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231화 (232/386)

< MISSION 04 : 츠바키 (59) >

츠네타카의 작은 눈에 공포가 서렸다.

아니야. 아직 멀었어.

그 눈을 보면서 한규호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 물론 알고 있어. 자네는 그저 약물만 썼다는 것을. 하지만 말했잖아. 시마다, 중의원이니까. 어쩔 수 없지. 자네만 미국으로 가게 될 거라더군.”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츠네타카에게 보여 주었다.

“마실 텐가?”

츠네타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갈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목을 고정하고 있는 깁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안 되겠군. 치료 중이니까.”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대신 물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자네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군,”

츠네타카의 부어있는 눈이 조금 더 커졌다.

“내가 말했지만 웃기는군. 내 아내를 탐한 자네가 안쓰럽다니. 뭐, 사실 안쓰럽다는 감정보다는 분노라는 감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야. 솔직한 심정으로 자네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르지. 사실 자네 상태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그럴까 하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한규호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는 츠네타카에게 공포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번 일이 100% 자네의 욕망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네. 물론 그 시작이 자네의 욕망인 것도 알고 있어. 부정하려 하지 말게. 나를 자극할 수도 있으니까.”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고 츠네타카의 얼굴을 보았다.

“단순히 욕망 때문이었다면 일을 이렇게 크게 벌리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을 한 이유는 결국 회사가 자네의 등을 밀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 자네가, 똑똑한 자네가 단순히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을 독단적으로 진행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한규호는 다시 물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츠네타카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시간을 주기 위해서,

“또 한 가지 안쓰러운 점은, 자네가 미국 교도소로 가게 된다는 사실이지. 미국 법정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게 상당히 보수적이지. 배심원단은 더욱 보수적이고 거기에 감정적이지.”

츠네타카가 침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그의 마음은 조금씩, 조금씩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미국 시민권자를 성폭행하기 위해 마약을 사용했다. 모르겠군. 공소장에 성폭행을 했다고 적힐지도. 갱스터도 동원했다. 검사는 조직범죄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말할 거야. 자네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배심원들이 자네를 미워하게 만들기 위해서.”

한규호는 잠시 말없이 츠네타카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최소 20년.”

한규호의 말에 츠네타카의 몸이 떨렸다.

“20년. 긴 세월이지. 짧지 않은 시간이지. 다녀오면 노인이 되어있겠군. 아니, 돌아왔을 때를 걱정할 때가 아니지. 20년을 교도소에서 어떻게 버텨 낼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되겠군. 미국 교도소는 거칠고, 자네의 새 친구들이 자네의 엉덩이를 원할 테니까.”

한규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이 기분 나쁜 대화를 끝낼 때가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하지. 미국은 미일범죄인인도협정에 따라 자네를 넘기라고 요구할 것이고, 일본 정부는 그 요청을 받아들일 거야. 내기해도 좋아. 카미카제의 나라 일본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 싸울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츠네타카의 얼굴을 공포라는 감정이 완전히 잠식해 버렸다.

츠네타카도 그렇게 생각했다. 양국의 외교 관계에서 일본은 단 한번도 미국에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일본 정부에는 기대할 수 없고, 결국 마지막 희망은 자네의 등을 밀어준 회사뿐인데……. 일본에서는 이직을 많이 하면 신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고용을 꺼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랬지. 자네 회사가 자네에게 신의를 보여줄지 모르겠군. 기껏해야 변호사를 고용해주는 정도겠지만…… 모르겠군. 코시자와중공업이 의리 있는 회사였으면 좋겠군.”

그렇게 말하고 한규호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잡았다.

“잘 가게.”

한규호가 말했다.

“도, 도와줘…….”

그런 한규호의 귀에 츠네타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규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츠네타카가 그를 보고 있었다.

“시, 시게노 상무.”

츠네타카가 말했다.

