간부 중에 여자가 있었으면 좋겠군.
시마다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장면을 막 전환하려던 그 순간.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치켜 올라갔던 시마다의 입꼬리가 다시 원위치로 내려왔다. 그의 얼굴이 평소의 도사견 같은 얼굴로 돌아왔다.
특별한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절대 방해하지 말라고 했는데, 천박한 개들이 자신의 사색을 방해하고 있었다.
지금 이 공간에는 시마다 자신과, 평소에 이 아지트를 관리하라고 맡겨 놓은 전직 야쿠자 두 명밖에 없었다.
그의 비서와 운전사는 아지트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니, 소음의 근원은 전직 야쿠자 두 놈일 것이라고 시마다는 단정 지었다.
잘되었군. 안 그래도 손이 조금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는데.
시마다는 사무실 구석에 놓인 드라이버, 1번 우드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리 들어와, 이 새끼들아!”
시마다가 소리쳤다. 사무실 밖에까지 충분히 들릴 수 있도록.
시마다의 기대처럼 외침이 문을 뚫고 나갔는지, 밖에서 들리던 소음은 뚝 그쳐 버렸다.
“개새끼들…….”
시마다는 손에 든 드라이버의 헤드 부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어디를 때려야 할까?
마음 같아서는 머리를 후려갈기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면 죽을 테니까.
엎어 놓고 옆구리를 갈기는 게 좋을까? 아니면 세워 놓고 허벅지를 갈길까? 아니면 불알?
어디가 가장 좋을까 하고 고민하던 그 순간에 문 열리는 소리가 시마다의 귀에 들어왔다.
시마다는 고개를 돌렸다.
“이리로 와, 이 개새…….”
시마다는 말을 다 하지 못했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시마다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
몇 시간 전.
미 대사관 G섹션 지하상황실 옆 회의실에 앉아 있던 한규호는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아 있는 로랜드 요원에게 물었다.
“시마다는 지금 어디에 있소?”
한규호의 질문을 받은 로랜드는 바로 답할 수 없었다.
물론 CIA는 시마다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아침에 잡아 온 야쿠자의 입에서 ‘중의원 시마다 선생’이라는 이름이 나온 그 순간부터 CIA는 시마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로랜드는 바로 답을 할 수 없었다.
알려줘도 될까, 시마다는 중의원인데?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 갔기 때문이다.
물론 알려 줘야 했다. 로랜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줄 것.
랭리에서 받은 명령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로랜드는 본능적으로 말을 주저하고 말았다.
중의원인데, 한 나라의 국회의원인데. 그의 위치에 대해서 말해 줘도 될 것인지 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우려도 담겨 있었다.
이 남자. 랭리로부터 모든 권한을 부여받은 이 남자가 설마 한 나라의 중의원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중의원을 건드린다면 단순히 외교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럴 것이다. 직접 손을 쓰기 위해 물어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왜 자꾸 이 남자가 직접 손을 쓸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지 로랜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마음에 로랜드는 말을 주저했다.
“시마다는 어디에 있소?”
한규호가 다시 물었다.
“그는…… 중의원 시마다는 지금, 저기…….”
로랜드는 고민했다.
거짓말을 할까? 아직 위치를 찾지 못했다고, 지금 추적 중이라고, 그렇게 둘러대고 시간을 벌어볼까?
그렇게 고민하는데 한규호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랭리에 연결해 주시오.”
로랜드는 그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직접 물어보도록 하지요, 불편하시지 않게.”
로랜드는 깜짝 놀랐다.
최악이다.
이 상황에서 그가 랭리와 직접 통신을 하는 것은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시마다는.”
로랜드는 침을 삼켰다. 거짓말을 할까?
그러나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한규호에게 거짓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로랜드는 시마다가 지금 도쿄 외곽이 있는 어떤 건물에 있다고 말했다. 시마다가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는 건물로 확인되었다는 사실도 말했다.
한규호는 힘들게 진실을 털어놓는 로랜드를 보면서 살짝 짜증이 났다.
그의 입으로 한규호가 현장 최고 결정권자라고 해 놓고서는 이런 태도라니.
뭐 그렇다고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한규호는 지금 상황을 더는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사실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것도 한몫했다.
시마다가 자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원실도 아니고, 도쿄 외곽의 어느 건물에, 차명으로 소유한 건물이라는 말에 한규호는 그 건물이 시마다의 아지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분석했고, 일이 쉬워지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시마다는 한규호 자신이 직접 손을 봐 줄 생각이었다.
“일본인 요원이 있소?”
한규호가 다시 로랜드에게 물었다.
“일본인 요원 말입니까?”
로랜드가 되물었다.
한규호는 로랜드가 지금까지 만나 본 CIA 요원들 중에서 가장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다음에 또 CIA와 같이 일을 하게 되면 이놈은 빼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꼭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일본인처럼 보이고,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외국인이라고 느껴지지 않게 보이는 그런 요원.”
한규호가 다시 말했다.
“……있습니다.”
“준비해 주시오, 지금 당장.”
한규호가 조금 강한 어조로 말했다.
로랜드는 잠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규호는 생각했다.
손을 볼 것이다.
시마다는 특별히 직접 손을 봐 줄 것이다.
그렇다고 현직 중의원을 그냥 패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사실 한규호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중의원 시마다에게 반영구적인 장애를 안겨준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한규호가 지지는 않을 것이다.
수습은 CIA가 하겠지. 지금 전화를 걸고 있는 로랜드라든가.
하지만 단순히 물리적 제재를 가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이 한규호의 생각이었다.
때려야 한다면 뭔가 생산적으로 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규호는 그런 고민을 했고, 한 가지 시나리오를 빠르게 생각해 냈다.
***
문을 연 남자의 이름은 CIA 동북아시아 지부 일본 도쿄 사무소 소속 웨인 애덤스(Wayne Adams) 요원이었다.
3시간 전,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에 긴급 업무 호출을 받았고, 지금 이곳, 도쿄 외곽의 한 건물 지하 창고 문을 열고 있었다.
그의 외형은 일본인과 거의 흡사했다.
혈통으로만 보자면 일본계 미국인 5세에 해당하는 웨인 애덤스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누가 봐도 일본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일본인 특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고조부, 마키하라 레이키(槇原麗喜)는 20세기 초반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세대 중 한 명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외조부는 다른 일본인 이민자 여성과 결혼을 했고, 그곳에서 아들을 낳았다. 그의 증조부 마키하라 류야는 100% 일본인의 피를 가진 일본계 미국인 2세가 되었다.
100% 일본인 DNA를 가지고 있던 증조부 마키하라 류야는 다른 일본계 미국인 2세와는 달리 군인의 길을 선택했고, 미 육군에 입대했다.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한 이후 일본계 미국인은 내부의 적 취급을 받았다.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가 발표되는 등 미국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것을 본 증조부 마키하라 류야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겠다고 자원했고, 일본계 미국인인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키하라라는 성이 애덤스로 바뀐 계기가 그것이었다.
마키하라 류야는 이름을 프레드 애덤스로 바꾸는 성의를 보이면서까지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겠다는 열의를 보였고, 전쟁장관 헨리 스팀슨의 신분 보장을 받고나서 그는 태평양 전쟁의 연합군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폭격수로 참전했던 벤 쿠로키와 더불어 태평양 전쟁에 성조기를 달고 참가했던 단 두 명의 일본계 미국인 중 하나가 바로 웨인 애덤스의 증조부였다.
웨인 애덤스의 증조부는 전쟁이 끝난 후 폴란드계 미국인과 결혼해 혼혈인 웨인의 할아버지를 낳았고, 웨인의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과 결혼해 웨인의 아버지를 낳았다.
그리고 웨인의 아버지는 노르만과 중국계 혼혈인 그의 엄마를 만나 웨인을 낳았다.
애덤스 가문에서 일본인의 피는 많이 희석되었지만, 고조부모와 증조부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배열의 우연 때문인지, 아니면 모계에 섞여 있는 중국계 혈통 때문인지, 웨인 M 애덤스는 그의 형제, 사촌들 가운데 가장 일본인과 비슷한 외형을 가지게 되었다.
웨인 애덤스는 자신의 외형을 활용하기 위해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웠고,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어를 거의 현지인과 다를 바 없이 할 수 있었다.
그게 그가 일본에서 근무하게 된 이유였다.
그 웨인 애덤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한 장년 남자가 손에 골프채를 들고서는 어이없는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친놈.
그 남자의 모습을 본 웨인 애덤스의 첫 번째 감상이 그랬다.
손에 골프채를 들고 있는 중의원의 모습이 야쿠자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 MISSION 04 : 츠바키 (60)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