“시마다……에게…… 시게노 상무가…… 말했을 거야. 겨……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츠네타카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

코시자와중공업의 코시자와 카네모토 회장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우키요에가 걸려 있는 요정의 내실에 앉아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코시자와 회장은 우키요에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대신 무거운 얼굴로 앞에 있는 남자, 나이초(내각정보조사실)의 히사키 반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젯밤 아키타로 갔던 두 사람이 사라졌다.

큐슈에서 여자를 데려온 마에하라는 어떠한 영문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애블린을 맡았던 츠네타카에게도 연락이 끊겼다.

불쾌했다. 지금 어떠한 상황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그나마 나이초, 일본 제1의 정보기관이라는 내각정보조사실에서 정보를 가져왔다.

어젯밤, 아키타에서 미군의 치누크 한 대가 이륙했다.

주일 미군의 긴급 기동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전날 아키타로 떠났던 치누크가, 남편이 투숙했던 료칸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이륙해 아카사카에 있는 유일한 미군 전용 헬리포트인 프레스센터로 날아갔다는 이야기였다.

두 사람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히사키 반장이 분석했다.

츠네타카도 확인되었다.

나이쵸는 가부키쵸의 CCTV를 다 돌려서 츠네타카가 괴한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애블린이 차량에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애블린을 납치한 차량은 도난 신고가 되어있었고, 나이초는 그 차량이 어디로 갔는지를 추적 중이라고 했다.

또 다른 미확인 차량이 폭행당한 츠네타카를 회수해가는 모습도 확인되었다. 물론 이 차량 또한 추적 중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여기까지입니다.”

히사키 반장의 보고가 끝났다.

그러나 코시자와 회장은 말이 없었다.

코시자와 회장은 그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다기(茶器)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코시자와 회장이 물었다.

“우선 브랜든 허드슨과 애블린 길먼 두 사람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히사키 반장은 미리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황하지 않고 바로 말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선 아키타에서 포착된 헬리콥터가 브랜든 허드슨과 연관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헬기에 탑승하고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갔다면 왜 미군이 움직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코시자와 회장이 히사키 반장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 질문이 담겨 있었다.

어떻게?

히사키는 당연히 그 눈빛을 읽었다.

“비공식 채널을 통해 헬기 운용과 관련한 사실 확인을 요청해 놓았습니다. 더불어 요코스카에 있는 정보원들에게 정보를 수집할 것을 지시해 놓았습니다. 오늘 밤이면 1차 보고서가 올라올 것입니다.”

히사키 반장이 말했다.

코시자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 두 사람이 헬리콥터를 탔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미국이 MD시스템즈 에이전트의 남편을 데려갔다고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남자가 브랜든 허드슨이 아니라 다른 존재였다면 미국에 빌미를 주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 여자.”

히사키 반장의 말에 코시자와는 그 여자를 떠올렸다. 마리아 개트너, 큐슈에서 올라온 고급 접대부.

“그 여자가 특별히 아는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어찌되었건 마에하라의 조직과 코시자와중공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쉽게 파악될 것입니다.”

코시자와 회장은 츠네타카를 떠올렸다.

그 놈의 부하 직원으로 위장했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 두 사람이 미군 헬기를 타고 미군의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면, 우리는 절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저들에게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코시자와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GHQ(General Headquarters, 일본 점령군 사령부 - 1945년 10월부터 1952년까지 일본을 군정 통치한 군정기관).

그 망할 놈의 GHQ 때부터 그랬다.

GHQ는 새로운 막부였고, 맥아더는 새로운 쇼군이었다.

두 발의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천황폐하께서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한 그 날 이후, 미국 놈들은 언제나 이 땅 위에서 군림하고 있었다.

전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이 나라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패전국 상태로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영공에서 타국의 헬리콥터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두고 있단 말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워싱턴에 손을 써 두어야 합니다.”

히사키 반장이 말했다. 일본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로비스트들을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코시자와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로 두 사람이 헬리콥터를 타지 않았다는 가정입니다.”

히사키 반장이 말했다.

“헬기를 타지 않았다면, 아키타에서 미군의 작전이 그저 우연이었다면, 두 사람은 아직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디에도 아키타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흔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코시자와 회장의 시선이 히사키 반장을 향했다. 다시 그 눈빛이 말했다.

어떻게 할 거지, 찾는다면?

“사람들을 풀어놓았습니다.”

히사키 반장이 말했다.

코시자와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정답을 알고 있었다.

현재 실종 상태인 두 사람을 히사키가 풀어놓은 사람들이 찾는다면, 그들은 영원히 실종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여자는?”

코시자와 회장이 말했다.

“애블린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조만간 애블린의 위치가 파악될 것 같습니다. 파악되는 대로 작업에 들어갑니다.”

“누가 진행하나?”

코시자와 회장이 물었다.

군대를 보유하지 못하는 일본에서 은밀하고 신속하게 구출작전을 벌일 만한 부대는 육상자위대의 특수작전군(JGSDF)이 유일하다.

문제는 특수작전군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수상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주일 미군에 통보도 해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일 수는 없었다.

정보수집과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는 나이초에는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과 달리 동원할 수 있는 특수부대도 없었다.

“독립 요원들을 소집했습니다.”

히사키 반장이 말했다.

코시자와 회장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래도 그렇지 고작 용병이라니.

“간살(姦殺)당한 여자의 시체를 발견할 것입니다.”

코시자와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블린은 죽는 것이 좋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범인은 만들어 내면 되니까.

“츠네타카.”

코시자와 회장이 만들어질 범인의 이름을 올렸다.

“위치를 파악 중입니다. 현재 도쿄도 인근의 모든 병원을 수색 중입니다. 조만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찾게 되면, 계열 병원으로 옮기고 처리할 계획입니다.”

츠네타카가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서 브랜든에게 여자를 붙이고, 자신은 애블린을 범하려 했지만 일이 어그러지면서, 실패하게 된다. 자신의 개인적 욕망으로 책임지지 못한 일을 벌인 츠네타카는 옥상에서 투신한다. 그리고 병실에서는 유서가 발견된다.

이미 충분히 검증된 뒤처리 방법이다. 어려울 것이 없었다.

***

한규호는 다시 상황실 옆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은 한규호는 아무 말 없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한규호를, 항상 따라다니는 세 명의 요원이 바라보고 있었다.

츠네타카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한규호는 큰 그림을 그려 낼 수 있었다.

코시자와중공업 회장 코시자와 카네모토, 코시자와중공업의 상무이자 방위성 전 사무차관인 시게노 이오, 현 방위성 방위정책국장 사와베 노리히데, 그리고 츠네타카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내각정보조사실 소속 어떤 남자와 우익 야쿠자 집단타이코우카이(大行会)를 이끄는 또 다른 남자.

그리고 현직 중의원 시마다.

이들은 같은 목적을 가진 모임의 구성원이었고, 이들의 지시를 받아 한규호에게 여자를 붙이고, 애블린에게 접근했다고 츠네타카가 말했다.

비행기에서 트레이시를 본 시마다는 그녀가 MD시스템즈의 에이전트인 것을 그 모임에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제 자신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을 모임에서 알게 되었을 테고.

욕정을 참지 못한 그가 야쿠자 조직을 동원해 일을 벌인 것이다.

왜 영상을 찍으라고 지시했는지도 이해가 갔다.

시마다는 자신의 자리는 지켜내면서 욕정만을 채우려 한 것이다. 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도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동지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행을 한 것이다.

한규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로랜드 요원을 바라보았다.

***

로랜드는 한규호가 자신을 바라보자 긴장이 됐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정체불명의 남자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것.

랭리의 명령이었다.

티모시 응옌 요원에 말을 따르면 이 남자는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한창때의 네 명의 청년들을 반신불수로 만들었다고 했다.

가능한가, 그게?

당연히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도 CIA에서 격투 훈련을 받았다. 격투 교관이 귀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했던 말이 그것이었다.

절대로 다수와 싸우려 하지 말 것.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시마다는 지금 어디에 있소?”

병실을 나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한규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 MISSION 04 : 츠바키 (59) > 끝

0